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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0

        

       파아아악!

         

       주물을 후려치자 둔탁한 소리가 아닌, 물풍선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퍼졌다.

         

       진성은 굉음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가 휘두를 때마다 소리는 점차 변해가며 돼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변해갔다.

         

       꾸이이익!

       꾸익!

         

       돼지가 몽둥이로 얻어맞을 때 나는 듯한 소리.

       단순히 가죽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것을 때리는 듯한 소리.

         

       그것은 마치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가 가죽에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고, 주물의 머리통에 숨을 불어넣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때릴 때마다 사방으로 뿜어지는 대신 몸 안에 갈무리가 되는 부정을 보고 있자면 저승에 있는 악령이 멧돼지에 깃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 히, 히이이익. ]

         

       무당 악령은 그 장면을 보며 겁에 질린 듯 뒷걸음질을 쳤다.

         

       부정을 뿜어내던 것이 부정을 갈무리하고 부정을 제 몸과 핏줄을 이루는 재료로 삼고.

       그 재료로 근육을 짜서 가죽을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단순히 가죽에서 뻗어진 가지에 지나지 않았던 네 다리를 길게 뻗어 땅 위에 서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리를 쳐들어 악령을 바라볼 때까지.

         

       무당 악령은 겁에 질려 몸을 돌려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주물이 생명을 얻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뀌이이이이이이익-!

         

       그리고 마침내 주물이 부정으로 커다란 엄니를 만들고 몸을 부풀려 건물 2층 크기의 괴물이 되었을 때.

         

       무당 악령은 몸을 바싹 웅크려 오체투지를 하며 소리쳤다.

         

       [ 아고, 산신님! 산신님께서 여기는 어찌한 일로 강림하셨사옵니까! ]

         

       무당은 조금 전까지 눈을 까뒤집으며 악령과 악귀를 찢어 죽이고 진성을 홀리려 들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겁에 질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행여 주물과 눈이 마주칠까 봐 목이 완전히 꺾여버릴 때까지 머리를 처박았으며,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손을 뻗어 제 눈두덩이에 손가락을 가져간 뒤 손톱을 세워 눈알을 파내기까지 하였다.

         

       [ 산신님, 산신님! 이 보잘것없는 년에게 자비를 베푸사 목숨을 부지하게 하옵소서! 아랫골에서 살아온 이 늙은 몸뚱이는 질기고 맛이 없을 것이니 이빨로 씹어먹지 말 것이며, 너무 질겨 엄니를 상하게 할 수 있사오니 엄니로 배때지를 꿰뚫지 마옵고, 불경하게 보일 수 있는 눈깔을 이리 먼저 파버렸으니 껌껌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를 눈감아 주십시오! 이 늙고 재주 없는 것이 이렇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무당의 구걸은 처절했다.

       악령이 아니라 산 사람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애절했고, 목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소리치는 것이 살기 위해 몸의 모든 힘을 쥐어짜 내는 것이 노인이 아니라 살날이 많이 남은 청년으로 보일 정도였다.

         

       뀌이이익!

         

       주물은 무당의 구걸을 들으며 제자리에 선 채 무당을 바라보았다.

         

       점차 몸집을 부풀리는 멧돼지는 무당의 구걸이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몸집을 부풀렸고, 무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정을 코로 빨아들이며 점점 괴물의 형상을 완성해갔다.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털은 부정을 머금어 새까만 빛이 되었고,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었다. 가시는 산미치광이가 몸에 꽂고 있는 가시보다도 날카롭고 지독했으며, 가시의 기둥이 톱니 모양으로 촘촘하게 틈이 나 있어 살에 한 번 박히면 절대로 뺄 수 없어 보였다.

         

       주물이었을 때에도 불길한 느낌을 주었던 가죽은 강철보다도 강해졌고, 부정으로 만들어진 엄니는 검은 광택을 띤 창처럼 보였다. 그리고 눈깔은 흰자위 없이 검은자위만 가득했는데 그 시선만으로 공기가 습해지고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괴물 같은 입가에서는 검은 침이 뚝뚝 흘렀는데, 그것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땅이 검게 물들며 썩어버리게 했다.

         

       몸 곳곳에는 툭 튀어나온 혈관이 있었고, 뱀과 같은 굵기에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고, 혈관에 나 있는 자그마한 구멍에서는 부정이 수증기처럼 조금씩 새어 나와 공기를 검게 물들이기까지 했다.

         

       ‘훌륭한 괴물이 되었구나.’

         

       진성은 그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잘해주었다.’

         

       진성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무당 악령을 보았다.

         

       ‘덕분에 이리도 강력한 괴물이 만들어졌구나.’

         

       악령은 국가마다 그 모습이 달랐다.

         

       아까 전 보았던 입을 대롱처럼 길게 쭉 뻗었던 ‘쪽박 귀신’같은 악령을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와 생활에 따라 그 형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밤에 빨래하는 여인(Les lavandieres de nuit)’으로 불리는 악령은 평범해 보이는 아낙네 형상과 연기 형상을 할 수 있었고, 태국에서 ‘피 따이홍(ผีตายโหง)’으로 불리는 악령은 자신이 죽었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악령들은 그 모습도, 행동도, 능력도 조금씩 달랐지만,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이 있었으니.

         

       하나같이 사람을 홀려서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 한다는 것.

         

       국가마다, 민족마다 나타나는 악령의 형상이나 하는 행위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을 해하려 하는 그 목적만큼은 분명했다.

         

       악령은 사람을 해하기 위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며, 몇몇 특이한 악령의 경우 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같은 악령조차 먹어 치우며 몸을 키우기도 한다.

         

       학자들은 이것을 ‘흡혼(吸魂)’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진성의 눈앞에 있는 무당 악령은, 흡혼을 행할 수 있는 특이 개체였다.

         

       살아생전 영능력자였던 무당이 죽어서 악령이 되면 강한 영능력을 가지게 되고, 생전에 했던 것처럼 악령과 악귀를 물리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제 혼이 썩어 문드러지고 배가 터져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부정을 밖으로 끄집어내려 하지 않고 쌓아두며, 계속해서 굿을 반복하며 악귀와 악령을 지워버리며 대악령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진성은 이러한 무당 악령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굿을 하면서 저랑 똑같은 것을 지웠으니 이는 희생제이자 공양이요, 그것을 꾸역꾸역 처먹어 몸에 저장했으니 제 몸뚱어리를 제가 제물로 만든 것이요. 그리고 지금 살아생전 그러했던 것처럼 강한 귀신에게 복종하며 제 생살여탈권을 쥐여주었으니 이는 주물에 우상과 정령의 상징을 부여하고 숭배를 하는 것이니.’

         

       결국 무당 악령이 한 짓거리는 자신을 지옥 불구덩이로 처넣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제 몸을 나락으로 처넣는 짓을 하고 있었다.

         

       자기 몸이 비쩍 마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멧돼지에게 부정을 빼앗기고 있었고, 제 몸이 멧돼지가 날리는 가시에 찢기는 것도 참은 채 계속해서 빌고 또 빌기만 하고 있었다.

       

       살아생전 귀신을 모시며 살아왔기에 ‘산신’으로 생각되는 멧돼지에게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당 악령은 반항하거나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멍청하게 멧돼지에게 자신의 몸을 바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악순환이 끝이 나게 되었다.

         

       [ 끄으으윽, 산신님이 노하셨어. 산신님이, 산신님이 노했어….]

         

       무당 악령은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 멧돼지에게 모든 부정을 빼앗기고 혼이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꾸이익!

           

       진성은 멧돼지가 무당을 해치우고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깔고 바닥에 앉자, 지게에 실어둔 숯덩이를 끄집어내어 한 곳에 쌓았다. 그리곤 길쭉한 숯 하나를 손에 쥐고 지게를 감싸 쥔 천을 휘감고 삼매진화로 불을 붙여 간이 횃불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숯이 쌓인 곳에 횃불을 집어 던져 모닥불을 만들고, 한 손에 들고 있는 금 지팡이의 뭉개진 앙크를 넓적한 쟁반의 형태로 바꾸었다.

         

       진성은 허공을 쥐어 숯을 이리저리 움직여 잿가루를 끌어와 바닥에 떨군 후 냉기를 뿜어 식혔다. 그리곤 한 손에 식힌 재를 가득 묻히곤 금 쟁반을 거울로 삼아 피부를 검게 칠하기 시작했다.

         

       금 쟁반에 비친 진성의 얼굴에서는 야성이 묻어나오고 있었고, 피부를 검게 칠할 때마다 진성은 점차 문명에서 야만으로 회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진성은 옷 밖으로 드러나는 모든 피부를 어둠에 녹아들기 쉽게 만들었다. 숯이 묻은 피부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색과 똑 닮았으며, 사람의 체취를 품은 피부 대신에 타버린 나무가 품은 자연의 냄새를 풍기게 해주었다.

         

       진성은 금 쟁반에 제 몸을 비춰보며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쟁반의 형상을 꼬아서 나선형의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몸에 걸치고 있는 누더기를 벗어 던지곤 멧돼지를 쳐다보았다.

         

       “위대한 조상과 대지의 은혜를 품은 자가 마침내 사람이 되겠나이다! 위대한 어머니 달의 시선 아래 시련을 진행하니! 숲의 풍요로움으로 짐승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시고, 불꽃과 같은 용맹을 품어 겁을 먹지 않고 숨통을 끊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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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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