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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검은색, 붉은색.

        

       체스무늬로 이루어진 미지의 공간. 구부정한 시계가 널려 있는 그곳에 붉은 가구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앨리스의 미궁이었다.

        

       침울한 분위기 속, 세 명의 교복 차림 학생들은 각각 아무 가구에 앉은 채 조용히 스페이드 팔라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학당하니까 어때?”

        

        

       하트 모양 장신구를 단 붉은 머리 여학생, 셰라 헥토리카가 침묵을 깼다.

        

       벽에 기대고 서 있는 갈색 머리 여학생, 알렉사를 향해서 내뱉은 질문.

        

       알렉사는 눈살을 찌푸리고 셰라를 노려보았다.

        

       

       “푸흐! 그 눈빛은 뭐야? 기껏 분위기 좀 풀려고 했더니만.”

       “입 다물어.”

        

        

       알렉사의 싸늘한 음성.

        

       그러나 셰라는 발랄하게 헤실거리기만 했다.

        

       1학년 합동 전술 평가에서 팔라딘 4명은 이름 없는 영웅을 막아 내는 데 실패했다.

        

       하물며 그가 누구인지 실마리조차 잡아내지도 못했으니, 완벽한 패배였다.

        

       단지 스페이드 팔라딘만이 이름 없는 영웅의 전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게 수확의 전부.

        

       영웅은 무슨 상상을 하든 그 이상으로 강한 존재였다. 자신들이 해치우는 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의심마저 들 정도였으니.

       

       앨리스는 팔라딘 그 누구도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탓에 팔라딘들은 강한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다음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반드시 검은 괴물이 누구인지 특정 지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리라.

       

       심해괴수 사건 이후로 팔라딘은 모두 그리 다짐했다.

          

       그때, 발소리가 울리고.

        

       한 남학생이 한쪽 면을 메우고 있던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푸른색 빛깔이 은은하게 비치는 흑발. 스페이드 팔라딘이었다.

        

        

       “대장!”

       “왔어?”

       “…….”

        

        

       셰라는 반갑게, 클로버 팔라딘은 자상하게, 알렉사는 침묵으로 맞이했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호화로운 의자에 앉은 뒤 다리를 꼬았다.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그는 허리를 쭉 펴고 품위 있는 자태를 유지했다.

        

        

       “왜 모이자고 한 거야, 대장?”

        

        

       셰라는 후다닥 달려가 스페이드 팔라딘이 앉은 의자 팔걸이에 앉으면서 물었다.

        

       그는 안경을 한 차례 들쳤다.

        

        

       “곧 대련 평가가 시작된다. 2학년도 대련 상대로 지목할 수 있다고 하지. 달리 말하자면 1, 2학년 모두의 대련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련 평가가 시작될 때쯤이면 다이아의 정학도 풀릴 거다. 쓰일 대련장은 총 4곳. 조가 나뉘어 각각의 대련장으로 이동된다. 우리가 각자 다른 조로 편성되도록 여왕님께서 손쓰겠다고 하셨으니….”

       “얼음 원소 속성을 주시해라?”

        

        

       셰라가 웃는 얼굴로 대신 말했다.

        

       스페이드 팔라딘은 무응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희들 실력이라면 분명 수상한 놈을 찾아낼 수 있겠지. 얼음 속성이면 전부 면밀하게 살펴라. 놈은 성능이 뛰어난 위장복으로 자기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놈이니, 남자일지 여자일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작년엔 여왕님과 협업하던 마족이 대련 평가를 몰래 지켜봤던 모양인데, 무식한 대학살극이나 저지르려다 실패했지.”

        

        

       작년에 앨리스의 동업자였던 허상의 리파라는 마족 탓에, 메르헨 아카데미에 마족과의 내통자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 탓에 학사는 행정 인력이라고 하더라도 정보 공개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되었고.

        

       앨리스에게 주어지는 정보도 그 이전보다 제한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린 학생 신분이니 문제없을 거다. 괜히… 눈에 띄는 몰상식한 짓거리만 자제한다면.”

        

        

       스페이드 팔라딘은 알렉사를 노려보았다. 이중 가장 골칫덩이인 자가 그녀였으니.

        

       알렉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만히 있을게.”

        

        

       압박감을 느낀 알렉사는 그리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언급하마.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누구든지 검은 괴물이라고 의심하고 신경을 기울여라.”

        

        

       검은 괴물이 누구인지 색출해야 한다.

        

       셰라는 “예에!”하고 힘차게 대답했고, 클로버 팔라딘은 고개를 끄덕였고, 알렉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 맞아. 대장. 하나 물어봐도 돼?”

       “뭐냐, 셰라?”

       “여왕님께서 의심한다는 사람, 아이작이었나? 그놈한테 대련 걸어도 될까?”

        

        

       마법학부 2학년생, 아이작.

        

       앨리스가 방해꾼이라 의심하고 있으며, 그녀 자신이 직접 방해꾼인지 아닌지 파헤쳐 보겠다고 한 남학생이었다.

        

       의심에 불과했기에 아이작 한 명에게만 인력을 집중시킬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팔라딘 4명은 아이작을 용의선상에만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합당한 명분이 있다면 상관 없지만, 그다지 추천하고 싶진 않다.”

       “왜?”

       “이미 무녀가 놈한테 대련을 걸었으니까. 왜 그런 건지 파악하는 건 둘째 문제고. 우리도 마력량 S급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름이 퍼져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아이작, 그놈이 유명해질수록 여왕님께는 방해만 될 거야.”

       “흐음….”

        

        

       셰라는 아쉬워했다.

        

       눈에 띄는 일을 벌이는 건 좋아하지만 앨리스의 신경을 건드릴 우려가 있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셰라, 대련 평가에서 우리의 임무는 ‘관찰’이라는 걸 명심해라. 루체 엘타니아에게 복수전을 하겠다, 따위의 생각도 해선 안 돼. 또 기절하면 계획이 틀어지니까.”

       “윽! 안 해요, 안 해! 대장 미워!”

       “뭐…? 갑자기?”

        

        

       셰라는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대며 스페이드 팔라딘에게서 떠나갔다.

        

       루체 엘타니아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셰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으니.

        

        

       “대장, 셰라 앞에서 졌다느니 뭐니 그런 말 하면 안 돼.”

        

        

       클로버 팔라딘은 피식 웃으며 지적했고.

        

        

       “맞아, 미워!”

        

        

       셰라는 클로버 팔라딘 등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민 채 ‘메롱’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

        

        

       스페이드 팔라딘은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뱉었다.

        

        

        

       

       * * *

        

        

       

        

       “아, 아, 아이작 선배…? 누구랑 대련하신다고…?”

       “미야.”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텅 빈 연구실.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서리혁작]을 수월하게 다루기 위해 책과 양피지를 잔뜩 늘어놓고 온갖 술식을 계산하며 머릿속으로 익히는 중이었다.

        

       [학습 효율] 최대치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간다. 누군가 내게 많은 숫자와 온갖 식을 가져와 암산해 보라고 하면 단번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각 용도별 마법진의 형태는 전부 머릿속에 담아 뒀다. 이걸 어떻게 능숙하게 운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였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이제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의 아이작이어도 6성급 마법을 전투에 써먹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판단이 섰다.

        

       적어도 무녀 미야와 대련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확실히, 내가 마법 천재의 반열에 들었다는 실감이 난다.

        

        

       어느덧 노을빛이 창밖을 메우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스노우화이트가 날 보러 왔기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화이트에게 양해를 구해 멘토링을 쉬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날 보러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굳이 의문을 가질 것도 없다. 그녀하고는 일정을 항상 공유하는 사이니까.

        

       화이트는 창가 앞에 서 있었고,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등받이에 무게 중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이 노을빛으로 물든 모습. 화이트의 외형은 순백의 황녀답게 곧잘 주위의 색으로 물들어졌다.

        

       교복을 입었음에도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감탄스러웠다. 경악하는 걸 보니 표정도 다채로웠다.

        

        

       “아이작 선배가 강하신 건 알지만, 무녀는 강해도 너무 강하잖아요…!”

       “대련이 걸려 온 걸 어쩌겠냐. 신청권 2장을 전부 나한테 써 버렸는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대요? 무녀랑 아이작 선배 같이 있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두 분, 제가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길가다 어깨를 부딪혔다든가….”

       “모르겠네, 나도.”

        

        

       루체 때문일 텐데, 화이트에게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 없을 테니 말을 아꼈다.

        

        

       “하긴, 무녀라면 아무거나 이상한 이유로 괜히 시비 걸려고 할 법해요. 성격이 좀 괴짜니까.”

       “그래 보이긴 하더라.”

       “…….”

       “왜 그래, 화이트?”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화이트는 허탈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 눈을 피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모습.

        

       무녀와 친해져야 하는데,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니 다시 막막해진 모양이었다.

        

        

       “어, 어쨌든요!”

        

        

       화이트는 눈물을 슥 훔친 뒤 주먹을 쥐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마법을 익히는 중이었어요? ‘무녀에게 대항하자!’라는 느낌으로?”

       “대련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시기가 겹쳤네. 우연이야.”

        

        

       나는 손가락을 펼쳐 냉기를 스멀스멀 흘려 보냈다. 새하얀 냉기와 빙정이 내 손가락 위로 떠 올랐다.

        

       다른 손가락을 펼쳐 그러길 반복했다. 습관적인 마력 운용력 단련이었다.

        

        

       “아, 아이작 선배…. 겁, 안 나세요? 저라면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별로. 겁나진 않아.”

        

        

       주먹을 쥐고 냉기를 사그라뜨렸다.

        

        

       “어차피 내 목표는 루체거든.”

       “네…?”

       “무녀야 뭐, 솔직히 루체보다 약하잖아. 나야 쫄 건 없지.”

       “자, 잠시만요. 루체 선배요…?!”

        

        

       화이트는 또다시 경악했다.

        

        

       “루체 선배를 이기는 게 목표였어요?!”

       “뭘 그렇게 놀라냐….”

       “당연히…! 루체 선배는 천재 중의 천재잖아요! 엄청 강하시고, 우아하시고….”

       “적어도 2학기 대련 평가 때는 이길 거야.”

        

        

       성적. 그것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방증해주는 객관적인 지표다.

        

       3학년 때 악신을 상대하기 전에 적어도 수석 자리 정도는 차지하고 싶었다.

        

        

       “루체 선배를 왜…?”

       “이기고 싶거든.”

        

        

       물론 개인적인 욕심도 껴 있었다.

        

       열심히 한 만큼 보상받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해야겠지.

        

       어째 화이트는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이채마저 감돈다.

        

       심리를 읽어보았다. 얘는 무녀한테 이기기는커녕 맞서 보려는 생각조차 못 해 봐서 내 말에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나도 그랬어.’

        

        

       처음부터 수석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실제로 루체 보니까 압도당할 수밖에 없더라.

       

       그녀를 이기는 미래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대련하고 패배만을 반복하면서, 높다란 벽을 느끼기까지 했지.

        

       그래도 이제 나는 천재의 반열에 들기도 했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쑥쑥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루체를 이기겠다는 말도 현실성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자잘한 목표 하나하나가 내게 원동력이 되어 줄 터.

        

       그래.

        

       2학년 2학기 때, 나는 흑해 여제의 반지를 착용한 루체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 목표다.

        

       …물론 그전까지 잘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이제 나 휴식 시간 끝났으니까 다음에 보자, 화이트.”

       “앗. 네, 네에…!”

        

        

       화이트는 쭈뼛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6성급 마법은 정말, 비교가 안 되네요. 제가 여태 익혀온 마법들이 애들 놀이 같아요…. 루체 선배를 이기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아이작 선배는 정말 굉장하네요. 에헤헤.”

       “그래?”

        

        

       기특한 말이네.

        

       나와 화이트는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내일 봐요, 선배!”

       “조심히 들어가. 단련 빼먹지 말고.”

       “네에!”

        

        

       화이트는 연구실을 떠나갔고.

        

       그녀가 오르핀관 밖에서 대기 중이던 메를린과 잘 합류할 때까지 [천리안]으로 살핀 뒤, 다시 6성급 마법 단련을 이어갔다.

        

        

       

        

       ……

        

        

        

        

       이튿날, 낮.

        

       수업을 마치고 오르핀관 2학년 B 클래스 강의실을 나선 참이었다. 다음 수업은 휴강이었기에 곧바로 6성급 마법 단련에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그때. 별안간 2학년 층 복도가 시끌벅적해지더니, 한 여학생이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갈한 모습. 학생회 소속, 선도부장 에린이었다.

        

        

       “아이작 맞지?”

        

        

       얜 뭐냐.

        

       나는 똑바로 그녀와 마주 섰다.

        

        

       “학생회장님께서 부르신다. 따라와.”

       “……?”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일 휴재하고 왔습니다.

    연참은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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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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