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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161 – 고독한 동방검객>

     

    고독한 동방검객 싱.

    그가 걷는 길에는 고요와 정적만이 감돈다.

     

    째잭!

     

    새가 지저귀면 검이 번뜩이며 부리와 날개가 떨어진 주검이 떨어지고.

     

    매앰매앰!

     

    이상기후에 너무 빨리 눈을 뜬 매미는 쏜살같이 날린 단검이 머리에 꽂혀 침묵한다.

     

    투둑 투두둑

     

    가는 곳마다 작은 동물과 벌레들의 주검을 수두룩하게 만들며 고요와 정적만을 만드는 검객.

    광인의 행보를 지켜본 동급생들은 혹여나 눈이 마주치거나 자신들의 잡담이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싱이 보이기만 해도 입을 닫거나 발길을 돌렸다.

    입학시험에서 다른 참가자를 베어 죽이기도 한 마당에 동급생이라고 봐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저기구나?’

     

    모두가 두려워하는 싱을 제 발로 찾아나서는 나.

    싱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서든 떠들기 좋아하는 학생들이 두려움에 질려서 도망치거나 입을 꾹 닫고 있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싱이 있을 테니까!

     

    “모두 도망쳐-! 3학년 선배들의 연구실 문이 열렸어!! 서둘러 도망치지 않으면 실험체로 사로잡힐지도 몰라!!!”

    “으아악!! 모르모트는 되고 싶지 않아아!”

    “붙잡히면 임상실험체가 된다! 모두 달아나아!!”

     

    요긴 아니네.

     

    “거, 거기 일학년. 여기는 지금은 가면 안 돼.”

    “왜요?”

    “저주실습 강의시간에 싸가지 없는 교수한테 화가 난 학생이 교수한테 친절해지는 저주를 걸었더니 교수님이 랩실에 취직시키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어.”

     

    여기도 아니고.

     

    “모두 도망쳐어어! 미친 칼잡이가 날뛴다!!”

    “정원을 조심해. 수상한 검객이 심기를 거스르는 생물체는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베고 있대!”

    “우린 돗자리 소풍을 하러 나왔을 뿐인데… 도시락에 날개 잘린 풍뎅이가 떨어졌어어.. 우에엥!”

     

    저기구나!

     

    흉흉한 소문이 퍼진 정원에 가니 길바닥에 날개가 잘린 곤충들이 가득 깔려 있었다.

    순 자연 재해가 따로 없다.

     

    ‘매일 저러고 다니니까 친구가 없지!’

     

    불쌍하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싱의 캐릭터 스토리를 알기 때문이다.

    호감도를 올리면 각 캐릭터의 과거사를 알 기회가 하나씩 주어진다.

    당연히 주요캐릭터의 호감도스토리는 이미 대부분은 알고 있다.

    싱이 귀신에 홀린 이유도, 그가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하는 이유도, 고독을 자처하는 이유도.

     

    공감과 이해.

    이 두 가지를 잘 다루면 싱과도 평화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안녕, 싱!”

    “시끄럽다. 사라져라, 꼬마.”

    “…….”

     

    인사를 안 받는 것쯤이야 이미 예상했다.

    성능은 좋지만 하자가 큰 캐릭터.

    싱이 이 계열의 대표적인 선두주자 격의 캐릭터다.

     

    [오크노디양. 자네 친구가 유령에게 홀려도 아직 마지막 자제심은 남아있군. 문답무용으로 자네까지 베어버리지는 않았으니까.]

     

    귓가에 찬 근거리 마력통신구에서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다.

     

    ‘싱이 아무거나 막 베는 버릇은 딱히 유령한테 홀려서 그런 게 아닌데!’

     

    싱은 유령한테 홀리기 전에 원래도 곧잘 이것저것 잘 베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에게는 이유가 있다.

    그가 쾌락살인마여서 뭐든 베어죽이지 않으면 눈을 뒤집고 금단증상에 벌벌 떠는 이유는 아니다.

     

    “싱. 저 말이죠? 저분이 누군지 알아요!”

    “!!”

    “여동생분, 맞죠?”

    “린을 알고 있다고?”

    “싱의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싱의 여동생 린.

    게임 시작 시점에는 이미 사망한 여동생.

    린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가문에서는 벙어리라는 이유로 핍박당하고.

    외부에서는 하자 있는 딸을 주는 대가로 약간의 이권을 나누어주겠다며 매매혼을 요청하는 더러운 손길이 끊이질 않았다.

    싱은 그 더러운 목소리들을 여동생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그래도 같은 가문의 일원이니까.

    천재검객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 가문의 역할에 매진했다.

     

    그것이 자신과 여동생을 떼어놓으려는 수작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참고 또 참으며 살아온 끝에 그가 도달한 결말은 베드엔딩이었다.

     

    여동생은 죽고 그는 혼자가 됐다.

    누군가가 강제하는 의무를 충족하고자 검을 들었던 사내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짊어진 의무를 다하고자 검을 들었다.

    정적과 고요를 거스르는 것은 뭐든지 벤다.

    사색과 침묵을 방해하는 것은 뭐든지 가른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여동생을 위해.

    그녀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도 새기기 위해.

    복수를 위해 힘이 필요한 복수귀는 서방세계의 세계최고 교육기관을 찾아왔다.

     

    [인물 <싱>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

    싱의 이해도

    고독한 남자(이해도 20) – 그는 침묵을 벗으로 두고 고요 속의 고독을 즐긴다.

    타고난 검객(이해도 40) – 천부적인 재능은 그를 뛰어난 검객으로 만들었다. 비록 그가 그것을 원치 않았더라도.

    소중한 여동생(이해도 60) – 한때, 그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있었다.

    복수귀(이해도 80) – 그에게는 죽여야만 하는 자들이 있다.

    ━━━

     

    [인물 <싱>의 이해도가 20을 넘었습니다.]

    [1차 특전 <싱의 살인충동의 전조>를 받습니다.]

    [인물 <싱>의 호감도 상승속도가 상승합니다.]

    [주의!]

    [해당 인물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극도로 높은 적대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하는 대신 적대도가 하락합니다.]

     

    [인물 <싱>의 이해도가 40을 넘었습니다.]

    [2차 특전 <일말의 자제력>을 받습니다.]

     

    [인물 <싱>의 이해도가 60을 넘었습니다.]

    [3차 특전 <호감도 브레이크>를 감지합니다.]

    [인물 <싱>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도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특정한 조건을 충족할 시, 싱의 호감도가 중립(0) 이상으로 상승합니다.]

     

    [인물 <싱>의 이해도가 80을 넘었습니다.]

    [4차 특전 <복수의 동료>를 받습니다.]

    [인물 <싱>이 아카데미를 떠나 복수의 여정에 나설 시, 말없이 사라지는 대신 당신에게 복수에 동참할지를 권하게 됩니다.]

     

    이것이 싱이 살인마의 길을 걷는 이유였다.

     

     

    * *

     

     

    “우씨. 심한 말 하지 마요! 나도 파파한테는 소중한 딸이라구!”

    “꼭 아픈 꼴을 겪어야만 물러나는 건가.”

    “옆에 있는 이쁜 언니 때문에 그래요?”

     

    사라지라는 말을 듣지 못한 건지.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버릇없는 꼬맹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 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물끄럼.

     

    그의 첫 번째 골칫거리.

    곁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 볼에 닿았다.

    예전과 같이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자.

    수만 마디의 말보다 무거운 시선의 주인.

    한 차례, 자신의 무력함에 떠나보낸 자.

    다시는 재회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인연.

    그의 어머니가 다른 두 살 아래 이복여동생.

    생을 달리했던 아이가 유령들의 힘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지금.

    사악한 힘Evil Force으로는 1학년 중 제일이라고 불리는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가 자신을 찾아왔다.

     

    ‘다른 학생이라면 망설임 없이 베었겠지.’

     

    그의 곁을 따르는 여동생의 이상을 깨닫고 교수에게 이르기라도 했다간 거짓된 형상이나마 기억 속 여동생을 빼닮은 이 존재를 토벌당할 테니까.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라면?

    그녀는 다를지도 모른다.

    당장 그녀 본인부터 만인의 적으로 분류될만한 끔찍한 악명을 지니지 않았던가.

    일말의 불안에 거친 언동을 보이면서도, 그런 막연한 기대감이 검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싱. 저 말이죠? 저분이 누군지 알아요!”

    “!!”

    “여동생분, 맞죠?”

     

    마음속의 검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보호자 참관주간.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방문했다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이다.

    린의 정체를.

     

    “린을 알고 있다고?”

    “싱의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

     

    그 또한 사실이다.

    싱은 린을 소중히 생각했다.

    오빠가 여동생을 생각하는 평범한 관계를 넘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이로 여기며 서로가 서로의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 혼자만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여동생의 침묵 속에 담긴 비명을 듣지 못했다.

    그는 너무 많은 불필요한 소음을 듣고 있었다.

    헛된 명성.

    부질없는 욕망.

    짊어져야 하는 책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동생 린이 어떤 처지에 속했는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앗. 그, 그게… 어쩌다보니?”

    “재단이라는 것은 동방제국에도 귀를 둔 건가.”

     

    비밀이 발각당했다.

    그의 목적을 눈치 챘다.

    보통이라면 망설임없이 베었을 것이다.

    자신의 ‘적’이 보낸 하수인일 가능성이 명백히 높은 상황이니까.

    당하기 전에 먼저 벤다.

    쓸데없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다.

    스스로가 세웠을 원칙이었건만.

    이번만큼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다르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동방제국에 도사린 그의 적보다도 더욱 거대한 어둠에 속한 이가, 고작 제국의 어둠 따위에 속한 하수인일 리가 없다고.

     

    “원하는 게 뭐냐.”

    “도와드릴게요! 대신 나중에 저도 도와주세요!”

    “나를, 우리를 어떻게 돕겠다는 거냐.”

     

    작은 거인이 에츄 재채기를 하더니 코를 찡긋거리다가 대답했다.

     

    “동생분을 보관하기 쉽게 해드릴게요!”

    “…보관?”

    “반지 같은 곳에 가둔다거나?”

     

    …린을 가둬? 반지에?

     

    “아, 걱정 말아요! 멋대로 나오지 못하게 목줄을 채우고 사슬로 묶어둘 수도 있으니까요!”

    “…”

     

    싱은 처음으로 자신의 본능을 의심했다.

    이 아이를 베지 않고 참았던 것이 정말 옳은 판단이었는지.

    복수를 도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따르기보다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따라야 했던 건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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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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