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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루크와 예르나는 함께 화단을 걸었다.

     

    역시 베리튼이라고 할까, 병원 앞에 만들어진 화단도 꽤 볼만한 장소였다.

    또 공터가 넓기도 해서 아이들이 뛰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저쪽으로 시선을 주면 디아나와 파이리스가 해맑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거기서!”

    “시러! 하하하!”

     

    디아나는 파이리스와 금세 친해졌다.

    처음에는 디아나도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 ‘루크언니한테 동생이 있었구나!’라며 순식간에 적응해버리곤 완전히 친해져버렸다.

    같이 놀아보니 꽤 죽이 잘 맞는 모양이다.

     

    “잡았다. 이제 네가 술래야!”

    “잡혀버렸다!”

     

    파이리스는 정령화로 빠져나가면 도망칠 수는 있지만 그리 하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멋대로 정령화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당부를 받았기에.

     

    루크가 생각하기에 정령이 실존한다는 사실은 언젠가 밝혀질 일이니 그다지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파이에서 파이리스로의 변환은 그냥 보았을 때는 마법과 같은 형상이기에 타인에게 불법적인 행위로 비칠 수도 있거니와, 현재로서는 파이리스가 ‘정령’이라고 주장해도 딱히 믿어줄 증거가 부족한 일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정령과 관련해서는 정령소녀라는 만화가 너무 유명했다.

     

    파이를 정령이라 소개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정령소녀’를 연상하게 되고 말 것이다.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다면 아마 그 쪽으로 엮여 자신마저도 필요 이상으로 유명해지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일단은 이 사실은 루크와 숲지기들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정했다.

     

    따라서 이 사실은 디아나에게도 비밀이다.

    디아나는 어린아이인만큼 입이 상당히 싸기 때문에.

     

    아무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아이 둘이서 꺄르륵거리며 공터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상당히 발랄한 느낌이 들게 했다.

     

    “즐거워 보이는구나.”

    “그러네.”

     

    루크는 그 모습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마을, 빨래하는 아낙네, 밭을 가는 농부, 내려와 바닥을 쪼고 다시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던 동네 마법사 나부랭이.

    그래, 분명 그 풍경에, 자신은 즐거워했다.

    처음으로, 마법과 지식이 아닌 것에 말이다.

     

    ‘루크, 당신도 감정이라는 게 있어야 해요. 심장이 차가운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겠어요?’

     

    루크는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가슴께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하면 어쩐지, 기억 속의 그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

     

    하지만 역시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저 고동치는 심장소리에 맞춰 서클만이 낮게 회전하고 있을 뿐.

     

    ‘에레, 너도 그립잖아!’

     

    파이가 자신의 감정에 호소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아마도 이 감정은 그리움일 것이다.

    정령들은 감정에는 확실하니까.

     

    ‘그리움…….’

     

    레니에,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감정적이었는데, 그녀가 겪었을 그리움은 이것보다 더 컸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긴 생애의 어느 순간에는, ‘케일 프롭슨’보다 ‘루크 이루시’를 더 그리워했을까?

     

    그랬으면 참으로 기쁠 텐데.

    마찬가지로 내가 너를 그리워함을 안다면, 너는 지금 기뻐할까?

    후후, 내가 어찌나 감정적인지 보거라. 레니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서클이 폭주할 줄은 상상도 못했구나.

    어떤가? 이제 그대가 바라던 나인 것이냐?

     

    그리 생각하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꽃이 참으로 예뻤다.

     

    루크는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꽃에 다가가 앉았다.

    향기로운 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감각은 느끼기에 썩 유쾌했다.

     

    “루크는 꽃이 정말 좋은가 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저토록 행복한 표정으로 꽃냄새를 맡으며 웃음짓는 루크를 보면, 어느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 좋아하지.”

    “왜 그런거야? 역시 예뻐서?”

    “예뻐서, 이기도 하다만은.”

     

    루크는 조용하게 웃었다.

    그것은 레니에가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비밀이지, 말해선 안된다.

     

    “꽃은 누구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어째서 아름다운 것일까, 혹시 생각해본 적 있느냐?”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건, 꽃이 지기 때문이라네.”

     

    루크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꽃이 지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니, 10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오기엔 어딘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루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세.”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예르나는 생각에 잠겼다.

    루크가 이 것으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꽃이 지는 것에서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이어지게 될 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루크는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끝이 있다네. 언젠가 이 꽃도 지겠지. 마치 우리들처럼 말이야.”

     

    꽃이 진다.

    그것은 행복한 때와의 이별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졌을 때에, 우리들은 꽃이 피어있던 순간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이와는 달리, 꽃은 또 피어난다네.”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 사실 그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고, 다 타버린 재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나 꽃은 돌아온다.

     

    루크는 마침내 예르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서 꽃이 아름다운 것이라네.”

     

    예르나는 루크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깊은 이유와 더불어서, 그것이 루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온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삶의 유한성, 그 덧없음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꽃이 아름다운 이유…….

     

    루크의 굉장한 고찰이 담겨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루크가 바로 그 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년.

    그 기간이 지나면, 루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드래곤과 마수를 멋대로 섞어 제작된 실험체의 몸이, 정말 버텨줄 수 있을까?

    이번 일만 해도 심장의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폭주하는 바람에 3일동안이나 기절해 있었는데?

    심지어 그것이 한번이 아니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 와중에 루크의 심장에 쌓여가는 마나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결코 제멋대로 희망적인 관측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루크야.”

     

    “음?”

     

    “너는 역시, 3년 뒤에 네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걸 알고 있는거야……?”

     

    “……뭐라?”

     

    루크는 뭐 그런 것을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야 당연히 알지, 함께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

     

    설마.

    그 때 의사와의 대화를 옆에서 들었던 걸까…?

    분명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병실의 밖에서 들었어야 했다.

    예르나는 그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그것까지 루크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었는데…….

    어쩌면 아까 링거를 맞으며 보였던 불만스러웠던 반응이 어쩌면,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루크는, 그동안 어떻게 살고 싶어?”

     

    “뭘 새삼스레.”

     

    루크는 피식 웃으며, 예르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냥, 이대로 살아가겠지.”

     

    그것은 굉장히 시원스러운 표정이었다.

    어찌나 당당한 모습인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예르나는 그 모습에 마치 심장이 뭉클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꼬르르륵…….

     

    “앗.”

    “엇.”

     

    그동안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못한 루크의 위장에서 당장 음식을 넣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루크는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움켜쥐고는, 링거꽂이에 걸린 회복 포션의 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하, 벌써 다 맞은 모양이군.”

    “그러게.”

    “어서 돌아가 주사를 빼자꾸나. 한시라도 빨리 퇴원해서 식사를 해야겠어.”

     

    그래, 달라진 것은 없어.

    루크는 그대로 루크이고, 당장은 맛있는 걸 먹는 게 최선이겠지.

     

    “그래, 그러자!”

     

    ——-

     

    3년, 사실 루크는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임시보호기간을 내가 잊었을 리가 없잖나.’

     

    그렇다, 임시보호기간.

    예르나가 미혼의 몸으로 혈육이 아닌 아이에게 보호자와 동일한 권리를 갖는 기간.

     

    당시 심사의 결과는 함께 확인했으니까.

    3년 뒤에 헤어질 사유라고 하면 그것 밖에 없지 않은가.

     

    3년 뒤에 헤어져야 한다니, 조금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다.

    예르나는 아직 젊은 엘프이고, 자신 때문에 급하게 결혼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루크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으니까.

    퇴원 수속을 밟고 있는 예르나를 뒤로하고 먼저 화단으로 나온 루크는 발걸음을 옮기던 중, 디아나와 파이리스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이튼을 발견했다.

     

    루크는 곧장 다이튼에게 다가가 곁에 앉으며 말했다.

     

    “다이튼, 아무래도 나는 그대를 예르나와 이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미안하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예르나는 이미 나와 3년 후에 헤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는 도움이 되지 못 할 것이라는 이야기지. 아무래도 딱히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

     

    다이튼은 미묘한 표정으로 루크를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 설마 3년 뒤에 자신이 죽는 것을 생각하고…….

    다이튼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크흑, 마냥 사고만 치고 다니는 꼬맹이인줄 알았는데, 역시 속은 깊은 아이라니까…….

     

    “괜찮아, 임마. 예르나는 내가 알아서 할게.”

    “오, 남자답군. 그래, 그 기세일세.”

     

    루크는 다이튼이 그녀의 곁에서 잘 보필하다보면 내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그녀가 그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은 해도 좋을 것이다.

     

    “다이튼, 그렇다면 한가지만 조언하지.”

     

    루크는 과거 자신은 하지 못했던 미련을 떠올리며 말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라네. 그러니, 되도록 감정을 부딪혀보게.”

     

    루크가 응원의 표시로 다이튼을 향해 주먹을 들어보이자, 다이튼도 주먹을 쥐어 루크의 조그만 주먹을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알겠어.”

     

    “응원하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그냥 떠오른 이야기를 한 것 뿐이지만 예르나의 시한부 착각은 더욱 견고해지고 마는데…

    근데 저도 하루종일 잤더니 배고프네요.
    사실 루크의 꼬르륵 소리를 타이핑할때 제 배도 함께 울렸습니다.

    ps. 삽화의 배경이미지는 픽사베이 저작권 미표시로 상업적이용을 해도 괜찮은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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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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