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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청이 한 발짝 다가가자 단운삭이 한 발과 한 팔로 엉금엉금 기어 멀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떨어진 단운삭의 검을 주워 몇 번을 휘둘러보았다.

         

       무게중심이 훌륭하고 이 빠진 구석 하나 없이 시퍼런 칼날, 피를 먹었음에도 방울져 붙어있으니 그야말로 명검이라 하기에 모자람이……

       피?

         

       청이 팔꿈치를 접어 제 팔뚝을 살폈다.

       손가락 한 마디 깊이로 쩍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어쩐지 시큰하니 욱신거리더니.

       하지만 어쩐지 통증이 주는 미묘한 중독성이라고 할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청이 손가락 끝으로 피를 뚝뚝 흘리며 다시 단운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검집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있어. 빨리 줘. 피 나서 그런지 현기증 난단 말이야.”

         

       청이 그렇게 검집을 받아들고 다시 말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칼 들고 왜 철방 노인네를 괴롭힌대? 쌍칼 쓰나? 쌍칼 쓰는 놈 중에 멀쩡한 놈이 없는 건 무림도 똑같은가? 사회성 장애의 상징이라더니.”

         

       “그, 그게 아니라. 어느 문파라도 그런 철장이 있으면 탐을 내는 것이 당연한……”

         

       “뭐? 당연? 이 새끼 아주 웃긴 새끼네. 손주 납치해다 팔아넘기고 일감 끊어서 굶어 죽게 만드는 것도 당연한가 봐?”

         

       “그건.”

         

       “그따위로 사니까 칼 맞아 죽는 것도 당연한 거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죗값을 받아야지. 여기서 목 잘려도 자연사인 거니까 저승 가서 염라대왕이 왜 죽었냐 물어보거든 당연히 죽을 놈이라서 당연히 죽었다고 대답해라. 알겠지?”

         

       ”잠깐……!‘

         

       청이 성큼성큼 쭉쭉 나아갔다.

       단운삭이 필사적으로 기었으나, 두 다리 대 한 팔 한 다리의 기동력 대결은 불면증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어느새 청이 검을 턱 밑으로 척 들이밀었다.

         

       “추하게 굴지 말고 얌전히 목을 내놓아라.”

         

       “제발, 살려, 히익!”

         

       청이 검을 번쩍 치들었다.

       단운삭이 손바닥으로 앞을 가리나, 그건 소수마공 배운 청만 할 수 있는 방어술이었다.

       그리고 싹둑!

         

       “아악!”

         

       목이 잘린 사람은 비명을 못 지른다.

       하지만 손바닥부터 어깨 아래까지 세로로 썰려 두 갈래로 갈라진 단운삭은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곱게 죽을 것이지, 남의 팔에는 왜 해코지를 해? 마음을 그리 쓰니 그 꼴이나 당하지.”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없고 왼팔은 두개로 늘어났으며 다리 하나는 병신이었다.

       반 시진, 아니 일 각만 놔둬도 죽을 상이다.

         

       그럼에도 살아 보겠다고 한 발로 멀어져가나,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구름 탄 신선님이 나타나 구해주지 않는 한 살기는 이미 글렀다.

         

       청이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팔은 다쳤지만 그래도 월광검(9호)를 주웠으니 뭐 샘샘이라고 치고.

         

       월광검(9호)는 월광검(8호)보다 길고 두꺼워 반 배는 묵직하니 무게가 마음에 쏙 들었다.

         

       신녀문이 병기를 떼 오는 철방에서는 여인들이 쓸 병기라서 가벼운 검을 만들어준다.

       월광검(8호) 역시 마찬가지라 사내가 쓰는 검보다 가볍게 만들어진 것이다.

       괴력의 청이 쓰기에는 뭐 휘두르는 것 같지도 않아 광선검 든 영화 속 수행자들이 이런 기분인가 싶은 정도였더란다.

         

       “뭣들 해. 다들 꿇어.”

         

       청이 눈치만 보던 나면파 문도들에게 말했다.

       사실 사파들에게 무릎 꿇기는 입문하자마자 배우는 기본공 과정에 속한 것이라서, 이때다 싶으면 곧장 몸에 배어 튀어나온다.

         

       망설임 없이 꿇어앉은 문도들을 보며, 청이 쯧 혀를 차며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쯧. 말들을 잘 듣네. 두놈 정도 베어야 말을 들을 줄 알았더니. 아쉽게.”

         

       듣는 문도들의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소리다.

         

       괜히 들리게 말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한 마디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청이었다.

         

       그리고 나니 당난아가 왜 또 다쳤냐며 속상한 마음으로 찰싹, 등짝에 응징을 가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천을 꺼내 둘둘 감아대며 말하기를, 검강도 막는 근육에 바늘 꽂을 자신이 없으니 이게 최선이라나 어쨌다나.

         

       붕대를 얼마나 감아대는지, 팔의 두께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니 청이 관심을 끊고 재차 소리를 질렀다.

         

       “이중에 반 노인 손주 팔아치운 놈이 있으면 거수. 해코지 안 할 테니까 순순히 나와. 내가 스승님 이름 걸고 맹세한다.”

         

       정파 무림인이 스승님 이름 걸고 하는 맹세는 무조건으로 검증된 진실이다.

       사파 무림인들은 사제지간이 원수지간인 경우도 있어 안 통하지만.

       

       손속은 과해도 하는 말로는 정파의 협객들이었으니, 그래서인지 한 놈이 비슬비슬 손을 들었다.

         

       “자. 그럼 모두 단전을 부순다. 실시. 맞다. 내가 절정 무인이다, 하는 놈들은 열외.”

         

       그러자 중년 하나 늙은이 둘이 안도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일어서 한쪽에 얌전히 섰다.

       어쩐지 우쭐한 표정은 덤이었다.

         

       “나머지는 단전 아니면 대가리 중에 하나를 포기하면 된다. 열 셀 동안 안 깨면 내가 직접 대가리를 깨 줄 거야. 하나. 둘, 어딜!”

         

       무릎은 존경 아니면 굴복을 표시하는 자세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쓰면 안 된다.

       그러면 날아오는 비녀에 목이 꿰뚫려도 변명할 말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붕대를 감던 당난아도 동시에 반응을 한 탓에 비도 두 개가 덤으로 꽂혔다.

         

       크륵……

       그러나 치명상은 목이라서 감히 추진력으로 도주를 시도한 문도가 피거품을 물고 바닥을 기었다.

         

       “넷. 아니. 이해를 못하겠네. 다섯. 단전 깨진다고 죽나? 여섯. 살려준대도 난리야. 일곱.”

         

       단전이 깨져도 특수한 무공이 아니라면 근골과 뻥 뚫린 혈맥은 그대로 남으니 무공 모르는 양민 정도는 쉽게 상대하는 무술가가 남는다.

       무술도 제대로 모르는 삼류보다는 낫고 기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이류보다는 못하니, 굳이 분류하자면 이 쩜 오, 중원식 숫자 표현으로는 이류 반 무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덟. 아홉. 땡. 어디 보자.”

         

       청이 눈을 빛내며 꿇은 무인들을 둘러보았다.

       저마다 입가에 희미한 핏자국이 남았으니 정말 한 놈도 안 빼고 단전을 깨어버린 모양.

       그때였다.

         

       “이 새끼 혀 깨물고 단전 깬 척 했습니다!”

         

       아무래도 단전을 안 깨고 깬 척 한 놈을 보고 배알이 꼴렸는지, 공익 제보자가 나타났다.

       청이 마땅한 응징을 가한 후에 전낭에서 금자를 꺼내 반절 뚝 떼어 제보자에게 던져주었다.

         

       “자. 너는 이제 자유다. 나가. 큰 돈 생겼으니 조심해서 떠나고.”

         

       공익 제보자가 눈을 꿈벅거리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급히 장원을 빠져나갔다.

       청이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원래 공익 제보자에게는 마땅한 포상과 보호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금자 반절을 번쩍 들었다.

         

       “금자 필요한 사람? 치사하게 단전 안 깨고 지 혼자 쏙 빠져나가려는 새끼 제보하면 금자가 반 개. 내공도 잃었는데 당분간 생활비라도 있어야지.”

         

       그리고 나니 세상에, 얌체 같은 놈이 두 놈이나 더 있는 것이다.

       아까운 금자가 추가로 나가고, 제보자 둘이 금자 반 개씩 들고 장원을 나갔다.

         

       “어. 저희는 어찌할까요……?”

         

       “너희는 고수들이니까 함부로 풀어줘야 쓰나. 관아에 넘기는 편이 나으려나. 난아야, 마혈 좀 잡아주라.”

         

       “마혈? 그건 일류만 돼도 그냥 막는데……”

         

       “그럼 단전 부수고 해야 하나.”

         

       그러자 절정 셋이 소리를 질렀다.

         

       “안 막겠습니다!”

         

       “마혈 잡히고 얌전히 관아로 가겠습니다!”

         

       “그렇단다. 쟤네 좀 놔 주라.”

         

       그렇게 절정 무인 셋이 마혈이 잡혀 바닥에 털썩털썩 쓰러졌다.

         

       그때 제갈이현이 조용히 속삭였다.

         

       “누님, 주마점의 관부는 어차피 한통속이라 넘겨봐야 금방 풀려날 겁니다만.”

         

       “나도 알아. 그런데 관부 핑계를 대야 얌전히 마혈이 잡혀줄 거 아냐?”

         

       어떤 혈자리들은 내공으로 막아 지혈을 하거나, 신체를 마비시키거나, 입을 막거나, 잠을 재우거나 하는 신비한 효능이 있었다.

       서문수린이 한 번씩은 경험해 봐야 한다고 직접 제자의 혈을 짚어주었는데, 청이 느끼기에 가장 끔찍한 것이 수혈, 잠재우는 혈잡이였다.

       자고 일어나니 아주 끔찍한 두통이 찾아와서.

       그 부작용이 아니었으면 중원에 불면증 환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누님. 남을 속여먹는 데에는 그야말로 통달,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그 비열한 계책에는 이 우제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그저 감탄만 계속하게 만드시는군요.”

         

       “왜 칭찬인데 기분이 나쁜 것 같지? 다음부턴 속으로만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죄송합니다, 누님. 하지만 미숙하나마 지자로서 어찌 감탄사를 참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계속하겠다는 소리였다.

         

       뭐지?

       내가 제갈이한테 서운하게 한 게 있었나?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거기 반 노인 손주 팔아넘긴 애만 남고 나머지는 해산. 잔치는 끝났으니 집에 갈 시간이다.”

         

       청이 손을 휘저어 이류 반 무인들을 밖으로 내쫓았다.

         

       “어, 대협. 저는 어떻게……”

         

       “너는 반 노인 손주 찾으러 같이 갈 거야. 일 끝나면 풀어줄 테니 안심하고.”

         

       “아, 예……”

         

       “이제. 가자. 의매는 쟤네 좀 처리하고 철방으로 와 줄래? 괜찮지?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청이 마혈 잡힌 세 절정 고수를 가리켰다.

       그 뜻을 알아들은 견포희가 눈부시도록 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알겠어!”

         

       절정쯤 되는 고수를 그냥 홀라당 죽이기는 좀 아깝잖아.

       허약한 의매한테 살아있는 영약 먹여서 쑥쑥 키워야지.

         

         

       —-

         

         

       반가철방에 돌아가니 반 노인이 대들보에 줄을 매어놓은 채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분 나쁘게 실내 장식이 저게 뭐예요?”

         

       “남이사. 그래도 어찌 살아서 보는군.”

         

       “나면파는 이제 없어요. 문주 놈은 죽였고.”

         

       그에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돌연 다급한 기세가 되어 청을 붙들었다.

         

       “내 손주 놈은? 찾았나?”

         

       “흑시에 팔았다던데요. 여기 팔아치운 놈이 있으니까 환불받으러 가려구요. 음? 이럴 때도 환불이 맞나? 제갈아, 판 거를 무르러 가는 걸 뭐라고 하지?”

         

       “재매입쯤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오월에 열리는 무림대회까지는 두 달이나 남았다.

       가서 놀고먹고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남은 시간 알뜰하게 써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그러니 저 흉물스런 줄은 좀 치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손주 놈 어떻게 생겼는지도 좀 말해주고.”

         

       반 노인의 생선 같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손주 놈을, 자권이를 좀 찾아 주게. 손주만 찾아 주면 내 무엇이든 하겠네. 검이든 뭐든 내 만들어 줄테니, 아니 병기 장인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을 터이니……”

         

       “됐어요. 병기 장인은 무슨.”

         

       “필요 없다고?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만, 내가 젊었을 적에 만든 작품이 바로 서청검이라네. 천하에 나와 같은 검장이 얼마나 있을 것 같은가.”

         

       “서청검!”

         

       제갈이현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갈이가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뭔가 끝내주는 명검인 모양인데. 죽어도 무기는 안 만들겠다는 노인네가 이제와서 뭘. 뭔가 사연이 있으니까 안 만든다고 뻐겼겠지.”

         

       “그건.”

         

       “협박이든 은혜든 그걸로 싫다는 거 강요하면 둘이 다른 게 뭐야. 문주 놈이 틀린 소리를 한 것도 아니지. 똑같은 놈 될 이유가 있나.”

         

       노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에 청이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환불, 아니 재매입 안 된다고 하면 깽판까진 쳐 볼 테니까 늙은이 건강이나 좀 챙겨 봐요. 손주 찾아왔는데 죽어있으면 어떻게 누가 책임져 줄 수도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제목이 잠시동안 ‘누’가 되어있었읍니다만..

    노벨피아 연재창 제목 입력에 자동 완성이 가끔 말썽을 피워서 그렇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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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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