Switch Mode

EP.16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마법사는 태연했다.

       오히려, 측은하다는 듯이 이리드를 바라보았다.

       

       “황자님⋯⋯ 이건 그저 환상 마법입니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을 모욕하지 마라⋯⋯!”

       

       멱살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리드는 말 그대로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마법사는 시선이 따갑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

       

       “환상 마법이라는 걸 부정하셔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뭐?”

       

       미치광이의 언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쪽이 더 간편합니다. 황자님. 올바르기까지 하고요.”

       

       “못된 마법사가 황자님을 약간⋯⋯ 골려 준 것이며, 안에서 겪었던 모든 사건과 사고들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 다음은 쉽습니다. 합당하게 분노하고, 짓궂은 마법사에게 엄벌을 내리면 그만입니다. 여기서 황자님이 책임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환상을 진실이라고 믿으신다면⋯⋯, 맙소사.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마법사의 우울한 눈이 이리드를 바라보았다. 이리드는, 여전히 치솟고 있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눈동자에서 소용돌이치는 무심함에. 정말, 이 모든 것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광기에.

       

       “저는 황자님 같은 분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거리를 두지 못하고 몰입하는 분들은 모두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이방인이니까요.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과는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환상 마법. 이걸로 좋지 않겠습니까?”

       

       

       이리드의 손이 그의 흔들리는 마음만큼이나 떨렸다.

       

       상처받은 마음을 헤집는 지독한 독설이고, 모욕이었으나. 그만큼 유혹적이었다. 자신이 받은 상처도, 센트라의 위기도, 영락제라는 비참한 미래도, 모두 거짓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습격의 전조를 읽어내지 못하고, 그녀가 폭발에 휘말리게 둔 멍청한 자신을 환멸하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그저 눈앞의 마법사에게 분노를 토해내면, 그걸로 모든 것이 매듭지어지니까.

       

       그러나.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려낼 수 있는 추억이.

       아직도 코끝에 감돌고 있는 로즈마리의 향기가.

       아직도 아려오는 심장이, 거부하고 있었다.

       

       ⋯⋯차마, 속 편한 선택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2황자 이리드는 9일간의 여정을 되새겼다.

       이리드의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과거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낯선 미래에 떨어져, 내 실패를 곱씹으며 도시의 뒷골목을 전전하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지. 아직도 내 귓가에는, 이따금씩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락제라는 미래에,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려고 했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척이나 행복했지. 언젠가부터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나의 끔찍한 실패도 잊었다.”

       

       도망치는 이리드를, 그녀는 붙잡아주었다. 

       그녀는 반딧불이처럼 이리드의 영혼을 이끌어주었다.

       

       “마치 영혼에 뚫린 구멍이 메워진 것처럼 충만해. 나는 그녀에게서 너무 귀중한 것을 받아버렸어.”

       

       그리고 지금의 이리드가 있었다.

       

       분노와 초조함에 사로잡혀있던 이리드는, 마법사의 뒤틀린 말에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눈앞의 마법사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버린 자신의 미래를 비추고 있었다.

       

       도망치기 위해서, 애써 모아 온 소중한 것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상처도, 기쁨도, 모두 끌어안으며 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했다. 세상은 그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그런가. 그래, 그랬던 건가.”

       

       2황자 이리드는 깨달았다.

       

       어째서, 자신은 100년 후의 제국에서 깨어났는가.

       어째서, 그 넓은 제도에서 영혼의 반쪽을 찾아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무작위로 날려보내는 마법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먼 과거의 신들은, 자신의 챔피언에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시련을 내렸다고들 하지. 그리고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막대한 힘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운명의 시련. 신들이 직접적으로 인간계에 간섭하던 시절, 대리인을 선택하기 위해 치러진 운명을 반상 위에 놓아 흔드는 대의식.

       

       “시련과 고난. 피시전자의 운명에 맞닿아있는 세계로 이동시키는 차원 마법인가.”

       

       “⋯⋯그렇게 생각하시기로 한 겁니까?”

       

       “분명 본인의 몸으로 먼저 겪었겠지, 마법사. ⋯⋯그리고 마음이 꺾여버리고 말았나.”

       

       “썩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 몇 번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전부 환상인걸요.”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동작은 무척이나 기계적으로 보였다.

       마법을 완성한 뒤, 마법사 역시 차원이동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처참한 실패를 겪었겠지. 마음이 박살나버린 그는, 모든 것을 환상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았다.

       

       “미치광이 놈, 네가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건 뭐라고 하지 않겠다. 나도, 그녀가 없었더라면 마음이 꺾이고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내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해다오.”

       

       센트라를 구해야 한다. 폭발의 위력은 상당했으나,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 대비한다면 중상에 그치는 정도였다. 센트라는 반응 속도와 감각이 뛰어났으니 분명 제대로 방어해냈으리라.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서 레지스탕스 강경파는 센트라를 죽이러 올 터. 그녀는 취약하고, 위험한 상태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건 이리드 뿐이었다.

       

       2황자 이리드는 결의를 다졌다.

       

       마법사는 혼란스럽다는 듯 머리를 흔들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황자님. 반대편의 시간은 거의 멈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한가?”

       

       “충분히 준비를 하고, 맛 좋은 간식을 먹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플레이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시간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군. 내게 몇 번의 기회가 남았지?”

       

       “⋯⋯한 번입니다, 황자님.”

       

       “그렇다면 일주일 후에 보지. 마법 재시전에 필요한 물건은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내주게.”

       

       이리드는 마법사의 구겨진 옷매무새를 펴 주고는 등을 돌렸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서로 대치 중이던 자색 마탑주와 소년 기사도 마력을 갈무리했다.

       

       이리드는 소년 기사를 거두어 마탑을 떠났다.

       

       ===============================================================

       

       벽면 한쪽이 완전히 작살나버린 마탑에서, 나와 마탑주는 서로를 맹한 표정으로 마주보았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상황을 파악했고,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풀어놓았다.

       

       “지금 제가⋯⋯ ‘차원 마법에서 피폐물 찍고 미쳐버려서 환상 마법이라고 자기세뇌하는 미치광이’로 착각당한 거 맞죠?”

       

       요약해서 풀어놓고도 이해가 안 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누가 미치광이야 누가. 나는 픽션이라고 세 번이나 안내를 했잖은가!

       나는 당연히, 2황자가 RP를─연기를─ 몰입해서 하고 있겠거니 했다.

       

       환상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을 줄 알았다. 아니, 그야!

       세상에 어떤 미친 황자가 차원 마법 테스트를 자기 몸으로 한다는 말인가?

       

       부하를 한 열 명 정도 갈아넣고, 안전이 보장된 다음에야 뛰어드는 게 정상이지!

       자기도 환상인 줄 알았으니까 심심풀이 삼아 테스트를 조진 것 아닌가!

       

       그런데 차원 마법에 자기 몸으로 뛰어드는 미친 황자가 사실일 줄은⋯⋯.

       

       오해해놓고 성질이라며 분개해야 하나, 그만큼 내가 가상현실 구현을 잘 했다는 의미니까 좋아해야 하나 오락가락하고 있으려니, 마탑주가 조심스럽게 소신발언을 했다.

       

       “으,응⋯⋯ 근데 있지.”

       

       “예.”

       

       “황자님이랑 너랑 비교하면 네 쪽이 정신이⋯⋯ 살짝? 아픈 건 맞잖아⋯⋯. 사실 진짜 차원마법인 거 아닐까?”

       

       “???”

       

       마탑주의 얼탱이 없는 소리에 나는 부정하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나랑 황태자랑 비교하면 황태자가 더 말끔하긴 하지 않은가. 사람 이름도 기억하고.

       

       사실 나는 통 속의 뇌인가?

       

       GM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차원 마법사?

       

       캐릭터를 만들어서 내보낸 거라고 생각했던 버추얼 아이돌 하트쨩이 사실은 내 숨겨진 자아??

       

       “크아아악 아니야!!”

       

       황태자의 풍둔 아가리술에 나와 마탑주는 대규모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둘이서 토템도 돌려보고 볼도 서로 꼬집은 뒤에, 다시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하트 삼백명을 복제해 단체 플래시몹을 시킨 뒤에야.

       

       아 환상마법 맞구나 하고, 안심하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

       

       “경, 화염 마탑의 마법사들 중 계산에 조예가 있는 자들을 초빙해 주게. 내 누님에게도 연락을 부탁하지.”

       

       “⋯⋯괜찮으신 겁니까? 황자님, 최면이 의심됩니다.”

       

       “그렇다면 해주해보겠나?”

       

       “실례하겠습니다.”

       

       소년 기사는 손에 마력을 끌어모아 2황자 이리드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이리드는 잠시 휘청거리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떻습니까?”

       

       “멀쩡하다. 기분이 급격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았고, 기억의 공백도 느껴지지 않는군. 내 결의도 제대로⋯⋯ 온전히 남아있다.”

       

       소년 기사는 눈썹을 찡그렸다. 단 세 시간이었다. 세 시간만에 황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충동적인 성격은 올곧은 추진력이 되었다.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정광(正光)은 흔들리지 않는 각오를 비추고 있었다.

       

       “무슨 일을 겪으셨습니까?”

       

       “100년 후의 미래에서⋯⋯ 사랑을 했다. 낯부끄럽군.”

       

       “제게는 퍽 낯설게 들리는군요. 황자님께서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으시지 않았습니까.”

       

       “뭐얼, 매력적인 여성을 여지껏 만나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 정도로 푹 빠지셨다면, 충의를 다하기 위해서 황자님을 막아서야 할까 염려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차원 마법을 이용하는 것을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지. 마음 같아서는 100년 후의 미래에 남아있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이 제국에 『맥주와 노래』가 울려퍼지게 해야 하니까. 왕국 연합의 흑마법사도 막아야 할 테고.”

       

       “⋯⋯⋯⋯.”

       

       “용기를 내 보려고 한다. 그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으니. 제국을 위해 힘내는 건 잠깐 미뤄두지. 어울려주겠나, 경?”

       

       “깜찍하고 보기 좋군요. 따르겠습니다.”

       

       이리드가 앞서 걸었고, 소년 기사가 그 뒤를 따랐다.

       남은 기간은 일주일. 

       

       이리드는 센트라를 구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모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옆에 쁘라쓰 달려있어요⋯⋯ 짱신기함⋯⋯.

    여러분들의 응원, 댓글, 후원, 관심, 이것저것 좋은 것들 전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가슴이 뜁니다. 행복하고요.
    어디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이라도 말하는 것 마냥 줄줄이 적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호들갑이겠죠! 지금은 그저 첫 발을 뗀 것이니.

    아카데미상 뺨치는 길고 장문의 수상 소감은 완결 때리고 적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마이 프렌즈!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