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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 * *

       

       

       아시아 기마사단이 몽골을 점령한 이유가 기가 차다.

       

       내가 차르가 되지 않겠다 하니, 차르만 아니면 되지? 대칸의 자리 드릴게요! 이거였다.

       

       눈 가리고 아웅 아니냐고.

       

       졸지에 하얀 피부의 대칸이 되게 생겼다.

       

       아니지. 잠시만, 몽골인들이 이걸 받아들인다고?

       

       이 미친 작자들이 벌이려면 몇 년 만 기다렸다가 안휘 군벌에 몽골이 털리고 나서 돕지 뭐 하자는 건가.

       

       

       “그 몽골인들의 반발이 거셀 텐데?”

       “몽골 왕공족들은 황녀님께서 대칸의 자리에 오르시겠다면 상관없다 하였습니다.”

       

       

       그게 총질로 상관없다는 확답을 들은 건 아니리라고 믿고 싶다.

       

       아니, 뭐 따지고 보면 몽골은 러시아제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으니. 호의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호의적인 국가라도 대뜸 쳐들어오면 바로 민심 돌아가지 않는가?

       

       하긴 내가 대칸이 되면 러시아는 몽골제국, 몽골제국은 러시아라는 이론이 성립될 테니, 중국으로부터 자기들을 지켜 주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거 아닌가.

       

       중화민국과 마찰도 피할 수 없을 거 같다.

       

       

       “하하하! 황녀님께서 차리나의 자리를 거부하시니, 동방 제국의 옥좌에 올리겠다는 충심이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아직 러시아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 선례가 될 테니까요. 몽골의 지배권을 위해서라도 대칸의 옥새를 받고 그 자리에 오르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차르가 아닌 대칸이라.

       

       요즘 시대에 대칸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예카테린부르크는 아시아에 속한 도시다.

       

       그걸 이유로 들어 아시아 군주의 자리에 오르라고 하는 거면 일리는 있지만.

       

       

       “그럼, 내게 옥새를 바친 복드칸을 몽골 총독으로 임명하고, 그를 포함한 왕공족들을 예카테린부르크의 두마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하겠습니다. 그리고 세묘노프를 총독을 보좌하는 부총독으로, 운게른을 중장으로 임명해 아시아 기마사단의 총 지휘권을 맡기겠습니다.”

       “예. 그 문제도 군부에서 처리하겠습니다.”

       “황녀님. 예카테린부르크는 볼셰비키의 공격에 너무 노출되어 있습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수도를 정해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예카테린부르크 근처 도시는 죄다 탈환하긴 했지만.

       

       역시 소련 놈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니. 좀 그런가.

       

       

       “블라디보스토크가 어떻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 쪽은 너무 영토가 좁지 않습니까? 그럼 차라리 북만주 일대를 병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북만주를?”

       

       

       북만주를? 갑자기? 얘들아, 우리 내전 안 끝났어.

       

       

       “예. 애초에 운게른과 세묘노프도 그 본거지가 북만주에 두고 있습니다. 또 하얼빈이란 곳에 우리 러시아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도 볼셰비키가 있다고 하니 그걸 명분으로 남하하면 될 듯합니다.”

       “우리만 이럴 것이 아니겠죠. 임시 두마의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이건 중요하다.

       

       백군은 여러 사상의 집합체.

       

       내가 열심히 멱살 잡고 여기까지 끌고 와 민심이 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상에 미친놈들은 아주 많다.

       

       나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해서 나 볼셰비키에 붙을 거야! 이러면 그 즉시 귀찮아지거든.

       

       

       “괜히 전선을 넓히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습니다만, 어차피 지금 볼셰비키를 때려잡지 못한다면 북만주라도 얻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겐 자그마한 힘이라도 지금 도움이 될 때입니다. 북만주를 편입해 그 지역의 러시아인들을 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뜻밖에 북만주 장악에 대해서는 다들 긍정적이었다.

       

       지금 당장 모스크바 일대를 탈환하지 못한다면 다른 쪽 땅이라도 넓히자는 것이다.

       

       내가 너무 역사만 보고 안일하게 여겼나.

       

       내 등장으로 이들의 사상도 영향을 받았다 봐야겠지.

       

       이 무렵이면 군벌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중국이 지금 중국 군벌들의 시대로 알고 있는데.

       

       북만주 장악은 지금 열강들의 눈도 있고 무엇보다.

       

       

       “경들의 생각은 잘 알겠지만, 문제가 좀 남아 있어 당장에 북만주를 노리긴 어렵습니다.”

       “무엇입니까?”

       “일본놈들입니다.”

       

       

       일본 놈들이 문제다.

       

       당장 한반도를 차지하고 러시아를 만주에서 몰아내겠다고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으로 러일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러일전쟁-대전쟁을 거듭하여 자신들은 유럽 열강들과 대등한 열강이다! 이러며 국뽕 잔뜩 빨아대는 일본제국이다.

       

       이놈들이 다시 러시아가 만주를 먹겠다고 하면. 게거품 물고 달려들지 않을까.

       

       중국 군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고, 개혁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동서로 일본과 소비에트와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

       

       내전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

       

       대전쟁으로 병력도 크게 소모된 상황에서 2차 러일전쟁을 치르는 건 과연 어떨까.

       

       

       “생각을 달리 볼 수 있습니다.”

       “예?”

       “열강들도 저희를 지원한다는 것은 붉은 역병이 종식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럼 저희가 힘을 키우기를 바랄 것입니다.”

       

       

       보통은 이대로 굳어 러시아가 반갈죽나기를 원할 텐데.

       

       지금 그런 전략을 수립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쪽을 지원하겠다 이건가.

       

       

       “그것으로 만주를 용인해 달라 하자?”

       “제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다른 열강들이 인정하면, 제 놈들이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러시아 땅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네.”

       

       

       그래요. 당신들 말이 다 맞아.

       

       그래. 러시아인이 살면 그곳이 러시아인의 땅.

       

       민족자결주의랄까.

       

       그래. 민족자결주의를 히틀러가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서-

       

       아니, 위험하잖아 그거. 하다못해 체코 주데텐란트는 유럽이고 산업시설이 엄청난 곳이었다고. 러시아인이 좀 살고 있다고 북만주를 병합하자는 건 좀. 그래. 무너진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뜻이면 나쁘지 않겠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백군을 단일화했다고는 하나 볼셰비키가 상대가 아닌, 또 다른 전선을 열자고 하면 백군 내에서도 반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과연 여기까지 나오자 두마의 여러 의원도 서로 수군거렸다.

       

       

       “무엇보다 새로운 마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중국 군벌들도 있습니다.”

       “그놈들이야 머릿수만 많은 놈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당장 중국이 무슨 수로 북만주에 신경 쓰겠습니까? 아직 러시아가 건재함을 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내 말에 고민하는 듯하지만 콜차크와 브란겔은 어떻게든 북만주를 장악하자는 쪽이었다.

       

       나도 땅 넓어지면 좋으니까 북만주 정도는 나쁘지 않지.

       

       물론 이게 지금 내가 아나스타샤라서 이런 거지만.

       

       우리는 열강들이 없으면 꼼짝없이 말라 죽을 처지다.

       

       개혁이야 진행되면 사정은 좀 나아지겠지만.

       

       

       “그렇다면 조금 달리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금 달리?”

       “운게른 중장에게 명령을 내리셔서 아시아 기마사단으로 북만주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서서히 간만 찔러보는 겁니다.”

       

       

       그래 여러 명분을 잡고 그냥 슬슬 내려가는 척만 해 보자 이건가.

       

       

       “간만 찔러 본다.”

       “만일 열강의 반대가 있으면 물리시면 될 일입니다.”

       

       

       그건 좀 매력적이다.

       

       한두 번 찔러보고 열강들이 묵인한다면야.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중에 일본이 만주국 세우고 개 짓거리를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놈들 만주 영향력을 줄일 필요가 있기도하고.

       

       만일 열강이 열심히 싸우라고 묵인해준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오히려 내전 덕에 아시아 지역에서 확장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럼 남하시키면서 영국에도 말은 해 보죠. 어쨌든 독일과 더불어 우리 최대 후원국이 아닙니까.”

       “예. 황녀님.”

       “그리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머릿수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전쟁도 하고, 공장도 돌리지 않겠습니까. 하여. 이쯤에서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들을 품을 것입니다.”

       “친유대 정책을 펼치시겠다는 겁니까?”

       “잘하면 유대인 자본가들의 후원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히틀러가 유대인을 워낙 죽여놔서 다른 국가가 눈에 띄지 않는 거지 러시아는 대표적인 반유대국가다.

       

       당장 러일전쟁 때 유대인들이 일본을 후원할 정도면 말든 다한 셈이지.

       

       그러니 유대인들의 마음도 들릴 필요가 있었다.

       

       

       * * *

       

       

       영국

       

       

       

       한편, 주러 영국대사를 통해 백계 러시아의 북만주 남하에 대한 보고를 들은 대영제국은 그레이트게임 때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독일에 굴복한 러시아는 이제 그 독일까지 굴복시킨 대영제국과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입장도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지금의 러시아는 반으로 갈라져 있는 데다가, 아나스타샤 황녀의 백계 러시아는 영국의 후원을 받는 처지니까.

       

       오히려 러시아가 이 와중에 만주를 좀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북만주의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남하하시겠다라.”

       “이제 좀 살만해지니, 우리 귀여운 황녀께서는 북만주를 가지고 싶으신가 보군.”

       “당장 자기 집 불난 거 끄기도 바쁠 처지에 다른 지역에 깃발을 꽂겠다고? 그건 좀.”

       “아마 러시아제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으신 거겠지.”

       “자기들 기 좀 살려달라는 건데, 북만주 정도야 괜찮지 않겠소?”

       

       

       ‘나 열심히 싸우고 있어! 니들한테 붉은 역병 옮지 않게 해줄게! 그러니 보상을 좀 더 줘!’

       

       

       황녀는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다.

       

       애초에 소련이 태어난 이유 자체가 러시아의 자업자득이고, 러시아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가 열강들 덕이라는 것을 감안 하면 우습기는 하지만.

       

       영국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묵인할 생각도 있었다.

       

       그야 우크라이나, 핀란드, 발트 3국, 벨라루스등 다 떨어져 나갔고, 그 지역은 이제 대영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미국 역시 미국이 가진 만주에서의 이권을 러시아가 보장만 해준다면 들어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대사 선에서 될 일이 아니니, 미스터 갈리폴리가 예카테린부르크로 가서 황녀를 만나보시오.”

       “맞소. 가보시오. 갈리폴리.”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가면 될 거 아니야!”

       

       

       그렇게 예카테린부르크로 미스터 갈리폴리가 파견되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북만주 정도야 뭐 마음껏 가져가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당장 시베리아와 극동을 처먹고 싶어서 안달 났던 일본 제국이 그걸 용인하는지가 문제였다.

       

       

       “북만주라니. 우린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왜 러시아만! 왜 러시아만!”

       

       

       당연하게도 일본은 발작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대일본제국의 황군 지원도 받지 않는다 하고, 시베리아 진출도 막혀 버렸다.

       

       대체 왜 그것을 줘야 하는 건가.

       

       

       “열강이 묵인한 이상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대영제국에서는 북만주 일로 예카테린부르크 임시정부에 사람까지 보낸다더군요.”

       “그럼 차라리 계획에 있었던 만주 양분은 어떻겠습니까?”

       “만주를?”

       

       

       열강들의 묵인이라 마냥 방대할 수도 없었던 일본은 차라리 이 기회에 만주 살점을 조금이라도 뜯어먹어 보자 쪽으로 선회했다.

       

       어차피 열강들도 전쟁으로 힘이 다 빠져 있으니, 만주일에 개입하지 못할 거라는 일본 다운 판단이었다.

       

       시베리아 진출에 실패했다면 만주라도 얻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열강은 다 제하고. 단독으로 러시아와 협상을 하는 건 어떨까.

       

       

       “러시아와 단독으로 협정을 맺는 겁니다. 러시아는 북만주를, 우리는 남만주를 대륙진출 교두보를 마련해 두는 거지요.”

       “차라리 동맹인 러시아를 돕겠다며 만주에 있는 러시아인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만주를 확보하면?”

       “잘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일단 남만주와 북만주 서로 사이좋게 나눠 가지고 이 내전이 소련의 승리로 끝나면, 바로 개입해 북만주까지 진출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러시아가 반으로 잘렸다 하나. 만주 다 얻자고 러시아와 마찰을 일으키면 그때는 열강들도 개입할 것이다.

       

       일본의 내각총리 대신인 하라 다카시는 대전쟁이 끝난 마당에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만주를 나눠 가진다면, 러시아와 과거 묵은 원한까지 털어내야 한다는 소리요. 어차피 러시아라고 해서 지금 완전히 북만주를 합병하는 건 무리일 터. 주재 무관을 보내 백러시아의 상태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리합시다.”

       

       

       일본은 묵인하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은 모호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후일 만주에 관련해서 러시아와 협상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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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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