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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주술이라는 것은 돈이 많이 필요한 학문이다.

       적게 들인다면 한없이 적게 들어가지만, 많이 들어간다면 한없이 많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간단한 연애기원이나 순산기원, 기복신앙과 관련된 주술이라면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의 기복과 방재 주술인 제웅의 경우 지푸라기와 동전 세 개만 있어도 사용할 수 있고, 부적도 종이와 붓, 먹만 있다면 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주술 역시 토끼 발을 잘라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니, 간단한 부적이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용도의 주술은 정말 싸고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주술을 넘어서, 눈에 띄는 효과를 보는 주술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오래된 인형,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짐승의 피와 내장, 겨울에 피어난 봄꽃, 말라 비틀어진 미라….

         

       준비물의 단계가 갑자기 확 뛰어버린다.

       공짜, 혹은 푼돈으로 구할 수 있던 준비물이 전국을 누비고 다녀서 간신히 구할 수 있는 난이도가 되고,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억 단위의 돈을 쏟아부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 된다. 부적조차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경면주사와 온갖 정성을 들인 괴황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재룟값만 수백만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술 의식?

       말할 필요도 없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온갖 비싼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양반이다.

         

       대주술 의식의 경우에는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제단을 세우고,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비싼 재료를 물 쓰듯이 쓰고,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태산에서 행하는 봉선 의식의 경우 거대한 중국에서도 마음먹고 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고, 단군봉헌제의 경우 경제 대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조차도 몇 년 동안 예산을 모아서 해야 할 정도다.

       그나마 아일랜드에서 행하는 위커맨 의식은 돈이 적게 들어가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효과도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술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내가 용병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지.’

         

       주술사라는 직업은 서민 친화적인 이미지가 강해 지역에 녹아들기 편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었고, 각종 대기업에서 모셔가려고 굽신거릴 정도였다. 거기다가 진성은 점괘를 치는데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부자들도 눈독 들이는 인재였다. 세계 3차 대전이 터진 이후 자신의 집에 식객으로 오지 않겠냐는 제안도 몇 번이나 받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가 용병을 택한 것은 바로 돈과 재료, 새로운 주술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다.

         

       돈.

       재료.

       새로운 주술.

         

       이 세 가지를 묶는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돈.

         

       재료는 말할 것도 없이 돈 덩어리고, 새로운 주술은 유적이나 고서에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유적을 탐사하고 발굴하는 것도 돈이고, 고서를 보존하고 해독하는 것도 돈이다. 그리고 새롭게 주술을 습득한다고 해도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또 있으니 당연히 또 돈이 들어간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주술을 사용함에도 그 누구보다도 돈이 많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새로운 주술에는 새로운 재료들이 필요했고, 생소한 주술에는 생소한 재료들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인프라가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던 세계 3차 대전 당시의 세계에서는 그 재료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상황.

         

       그렇기에 진성은 용병을 해야만 했다.

         

       장점이 많았으니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니 한 지역에 처박혀 있으면 구할 수 없거나 목돈을 들여야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접하기 쉬웠고, 숨어 사는 은자들이나 은퇴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은거 기인들과 만나 주술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도 심심찮게 왔으니 경지를 높이기엔 참으로 좋았으니까.

         

       주술사가 특히 우대를 많이 받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온갖 미신이 판치고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죽어 나가는 위험한 곳만을 다니는 게 용병이었기에 그들은 주술사가 끼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냈다. 주술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토템이었고, 살아있는 부적이었으며, 자신의 목숨을 보호해주는 행운의 마스코트였다. 거기에 실력까지 있다면? 떼돈을 벌 수 있었다.

         

       따라서 진성은 용병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거액을 벌고 다닐 수 있었다.

        나중에는 기피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성년이 아니라 성인으로 회귀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목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는데도 진성이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것은 용병 회사, 다른 말로는 PMC(private military company)에 취직하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보장된 신분.

       성인 이상의 나이.

         

       기업마다 차이는 있으나 공통으로 보는 것이 바로 저 두 가지였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신분을 증명할 수 없으면 퇴짜를 맞았고, 나이가 성인 이상이 아니라면 반드시 퇴짜를 맞았다. 이는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아동권리협약 때문인데, 만약 이것을 어기고 미성년자를 PMC에서 받아들이면 즉각 강도 높은 페널티가 가해진다. 가장 온건한 것이 막대한 벌금과 년 단위의 자격 정지에 처하는 것. 심한 경우 해당 기업이 터져나가기도 하니, PMC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년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젊음에 한탄함은 배부른 소리인즉. 돈을 얻는 방법은 용병 하나만이 아니니 그것을 행함이 옳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성은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정부에 취직하는 것보다, 집안에 손을 벌리는 것보다, 호국회나 애국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며, 가장 익숙한 방법을 말이다!

         

       「 대모 캐피탈 」

       「 삼본 머니 」

         

       진성은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툭.

       툭.

         

       목마를 탄 듯 가볍고 좁은 발소리가 퍼졌다.

         

       “재물이란 손에 쥐었다가도 없는 것인즉, 이 모든 것은 별의 인도라.”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땅에도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다.

         

       금 역시 반짝이는 것이니, 세 가지가 빛을 발하는바.

         

       “길일이로다, 길일이야.”

         

       3이라는 것은 신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숫자였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를 의미하며, 또한 균형을 의미하는 숫자이기도 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역시 3이며, 단체를 구성하는 최소의 숫자 역시 3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세상을 이루니 이 역시 3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하늘의 제우스, 바다의 포세이돈, 저승의 하데스가 세상의 균형을 이루니 이 역시 3인즉.

         

       “보아라, 벌써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진성은 건물 밖으로 나오는 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뿌려진 난포낭(oocyte)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무리를 이루니 이 어찌 훌륭한 일이 아니랴.”

         

       비대한 근육.

       얼굴 만면에 피어난 미소.

       턱선 근처에 나 있는 작은 혹들.

         

       참으로 특이한 외형을 가진 그 남자는 볼품없는 고양이를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꼬옥 안은 채 진성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주술사님 오셨습니까!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결실을 거둘 때가 왔다.

         

       진성은 주술사를 모시게 되었다는 기쁨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남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는데, 돈을 빌리러 오는 고객님들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대부업체의 특성상 일부러 이런 디자인을 선택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만은 바꾸지 못했는지 낡아빠진 형태의 창문이 나 있는 구형 엘리베이터였다.

         

       “자, 여기가 제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어떠십니까?”

         

       진성은 2층의 대모 캐피탈에 도착하자마자 자랑하는 남자의 모습에 웃었다.

         

       “아-주 좋아. 참으로, 참으로 좋구나.”

         

       하얀 벽지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유럽풍의 그림들.

         

       게다가 남자의 안내를 받아 사장실로 갔을 때는 더 가관이었다.

         

       목재 무늬의 벽지와 대리석이 깔린 사장실은 앤틱(antique)느낌의 가구가 가득했는데, 문제는 진짜 앤틱이 아니라 앤틱을 흉내내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유럽풍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본다면 유럽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허세를 가득 채워서 흉내 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통일성은 찾아보기 힘든 비싸 보이는 물품들에 밖과 마찬가지로 유럽풍 그림이 걸려있었다.

         

       졸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졸부 같은 모습이었다.

         

       진성은 이러한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크-흐. 훌륭한 일본 부자의 모습이 보이는구나.”

         

       졸부에도 종류가 있다.

         

       진짜 부자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천박해 보일지 몰라도, 놀랍게도 나라별로 졸부들의 모습이 차이가 있었다.

         

       이양훈 같은 한국의 졸부들은 세속에 초탈한 모습과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멋을 부리되 비싸고 품위 있어 보이는 것을 선호하고, 동시에 자신이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있어 보이는 동양화나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나 경외가 느껴지는 예술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의 졸부들은 역사와 전통을 따지는 경향과 신세대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을 즐긴다. 얼핏 보면 비싼 최신형 요트나 크루즈, 스포츠카, 저택, 고층 빌딩 같은 것만 보여 착각하기 쉽지만, 미국인들은 항상 ‘역사’라는 것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곤 한다.

         

       중국의 졸부들은 황금만능주의 경향이 강하다. 얼핏 보면 오랜 역사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보이는 그들이기에 그쪽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돋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중원의 사람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상인에 어울리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온갖 사치를 통해 부를 자랑하며 특별하게 보이는 것을 즐겼다. 다만 안타깝게도 거상(巨商)에 어울리는 마음가짐과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사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대혁명과 함께 계승이 끊겨버렸고, 작금의 중국 졸부들에게는 황금만능주의만이 남게 되었다. 그 때문에 중국의 졸부를 보면 정말 ‘돈으로 떡칠한다’라는 표현이 어떤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졸부는 바로 진성의 눈앞에 있는 풍경과 같았다.

         

       역사와 전통을 그렇게 따지면서도 탈아입구(脱亜入欧)를 갈망하고 그 누구보다도 유럽을 선망하고 바라는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모습. 그런데도 이해력이 부족해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그런 모습이다.

         

       “과연 일본계 대부업체라 그런지, 훌륭히. 아주 훌륭하게 꾸몄어.”

         

       약탈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없지.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한 곳을 쳐다보았다.

         

       “흐흐,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여기 오야라도 있었으면 소개해드렸을텐데 참 아쉽습니다.”

         

       진성의 시선이 닿는 곳은 안타깝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의 뒤편.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장님 의자에 피떡이 된 채 쓰러져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없으니 구경하기는 편할 겁니다. 헤헤, 마음껏 구경하십시오.”

         

       피떡이 되어버린 중년 남성은 기이하게도 근육이 경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근육이 쪼그라들었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고, 허-억 허-억 하는 가늘고 괴로워 보이는 숨소리를 연신 뱉으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공을 보는 남자의 동공은 무언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축하고 팽창하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모양을 바꿨다.

         

       “아, 그리고 그…. 이건 비밀입니다만 주술사님께서 이곳에 오셨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사장실의 구석으로 가서 큼지막한 보자기를 가져왔다.

         

       “이거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초콜릿을 준비했습니다. 구석에 박혀서 유통기한 지나기 직전이라서….”

         

       쿠-웅.

         

       부피가 커 보이는 보자기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놓였다.

         

       그 보자기에는 반짝이는 것이 가득했다.

         

       먹을 수는 없지만, 초콜릿보다 달콤하고, 유통기한은 존재하지 않는.

         

       아주 반짝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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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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