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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앨리스와 다시 로비로 내려가니, 클레어, 레오가 있었다. 듣자 하니 클레어는 샤를로트와 같은 방이라는 모양이다. 레오는 제이크와 같은 방이었고.

        

       미아 크로우필드는 소피아와…… 아니, 이 둘의 조합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불편하지 않도록’이라면서? 이 둘의 조합이면 그냥 서로 불편한 거 아닌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다른 누구와 같은 방이었더라도 불편하긴 했을 것 같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다른 누군가와 친분 쌓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소피아는 편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심지어 외국인이라 제국 내의 사교계와는 인연도 없고.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에 부딪힐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미아 크로우필드를 우리 같은 황실이나 황제파 가문인 클레어와 같은 방에 넣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으니까.

        

       “아, 그거.”

        

       앨리스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가지고 내려온 초대장을 꺼내자, 클레어가 바로 반응했다.

        

       “너도 받았어?”

        

       “아니, 나는 못 받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클레어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샤를로트가 받는 걸 봤거든. 로티한테.”

        

       “그게 뭔데?”

        

       이야기를 들은 레오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오늘 밤 우리 영지에서 열리는 고리타분한 연회에 오라는 초대장이야.”

        

       제이크가 대답했다. 아카데미에서와는 다르게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라서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이미지였다. 하긴, 제이크의 성격은 언제나 날아오를 듯 가벼웠으니 땅에 내려앉기만 해도 평소보다 열 배는 무겁게 보였겠지만.

        

       “미리 말하지만, 굳이 갈 필요는 없어. 아버지도 굳이 다 올 거라는 생각으로 보낸 건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가 머무는 지역 영주한테 받은 초대를 거절할 수는 없잖아요?”

        

       샤를로트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애초에 이 장소를 제공하는 건 우리가 초대해서 제공하는 게 아니니까. 아카데미 교육 과정에 협력하면서 제공하는 거지.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수업 중인 거니까 일반적인 초대와는 달라.”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또 받은 사람 있어?”

        

       주변이 아주 잠깐 조용해진 와중에, 조심스럽게 손을 드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저, 저도 받았는데요…….”

        

       미아 크로우필드였다.

        

       그리고 그걸 보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은 이 초대장이 대충 어떤 기준으로 배포된 것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그것참…… 노골적이네. 그러면 평민 반은 한 사람도 못 받았다는 소리 아니야?”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렇지. 애초에 백작 정도 되는 가문에게만 보내진 거니까.”

        

       우리 시선이 몰리는 것을 보고, 제이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작가라고 해도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뭐, 그렇게까지 심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다른 공작가에서 여는 연회에도 남작가는 보통 자기네 사람이 아니면 잘 초대하지 않으니까. 평민은 말할 것도 없고.”

        

       앨리스가 봉투를 열어 초대장을 펼쳐보고 말했다.

        

       ‘오늘 저녁 저희가 준비한 연회에 참석하시어 그 고귀함으로 자리를 빛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리고 공작의 서명과 장소, 시간이 쓰여있었다. 서명을 빼고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 거다. 우리가 잊고 있어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학생일 때 미리 인연을 만들어두겠다는 건가?”

        

       앨리스가 황제가 되면 앨리스도, 나도, 여기까지 올 틈이 없을지 모른다. 앨리스는 황제라서, 그리고 나는 앨리스를 보좌하느라.

        

       그러니 인맥을 쌓아두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겠지. 앨리스를 비롯한 황족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들도 마찬가지고.

        

       “음, 뭐…… 그렇지?”

        

       제이크가 모호하게 대답했다.

        

       “연회라니, 궁금하긴 하네요…….”

        

       소피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당연하지만 소피아는 공식적으로는 ‘세습기사 가문’이라서 아슬아슬하게 귀족 취급이긴 한 모양이지만, 서열로 따지면 남작만도 못했다. 초대장은 받지 못했다.

        

       “뭐, 모르는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정작 초대장을 받은 앨리스나 샤를로트, 미아 크로우필드는 별로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고.

        

       ……게다가 나는 공작의 또 다른 속셈도 알고 있으니까. 그 속셈에 나는 포함되지 않겠지만, 휘말릴 다른 여자애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함께 가는 쪽이 낫겠지.

        

       “……흠.”

        

       제이크는 소피아의 그런 말을 듣고 턱을 쓰다듬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가에 씩 미소를 지었다.

        

       “이봐, 친구.”

        

       “으왓!?”

        

       갑자기 제이크가 어깨동무를 하자, 레오가 화들짝 놀랐다.

        

       “혹시 너는 연회에 따라올 생각 없어? 안에 예쁜 귀족 아가씨들도 많을 텐데.”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여자애들이 다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제이크를 흘겨보았다. 심지어 소피아도…… 아, 얘도 생각해보니 혼전순결이니 뭐니 하는 대사가 있는 애였지, 참.

        

       “어? 아니, 나는…….”

        

       레오는 대놓고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 없는 남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사실 레오의 반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게임의 주인공이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 빠질 수 있을 리가 있나.

        

       원작에서도 공작의 진짜 목적을 파악한 제이크는 레오를 끌어들여서 상황을 파투 내버린다.

        

       전개가 여러모로 달라진 여기서도 그 생각이 제대로 먹힐지는 모르겠다만, 뭐 주인공이 근처에 있어서 나쁠 것은 없겠지.

        

       “그리고, 거기 레오네 여동생.”

        

       “내 이름은 클레어거든. 그리고 나 여동생 아니야. 내 쪽이 누나니까.”

        

       “그래? 그럼 클레어.”

        

       제이크는 클레어를 보면서 씩 웃었다.

        

       “연회, 같이 참석하고 싶지 않아?”

        

       “어? 그래도 돼?”

        

       “그야 당연하지. 형제가 가는데 자매는 빠질 수 없잖아. 소피아, 너도 그렇고.”

        

       ……음.

        

       뭐랄까.

        

       원작에서도 이런 분위기이긴 했지만, 일부 동인지 작가가 왜 제이크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겠다.

        

       태도만 보면 누가 봐도 히로인 꼬시는 금태양이잖아.

        

       본인도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로티가 아직 초대장을 돌리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참지 못하고 제이크 뒤통수를 한 대 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무슨 꿍꿍이죠?”

        

       “꿍꿍이라니? 나는 그냥 친구들이랑 즐겁게 지내고 싶을 뿐이라고.”

        

       앨리스의 반응은 원작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릴 때 클레어에게 이기기 위해 이런저런 공부만 하느라 사교계를 어색하게 생각하던 앨리스는 처음에는 이 초대도 거절하려다 레오가 간다는 말을 듣고 확실하게 마음을 정한다.

        

       다른 여자 캐릭터들도 비슷비슷한 이유였고.

        

       정작 여기서 앨리스는 레오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저는 가겠습니다.”

        

       내가 불쑥 끼어들어 그렇게 말하자, 주변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 쪽으로 확 몰렸다.

        

       “오, 진짜?”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사실은 제이크의 그 계획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하였지만.

        

       그야…… 당연하잖아?

        

       이런 배경에서 금단의 사랑을 하는 순애 커플이 있다면 이어주는 것이 상식이니까.

        

       “흠.”

        

       제이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좋아. 너는 이미 초대장도 받았으니까.”

        

       “괜찮겠어?”

        

       옆에 서 있던 앨리스가 작게 물었다. 여전히 조금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제이크 쪽을 슬쩍슬쩍 보고 있었다.

        

       “아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대놓고 신나 보이는 클레어와 소피아 쪽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가지 않겠다고 하면 엄청나게 실망할 사람들이 두 명 정도 있으니까요.”

        

       “너도 참 무르다니까.”

        

       내 말에 앨리스는 쓰게 웃었다.

        

       *

        

       린드버러 영지 남부는 거의 항상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이지만, 그래도 9월쯤 되면 일교차가 꽤 심해진다.

        

       물론, 호텔 앞까지 우리를 모시러 온 자동차 안은 따뜻했다. 굳이 그런 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럼 초대장을……”

        

       “괜찮아.”

        

       저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리가 초대장을 건네기도 전에 제이크가 문지기한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도록 할게. 내 친구들이니까.”

        

       “그렇습니까.”

        

       제이크의 말에 문지기는 더 물어보지 않고 옆으로 비켜주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저기, 저기…….”

        

       당당하게 들어가는 제이크 뒤를 따라가면서, 클레어가 손가락 끝으로 내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언니, 우리는 드레스 같은 거 입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것참 귀여운 고민이네.

        

       걱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저희는 학생이니 교복으로 충분합니다.”

        

       애초에 진짜 본격적인 사교의 장도 아니다. 그보다는 공작이 ‘학생들’을 보고 싶어서 불러 모은 거니까.

        

       특히, 약혼자가 없는 여학생들을 보고 싶은 거겠지.

        

       자기 아들과 결혼하기에 적합한 여학생을.

        

       공작은 제이크가 로티와 자주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른바 금단의 사랑이랄까.

        

       뭐 이런 배경의 게임에서는 금단도 뭣도 아니고 그냥 이어지라고 만든 커플이나 다름없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

    잠요일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쓰는 중 가장 듣기 좋은 말이 있다면 저의 소설이 재미있다는 칭찬입니다. 소설 쓰는 것이 저의 본업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가지고 있던 꿈이었던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꿈을 이루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제 소설을 칭찬해주시니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글이라는 것을 쓰면 쓸수록 저의 부족한 점이 보입니다. 그것이 저의 한계가 될지,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가능성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것이 보인 이상 그냥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할 뿐입니다.

    다시 한번,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후원이 아깝다고 생각하시지 않도록,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앞으로 제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처음을 기억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셔서 노벨피아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사실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욕심이 생기기는 합니다. 다른 위대한 작가들처럼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 내에서 벌어지는 엄청 스케일 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대단한 반전을 넣고 싶어진다거나… 하지만 처음 글을 쓸때부터 지금까지 느끼는게, 저는 아직 그런 내용을 감당할 실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이제 글을 쓴지 2년이 안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이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소설을 읽어야 한다…같은 것은 지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계관을 물어보신다면… 저는 글을 쓸 때 하나의 설정을 여러개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다른 스킨을 씌워 다시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쓴 글들에 공통점이 존재하는거고요. 그러니 각 소설들은 세계관이 호환되도록 설정을 짜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 여러분이 마블의 엑스맨 실사 영화 시리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같은 세계관이라고 보실 수 있다면, 제 소설의 세계관은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이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 있었다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새우냥 님, 후원 감사합니다!

    제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 쓰는 내내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저의 글을 재미있게 생각해주실까 걱정합니다만,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많이 놓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주실 수 있도록,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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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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