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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

     

    고요한 식물 연구실.

    고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분명히 엘프 두 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연구시설의 다른 식물들처럼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도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밀레드는 입을 열었다.

     

    “박사님, 그 애는 정말 괜찮겠죠?”

    “모른다. 내가 식물학 박사지만 의사는 아니지 않느냐.”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 뿐.

     

    식물학의 권위자, 갈룬드 티르핀드박사.

    이 분야에만 100년 이상을 꾸준히 매달려온, 이 시대의 최고령 식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년이나 살아온 만큼, 잡다한 지식도 많았다.

     

    덕분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진 아이의 발작증세와 마력초들의 기묘한 반응으로 인해, 다행히 아이의 심장에 서클이 자리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수축되는 제자의 어깨를 발견한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다시 내렸다.

     

    “하여튼, 네놈 입이 방정이지.”

     

    쯧쯧, 혀를 차는 스승의 말에 그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맞아요. 제가 더 조심했어야 했어요.”

     

    밀레드는 자책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사태는 자신의 책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이는 데미라이트를 보고, 향에 대해 평가를 내렸었지.

    ‘달콤함’이 빠져있다는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건넨 질문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 뒤에 갑자기 비명을 지른 후, 손을 모아서 덜덜 떨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으니까.

     

    ‘그 냄새를 어디서 맡아봤냐고 물어봤으면 안 됐는데…….’

     

    우리는 탐정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멍청이들도 아니었다.

    식물계에 몸담은 학자인 이상, 향에 대해서도 일반인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금세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향수중엔, 당연히 굉장히 상쾌하고 향기로운 데미라이트를 흉내내어서 만들어낸 향도 존재한다.

     

    향수 회사는 고객에게 더 좋은 향이 나는 제품을 제공하려 하기에, 데미라이트에 인위적으로 달콤함을 넣은 제품도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유행이 지난 상태이기는 하지만, 몇 년 전만해도 그 향수는 상당히 인기제품이었다.

     

    아마, 아이가 ‘맡아본 적 있는’냄새는 그 향일 것이다.

     

    평소에 부모님이 뿌렸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단서도 있지 않던가. 아이는 하고 많은 꽃 중에서 특히 ‘데미라이트’에 집착하고 있었으니까.

    옛날에 부모님이 쓰시던 향수의 향이라고 생각하면 이 것도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

     

    폭주한 서클.

    그리고 ‘마나심축적환자’들이 평소에 감정을 얼마나 자제하고 살아가는 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감정으로 터져버리고 만 것이겠지.

     

    어째서 일찍 깨닫지 못 한 것일까, 밀레드는 다시 이마에 주먹을 댄 채로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한숨을 쉬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듯한 제자의 표정을 차마 곁에서 바라볼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지팡이를 그의 정수리에 내리치고 말았다.

     

    딱!

     

    “악!”

     

    안 그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방금 눈물이 찔끔 나온 것 같다.

     

    “고개 들거라. 그 아이가 심장에 서클이 새겨져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

     

    “그렇지만…….”

     

    그의 제자, 밀레드가 탐탁치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화가 난 듯 한 스승의 시선을 1초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어 슬쩍 피하니, 자연스럽게 데미라이트가 ‘있던’ 화분으로 향했다.

     

    “…….”

     

    티르핀드박사가 밀레드의 시선을 따라 화분을 확인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어쩔 수 있나, 그 때는 사용할 수밖에 없었잖느냐.”

     

    연구소에선 당연히, 서클 환자들에게 줄 만한 약은 구비되어 있지 않다.

    이 곳에서는 서클을 앓고 있는 연구원은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온갖 식물의 연구소라고는 하지만, 서클을 안정화시키는 것에 도움을 주는 식물은 흔치 않다.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은 더더욱.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데미라이트의 꿀.

     

    그것에 ‘감정의 완화’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믿고, 아이에게 신의 눈물을 먹였다.

    그러자 눈에 띄게 아이의 발작 증상이 완화된 것이다.

    하긴, 그토록이나 희귀한 꿀이, 마법적인 효과가 약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빈 화분을 바라보던 스승에게 그 제자가 묻는다.

     

    “설마, 아까우신건가요?”

    “뭐가, 데미라이트가?”

     

    따악-!

     

    “아니, 화분을 계속 바라보고 계시길래……!”

    “으이그, 멍청한 녀석아!”

     

    티르핀드박사는 설교하듯 말했다.

     

    “생각을 해 봐라. 꽃이 핀 데미라이트와, 데미라이트를 꽃피운 아이의 목숨. 어느 쪽이 더 중요하겠냐?”

     

    이를 테면 눈 앞의 황금과 황금알을 낳는 거위.

    중요한 것을 선택하자면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

     

    밀레드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근엄한 표정을 지은 스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루크가 꽃을 피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우연일 가능성도 있으며, 혹시나 루크가 한 것이라고 해도 한 번 더 같은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냥 귀한 식물을 낭비한 것이며, 200년이 넘는 엘프의 수명 절반 이상을 바쳐가며 연구한 식물을 소모하면서까지 아이를 살린 행위에는 단순히 계산적인 시선만 담겨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밀레드는 쓰게 웃었다.

     

    “하하. 그렇네요…….”

     

    아이를 만나 대화를 한 시간은 겨우 몇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벌써 그 아이에게 빠져버린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에레……. 라.”

    “네, 분명 쓰러져서는 그렇게 중얼거렸죠.”

    “그건 대체 얼마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모르겠구나.”

     

    노인은 고개를 들어 창 밖의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에레.

     

    단어를 들으니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의미가 떠오른다.

     

    기원조차 모를 정도로 아주 오래 된 ‘옛 말’로, 그것은 바로 ‘분신처럼 아주 소중한 이’라는 뜻.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도 쓰지 않는 말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참, 역시 부모의 품이 많이 그리운 모양이지.”

     

    그렇게 고개를 창 밖에서 돌린 순간이었다.

     

    -고마워, 에레를 도와줘서!

     

    “응? 밀레드, 방금 네가 낸 소리냐?

    “아뇨?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뭐지, 벌써 귀가 맛이 갔나…….”

    “솔직히 박사님 나이시면 그럴만도하죠.”

     

    따악-!

     

    “악!”

     

    ——–

     

    한 방울, 한 방울.

     

    점적관에서 점적통으로 떨어지는 포션의 방울들을 병실의 침대에 누워 지루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루크가 있다.

     

    3일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인지 지금 루크는 상당히 배가 고픈 상태였지만 의사가 말하길, ‘당장의 식사는 위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당장은 식사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포션을 몸 속에 투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쓸모 없는 짓을 하는 구나…….”

     

    이것은 명백한 낭비.

    자원의 낭비다.

     

    루크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모없는 짓 이라니.’ 그럴지도.

    루크에게 고작 회복 포션이 의미가 있을 리가 없기는 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르나는 루크가 어째서 그러는지 이해하는 자신이 싫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베리튼의 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

     

    ‘이 속도로 계속 마력이 쌓인다면, 단순계산으로 3년 뒤에는 생물종으로서 담을 수 없는 수준의 마력에 다다를 겁니다.’

     

    ‘3년 뒤…….’

     

    어차피 3년 뒤에 죽는 아이라면, 회복포션은 쓸모 없는 짓이 되겠지.

    공교롭게도, 그것은 루크의 보호가 끝나는 시기와 겹쳤다.

    이것은 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결국 루크도 자신이 언제 죽는가에 대한 것은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링겔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묻어나온다는 말인가?

    어쩌면 루크가 모든 일에 열정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예르나. 항상 걱정만 끼치게 되는구나.”

    “아냐, 그런 건 전혀 루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예르나.

    그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루크는 뒤이어서 생각했다. 신경을 쓰지 말라고는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루크는 그저 당장 예르나에게서 자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창 밖의 화단을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

    “…….”

     

    그 뒤로는 침묵.

    루크는 어쩐지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어 어떻게든 할 말을 쥐어 짜냈다.

     

    “아참, 그러고 보니 비행기는 어떻게 하지? 시루드가 없다면 비행기를 탈 수 없을 텐데. 에이레스로는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게냐?”

    “아, 그거 말이지, 그건 걱정 마. 시루드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그게 정말인가? 그 아이에겐 정말 미안하게 되었군, 뭔가 또 다른 일은 없었나?”

    “없었을리가. 네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얼마나 큰일이 났었는데. 이 넓은 1인실이 가득 찰 정도였다니까.”

     

    일단 반 전체가 문병을 왔었다.

    담임인 엠마는 원래 서클을 지니고 있는 루크에게는 특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평소 루크가 굉장히 밝고 씩씩해서 그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며 사과를 했었지.

    솔직히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많이 화가 나서 뭐라고 크게 따지기는 했지만……. 음, 루크가 깨어났으니 전화로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 생각해보니 그건 정당한 분노였다고 생각한다.

    담임이 되어서 관리소홀이라니, 그러니까 그냥 문자로 사과해야지.

    루크가 깨어났다는 말도 해야 하고.

     

    “시루드가 참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고 했어.”

     

    메리와 함께 꽤 오랫동안 병실을 지켜주고 있었다고 들었다.

     

    마치 루크의 손을 꼭 붙잡고 뭔가 기도를 하다가 쓰러질 정도였다고.

     

    “그런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건 시루드 나름대로 자신이 그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손을 잡아서 서클을 안정화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겠지.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심장에 직접 손을 대도 가능할지 어떨지 모를 정도의 압도적인 역량차이가 있는데, 무모한 시도다.

    자칫하면 시루드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건 나중에 혼내야겠군.’

     

    그리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예르나는 문득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전화가 왔으니 잠깐 나가서 받고 오겠다며 병실의 문을 나섰다.

     

    그렇게 병실에 혼자 남게 된 루크는 그저 창 밖을 바라보는 정도 밖에 할 것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그러자 병원의 잘 가꾸어진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흠.”

     

    어차피 이 링겔이 끝나기 전까지는 할 것도 없으니, 꽃 구경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어 루크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

     

    “그래서, 지금 보내준 자료가 마지막이라고요?”

    -맞아, 네 말대로 며칠동안 더 수색을 해 봤지만, 결국 건진건 그 사진밖에 없어.

    “…….”

     

    예르나는 휴대폰으로 건네진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잠깐, 이 사진의 이 형체는…….

    이건……. 설마.

     

    “저, 예르나.”

     

    벌컥!

     

    “흐익!”

     

    예르나가 황급히 휴대폰을 몸 뒤로 숨겼다. 루크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예르나, 왜 그러나? 그렇게 놀라다니…….”

    “아, 아, 아무것도 아냐. 근데 왜?”

    “아니, 이 링거를 맞는 동안 저 앞에 화단이라도 갈까 해서 물어보려 했다만…….”

    “아, 그래? 그래. 가자!”

     

    예르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조작해 화면에 띄워 둔 사진을 치우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루크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걸으며 예르나는 머릿속에 박혀버린 광경을 지우고자 고개를 살짝 털었다.

     

    그러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봐, 왜 갑자기 전화를 끊어? 무슨 일이야?

    “일단은 끊고, 이따가 자세히 이야기해요.”

     

    뚝.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아하하, 아무것도 아냐.”

     

    예르나의 억지웃음에 루크는 턱을 쓰다듬고자 했지만, 한 손은 예르나에게 붙잡혀있고, 다른 손은 링거 꽂이에 묶여있어 어쩔 수 없이 의아한 표정만을 지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은 상당히 고양이같아서, 예르나는 아까 보았던 사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철창에 갇힌 동물사진.

    그것도…….

     

    ‘뿔 달린 고양이라니’

     

    이건, 어떻게든 루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화의 그 친구가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다음화부터는 다시 일상!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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