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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마탑이 탄생한 이래 제 1구내식당의 왼쪽 끝 창가 구역은 암묵적인 ‘혼밥 존’이었다.

        테이블의 4자리 중 하나에 앉으면 나머지 3자리에는 누구도 합석하지 않는 고결한 규칙이 상존하는 공간. 

        그곳에선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는 사람들끼리 반경 2미터씩 떨어져 평온한 점심시간을 보내곤 했다.

       

        바야흐로 오늘, 나는 그 유구한 전통을 무참히 짓밟으며 혼자 밥을 먹던 프리나의 앞자리에 앉았다.

        혼밥 동지들의 서릿발같은 눈초리를 받은 그녀가 절규하는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여기 계셨네요, 선배. 한참 찾았어요.”

        “너……! 내, 내가 분명 점심 시간 끝나고 오라고 했잖아!”

        “오후에 글레시아 학파의 극마법 강의가 있어서요. 저는 안 먹어도 좋으니 선배 식사만 끝나면 바로 이동하죠.”

       

        마법제 시작까지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일 초라도 빨리 해주학파의 마법을 익혀야 했다.

        아무리 같이 나갈 친구가 없어도 그렇지, 갓 수습생에서 벗어난 나와 페어를 짠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굉장한 핸디캡이었다.

        최소한 발목이라도 붙잡지 않으려면 열심히 배우려는 열의라도 필요하다.

        프리나 역시 나의 착실함에 감동받았는지 앞머리 너머로 드러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 있었다.

       

        “우웁……!”

        “천천히 드셔도 괜찮은데요? 저 위치노트 보면서 기다릴 테니까.”

        “됐으니까 지금 바로 가…… 흑, 이젠 여기도 더 못 앉아.”

       

        아니면 앞으로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한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1층에 위치한 공용 훈련장.

        열심히 자신의 라인에서 허수아비를 향해 마법을 쏘아대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프리나는 내게 해주학파의 기본기에 대해 설명했다.

       

        “네게 가르쳐줄 건 두 가지야. 하나는 신비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간섭기(干涉技).”

        “간섭기요?”

       

        그녀가 말을 절지 않을 수 있는 건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지 않을 때뿐이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위치노트를 보고 있었으니 그 사실이 내심 편한 듯했다.

        가끔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혹시 갤질이라도 하고 있나 궁금해했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게 아싸들의 특징이었다.

        괜히 물어봤다가 ‘여자친구랑 메시지 중이었는데요?’같은 대답이 돌아왔을 때 느끼게 될 어색함과 자괴감.

        차마 그것을 견딜 자신이 없어 모르는척하는 티가 팍팍 났다.

       

        “상대방의 마법을 엿보고 술식의 구조를 바꾸는 해주의 기본이야.”

        “마법을 파훼하는 기술이군요.”

        “극마법 수업 듣는다고 했지? 그럼 익숙하겠네. 술식간의 연결고리가 약한 부분을 찾아서 비틀어 버리면 돼.”

       

        설명은 간단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생각만큼 쉬운 기술은 아니었다.

        모든 마법은 마법사의 통제하에 발현되기에 외부에서 비집고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설령 성공하여 술식에 접근한다 한들 시전자의 숙련도나 마법의 안정성이 높을수록 간섭할 수 있는 영역도 제한되어 있다.

       

        압도적인 마력 차이를 내세운다면 복잡한 과정 같은 건 건너뛰고 마법 자체를 파괴해버릴 수 있겠지.

        허나 그 정도 힘의 격차라면 그냥 망치를 소환해서 상대방의 머리를 내리찍는 편이 더 쉬웠다.

       

        “술식에 대한 높은 이해도, 발현 타이밍을 예측하는 직관, 간섭한 마법을 변형시키는 창의력도 필요해. 일반적으로는 네 위계에선 익혀도 쓰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저주명을 활용한다면 다르다는 거군요.”

        “그, 그래. 그 무식하게 큰 신비로 상대를 덮어씌우면 빈틈을 파고들기가 쉬워지겠지.”

        “신비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나요?”

       

        프리나는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로브를 깊게 눌러쓰며 저주명을 발동시키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대상의 인식 속에 있을 너를 일깨워. 은밀하게, 교묘하게, 내 존재가 너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암시를 건네.”

        “흐음…….”

        “호칭, 행동, 차림새, 뇌리에 각인된 사건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 어떤 거라도 좋아. 너를 상징하는 표지를 상대에게 일깨우는 순간 아이테르의 신비가 눈을 뜨는 거야.”

        “…….”

        “잘 이해 안 가지? 원래 저주명은 단시간에 적용하는 게 아니야. 어쨌거나 한번 해 봐. 이, 이건 고작 1위계 마법이니까.”

       

        프리나의 설명과 마탑 밖에서 만났던 저주술사들의 공통점을 합치니 요령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저주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를 압도적인 대상으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허장성세여도 좋다, 중요한 건 메시지니까.

        연기처럼 피어난 가담항설(街談巷說)이 사고를 왜곡하고 진실에 허구가 섞이면 공포가 들불처럼 번진다.

        한때 쥐 잡듯 때려잡던 저주술사들의 능력을 직접 쓰게 되다니 역시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프리나가 내게 지배당한다는 감정을 일깨울만한 암시는 뭐가 있을까.

       

       해답은 결국 내 저주명이 ‘주딱’인 것에 기인했다.

       

        ====

        ID : 프리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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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14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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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 모아서 주딱이랑 데이트할 거임]

        [이번 마법제도 직접 나갈 거니까 나 만나는 고닉들은 다 뒤질 준비 해라]

        ====

       

        탁!

       

        고요히 타오르는 불꽃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던 나는 이내 위치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선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장 차이를 이용하려는 건 좋네. 하, 하지만 기껏 생각해낸 주언(呪言)치고는 진부해. 애초에 넌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르…….”

        “새벽마다 가상의 데이트 코스를 짜는 건 좋지만, 장소가 어둠의 숲인 건 센스가 나쁘다고 생각해요.”

        “!?!!?”

       

        손끝에서 일렁이던 불꽃이 픽! 하고 꺼졌다.

        저주명을 쓰는 요령에 더해, 사람의 얼굴이 작게 벌어진 입 안쪽만큼이나 새빨개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마법제 배팅 떴냐!!!]

       

        (대진표 사진)

       

        날짜별로 대진표 정리해놓은 거니까 참고하셈

        이름 안 밝힌 학파는 걍 회색으로 표시했음

       

        사실 공지에 있던 거 추합해서 렉카만 한 거임 ㅋ

        파딱 기어코 이걸 당일까지 완성시키네 대단하다 ㅋㅋㅋ

       

        [추천 18538 / 비추천 131]

       

        — 오 

        — 드디어 떴다!!

        — 대진 이번에도 빽빽하네 5년간 칼 갈아온 사람이 많아봄

        — 파딱 고생했음 근데 추천은 얘 줘야지 ㅋㅋㅋㅋ

         ㄴ 나도 ㅋㅋㅋ

         ㄴ 초천재금발미소녀 : 닥치는 것이에요

        ====

        ====

        [이거 마법제가 아니라 걍 가면 무도회 아님? ㅋㅋㅋㅋㅋ]

       

        참가 신청한 고닉들 하나 같이 인식저해 마법 도배해놨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드러내! 맞서 싸워!!!

       

        — 주딱이 갤닉 까고 참가하면 이름 올려준다고 말한 순간부터 올해는 걍 암 것도 안 보이는 거였음 ㅋㅋ

        — 신상 까이면 바로 찌를 거면서 뭘 맞서 싸워

        — 꼬우면 천관(天貫)이나 통견(通見) 익혀서 직관하던가~

        — 마탑 행정부 어리둥절 ㅋㅋ

        — 의문의 제야의 학파들 대거 참전 ㅋㅋㅋㅋ

        ====

        ====

        [그러니까 저 중에 주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찾기만 해봐 전 재산 걸 거니까

        일단 이번 대진에는 플루비아에 몰빵한다

       

        — 주딱이 왜 나가 참가 자격도 안 되는구만

        — 혹시나 해서 알고 있는 부계는 다 찾아봤는데 참가 신청한 계정도 없었음

        — 플루비아면 물 원소인가 둘 다 28층이면 꽤 높은 편인듯

        — 상대 고닉인데? 첫 경기부터 중계 달리겠네

         ㄴ 어 진짜네? 개꿀~

        ====

        ====

        [호감고닉 ‘ㅍㄹㄴㄴ’님 응원하면 개추]

       

        물론 응원은 말뿐이고 정배인 플루비아로 배팅하고 나서

        패배한 고닉 조리돌림 할 생각에 신나는 마린이들은 개추

       

        [추천 1138 / 비추천 3]

       

        — 개추

        — 이미 올인했다

        — 지는 게 정배긴 해

        — ㄹㅇ 갤러리에 인생 갖다 바친 고닉이 정통파 원소술사를 어떻게 이김 ㅋㅋ

         ㄴ 플루비아면 글레시아보다도 대형 학파라 ㅋㅋㅋㅋ

         ㄴ 얼음정수기파괴단 : 학파 크기는 중요치 않아요 실력은 글레시아가 더 앞서니까

         ㄴ ㅎㅇㅎㅇ

         ㄴ 이젠 귀신같네 아주 ㅋㅋㅋ

        — 근데 둘 중에 누가 그 고닉임?

         ㄴ 그것까진 몰루

         ㄴ 일부러 남녀 페어로 짠듯? 성별도 안 깔려고

         ㄴ 대체 얼마나 갤질에 진심인 거냐…….

        ====

       

        며칠 후, 경기 당일.

        하늘에서는 마력이 실린 추적한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첫 번째 상대인 플루비아의 마법사들은 경기 시작도 전부터 필드를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고 있었다.

        학파 간에도 엄연히 상성이라는 게 존재해서, 사전에 인식 저해마법을 사용한 우리와 달리 대놓고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갤러리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두 명 다 현재 28층에 머물고 있는 3위계 마법사.

        프리나보다도 한 층씩 더 높았다.

       

        “으엑, 마력 농도 질척한 거 봐. 이대로 10분만 있어도 탈진하겠다.”

        “아직 경기 시작도 전인데 저래도 되는 거에요?”

        “여기 경기장 옆 농경지가 지네 학파 꺼거든. 마침 용수 공급할 때가 되었다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지.”

       

        확실히 마법사들답게 기사처럼 명예나 체면을 차릴 생각 따윈 조금도 없군.

        내 입장에선 오히려 그런 태도가 반가웠다.

        정체를 숨기든 밑작업을 해놓든 상대를 찍어 누르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거니까.

       

        인사로 창이나 한 방 꽂아주려던 나를 프리나가 말렸다.

       

        “돼, 됐어. 저건 내가 알아서 해.”

        “선배가요?”

       

        처음으로 보인 당당한 태도에 내심 기대했다.

       

        설마 모닥불도 못 끄는 그녀에게 숨겨둔 한 수가 있다는 건가?

        아니면 내게 가르쳐준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상위 계열의 간섭기?

       

        해주술사는 마법에 무지하거나 저주명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마수들을 만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하는 비운의 직업.

        그러나 오직 마법사를 상대로는 그간 억눌러왔던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아, 앞으로 우리 전술은 이, 이거야.”

       

        나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받은 프리나가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지푸라기로 작은 사람 형태를 빚어놓은 듯한 그것은 다름 아닌 부두인형이었다.

       

        “넌 방어를 맡아, 난 공격을 할 테니.”

        “…….”

       

        그 말이 내 귀에는 ‘넌 해주를 맡아 난 저주를 걸 테니’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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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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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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