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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이제는 청휘 도사님이 아니라 청휘 형님이로군요!”

       

       “⋯⋯⋯⋯그, 그렇게 됐소.”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게 되어 기쁩니다! 객(客)이란 길이 다르면 언제고 떠날 사이이지만, 가족이라면 설령 몸이 멀리 있어도 마음은 떠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잘 부탁드려요 청휘 형님!”

       

       “⋯⋯⋯⋯.”

       

       오늘로 남궁청휘가 된 엔버스 레드번은 형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방으로 몸을 비틀어댔다. 남궁명은 혹여 병이라도 걸렸나 싶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렇게 몸을 비트시나요, 청휘 형님?”

       

       옆에 있는 남궁승아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0고백 1차임의 원한을 되갚을 건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척 보면 모르겠니? 형님 소리를 듣는데 익숙치 않은가 보다. 그러면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되겠네⋯⋯ 그렇죠 청휘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괜찮소.”

       

       “진짜 당신 죽을래요?!”

       

       투닥투닥.

       

       금나수로 잠깐의 수싸움을 한 뒤에, 남궁청휘는 아주 철학적인 질문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려냈다.

       

       가족이라는 건⋯⋯ 뭘 해야 하는 거지?

       

       그가 바라마지않던 무언가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의미를 잃고 살아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났으므로, 대체 그게 무엇인지를 헤매고 있던 것이다.

       

       기억을 되짚어보자. 가족다운 행동⋯⋯.

       

       로데루스 형님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었지. 그렇다면 자신의 것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가족의 참된 행동일까?

       

       “⋯⋯청휘 도, 아니, 오라버니. 왜 자꾸 제 접시에 콩을 옮기는 건가요.”

       

       “나누어 먹으려고⋯⋯.”

       

       “저 콩 싫어하니까 명이 주세요. 아니, 명이 주라니까요!”

       

       “누님도 형님도, 편식은 나쁩니다! 오행의 기운이 조화롭도록 무엇 하나 거르는 것 없이 섭취해야 근골이 튼튼해지고 내공이 바르게 쌓인다고 배웠습니다. 또한 콩은 땅에서 자라 지기를 한껏 빨아들이는──”

       

       남궁명의 해설을 배경음악 삼아서, 남궁청휘와 남궁승아는 누가누가 자신의 콩을 상대방 접시에 많이 옮기느냐로 싸움이 붙었다.

       

       천마의 무학을 이용하여 콩을 튕겨내던 청휘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로데루스 형님과 나누어 먹을 때에는 애틋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족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는 기억 보따리에서 다른 기억을 꺼내보았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엔버스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었다. 배가 고파서 울면 젖을 물려주고, 넘어져 울면 달래주고. 

       

       그렇다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살피듯 챙겨주는 것이 가족의 참된 행동일까?

       

       “⋯⋯뭐 해요?”

       

       “혹시 칼에 베이면 어쩌나 하고 대기 중이었소.”

       

       “저 지금 수련하러 가는데요. 제가 십몇년간 익힌 검법을 수련하다가 혹시나 칼에 베일 경우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소.”

       

       슈아아악!!

       

       남궁승아는 가감 없는 살초를 날려왔다. 회피기동을 밟던 청휘는 이게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을 다시 검토했다. 과한 친절은 어쩌면 경호 대상이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다른⋯⋯ 가족다운 행위라.

       

       레드번 공작은 암살술을 가르쳐주었고, 형제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1열에서 직접 보여주었으며, 능력이 부족하면 아들 취급도 하지 않았다.

       

       “⋯⋯⋯⋯.”

       

       아무리 그래도, 이게 ‘가족다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청휘는 자신이 가족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타인에게 배워야 하는바, 그는 솔직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남궁승아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맛이 갔다 싶었던 게, 그거 때문이었어요?”

       

       “나름 노력해 봤소.”

       

       “무공 익힐 때 긴장해서 힘이 콱 들어가 있으면, 움직임이 뻣뻣하고 볼품없어지는 거 알죠. 지금 청휘 도⋯⋯ 오라버니가 딱 그래요.”

       

       가족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입양아 남궁승아가 답하길.

       

       “가족이 뭐 별건가요. 피도 안 이어진 마당인데.”

       

       “⋯⋯⋯⋯?”

       

       “가족이라는 틀에 구애받지 마세요. 가족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넘고, 개중에는 남궁소처럼 명예나 힘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게 옳다고는 않겠지만⋯⋯ 당신도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야죠.”

       

       그러니까 이상한 짓 좀 그만 해라. 남궁승아는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합당한 말이었다.

       

       남궁세가의 정원에 홀로 남은 남궁청휘는 가부좌를 틀고 생각에 잠겼다.

       

       로데루스, 그는 결함이 있는 마력 운용법을 알려주어 엔버스의 마력기관을 망가뜨렸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여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으나.

       

       돌이켜보면 로데루스에게는 좀 더 간편하고 빠른 선택지가 있었다.

       

       엔버스의 재능을 질투하여 그를 배제하고 싶었던 거라면, 그냥 죽이면 되었다. 잠든 사이에 레이피어를 찔러 넣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감았겠지.

       

       그러니까⋯⋯ 자신을 레드번 가문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짓을 벌였던 게 아닐까.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제야 이해가 간다. 만약 자신과 남궁명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리고 그 방법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면. 어쩌면 청휘 또한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당시의 로데루스 형님은 나를 엄청 어리게 보고 있었다는 거로군⋯⋯ 좀 섭섭하구려. 형님.”

       

       그때도 나름 어른스러웠던 것 같은데. 아닌가?

       

       청휘는 로데루스와의 추억을 하나둘 꺼내보았다. 서로 대련을 하다가도 가끔씩, 로데루스가 유독 심하게 공격할 때가 있었다. 엔버스가 부상을 입어서 경쟁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는 그저 기분이 나쁜 날이었던 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도 알기 어려운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분위기가 흉흉한 날에는 어김없이 로데루스가 부상을 입혔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악에 받친 사생아들끼리의 경쟁에서 사망자가 나오곤 했다.

       

       위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트려 놓은 거다.

       

       “⋯⋯진작에 단서가 있었군.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거야.”

       

       남궁청휘는 먼지 묻은 엉덩이를 털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걸었다.

       

       결국 세상만사는 무공과 같아서, 가족이라는 단어에 어떤 뜻(意)을 담을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남궁청휘에게 있어서 가족은,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사이다. 

       

       오해로 그동안 많이 아팠으니, 이제는 제대로 마주 볼 수 있기를. 그는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로데루스 형님과 다시 만나면,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사이좋은 형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뿐만 아니라, 셀비어나 루나. 고마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싶다고 느꼈다. 쫒기듯 살아오느라 눈에 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생각을 정리한 청휘는 품 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들었다.

       

       밤이 깊으면 인근의 숲으로 찾아오라는 남궁소의 편지였다. 만약 오지 않으면 네 ‘가족’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경고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음⋯⋯.”

       

       남궁청휘는 바위에 잠시 기대어 둔 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매었다. 남궁세가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가주가 내려 준 튼튼한 장검이었다.

       

       매듭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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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따라 걷는다. 왔던 길을 거꾸로 향한다.

       

       남궁세가의 정문을 넘었다. 이제는 같은 성을 쓰게 된 경비 무사들과 눈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잠시 밖에 볼일이 있어 떠난다고 일러두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로를 지나간다. 생경했던 풍경들도 이제는 눈에 익어 익숙하다. 지붕을 뛰어다니는 배달부들도 일상의 일부였다.

       

       저잣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투박하게 싸우는 두 무인이 보인다. 술김에 싸우는 것인지, 둘 모두 얼굴이 익은 문어처럼 새빨갛다. 

       

       청휘는 지나가는 김에 둘 사이에 끼어들어, 가볍게 힘을 흘려내고 주저앉혔다.

       

       “허억⋯⋯!”

       

       “고, 고수!”

       

       고수의 중재에 싸움은 멈췄다. 남궁청휘는 그들에게 술 깨거든 싸우라고 말을 남기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쭉 따라서 걸어가 성문을 넘으면, 시야에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노을이 지고,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가 새까맣게 창백해진다. 숲에서는 밤이 빠르게 온다더니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

       

       어쩌면, 숲이라서 그런 게 아닐지도.

       

       피부가 따끔거린다. 영혼이 떨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저 멀리서부터 사특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저 하늘까지 뻗어 얇게 덮어나가는 듯한, 옅은 듯하면서도 무겁게 짓누르는 기운이다. 세상에 한 꺼풀 막을 덮어놓은 것 같다.

       

       다가서는 것이 꺼려진다. 내심 두려움이 솟았다. 두려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형태가 아주 익숙하다.

       

       천마. 이것은 천마의 기운이다.

       

       천마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거대한 무언가, 드높은 벽을 까마득하게 올려다보는 듯한 감각.

       

       미친 마법사가 인연으로 묶여 있다 하였던 것은, 이런 미래를 읽어 낸 것이었을까?

       

       지금이라면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다. 아직도 천마에게 느꼈던 무력감이 생생하다. 많은 것을 배운 지금 도전하더라도, 엔버스는 형편없이 당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남궁청휘는 가족을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다. 

       

       “⋯⋯도망갈 수는 없지. 차라리 벽에 머리를 박겠다.”

       

       셀비어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루나가 도전을 즐긴다면. 자신은 도전을 등에 짊어지리라.

       

       그는 걸었다.

       

       기운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궁소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아귀에는 불길한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청휘에게는⋯⋯ 거꾸로 보였다. 남궁소가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이 남궁소를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책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막연한 느낌이었지만, 청휘는 저 책이야말로 이 사단의 원흉임을 직감했다. 

       

       남궁소는 허탈한 듯한 목소리로 흘리듯 말했다. 그의 옷매무새는 흐트러졌고 머리카락은 산발이어서, 평소의 귀공자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왔구나, 청휘.”

       

       “남궁소. 존대는 아예 그만두기로 한 것이오?”

       

       “죽을 놈에게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다.”

       

       “이유가 아니라, 애도할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소.”

       

       스르릉. 남궁소는 장검을 뽑았다.

       

       날이 잘 갈린 보검이 시퍼런 한기를 흘려대고 있었다. 살기가 짙다.

       

       “네가 내 계획을 모두 망쳤다. 네놈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명이의 피를 취해서⋯⋯ 천마의 힘을 손에 넣었을 텐데!”

       

       “말은 바로 하시오. 나는 당신의 계획을 망친 것이 아니라, 당신을 구해 준 거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후회? 내가 후회하는 건, 진작 네놈을 죽이지 않은 것뿐이다. 가짜 도사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목을 베었어야 했어!”

       

       “그러면, 어디 한번 해 보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오?”

       

       남궁청휘 또한 마주 칼을 뽑았다.

       

       스으으으.

       

       남궁소는 창궁무애검법의 완벽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대리석 조각과도 같은, 흠결 없는 준비 자세였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하고 닫혀 있어서 자유롭지 않았다.

       

       반면에 남궁청휘는 창궁무애검법을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이곳저곳에 빈틈이 많고 어설픈 자세였다. 그러나 무공의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개의치 않고 여유로웠다.

       

       적막 속에서.

       

       새가 퍼드덕 날아오르는 소리와 함께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흐아앗──!!”

       

       남궁소가 보법을 밟으며 일점집중하여 찔러 들어오니, 그 기세가 쏘아진 화살과도 같았다. 정순한 내공으로 펼쳐 내는 완벽한 자세의 무공은, 그 숙련도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남궁청휘는 알아보기 위하여 검을 맞댔다.

       

       채앵-!!

       

       청휘의 검이 크게 튕겨 나갔다.

       

       내공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남궁소의 검격은, 내공의 수발이 불안정한 청휘보다도 힘이 우위에 있었다. 정면승부로 힘을 겨루면 이길 방도가 없다.

       

       남궁소의 검이 학이 꽁지깃을 펴는 것처럼 퍼져나갔다. 찌르기에서 베기로 유려하게 전환하여 청휘의 가슴팍을 노리니.

       

       나려타곤. 청휘는 망설임 없이 바닥을 굴러 칼날을 피해내었다.

       

       “꼴불견이구나!”

       

       “겉껍데기에 구애받아서는 안 될 일이오. 천마의 힘이 어쩌니 하던데, 천마였더라면 나려타곤을 수십 번도 넘게 썼을 거요.”

       

       그게 이길 확률이 높은 선택지였다면, 천마는 어떤 우스운 동작이라도 그저 했으리라.

       

       남궁소의 검이 활강하는 매처럼 매섭게 땅을 베어 갈랐다. 청휘는 지면에 폭쇄결을 쓰며 몸을 굴려 참격을 피해내고, 낮은 자세에서 칼을 휘둘러 소의 발목을 노렸다.

       

       남궁소는 펄쩍 뛰어올라 피했다. 각자가 회피에 집중하느라 생긴 공백에, 청휘는 입을 열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소.”

       

       “⋯⋯떠들 여력이 있느냐, 이놈!”

       

       카앙-!!

       

       다시금 쇠와 쇠가 맞부딪친다.

       

       남궁소의 눈빛에서 혈광이 번져 흔들렸다. 그의 검법은 폭급해졌고, 푸르른 검기에는 점차 검붉은 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남궁소의 창궁무애검법이 전방위로 휘둘러지며 청휘를 압박하였으나, 그는 하늘을 누비는 듯 맞섰다. 촘촘한 검기로 인해서 검로가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유로웠다.

       

       어깨를 좁히고 몸을 틀어 휘두르거나,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남궁소의 발등을 노리는 등. 여러 무예를 섞어서 사용하니 남궁소가 쉬이 결판을 낼 수가 없었다.

       

       “당신은 어찌하여 명이를 죽이려 하는 거요?”

       

       “마강신술(魔降神術)의 비법에, 가족의 피를 바치라 하였으니까!”

       

       “그렇게 비법을 이루어 힘을 손에 넣어, 무엇을 하려 하시오?”

       

       “남궁세가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야지. 누구도 가문을 업신여기지 않게!”

       

       카앙, 캉-!

       

       남궁청휘는 손목을 부드럽게 돌려, 관절의 탄성을 이용하여 채찍처럼 베었다. 그것은 사슬낫의 움직임과도 비슷하게 보였다.

       

       기습적으로 때려 경력이 침투하자, 나아가던 남궁소의 칼이 잠시 멈췄다. 청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조준했다.

       

       폭쇄결.

       

       쿠웅-!

       

       빠르게 쏘아진 청휘의 주먹이, 남궁소의 가슴팍을 때리며 밀어냈다.

       

       “커억⋯⋯!”

       

       “가문을 업신여기고 있는 건 당신이오. 가문의 구성원을 죽이려고 드는 자가 어찌 가문을 지킨다는 말이오?”

       

       “네놈은 몰라! 나만이 남궁세가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 나만이 가문을 이끌 수 있어! 나는 그 믿음을 지켜야만 해!”

       

       “대체 누가, 당신에게 훌륭한 가주가 되라 하였기에?”

       

       “그건⋯⋯!!”

       

       명이가.

       

       명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소 형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가주가 될 거라고.

       

       남궁소의 움직임이 덜컥 굳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왼손에 아직도 들려 있는 사악한 책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떼려고 해 보아도 마치 접착이라도 된 듯, 책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혈광이 잦아들었다. 무언가에 쫒기는 듯한 숨소리가 조용해지고, 눈동자에 분노 이외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혼란 속에서, 남궁소는 읊조렸다.

       

       “⋯⋯명이는, 천재이지. 그 재능은 감히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언젠가 반드시, 명이는 내가 넘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었다.”

       

       질투도 났고, 어쩌면 명이에게 가주 자리가 넘어갈 수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본받을 만한 형’이 되고 싶다는 열망도.

       

       “⋯⋯그래서 하늘을 베는 검을 익혀 실력을 키우려고 했건만, 아버지는 내게 선조의 비처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집었다.

       

       책에는 사람을 희생하여 실력을 올리는 사악한 비법이 가득 실려 있었다. 남궁소는 양민을 해쳐 그 피를 취했다. 처음에는 죄책감도 있었던 것 같지만, 갈수록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 둘, 희생자는 자꾸만 늘어나고. 그는 외도에 취했다.

       

       “⋯⋯안다, 알아. 무고한 이들을 죽인 시점에서, 나는 이미 시정잡배만도 못한 놈이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승냥이었어도, 목적은 있었거늘. 골수에 혈기가 파고들기 시작하자 목적마저도 잊었다.

       

       어떻게든 장남의 권위를 지키고 싶었던 옹졸한 자는, 결국 수단에 불과한 힘에 잡아먹히고야 말았구나.

       

       남궁소는 음울한 눈으로 청휘를 바라보았다. 

       

       “⋯⋯반성은 하지 않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더라도, 나는 사람을 죽이고 간편하게 힘을 얻는 방법을 택했을 터다. 나는 그런 놈이니까.”

       

       “⋯⋯⋯⋯.”

       

       “그 모든 행위에는 후회가 없다만, 이 빌어먹을 책에게 홀려서⋯⋯ 가족까지 잊어버린 건 아프군.”

       

       남궁소는 칼날을 제 목덜미에 들이대었다. 이미 모든 계획이 산산조각난 마당이고, 이깟 책에게 휘둘릴 바에는 죽는 편이 나았다. 

       

       그가 자진하기 위해서 손잡이에 힘을 주는 순간.

       

       “⋯⋯크, 어억.”

       

       우드드득. 드득.

       

       마강신술(魔降神術)에서 요사스러운 붉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남궁소의 손을 타고 올라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핏줄이 도드라지고, 근골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남궁소는 눈을 까뒤집으면서 외쳤다.

       

       “⋯⋯나, 나를, 죽여!”

       

       “──흐읍!”

       

       남궁청휘는 마도서에 잡아먹히기 전에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폭쇄결로 거리를 좁히며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익──!!

       

       가속한 칼날이 남궁소의 목덜미에 닿아, 목에 파고들기 직전.

       

       남궁소의 몸이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시야에서 훅 꺼졌다. 남궁청휘는 당혹감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벼락에 맞은 것처럼 무언가를 깨달아 전신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주었다.

       

       불가해한 기교. 방금 그것은 천마의 움직임이었다.

       

       툭.

       

       청휘의 가슴께에 주먹이 닿았다.

       

       그리고, 투웅──!!

       

       “큭⋯⋯!!”

       

       청휘는 고절한 발경에 당해, 3장 가량을 붕 떠서 날아갔다.

       

       천근추의 수법으로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장검을 두손으로 단단히 쥐면서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다. 눈앞에는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남궁소가 있었다.

       

       청휘는 남궁소의 뒤집어진 눈동자 너머에서 천마를 보았다. 그 존재가 시공을 격하여 남궁소의 몸에 깃든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좀늦었습니다마이프렌즈지각미안해요오늘도멋진하루되시고내일다시만나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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