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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나이틀리는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사람들이 더 강의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서있었기 때문이다.

       

       까치발을 들고 보니 저 앞에 학생들이 몰려 서서 웅성웅성하고 있다. 무슨 일이지.

       

       “전투수석교수님이 앞에 계신대!”

       

       학생들 몇 명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이틀리의 어깨를 밀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전투수석이라면 디안 교수?

       

       얼마 전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전투수석교수 디안.

       처음 학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졸업반 종합전투수업이었다. 거기서 디안은 마법대응교수를 불러다가 학생들에게 공격마법을 퍼붓는 기행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디안 교수의 등장 이후 전투학과의 수업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에는 어지간해서는 야외에 나가지 않고 강의실에서 조교의 시범 등을 보며 대충대충 해왔는데 이제는 다르다.

       

       모든 전투수업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야외훈련장에서 하며 무장을 하고 실제 현장과 유사한 환경으로 훈련을 한다. 그렇기에 상당히 위험천만.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야외수업을 한 적이 없던 졸업반에 부상이 속출했다. 발목을 접지르거나 멍이 드는 가벼운 것부터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는 제법 큰 것까지.

       

       이에 몇몇 학생들이 의문을 품고 항의를 했으나 디안 교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훈련에서의 땀 한 방울이 실전에서의 피 한 바가지’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그렇다고 디안 교수가 막무가내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근에 한 번 크게 이슈가 되었던 교단 신성사제의 영입. 디안 교수가 무려 신탁사제를 교단에서 받아온 것으로 아카데미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신탁사제란 무엇인가. 신이 사제가 될 운명을 점지해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신성력을 쓰며 그 수준이 극한에 다다르면 현생이 신을 대리해 기적을 행할 수도 있다는 자들이다.

       

       그런 대단한 사제를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영입했다. 그것도 필요가 없다면서 사제를 한번 돌려보낸 전력이 있는 아카데미에.

       

       마야라는 이름의 어린 사제는 신탁사제답게 엄청난 신성력을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수많은 학생들이 자잘한 부상들을 입었지만 그 누구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흉터 하나 남는 일이 없이 다음 날 수업에 참가하는 중이다.

       

       이쯤에서 아카데미에는 수상쩍은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디안의 진짜 정체에 관한 것.

       

       여러 가지 근거 없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발더란트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설, 사디리안 왕국의 망명자라는 설, 리안탈의 전직교관이라는 설 등등등.

       

       그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것은 바로 현 황제의 숨겨진 황자라는 설이다. 그리고 가장 터무니없는 만큼 가장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설이기도 하고.

       

       제국에는 그런 소문이 있다. 황제의 현 황자황녀 외에 아들이 하나 있으며 그 성정이 너무도 좋지 않아 황성 어딘가에 감금해 두었다는.

       거기서 조금 변형된 것은 사생아. 황후도 첩도 아닌 제3의 천민 사이에서 나온 아이로 황족의 피가 흐르니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머나먼 타국으로 추방했다는.

       

       황성에서는 이에 대해 논할 가치도 없는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에 항간에서만 떠도는 괴담 같은 이야기.

       

       그래서일까. 어디선가 특출난 인물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자가 혹시 황성의 그 비밀황자가 아닐까 이것저것 마구 가져다 붙이곤 했다.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 서서히 그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라이너스를 비밀황자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 라이너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추측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깨달았다.

       금발벽안의 빼어난 외모와 조각 같은 몸매. 정의롭고 올곧은 성격과 겸손함을 지닌 라이너스는 굳이 황성에서 수치로 여기며 숨겨야 할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놓고 후계자로 전면에 내세우면 모를까.

       

       지금 아카데미에서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인데 그 대상이 바로 디안. 일견 기행으로 느껴지는 행보, 하지만 결국 전투학과의 수업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사제를 돌려보낸 적이 있었는데도 그 콧대 높은 교단에서 사제를, 그것도 신탁사제를 받아냈다.

       

       아카데미 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나이틀리 톨루즈를 목검으로 두들겨 팼으며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찾아온 공작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까지.

       

       게다가 일전에 교장실에서 키르린 교장이 디안 교수에게 제발 도와달라 읍소했다는 소문도 돌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인 요인으로, 디안 교수는 상당한 미남이다.

       

       비록 황족의 상징인 은발은 아니지만 다른 피가 섞인 사생아라면 납득이 가는 갈색 더벅머리와 쾌활한 빛을 흘리는 눈, 늘상 여유로운 미소. 나이틀리를 목검질 몇 방에 뒤집어 버린 미친 검술까지.

       

       이러한 것들이 모두 섞여 지금 디안 교수는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니 디안 교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학생들이 와글와글 몰려드는 게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늘 먼 발치에서 보던 화제의 전투수석교수를 바로 코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는데 어느 학생이 그냥 지나치겠나.

       

       “수석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안녕. 그런데 너 치마가 너무 짧다. 원상복구 안 하면 벌점이야.”

       “수석교수님! 잘생겼어요!”

       “으응, 나도 알아.”

       “수석교수님! 혹시 비밀황자님이세요?”

       “그런 거였으면 여기서 이렇게 뺑이치고 있겠냐?”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던 디안 교수가 나이틀리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나이틀리 톨루즈. 너 나 좀 잠깐 보자.”

       

       그러자 모든 이의 시선이 나이틀리에게로 쏠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나이틀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만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따라와.”

       

       디안 교수가 몸을 돌려 아이들 사이를 빠져 나가자 학생들이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수석교수님! 다음에 검술 가르쳐 주세요!”

       “얻어터질 각오가 된 사람은 와라.”

       “교수실 놀러가도 되나요?!”

       “간식거리 숨겨 놔서 안 돼.”

       

       학생들은 하하호호 꺄르륵 웃었고 디안도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부임한 지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능력을 증명하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인기가 굉장히 좋다. 

       다들 은근히 피하는 키르린 교장과 비교했을 때 차라리 디안 교수가 교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나이틀리는 앞을 막고 있는 아이들을 밀치며 디안 교수의 뒤를 따라갔다.

       

       

       # # # # #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올리시아가 먼지털이를 들고 청소중이다.

       

       “올리시아. 달고 맛있는 거로 두 잔 타줘. 학생 면담 왔다.”

       “알겠어요, 디안 님.”

       

       올리시아가 총총 걸어가 달그락거리며 차를 준비하자 나를 따라 교수실로 들어온 나이틀리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어린 여자애를 시종으로 두고 있나 보죠?”

       “시종은 아니고 하녀. 너네 집에도 많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저렇게 어린 아이를 부리지는 않아요. 혹시 인신매매로 들인 아이인가요?”

       “아니거든요?”

       

       거기에 대해 대답하려는데 올리시아가 먼저 끼어 들었다.

       

       “디안 님은 인신매매 같은 거 하시는 분 아니세요!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요! 비록 껄렁대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저한테는 라이너스 경보다 더 영웅이시라고요! ”

       

       올리시아가 폭풍처럼 쏟아내자 나이틀리는 당황해서 눈을 껌뻑거렸다.

       

       “다시는 디안 님을 그런 나쁜 사람으로 말하지 마세요!”

       

       입을 뻥긋거리던 나이틀리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성격이 아주… 드세구나….”

       “자자, 됐어. 올리시아는 어서 차 내오고  나이틀리는 여기 앉아.”

       

       올리시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면서 달각달각 차를 탔고 나이틀리는 그런 올리시아를 몇 번이나 힐끔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 너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

       

       올리시아가 찻잔을 우리 앞에 탁, 탁 내려놓자마자 바로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그거 먹자, 그거. 새우 넣은 감바스에 빵 찍어 먹자고.”

       “알겠어요, 디안 님.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하세요.”

       

       올리시아가 나가고 나자 나이틀리가 닫힌 문을 보며 물었다.

       

       “하녀가 교수실에 상주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우리는 저기 교수 숙소에 사는데 여기 청소한다고 종종 와.”

       “그렇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아랫것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묻는 눈빛을 보내자 찻잔을 든 나이틀리가 대답했다.

       

       “귀족가에서는 사용인의 언행에 대해 철저히 교육해요. 저런 식으로 손님에게 대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나는 귀족이 아니라서 괜찮아. 손님 맞이하고 그런 일이 많지도 않고. 그냥 쟤는 나랑 같이 살면서 자기 밥값하는 거야.”

       “그런가요. 그렇다면 저 애는 어떻게 들이시게 된 거죠?”

       

       대체 그걸 왜 궁금해 하나 싶었지만 아이스브레이킹으로 괜찮을 듯 싶어 올리시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올리시아는 전쟁고아.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도망치다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어느 선장의 호의에 속아 배를 타고 노예상에 넘겨지게 된다.

       

       올리시아를 태운 노예선은 마침 브룬스웰에 정박했는데 그때 올리시아는 도망쳤지만 다시 잡혀 도로 한복판에서 매질을 당하던 중 나에게 구해진 것.

       

       그래서인지 올리시아는 나를 굉장히 따르며 남이 나를 험담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런데 나이틀리가 나를 인신매매해 미성년자를 착취하는 사람처럼 말했으니 발작버튼이 눌려 버린 것.

       물론 나이틀리는 그런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사용인이 필요치도 않으면서 순전히 동정심으로 여자아이를 사들였다는 말씀인가요.”

       “필요하기는 했지. 집안일은 정말 하기 귀찮으니까.”

       “하지만 그런 거라면 숙련된 전문사용인을 구하는 편이 나았을 건데요.”

       “뭐… 글쎄…? 가르치면서 하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

       “혹시 어린 여자가 취향이신 건….”

       “만약 올리시아가 그 말을 들었으면 널 이 자리에서 죽였을지도 몰라.”

       “하.”

       

       나이틀리는 코웃음을 치면서 찻잔을 들었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잠시 차를 몇 모금 마시며 침묵했다.

       

       차를 홀짝이는 나이틀리를 보며 그녀를 부르기 전에 찾아본 학적부의 내용을 상기했다.

       

       나이틀리 톨루즈. 톨루즈 공작가의 딸로 자신의 의지로 아카데미에 입학. 모든 과목의 성적이 굉장히 우수하며 지금은 졸업반의 반장을 맡고 있다.

       

       특기사항으로는 몇 번이나 공작의 자퇴요구가 있었고 나이틀리가 모두 거부했다는 것.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교칙상 학생 스스로의 결정 혹은 중대한 퇴학 사유가 있지 않으면 외부의 개입으로 학생을 빼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톨루즈 공작은 제국에서 이름 깨나 날리는 대귀족. 이런 대단한 학부모가 열을 낸다면 어느 학교가 버틸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여기 특수임무 아카데미는 다른 사립 아카데미와 달리 제국의 전후실세 2황녀가 관리하는 곳.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고작 공작 따위가’를 시전하지는 못해도 교칙 들이대면서 불가능하다고 돌려보낼 정도는 된다.

       

       그리고 눈에 띄는 굉장히 특이한 기록이 있었다. <공강 및 개인 휴식 시간에 야외훈련장에서 개인적으로 전투실습을 수행함>.

       

       다른 교수들에게 들어 보니 나이틀리는 키르린 교장이 이론 위주로 난도질을 해놓은 전투수업에 불만을 품고 혼자 별도로 연습을 해오고 있다고.

       저번에 무장전투수업에 들어가 예고없이 대련을 시켰을 때 나이틀리가 다른 애들을 모조리 때려 눕혔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좋아, 나이틀리. 이야기는 다 들었다. 교장님한테 나더러 너를 전담해 달라 요청했다면서?”

       “맞아요.”

       

       나이틀리가 찻잔을 내려 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했어요. 당연히 해주시겠죠?”

       

       오, 이것 봐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저는 지금 아카데미에서 성적이 가장 좋아요. 그리고 제국 공작가의 딸이죠. 이런 학생을 지도한다면 아마 교수님의 경력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학적부에 추가로 ‘대가문 출신답게 상당히 오만하고 독선적임’이라고 씌여 있더니 그 말이 맞네.

       

       “뭐, 좋아. 네가 성적이 좋은 것도 사실이고 공작가의 딸인 것도 사실이니. 그런데 한 가지는 사실이 아니야.”

       “어떤 건가요?”

       “고작 아카데미 수석 공작 딸 전담한다고 해서 내 경력이 더 나아지지는 않아.”

       “네…?”

       “오히려 물타기로 평균이 낮아지지.”

       “뭐라고요…?”

       

       나이틀리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초 계급: 하전사 / 최종 계급: 중령(특임) / 복무기간: 3년 1개월
    상훈이력(군사령관 이하 표창 생략)
    삼등무공훈장: 낙타령 방어전에서 전우조와 적 포로를 획득해 아군의 작전판단에 기여한 공로.
    삼등무공훈장: 데르비온 지구 전투에서 전우조와 적 선봉대의 오거를 사살한 공로.
    이등무공훈장: 칼리아스 초원에서 전우조와 반란군의 보급선을 차단한 공로.
    이등무공훈장: 라조람 공방전에서 전우조와 우회습격하는 적 침투조를 다수 섬멸한 공로.
    일등무공훈장: 적에게 공격당하는 민간마을을 전우조와 저지 및 방어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검은늪지대 전투에서 전우조와 적 군단장을 사살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오렌디르 전투에서 전우조와 적 군단장을 사살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이브로니크성 탈환전에서 전우조와 성벽을 등반해 성문을 개방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핀룩 전투에서 전우조와 적 군단장을 사살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펠리미아 전투에서 전우조와 적 지휘부 다수를 사살한 공로.
    특등무공훈장: 티라엘렌 전투에서 적 군단장을 사살한 공로.
    제국최고무공훈장: 드래곤 힌드라스타의 기동을 전우조와 지연시켜 아군 후퇴여건을 보장한 공로.
    제국영웅상: 마왕 사살에 기여한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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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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