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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연회가 열리는 곳은 확실히 좁긴 했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면적이 좁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영주성에 비하면 작다는 소리다. 어쨌거나 성이 아니라 저택이었으니까.

        

       일반적으로 연회장이 따로 있는 영주성과는 다르게 이곳은 그냥 저택 자체를 연회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2층짜리 저택에서 따로 들어가야 하는 방만 아니라면 손님들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손님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근방에 다른 귀족 영지라고 할만한 곳도 거의 없었으니 초대받은 손님은 영지를 관리하는 공작가의 가신들, 그리고 식민지 총독부의 제일 높은 사람들 몇 명 정도 외에 나머지는 전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복장이 전부 교복으로 통일된 것 외에는 그다지 어색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남작가나 기사 가문 아이들은 초대받지도 못했으니까. 백작가 정도 되는 가문의 아이들은 사교계에는 익숙할 테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룹은 여러모로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교계에 익숙한 사람이 고작 세 사람뿐이니까.

        

       샤를로트는 왕녀로서 자국의 사교계에서는 꽤 유명한 모양이고, 제이크도 공자 신분으로 여러 사교계에서 꽤 이름을 날렸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이미지였지만 영지 안에서는 입이 무겁고 과묵한 이미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적어도 게임에서는 그렇게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인 로티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교계에 익숙했다. 제이크가 언제나 옆에 끼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어, 우리 술 같은 것도 마셔도 되는 거야?”

        

       클레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클레어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귀족 B반의 아이들이 손에 샴페인 잔을 든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된 것을 보면 이미 최소 한 잔은 마신 모양이다. 그렇다고 거나하게 취한 아이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저희 나이면 성인 취급이었습니다. 연회에 한해서는 가벼운 음주를 하는 것이 큰 흠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클레어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연회에 전혀 나가본 적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부모님인 그레이스 남작 부부와 동행했을 거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였으니까. 음주는 꿈도 꿔보지 않았겠지.

        

       “클레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줄줄이 놓인 샴페인 잔을 향하는 클레어를 잡아 세웠다.

        

       “음주를 하고 싶다면, 부디 적당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아, 어…….”

        

       “아시겠습니까? ‘적당히’입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그 이상은 함부로 마시면 안 됩니다.”

        

       “응…….”

        

       내가 한 번 더 진지한 표정으로 당부하자 클레어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원작에서는, 클레어는 술고래였다.

        

       다만 많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술에 덜 취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정신은 나갔는데 몸은 쓰러지지 않아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것이 클레어라는 캐릭터였다.

        

       지금의 클레어를 보면 절대 생각도 할 수 없지만, 원작에서는…… 어린 시절에 이미 겪지 않아야 할 일을 수도 없이 겪은 캐릭터였으니까.

        

       “레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나는 레오를 불렀다.

        

       “클레어가 한 잔 넘게 술을 마시려고 하면 반드시 말려주십시오.”

        

       “알았어.”

        

       바른생활 사나이의 표본인 레오는 ‘용인된다’라고 하더라도 술을 마실 리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나의 말에 레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클레어 뒤에 따라붙었다.

        

       “너는 마실 생각 없어?”

        

       그런 나를 보고, 앨리스가 물어왔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앨리스는 마실 생각 없으십니까?”

        

       “나는…… 음, 아직은.”

        

       그렇다. 앨리스는 무려 황녀인데도 이런 장소에 그렇게 익숙하지 못했다. 이런 곳에 참석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야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마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자기가 술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니 그런 거겠지. 앨리스 성격이라면 분명 나중에 술을 구해다가 방 안에서 조금씩 마셔보고 자기가 마실 적정량을 연구한 뒤 남들 앞에서는 딱 그 정도만 마시겠지.

        

       “잘 생각했어요.”

        

       앨리스의 말을 듣고 샤를로트가 말했다.

        

       “사실 마신다고 해도 그렇게 즐겁기만 한 음료는 아니니까요.”

        

       “그건 의외네.”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가 도발하듯 말했다.

        

       “벨부르는 와인의 본고장 중 하나잖아. 저 샴페인이라는 것도 벨부르의 한 지역 이름을 따서 붙인 거고. 그런데 벨부르 사람이 술을 못 마셔?”

        

       “……그러면 알리스는 장어 젤리 같은 거 먹을 수 있나요?”

        

       “장어…… 뭐?”

        

       샤를로트의 다소 뜬금없는 반박에 앨리스가 되물었다.

        

       “장어 기름과 장어 고기를 한 번에 굳힌 젤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걸 왜 먹어?”

        

       내 설명에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장어가 있으면 손질해서 구워 먹을 생각을 해야지, 그런 식으로 삶아서 굳혀 먹을 생각을 누가 했을까.

        

       “아제르나 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 음식인데요.”

        

       딱히 전통 요리는 아니지만 일단 제국 요리인 건 맞는 말이다.

        

       “…….”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

        

       그렇다고 제국의 모든 음식이 죄다 사람이 먹지 못할 음식인 건 아니다.

        

       아니, 사실 장어 젤리니 식빵 토스트니 하는 음식도 기본적으로 사람 먹으라고 만들어 둔 음식이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긴 했다. 맛이 없다는 게 문제지.

        

       별로 좋지 못한 상황에 (그들이 보기에) 이상한 식자재를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만들어진 음식이 대부분이니 먹었다고 탈이 나는 일은…… 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만한 음식은 또 아니었다.

        

       다만 그런 음식은 보통 돈 없는 하층민의 음식이었고, 이런 연회에 모인 귀족들이 먹을 음식들은 그런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었다.

        

       “크로우필드 영애.”

        

       제이크의 빽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초대받아 온 백작 영애인데도 미아 크로우필드는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아카데미에서도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애였다. 다른 사람이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굳이 말을 걸지 않는 애였으니까.

        

       백작 영애라는 타이틀이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크로우필드 백작이 살해당한 사건 이후에는 일부러 다가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예 공작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경우라면 그런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가가긴 했지만, 그런 애들은 보통 다른 귀족 자제들에게도 똑같이 친절하니까.

        

       “연회는—”

        

       즐기고 계십니까? 하고 물어보려다가,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양손에 하나씩 들린 비스킷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얘는 얘 나름대로 연회를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미아 크로우필드는 먹던 것을 내려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입 안에 한꺼번에 쑤셔 넣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말없이 그 근처로 가서 비스킷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맛있네요.”

        

       그리고 감상을 말했다. 맛있다는 것은 진심이었다. 입에 넣은 것은 미아 크로우필드가 입 안에 있는 것을 씹어 삼킬 시간을 준 것이고.

        

       “그, 그, 그, 그렇습니다.”

        

       내가 벌어준 시간 안에 겨우 비스킷을 씹어 삼키고,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에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양손에는 여전히 비스킷이 하나씩 들려있긴 했지만.

        

       “이런 곳에 자주 와본 적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 그렇죠?”

        

       왜 대답이 의문형일까.

        

       아직도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음…… 하긴, 서로 상황을 바꿔 생각해봐도, 그렇게 감정을 쉽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아무리 뒤로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미아 크로우필드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으니까…… 뒤에서 했던 일을 전부 생각해보면 ‘좋은’ 아버지였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적어도 앞에서는 상냥하게 대해줬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살해당했고, 그 살해한 범인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야, 뭐.

        

       미아 크로우필드의 나이는 이제 열다섯이니까.

        

       괜히 더 대화를 이어 나갔다가 경계만 더 살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뒤로 빠지려고 했다. 내가 아싸였기에 아는데, 원래 아싸들은 괜히 신경 써주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그냥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편이 오히려 관계 개선에는 도움이 된다.

        

       “저, 저기.”

        

       하지만, 그런 생각에 뒤로 빠지려는 나를 미아 크로우필드가 붙잡았다.

        

       물론 말로. 손에는 아직도 비스킷이 들려있었으니까. 뭐, 비어있다고 해도 손으로 잡을 일은 없었겠지만.

        

       내가 돌아보자, 미아 크로우필드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불러세운 자기 자신에게 놀란 모양이다.

        

       “그…….”

        

       미아 크로우필드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황녀님은, 이 자리를 즐기고 계시나요?”

        

       하고 물었다.

        

       “…….”

        

       나는 시선을 돌려보았다.

        

       저 멀리서 클레어와 레오가 뭐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샤를로트와 앨리스가 서로에게 틱틱대고 있었고, 소피아는 어느 사이에 그 둘 사이에 끼어들어 있었다. 제이크는 언제나처럼 로티한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에 서 있는데도, 그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흑백 사진 속에서 딱 그 부분만 컬러인 것처럼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네, 즐기고 있습니다.”

        

       “그, 그런가요?”

        

       그리고 대화가 끊어졌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대화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는 모르겠는 듯 입을 여러 번 열었다 다물었다 하고 있었다.

        

       “두 분께서 이 자리를 즐기고 계시니, 저로서는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잠깐 멎은 틈을 타 끼어든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제이크처럼 피부가 햇볕에 그을린, 금색 콧수염의 양 끝을 그림같이 말아 올린 사람이었다.

        

       분위기 자체는 제이크와 비슷했지만, 그 중후함 때문인지 양아치라는 분위기는 없었다.

        

       “팬그리폰 황녀 전하.”

        

       남자는 나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여 절해 보였다.

        

       “그리고 크로우필드 백작 영애.”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를 향해 한 번 더.

        

       “린드버러 공작.”

        

       내가 인사에 화답하자, 미아 크로우필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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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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