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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진짜 너무 대놓고 보이네요.”

       

       

       라이라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를 죽이고 싶다는 사실을.

       

       

       [그러게요. 열등감 때문에 빌런으로 전향했다는 설정으로 만들기는 했는데, 열등감이 너무 심했던 걸까요? 숨길 마음은 있는건가 의심스러운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 뒤통수를 바라보는 라이라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녀는 내게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주는 것도 고역이었어.

       

       

       “누구랑 짤 건지 정해두셨죠?”

       

       [당연하죠! 저기 스파이 한 명이랑 주인공, 독자님. 그리고 엑스트라 한 명까지! 완벽해요.]

       

       “엑스트라를 넣으셨네요?”

       

       [그게,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작가님이 또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구나.

       

       부디 그게 나쁜 방향이 아니기를 빌었다.

       

       사소한 것까지 다 내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작가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쥐고 흔들면 내 몸이 못 버틴다고.

       

       

       [헤헤, 던전 기대되네요!]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

       

       [네?]

       

       “돈 좀 주세요.”

       

       [네?!]

       

       

       작가님에게 슬슬 더 돈을 뜯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카데미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첫 발걸음.

       

       준비해야 할 게 생겼으니까.

       

       

       [가능하긴 한데, 이번엔 또 뭔데요?]

       

       “옷 좀 사려고요.”

       

       [사, 사리사욕으로 저를 부려 먹다니! 독자님, 그렇게 안 봤는데!]

       

       

       무슨 소리야.

       

       당연히 다 필요하니까 사려는 거지.

       

       

       “아무래도 주인공 주변에 있어야 하니까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몸을 가릴 게 필요해요.”

       

       [···아! 그건 생각 못하고 있었어요! 역시 독자님이야!]

       

       

       생각하라고.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고 싶으니까 일부러 나랑 유시우랑 라이라를 엮어놓은 거잖아.

       

       만약, 만약이지만 말이야. 라이라랑 유시우가 둘이서 1대1이라도 하는데 내가 못 보면?

       

       또 저번에 마수 습격하던 때처럼 생떼 부리다가 무슨 고대 괴수 같은 게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건 막아야지.

       

       어떻게든 중요한 사건에서 유시우가 무슨 행동을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유시우 옆에서 따라다니면 의심받을 거 아냐.

       

       숨기야 할 텐데, 주인공의 능력은 직감이라며.

       

       작가님 말로는 물리적 위협만 감지할 수 있다고는 하던데···.

       

       글쎄.

       

       작가님 하는 행동을 보면 더 주의해서 나쁠 건 없잖아?

       

       만약 들키더라도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게 얼굴을 가려두는 게 최고니까.

       

       

       “마스크랑 후드를 살 거에요.”

       

       [그럼 마스크에 목소리 변조 기능이랑 후드에 안면인식방해 인챈트 달아드릴까요?]

       

       “···그런 게 가능해요?”

       

       [안될 건 없죠.]

       

       “부탁드릴게요.”

       

       

       이런 점에서는 든든하네.

       

       뭐라고 해야 할까.

       

       돈과 아이템이 무한으로 나오는 치트를 들고 RPG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

       

       

       

       “오, 왔네. 창녀.”

       

       “창녀라고 부르지 말랬지, 제프리.”

       

       

       경박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날라리 같은 인상의 그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뭐,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고는 있었지만.

       

       나를 창녀라는 어처구니없는 별명으로 부르는 건 이 녀석뿐이니까.

       

       

       “왜, 맞잖아. 창 쓰는 여자니까, 창녀.”

       

       

       부웅!

       

       쥐고 있던 창을 순식간에 가속하여 제프리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히엑?!”

       

       

       갑작스러운 공격에 목덜미에 자그마한 상처가 생기자 그제야 그가 입을 멈추었다.

       

       

       “아, 알았다고. 미안해, 아멜리아.”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그 입을 찢어버릴 줄 알아.”

       

       

       하아.

       

       이 남자, 진짜 경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경고해도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창녀, 창녀 노래를 부르고 다니겠지.

       

       지금 입을 다물게 했으니 만족하기로 하자.

       

       이런 경박한 남자와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능력 하나는 확실한 인간이니까.

       

       아카데미 입학 이전부터 정보상으로 명성을 떨치던 놈이다.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그래서, 그녀의 정보는?”

       

       “···어느 쪽?”

       

       “우선 라이라.”

       

       “좋아.”

       

       

       느긋하게 공원의 벤치에 앉은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선, 그 열등생. 너 같은 아가씨가 왜 그런 녀석을 조사하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론만 말해.”

       

       “별다른 특징은 없어. 최근 들어 갑자기 강해졌다는 정보 외에는.”

       

       “···강해진 시기와 맞물려서, 수상한 행동을 벌였다던가?”

       

       “없어. 받은 보수가 보수니 말해주는 거지만, 어딘가로 멀리 움직인 적도 없고.”

       

       “쯧.”

       

       

       허탕인가.

       

       이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아무런 특징이 없었을 거다.

       

       급격하게 강해졌다는 사실 이외에는 평범하디 평범하겠지.

       

       조금 아쉬워하던 찰나, 그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내 생각인데 말이지, 너. 목표는 그 열등생이 아니라, 다른 쪽이지? 아마 그 열등생은 그녀랑 관계가 있을 거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 그야 당연하잖아. 이걸 조사하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걸.”

       

       

       어느새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류를 넘겨대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군가와 벌인 내기에서 진 것 같은 표정.

       

       평범한 내기가 아니라,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에서 진 듯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 듯한 표정이었다.

       

       

       “아르테 이시스. 초등학교 기록 불명. 중학교 기록 불명. 고등학교 기록 불명. 출생신고 없음. 부모 불명. 친척 불명. 태어난 지역 불명. ···장난해?”

       

       “···.”

       

       “아무것도 없는 이런 인간이,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인걸.”

       

       “푸하하하하하!”

       

       

       제프리가 크게 웃는 소리에, 공원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 후로도 한참을 숨이 떠나갈 정도로 웃던 그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힌 채로 선언했다.

       

       

       “미안해, 아가씨. 난 여기서 손 뺄게.”

       

       “···뭐?”

       

       “나도 아직 학생이야. 살날이 많거든. 죽고 싶지는 않아서. 솔직히 지금도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온 거야.”

       

       “제프리, 잠깐···!”

       

       “아가씨가 준 보수가 상당히 커서 해주는 말이니까, 귀 씻고 잘 들으라고.”

       

       

       금방 자리를 떠나가려는 제프리를 붙잡기 위해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붙잡으려던 손을 멈추게 했다.

       

       잔뜩 겁에 질린 듯한 표정.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가 깨달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아르테 이시스의 서류는 상당히 허술해. 아카데미의 교사가 권한이 없어 눈치채지 못할 뿐이지, 외부의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그녀를 조사한다면 곧장 눈치챌 거야.”

       

       “그렇다면!”

       

       “아직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인간을,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아카데미에 집어넣었다고.”

       

       “···!”

       

       “누군가 알아차릴 낌새가 보이면 순식간에 거짓 정보로 뒤덮일 인간이야. 어디에서 누구와 살았고, 부모는 누구이며···. 심지어는 사귄 적도 없던 소꿉친구가 생길 수도 있겠지.”

       

       

       속사포처럼 입을 놀리는 그의 모습에 절박함이 엿보였다.

       

       최대한 빨리 발을 빼고 싶어.

       

       ···하지만, 정보상으로서 일은 끝마쳐야 한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정보를 전해주고, 더 이상 그녀와 연관되지 말자.

       

       그렇게 판단한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나는 그런 인간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래, 알겠어. 네가 위험해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으니까.”

       

       “좋아. ···미안해, 아가씨. 다음번에는 싸게 해주지.”

       

       “수고했어, 제프리.”

       

       

       결국 떠나가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하지만,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

       

       출생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오직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것 하나만이 그녀가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 거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우와 내가 머리를 모아 고민해봐도 결론은 같았다.

       

       중간고사는 위험했다.

       

       

       “시우, 너는 분명 중간고사 때 그녀와 같은 조였지.”

       

       “응. 라이라, 나, 아르테, 그리고 다른 한 명.”

       

       

       아르테가 ‘작가님’과 연락했을 때 훔쳐 들은 결과는, 언젠가 아카데미에 습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 유시우. 라이라는 분명 그녀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어.”

       

       “···알았어.”

       

       

       솔직히 불안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필이면 라이라와 아르테랑 같은 조?

       

       운명의 장난인가, 싶어서 한탄했다.

       

       유시우는 한참을 멍때리고 있었고.

       

       

       “그래도 아마 죽지는 않을 거야. 안심해. ···물론, 너무 긴장 풀지는 말고. 혹시 모르니까.”

       

       “어? 죽지 않는다고?”

       

       

       시우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큰 사달이 날까 봐, 약간 용기를 북돋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실에 약간의 상상을 추가해서 시우에게 말해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너는 그 여자한테 관심을 받고 있잖아.”

       

       “···그렇지?”

       

       “정확히 왜 관심을 가지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너는 흥미가 가는 대상을 갑작스레 죽이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그거랑 같아. 아르테가 너에게 흥미를 느끼는 이상, 너를 냅다 죽이지는 않을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그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빌런들의 행동 방식은 워낙 다양하니까.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해서 시우의 불안감을 더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너무 긴장이 풀리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 주의도 해주도록 할까.

       

       

       “···그래도 너무 긴장을 풀지는 마. 라이라는 그녀랑 다르니까. 의견이 다르다고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응, 조심할게.”

       

       

       평범해야 할 아카데미 생활이 이렇게 파란만장하다니.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무렵, 심심하지 않은 아카데미 생활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했던 예전의 내가 얄미웠다.

       

       심심하긴커녕 살벌하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여러분들이 댓글 달아주시는거 답글은 잘 안하더라도 웬만하면 확인하는 편인데요, 댓글 하나 달려서 지금 여기서 말합니다.

    몇 편 전이었나요?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한번만 스포일러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남주인공과 TS한 여주인공이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그거 싫어하시는 독자님들은 유의해주세요.

    게이암타니 뭐니 말할거면 다른데서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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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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