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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명품은 늘 비싸기 마련이다.

       

        로테가 에테르에게 권유한 옷은 모조리 브랜드 의류였다. 하나같이 비싸서, 서민은 입기조차 어려운 옷들.

       

        옷이야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에테르였다. 사실, 이는 로테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막고 추위 막으면 그만이지, 뭐 하러 비싸고 명품인 옷을 사서 돈 낭비인가?

       

        그러나 로테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그래도 패션감각을 상실한 제 친구였다. 지금 교정하지 않는다면 귀족이 되어서도 고치지 않을 게 뻔했다.

       

        귀족 사회는 체면과 명예를 중요시한다. 브랜드 의류도 그중 하나였다. 일정 수준의 사치와 단장은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의 친구에게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돈이 궁하지 않았다. 일단 로테는 명문가 자제였다.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있었다.

       

        그리고 에테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이 생겼다.

       

        “내가 입을 거잖아. 내가 살게.”

       

        오죽하면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에테르는 곧 순간이동 마법을 걸어 공중에서 금화를 꺼냈다.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었다. 그 모습을 본 로테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만한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지?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돈에 쪼들려 살던 아이였다. 그래서 로테가 과외비를 주며 도와주곤 했다.

       

        일종의 상생이었다. 로테는 지식을 얻고, 에테르는 생활비를 번다. 나름대로 안정적이었고, 또 만족스럽기도 한 관계였다.

       

        그런데.

       

        이젠 무언가가 달라졌다.

       

        친구가 금전적으로 독립했다. 자금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잘된 일임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로테는 못내 쓸쓸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로테는 에테르를 따라 대부분의 화계마도를 익혔다. 이땐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 과외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에테르가 먼저 과외하자고 다가오지도 않았다. 

       

        대신 연구를 맡겼다. 에테르가 그런 부탁을 했을 때, 로테는 내심 안도했다. 아직 이 아이 곁에서 머무를 수 있겠구나 하고.

       

        그런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로테는 발은 넓었지만, 깊지는 못했다. 사교성 있는 귀족 자제들의 인간관계는 대개 그러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인맥을 넓힌다. 그것이 귀족 세계의 근본적인 처세술이었다.

       

        로테 주변에는 많은 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보고 접근한 것이었다. 누구 하나 금방 떠나가고 말 사람들이었으리라.

       

        ‘무덤까지 갈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어 두렴.’

       

        로테는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눈앞의 소녀가 그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흑사병 때 전염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손수 간호해줬을 만큼 착한 심성을 지닌 아이였다. 그런 친구를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로테는 에테르가 옷값을 결제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살짝 쓴웃음이 맺혔다.

       

        괜찮다. 돈 많다고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니까.

       

        “언니! 쇼핑 한 번에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그런 안도감은 한 소녀가 파스타 전문 식당에 나타나면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됐다.

       

        보랏빛을 미미하게 띠는 군청색 머리카락에, 블루 사파이어를 빼다 박은 듯한 눈동자를 지닌 소녀였다. 키는 같은 반 친구인 프레이보다 조금 더 컸다. 그러면서도 비율이 잘 잡혀 있어서 실제 키보다 몸이 늘씬해 보였다.

       

        블루베리나 벨라돈나를 의인화한다면 딱 이런 소녀일 터였다. 가느다란 털코트를 걸친 그녀는 식당 안으로 쫑쫑 들어오더니, 에테르 앞에서 파르르 떨었다.

       

        “아무리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얘기했어도 그렇지…. 이렇게 쓰면 아빠한테 돈 더 받아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카드 다시 가져가든가.”

        “생활비 부족하다면서요!”

       

        로테는 이 블루베리처럼 생긴 소녀를 알고 있었다. 로테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로즈마리 공녀님?”

       

        제국 사대공작 중 한 명인 블랜튼 공작의 외동딸.

       

        ‘로즈마리 블랜튼’, 그게 로테가 알고 있는 이 소녀의 정보였다.

       

        비록 말을 제대로 섞어본 적은 없었지만, 로테와 로즈마리는 구면이었다. 로즈마리의 얼굴을 훑은 로테의 기억이 한 풍경을 휩쓸고 지나갔다. 

       

        먼 과거였다. 아직 초등부에 다니던 어린 시절. 사교회 명목으로 수도에 아버지를 따라 잠깐 상경했던 로테는, 황성에서 거북이 인형을 손에 쥐고 뒤뚱뒤뚱 걸어다니던 여자애를 본 기억이 있었다.

       

        사교장에 인형을 들고 다니다니. 그런 모습이 귀여운 아이였다. 그러나 당시 로테가 그 아이를 두고 품었던 감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북 인형을 손에 찔찔 흔들며 돌아다니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소녀였다. 그것은 타고난 광채였다. 공작 집안의 일원이니 가질 수 있는, 지도자의 아우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로테는 로즈마리가 위엄 넘치는 공녀로 자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반쪽짜리 정답에 불과했다.

       

        아카데미 편입 후, 로즈마리는 기품 넘치는 공녀님이었다. 적어도 공석에서는 그랬고,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그랬다.

       

        특히 클리온 황자를 상대할 때 보였던 지용과 고혹적인 미소는 압도적이었다. 괜히 공작위나 되는 귀족이 아니구나 싶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언니…. 우리 절약 좀 해요, 제발. 이러다가 간식값도 안 남겠어요….”

       

        그 공녀님이 두 손 모아 싹싹 빌고 있다. 황제나 다른 누구도 아닌, 평민 출신 금안족 소녀에게.

       

        로즈마리는 로테의 부름에도 답하는 기색이 없었다. 못 들은 듯했다. 로즈마리의 푸르른 눈동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에테르만을 향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로즈마리는 오직 에테르만을 ‘언니’라고 불렀으니까.

       

        공녀의 눈은 사파이어 색이고, 에테르의 눈은 토파즈를 닮았다. 이는 두 사람이 혈연관계가 아님을 암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대공작가는 혈통을 중시한다.

       

        하스펠트만 해도 그렇다. 하스펠트의 적통은 붉은 눈을 지닌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불의 공작’이라는 이명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수계마도를 중시하는 블랜튼 공작가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푸른 눈동자를 지닌 남녀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만이 적통의 자질을 물려받는다.

       

        로즈마리는 적통이다. 에테르는, 글쎄.

       

        이 소녀는 에테르를 처음부터 ‘언니’라고 불렀다. 로테는 그 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에테르를 제외하면 로즈마리는 아카데미의 그 누구에게도 ‘언니’나 ‘오빠’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공녀님…?”

        “갑자기 왜요? 살리에르 아가씨.”

       

        로테만 해도 그랬다. 로테가 그녀를 다시 한번 부르자, 로즈마리는 고개를 슬쩍 돌려 로테를 흘겨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일말의 피곤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섬뜩한 눈빛이었다. 로테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뻣뻣하게 굳혔다.

       

        그런데도 궁금한 점이 생겼다. 사실 예전부터 궁금했었지만, 구태여 물어보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슬슬 한계였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로테로서는 더 이상 무리였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정확한 관계를 물어봐야 직성이 풀릴 듯하였다.

       

        로테가 입을 열었다.

       

        “혹시 두 분, 이복자매인가요?”

       

        그 말을 들은 로즈마리와 에테르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다만, 로즈마리가 조금 더 멍청한 얼굴이었다.

       

        로테의 발언은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 가정사를 캐묻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조금 전 발언은 블랜튼 공작이 외도를 저질렀냐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명예를 중시하는 다른 귀족이라면 이 발언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내비쳐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러나 공녀는 달랐다. 로즈마리는 도리어 밝은 화색을 띠며 에테르의 옆에 걸터앉았다.

       

        “정말 저희 그렇게 보여요?”

       

        구태여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둘이 분위기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복자매라도 됐으면 좋겠다. 안 그래요, 언니?”

        “밥 먹고 있잖아. 떨어져라 좀.”

        “파스타라면, 우리 집 오면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는데.”

        “또 이상한 향신료나 팍팍 넣겠지.”

        “원래 면은 달게 먹어야 맛있는 법이에요.”

       

        두 사람은 익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로테의 머리가 더더욱 심란해졌다.

       

        로즈마리는 공녀였고, 에테르는 평민이었다. 비록 아카데미에 신분 차이는 없다지만,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까워 보였다.

       

        “이복자매가 아니라면 어떻게 둘이 이리 친해요?”

       

        존대를 담은 두 번쨰 물음. 명백히 로즈마리는 겨냥한 질문이었다.

       

        “말하자면 길어요.”

       

        대답은 짧고 굵었다. 로즈마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로테의 궁금증을 전부 해소시켜 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북돋을 뿐이었다.

       

        대체 어디서 접점이 생겼단 말인가? 로테는 그 궁금증으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불안감이었다. 이성적인 근거는 없는, 그녀만의 직감이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여름방학, 아카샤라는 소녀를 만났을 때 말이다.

       

        아카샤는 로즈마리와는 달리 에테르와 똑 닮은 소녀였다. 둘이 쌍둥이 자매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카샤는 로테가 생애 두 번째로 만난 금안족이었다.

       

        그러나 아카샤와 에테르는 달랐다. 로테는 아카샤라는 소녀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무튼 언니, 우리 적당히 소비해요. 이런 불경기에는 막 써대면 안 된다구요. 알겠죠?”

       

        분명, 아카샤도 에테르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 소녀의 목소리가 이 공녀님에게 정확히 오버랩되고 있었다.

       

        한때 잊어버렸던 감정이 고개를 치켜든다. 로테는 침을 삼키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로즈마리는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해서 받아먹기 직전이었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옷 사는데 금화가 4백이나 들었어요?”

        “조금 전엔 불경기라며? 그럴 수도 있지.”

        “그러니까 절약하라고 했잖아요! 동생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

        “네가 내 부모님이냐? 그런 말 하게.”

        “나중에 같은 집에서 살 건데 이런 소비습관을 가지면 동생 복장 터져서 죽어요, 언니!”

       

        로즈마리는 답답하다는 양 가슴팍을 두들겼다. 팍, 팍,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로테는 그보다는, 로즈마리의 마지막 말에 집중했다.

       

        쪼르륵. 빨대에 담긴 주스로 목을 축이던 로테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에테르.”

        “어? 왜?”

        “나랑 같이 살기로 약속한 거 아니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슬 연재주기를 옮길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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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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