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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유라크네가 서커스단에 들어온 것은 다섯 달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믿기 힘든 얘기겠지만……

       그녀가 들어올 때만 해도 단장과 단원들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단원들은 그들의 단장을 상당히 좋아했다.

         

       -여러분, 오늘 새로운 식구가 합류했습니다! 유라크네 씨!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 안녕하세요? 유라크네라고 합니다.

       -오옷! 드디어 단장님이 해냈어! 우리에게도 여자 단원이 생겼다고!

       -응? 두네돌 씨, 여자 단원이라면 엘라 양이 있잖아요?

       -부단장은 그냥 꼬맹이고, 크크크.

       -후후, 엘라 양이 들으면 큰일 납니다, 쉿!

         

       단장은 지금까지 그녀가 봐왔던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괴물 단원들을 두려워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항상 친절한 미소를 띠고, 스스럼없이 농담도 던지며 그들을 대했다.

         

       -엘라 양! 환영 케이크는 아직입니까?

       -이봐, 그거……여기 오는 3일 내내 당신이 다 퍼먹었잖아…….

       -이런! 후식 때마다 먹던 게 그거였나요?

       -……한심하긴.

         

       부단장인 엘라는 그를 마땅찮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당시만 해도 그 나이대의 소녀들답게 새초롬하게 군다고만 여겼다.

         

       -단장님, 식사하시고 시장에 같이 다녀오지 않을래요?

       -후후, 그거 좋죠.

       

       유라크네는 다른 단원들보다 조금 더 단장을 좋아했다.

       남편을 잃고 2년 동안 숲속에서 숨어지내듯 산 그녀.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품속에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온기가 남아 있었나 보다.

         

       -단장님! 저글링 하는 것 좀 봐주시겠어요?

       -저글링이요? 흠, 팔 여섯 개를 전부 활용하려면 말이죠…….

       -단장님! 마을에 혼자 내려가기 무섭네요! 함께 가주세요!

       -후훗, 어쩔 수 없군요.

         

       유라크네는 있는 핑계 없는 핑계 다 대가며 단장 옆에 꼭 붙어 다녔다.

         

       20대 중반의, 한 번은 결혼한 여자가 주책없이 군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스벤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 남자가 좋았다.

         

       한 번은 잠가 걸었던 마음을 그가 다시 열어주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다.

         

       -으아아악!

       -도망쳐라!

       -악마다! 저놈은 악마야!

         

       그리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한 달째의 어느 날.

         

       원더스타인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사람의 머리가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피와 살점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지옥과도 같은 광경 속에서 원더스타인은 웃고 있었다.

       평소처럼 친절하고 환한 미소 그대로.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인간 폭죽이 터지는 장면은…….

         

       그날 이후였을까.

       단원들이 단장을 피해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어라, 여러분. 벌써 식사를 끝내셨나요?

       -아……저……그……. 아, 아무래도… 단장님이 주무시는데 깨우기 그래서…….

       -아, 네네. 먼저……먹어버렸네요.

       -……그래요?

         

       그리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라 씨, 오늘 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했었죠?

       -네, 넷? 저, 저기 그러니까…… 저, 저 혼자서 가도 될 것 같아요!

       -…….

       -벼, 별로 많지도 않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엘라가 대표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 꼴을 보이고도 단원들이 당신을 예전처럼 대하리라 생각한 거야?

       -후후, 많이 충격이었나 보군요.

       -어쨌든 앞으로 이 서커스단을 계속 끌고 갈 생각이 있으면, 앞으로는 그냥 나에게 맡겨.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원더스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미소로 똑같은 목소리로.

         

       차라리 그가 화를 내거나 섭섭함을 표했으면 인간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이제야 그의 실체가 보였다.

         

       지독하게 인위적인 미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식적인 말투.

         

       그는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고작 딱밤 한 번 먹인 것 때문에요? 아프지도 않았어요.

       -여자 혼자 가기엔 밤길이 어둡잖아요. 제가 같이 가드릴게요.

       -저는……남편입니다.

         

       악마의 달콤한 목소리.

       그의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의 행동에는 배려심이 넘쳤다.

         

       그리고 어딘가……

       뭔가가……

       예전보다 인간적으로 변했다.

         

       순간이지만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안기고 말았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피하던 악마의 품에.

       

       두근, 두근.

         

       사납게 뛰는 심장은 결코 공포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유라는 자신을 다잡았다.

       그의 실체를 알면서도, 쉽게 흔들리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속으면 안 돼.

       그의 친절을 믿으면 안 돼.

       항상 경계해야 해.

       마음을 풀어선 안 돼.

         

       -고등어는 보통 하구 쪽에서 소금 간을 해서 올라와요. 큰 시장에서 주로 대규모로 거래되죠. 이런 작은 어시장에서 생물로 보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낮의 어물전에 가면 보기 쉬울 거예요.

       -과연 유라크네 씨군요. 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런……가요?

         

       고등어 얘기는 우리가 처음 장을 보러 나왔던 날 했었어.

       나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대답을 해봤어.

       그런데 당신은 처음 듣는 것처럼 말해.

       기계적으로 나에게 칭찬을 해주지.

         

       참으로 같잖은 인간의 흉내.

         

       당신의 말.

       당신의 미소.

       모두 그냥 꾸민 것일 뿐이잖아.

       거기엔 어떠한 마음도 담겨있지 않지.

         

       머리와 몸통이 폭죽처럼 터져나가던 기사들을 기억해.

       하나의 공처럼 뭉쳐버린 마을 사람들을 기억해.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돌덩이로 만들어버린 동료 단원을 기억해.

         

       그는 악마야.

         

       유라는 풀어진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았다.

         

       “……떨어지는 게 좋을까요?”

       

       그녀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그녀의 맥박은 차가울 정도로 차분해졌다.

         

       그도 느끼고 있을까?

         

       그의 표정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미소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유라크네 씨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뭐가 악마가 원하는 것일까?

       붙어있는 것일까, 떨어지는 것일까.

         

       유라크네가 잠시 고민하는 동안, 낙찰되었던 물건의 포장이 끝났다.

         

       “낙찰 번호 29번! 29번!”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잠시 갔다 올게요.”

         

       유라크네는 자연스레 단장의 품에서 빠져나와 하역장으로 다가갔다.

         

       하역담당자는 그녀에게서 돈을 받고 영수증을 교환해 주었다.

       일꾼은 생선이 담긴 바구니를 그녀에게 건넸다.

         

       아니.

       건네려 했다.

       

       “어, 어? 다, 당신은…?”

         

       일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시선은 유라크네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의 커지는 동공을 보고, 그녀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떠올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끄아아악! 괴, 괴물이다아아아!”

         

       그가 바구니를 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설마 서커스단에 왔었던 사람 중 한 명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괴, 괴물이다아아! 괴물이 잡아먹으러 왔다아아!”

        “이봐! 자네 왜 그래?”

       “허어, 이 친구가 뭘 잘못 먹었나?”

         

       일꾼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하역장에서 일하는 다른 일꾼들이 달려와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난동을 부리는 그를 보고 그녀는 그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공연에 앞서 스벤의 놀잇감이 되어준 그 일꾼!

       그가 틀림없었다!

         

       그는 놀이에 협조한 대가로 무료로 입장을 했다.

       그러다 ‘붕대 감은 남자’를 보고 토사물을 한바탕 쏟고, ‘거미 여인’을 보고 바지에 오줌을 지렸으며, ‘적혈귀’를 보고는 졸도까지 해버렸다.

       1년 치 망신을 하루 만에 다 당한 그는 혼이 빠진 표정으로 놀이마당을 떠났다.

         

       자고로 관객의 적절한 호응은 공연자에게 있어 기쁨이었다.

       그는 저녁 시간에 단원들의 농담거리가 되어 큰 웃음을 주었다.

         

       그런 그를 하필이면 여기서 마주친 것이다.

         

       심상치 않은 낌새에 물러나려는 그녀.

       그때, 일꾼이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켰다.

         

       “저, 저 여자 괴물이에요!”

       “자네 진정 좀 해! 무슨 헛소리인가?”

       “지, 진짜예요! 오늘 놀이마당에 온 괴물서커스단! 남자를 잡아서 빨아먹는다는 그……거미 여인! 맞아요! 거미 여인! 팔이 6개나 있단 말이에요!”

         

       사람들의 시선이 유라에게로 쏠렸다.

         

       어두운 보랏빛 머리칼에 어딘가 슬퍼 보이는 낯빛이 매력적인 얼굴.

       지금이 낮이 아니라 자세히 살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미인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그녀에게 괴물이란 호칭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몇몇 사람이 수군거렸다.

         

       “그러고 보니…….”

       “닮지 않았어?”

         

       낮에 공연을 본 사람이 여기에 꽤 많았다.

         

       자줏빛 입술도, 입가에 흐르는 새빨간 피도, 검게 가라앉은 눈화장도 없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가리기 쉬운 게 아니었다.

         

       일꾼들 사이에서도 말이 오갔고, 손님 중에서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괴물이 어떻게 여기에?”

       “저주받았다고 안 했어?”

       “사람을 잡아먹었대.”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적대적인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험악한 소리가 나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괴물은 모습을 보여라!”

       “팔이 여섯 개나 있다며?”

       “재수 없게 어딜 얼씬거려?”

         

       협박과 야유와 조롱이 어시장을 시끌벅적하게 했다.

       여기는 괴물의 소굴이 아니었고, 자기네들이 훨씬 쪽수가 많았다.

       거기다 상대는 위험해 보이는 괴물이 아니라 무력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낮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어디, 벗어 봐!”

         

       불시의 기습이었다.

       뒤편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유라크네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유라크네는 뒤늦게 망토를 붙잡았지만, 망토는 이미 허리춤까지 끌려 내려간 뒤였다.

         

       펄럭.

         

       망토가 미끄러지며 그 아래 웅크리고 있던 여섯 개의 팔이 드러났다.

       새하얗고 가녀린 여인의 팔이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녀는 괴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괴물의 정의다.

       보통과 다르다는 것.

         

       “으아악! 진짜 팔이 여섯 개야!”

       “정말 그 거미 여인이었어! 잘못 본 게 아니야!”

       “징그럽잖아!”

       “어휴, 뭐 저렇게 생겼대.”

       “웩, 저게 사람 꼴인가.”

         

       경멸과 혐오가 군중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악의 가득한 조롱과 멸시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일부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역겨운 괴물년! 그 얼굴로 남자를 얼마나 꾀고 다녔어?”

         

       휘익, 딱.

         

       따개비 하나가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맞고 떨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철창에 갇혀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던 그 날.

         

       “재수 없게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샤악, 퍽.

         

       손바닥만 한 작은 생선이 그녀의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몸이 조금 흔들렸다.

         

       바닥에 떨어진 생선의 죽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봤다.

       어둡고 퀭하다.

         

       안녕? 너도 나처럼 혼자구나.

         

       주변에 그녀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한 남자.

         

       유라크네는 그를 돌아봤다.

       

       그녀가 떠나온 자리.

         

       몰려든 군중들 사이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상황이 이런데도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이 광경을 보고 즐기는 것처럼.

         

       인파가 출렁일 때마다 그림자 역시 윤곽을 드러냈다 숨겼다 거칠게 흔들렸다.

         

       얼핏 드러난 빛 틈새에서.

       그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똑똑히 봤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악

       마

       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입성했습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좀 말씀드리자면,
    권 당 25화씩 끊고 싶은 게 계획이라

    1권은 챕터1 10화+챕터2 8화+챕터3 6화+에필로그 1화
    요렇게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첫 권은 기반 캐릭터들을 다지는 데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챕터3 제목은 예상하시겠죠.)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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