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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강매는 범죄다.

       

       배 터질 때까지 판그레이브 풀 코스를 즐겼고, 1층 수준의 장비지만 단검과 석궁용 볼트까지 세트로 맞춘 데다가, 마력초 영약 제련 비용까지 가불받았지만! 그렇게 아낀 돈으로 나중에 가챠 돌릴 생각 하면 즐거워졌지만!

       

       아무튼 강매는 범죄다.

       

       그런 이유로 한 손으로 멋지게 셰이커를 흔드는 엘리의 배에 얼굴을 비벼대며 우는 소리를 냈다.

       

       “흐아아아앙! 엘리! 저 좀 살려주세요!”

       

       “지금 영업 중이잖니 요나야…바쁘니까 세 문장으로 요약해 보렴.”

       

       “리디아 님이랑 데이트함. 근데 데이트 비용 떠넘김. 요나 슬픔. 흑흑.”

       

       “뒤에 흑흑 붙여서 굳이 네 문장으로 만들 필요 있었어? …잠깐. 그보다 데이트라고? 리디아랑?!”

       

       “넹.”

       

       밥 먹고, 카페 가고, 쇼핑하고, 저번 미궁 탐사의 복습이 주제지만 잡담까지 했으면 그건 데이트 아닐까?

       

       직접 해 본 적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럴 거다.

       

       엘리를 이용한 차도살인지계를 펼쳐 채무 관계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건 절대 아니다.

       

       아, 정말이라니까.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강제로 끌어내리며 서글픈 소리를 연기한다. 그 노골적인 모습에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한 걸까.

       

       리디아는 앉으려고 방금 막 빼놓은 의자를 다시 밀어 넣고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이미 늦었지만.

       

       “동작 그만.”

       

       “엘리 선배. 오해임. 대화로 풀자.”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가 내 애인인 것도 아닌데, 데이트 좀 했다고 뭐라고 하겠어?”

       

       “응…뭐라고는 안 하겠지. 대신 지금처럼 살기를 뿜겠지만.”

       

       한숨을 푸욱 내쉬며 결국 자리에 앉는 리디아. 엘리가 그런 리디아 앞에 방금 막 섞은 술을 따르며 말했다.

       

       “아니라니까. 난 그냥, 어? 선배로서 한마디 하려는 것뿐이야. 이것 봐. 공짜 술도 따라주고 얼마나 좋은 선배야.”

       

       “꼰대, 곤란.”

       

       “닥치고 들어! 어떻게 여자가 남자한테 돈을 받으려 들어? 심지어 요나는 아직 애잖아!”

       

       “구시대적 발언 멈춰. 요즘은 남녀평등의 시대. 모험가라면 남자도 강하고, 돈 잘 벌어…!”

       

       소극적으로 항의하는 리디아. 엘리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응애. 나 아기 요나. 강하지도 않고, 돈도 없어요.”

       

       “…요나. 나중에 두고 봐.”

       

       무표정하게 이쪽을 노려보는 리디아.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나도 할 말이 참 많은데 잘됐네.

       

       “두고 보긴 뭘 두고 봐요. 지금 보면 되는데.”

       

       “엘리 뒤에 숨어서?”

       

       “설마 엘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죠?”

       

       어깨를 으쓱이고는 검지로 리디아를 척! 가리켰다.

       

       “우선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굳이 남녀가 평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제가 놀고먹으면서 엘리의 돈으로 생활할 수 있잖아요?”

       

       분명 리디아에게 말했건만 대답은 엘리 쪽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질렸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 정말 쓰레기 같은 이유네. 뭣보다 요나 너랑 결혼한단 말은 안 했거든?”

       

       “세상에. 그럼 엘리는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어야 하잖아요! 불쌍하게도….”

       

       “그게 무슨 의미니 요나요나야. 다음 말을 잘 선택해서 하는 게 좋을 거야.”

       

       “에이. 선택하고 자시고 말 그대로예요. 하루 종일 야한 생각만 하는 만년 발정기에, 취향도 은근 과격한 데다가, 내일모레면 노처녀인 엘리를 받아줄 사람이 저 말고 또 있냐는 소리예요.”

       

       “…….”

       

       진심으로 상처받았다는 듯, 말없이 쭈그러드는 엘리.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역시 저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고 그러시죠?”

       

       “…솔깃하긴 했는데, 그래도 빚쟁이는 좀 아니야.”

       

       이 와중에도 빚을 대신 떠안지 않겠다는 저 올곧은 의지에 감탄했다.

       

       “역시 엘리! 버는 족족 먹을 거랑 새 장비를 사느라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는 리디아와는 다르네요! 완전 일등 신붓감!”

       

       “대체 요나 네 안에서 신붓감의 기준은 뭐니?”

       

       “예쁘고, 착하고, 돈 많고, 무엇보다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

       

       “그건 배우자가 아니라 형편 좋은 호구잖아! 결혼이라는 건 이렇게! 어? 좀 더…어?!”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연신 어어 거릴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뭐어…하려던 말은 그거겠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한다고요?”

       

       “그, 그래 그거!”

       

       “솔직히 그 부분을 잘 모르겠단 말이죠. 누굴 그 정도로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엘리를 향한 마음은…조금 복잡하지. 일단 밑바닥에 내 캐릭터를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이 깔려있으니 말이다.

       

       나 김요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모솔 아다. 짝사랑을 제외한 사랑은 전부 글로 배웠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그리 말하자 어째서인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엘리와 리디아.

       

       왜지. 왜 그런 지뢰 밟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지.

       

       분위기가 완전히 이상해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 볼 생각으로 엘리의 꼬리를 잡았다.

       

       길고 푹신푹신한 털. 내 손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근육의 움직임. 마치 별개의 생물 같다는 감상과 함께 꼬리를 목에 둘렀다.

       

       엘리의 꼬리를 목도리 삼아 두른 모양새.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평소에 잘 관리한 건지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운 감촉이다.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다!

       

       이미지하는 것은 주인공의 옷을 걸치자, 주인공의 냄새가 난다며 헤실거리는 히로인.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엘리 같은 모솔 아다의 로망은 잘 알고 있다. 그냥 내가 당했을 때 좋은 거 해주면 다 좋아하더라고.

       

       “쓰으읍….”

       

       목에 두른 엘리의 꼬리에 코를 파묻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절로 풀어지는 입가.

       

       뭐랄까. 강아지 냄새에 은은한 향수가 섞인 것 같네.

       

       그렇게 한차례 엘리의 체취를 음미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엘리의 노란 눈동자가 충동으로 번들거렸고, 리디아는 마냥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에 빙그레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사랑을 잘 모르지만, 만약 예쁘고 착하고 돈도 많고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분명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누구라고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엘리를 차분히 바라보았을 뿐.

       

       헌데, 엘리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이쯤에서 취향을 저격당한 사람처럼 잔뜩 흥분하거나, 반대로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은 걸 참아내듯 괴로운 표정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엘리는 나를 격려하듯, 씁쓸하면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뻗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으니까.

       

       “괜찮아. 분명 요나는 그렇게 될 거야.”

       

       “에.”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데. 반사적으로 리디아를 바라보았지만, 이쪽도 다를 게 없었다.

       

       감동스러운 영화라도 본 것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작게 손뼉 치고 있었으니까.

       

       뭔데. 진짜 뭔데….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결국 이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엘리의 꼬리에서 쏙 빠져나오며 말했다.

       

       “흠흠! 아무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죠!”

       

       “다른 이야기? 아, 리디아의 처형식이라던가?”

       

       “…여기서 제안. 날 처형하는 것보다, 엘리 선배도 나중에 요나랑 노는 게 이득이잖아.”

       

       “뭣! 내가 요나랑 데이트…?”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갑자기 우수에 찬 표정이 되는 엘리. 나는 안다. 저거 야한 생각할 때 숨기려고 짓는 표정이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엘리. 이제부터 일 이야기 하려는데 야한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아, 안 했거든?! 완전 건전한 생각만 했거든?! …그나저나 일 이야기?”

       

       “넹. 내일 다시 미궁에 들어갈 거니, 그 부분을 잠깐 이야기하려고요.”

       

       “따로 뭐 할 거 있나? 어차피 1층이잖아. 그냥 샤샥 들어가서 적당히 쓸어버리고 오면 되는 건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 설명이 너무 대충인 감이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1층은 몬스터가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고, 귀찮은 기믹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평범하게 싸우기만 하면 된다.

       

       애초에 1층은 모험가 튜토리얼 존 같은 곳이니 당연한 일이지.

       

       …보통은 그렇다.

       

       “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아볼 생각이거든요. 그만큼 강해져야 하니, 팍팍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죠!”

       

       큰맘 먹고 한 말이 건만 어째 둘의 반응은 미묘했다.

       

       “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지.”

       

       “…모험가라면 다들 해 본 생각. 하지만 아무도 성공한 사람은 없어.”

       

       심드렁한 목소리. 추억을 더듬듯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련한 어조.

       

       이거 절대 안 믿는 분위기구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계층 수호자는 그 이름답게 해당 층을 대표하는 일종의 보스몹.

       

       어느 층이나 하나씩은 존재한다고 알려진 녀석이다. 만약 발견 못 한다면 그냥 리젠이 안 됐거나, 등장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을 뿐이고.

       

       하지만 예외적으로 1층만큼은 계층 수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1층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 만큼 모험가라고 하기도 뭐한 햇병아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만약 계층 수호자 같은 강력한 몬스터가 돌아다니면 성장은커녕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늘어날 터.

       

       자비심 깊은 사랑의 여신께서는 이 점을 우려하여 1층은 예외로 두었다…라는 내용이 정설이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소리다. 1층에도 제대로 계층 수호자는 존재하거든. 그저 소환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까다로워서 아직까지 아무도 모를 뿐이지.

       

       엘리와 리디아를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 내기라도 할까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소원 하나 들어주기요.”

       

       그 말에 둘의 시선이 돌변했다. 엘리는 알기 쉬운 욕망으로 번들거렸고, 리디아는 사명감을 불타 고개를 끄덕였다.

       

       “콜!”

       

       “…무르기 없기.”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이 발렌타인이래요

    에너지 드링크 사러 편의점 가서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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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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