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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그러니까 성검과 공명하면 제 다른 인격이 나와버린다구요.”

     

    내 설명을 열심히 들은 리셰는 간신히 이해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기분인가요?”

     

    “소름끼쳐요! 다른 사람이 제 몸을 조종해서 선생님께 이런 짓 저런 짓을… 흐아악.”

     

    리셰는 부끄러웠는지 볼을 잔뜩 붉히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쩐지 성검을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니까요… 혹시 검 없이 싸울 순 없을까요? 저, 옛날에 활도 좀 쏴봤거든요.”

     

    별안간 리셰가 윙크를 하더니 팔을 들고 입으로 푸슉푸슉 소리를 냈다. 감은 눈이 실제 사격할 때와 반대였다.

     

    “마왕을 상대하려면 용사님이 성검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진짜요…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어버리는 제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래서 제가 있잖아요.”

     

    나는 리셰에게 몇 개의 약병을 꺼내주었다.

     

    “1주일 치에요. 아침에는 초록색, 세로토닌이라고 해요. 밤에는 흰색, 멜라토닌. 반대쪽 인격을 위한 약입니다. 용사님이 잠든 동안 같이 잠들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도록 도와줄 겁니다.”

     

    “뭐가 알록달록 많네요.”

     

    “저녁 식사 후에는 이쪽, 아연과 요오드의 혼합제에요. 교감신경의 활성화를 도와주죠. 그 다음 쓸 약은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상태창을 열어 리스트를 확인한다.

     

     

    ―――――――――――

    ◎ 연성 목록

    ○ 상태이상 회복

    – 정신이상 계열

    · 총명환 (D)

    · 성자의영약 (C)

    · 디바인포션 (B)

    · 봉혼포션 (B)

    ―――――――――――

     

     

    정신이상 계열의 강력한 회복 포션은 두 종류가 있었다.

     

    어느 쪽도 효과는 같지만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개방할 수 있는 레시피도 한계가 있기에 방향 설정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들어서면 두 방법 중 하나를 정해야 합니다. 자연히 반대쪽 인격을 소멸시키거나, 강제로 안에 가둬 밖으로 못 나오게 하는 것이죠.”

     

    내 제안에 리셰는 당황한 눈치였다.

     

    “저기, 꼭 그분을 그렇게 없애거나 가두거나… 그런 방법밖에 없나요?”

     

    “그게 아니면 용사님과 인격을 통합하는 수밖에 없는데,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불안정한 샤를의 인격이 리셰와 통합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모처럼 리셰가 나와 있을 땐 배드엔딩의 확률이 낮아지던 참이다. 그게 정체되거나 다시 올라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이 좀 불쌍한데요….”

     

    “몸을 뺏기는 건 싫잖아요.”

     

    “그야 그렇지만요. 그분은 몸이 없는 유령같은 거고… 원해서 제게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조금 안타까워서요.”

     

    리셰의 발상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내가 너무 카밀라의 전례로 생각했나.

     

    샤를은 내 동료기도 했으니 도울 방법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현 상황에서 그녀는 배드엔딩의 원인이자 리셰의 성장저해요소다.

     

    “용사님의 의견이 그렇다면 시간 경과를 두고 가능성을 열어두도록 합시다. 하지만 어떤 수단을 쓰든, 그 인격의 협력도 받아야 하니 쉽지는 않겠군요.”

     

    “인격…”

     

    내 이야기를 듣던 리셰는 약간 생각이 많아졌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그분도 이름이 있나요?”

     

    “샤를이라고 해요.”

     

    리셰가 샤를을 별개의 인물로 인식하고 구분하는 건 중요하다. 일단은 이중인격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아니라 분리해서 원상복구하려는 목적이니까.

     

    “성검에서 온 샤를씨.”

     

    리셰는 그 이름을 몇 번 곱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던전 공략에서 돌아온 후로도 리셰는 몸을 쉬이지 않았다.

     

    할 일이 주어졌으면 바보 소리를 들을 때까지 묵묵히 다한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 쓴소리를 듣는 결과가 되곤 했지만 그녀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부웅, 부웅. 땀이 온몸을 적실 때까지 성검을 휘두른다.

     

    지금은 이 일에만 집중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실수해도 혼나던 마을과는 다르다. 실력이 늘면 타냐와 기사들에게 진심으로 칭찬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진짜 착한 아이로 있을 수 있다.

     

    그걸 위해 라스도 도와주고 있고.

     

    리셰는 더할 나위 없이 지금이 좋았다.

     

    “수준을 올려보겠습니다. 오러로 방출하기 직전 단계의 검기를 사용하겠습니다만, 받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네. 해 볼게요!”

     

    검술에도 꽤 자신감이 붙었다. 소드마스터가 직접 알려주는 검은 하루가 멀다하고 그녀의 실력을 향상시켰다.

     

    타냐와 대치하며 서로 간격을 잰다. 서로 합을 부딪치며 들어간다.

     

    꾸준하게 단련해온 몸은 배신하지 않는다. 리셰는 시선을 집중해 호선을 좇았다.

     

    타냐의 검은 매서웠다. 조금씩 강도가 올라가니 받아치기조차 버겁다.

     

    “후욱!”

     

    크게 밀려나 자세가 무너진 위기의 순간, 손등의 징표와 함께 성검이 반짝이고,

     

     

    리셰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들렸다.

     

    ―우측 상단.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다. 무게중심을 뒤로 빼며 방어태로 신속의 검을 막아낸다.

     

    타냐가 리셰의 움직임을 보고 감탄했다. 자신만큼이나 검의 재능을 가진 리셰에게 속으로 찬사를 보내며 합을 이어갔다.

     

    반면 리셰는 어리둥절했다. 방금 공격은 자신이 온전히 예측해 막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 중단 2격. 뒤로 빠져.

     

    리셰는 목소리대로 움직이니 타냐의 공격을 예지한 듯 대응할 수 있었다.

     

    신묘하면서도 기괴한 현상에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누구에요?!’

     

    ―누구겠어, 나야.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한 대답.

    머릿속에 성검의 인격이 잠들어있다고 라스가 말했었다.

     

    ‘샤를씨?’

     

    ―약한 공명 상태에선 이렇게 되네. 인사는 안 할래. 솔직히 과거의 자신을 봐도 흑역사 같아서 창피하기만 하거든.

     

    ‘흑역사라니, 초면부터 심한 말씀을 하시네요. 악마 같아요.’

     

    ―그 말이 맞을지도. 계속 싸우다 보면 내가 악마인지 용사인지 구분이 안 가더라. 우측 허리, 스텝 한 번 더 섞어.

     

    챙! 타냐의 변칙적인 공격도 쳐내는 리셰.

     

    ‘더 얘기 안 할래요. 선생님이 샤를씨는 위험하다고 했어요.’

     

    ―너무하네. 뭐, 틀린 말은 아니려나. 그러면서 내 말은 꼬박꼬박 듣는구나.

     

    ‘하지만 스승님이 너무 빨라요!’

     

    ―웃겨. 내가 이렇게 느렸구나. 상대의 검을 보지 말고 눈을 봐.

     

    ‘눈이요?’

     

    ―그래. 라스를 볼 때도 눈만 봐. 얼굴만 보기도 바쁘니까.

     

    ‘왜 지금 선생님 얘기가 나오는데요!’

     

    리셰가 샤를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타냐의 눈에 집중했다.

     

    그 시선에서 본능적으로 다음 검격이 향할 곳을 직감한다.

     

    작은 다람쥐처럼 몸을 낮추고 파고들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오호라.”

     

    용기 있는 행동에 타냐가 감탄했다.

    검과 검의 날이 마찰하며 미끄러지고, 두 사람의 어깨가 부딪친 후 떨어졌다.

     

    “후아.”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무섭게 성장하시는군요.”

     

    타냐가 만족하며 착검했다.

     

    ―짝.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본 기사 한 명이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박수는 금방 전염되었다. 두 사람이 보인 훌륭한 연무에 대한 마땅한 찬사였다.

     

    “…하핫.”

     

    리셰는 그제야 자신이 처음으로 ‘검’을 써봤다고 깨달았다.

     

    손에 쥔 성검의 날을 바라본다.

     

    새하얀 도신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조금은 성숙한, 어딘가 피로해 보이는 용사의 얼굴이었다.

     

     

     

     

    ***

     

     

     

    “이건 어때요? 맛있어 보이죠.”

     

    새로운 봉지를 뜯으며 리셰가 말했다. 월광궁 복도에서 홀로 과자를 까먹는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도독, 그녀가 비스킷을 씹고는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뭐랬어요. 맛있을 거라고 했죠.”

     

    ―그러게. 잊고 있었어.

     

    성검과 동조율이 올라간 후, 리셰는 평소에도 평범하게 머릿속의 샤를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남에게는 들리지 않기에 이야기하는 건 혼자 있을 때로 한정했다.

     

    “샤를 언니는 또 뭘 좋아해요?”

     

    ―너랑 똑같지.

     

    “그렇겠구나.”

     

    ―과자는 됐고 술 좀 가져와. 럼으로.

     

    “으악, 술이요? 먹어본 적 없는뎅.”

     

    ―너도 좋아할걸.

     

    “혼자서는 싫은데요… 처량해 보이잖아요.”

     

    ―라스한테 마시자고 하든가? 걔랑 마시면 재미있어. 뭔지도 모를 헛소리를 끝도 없이 지껄이거든.

     

    “선생님이요…”

     

    라스의 이름이 나오자 리셰가 말꼬리를 흐렸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샤를은 그게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심리다. 모르는 게 더 힘들었다.

     

    ―거짓말하는 기분이야?

     

    “그야… 샤를 언니에 대해 말하긴 해야 하니까요. 저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 계시잖아요.”

     

    ―라스는 항상 그랬어. 언제 눈을 떠도, 어느 장소에서도. 맨날 나를 치유해주느라 고생이었거든. 그러면서 힘든 기색 하나도 안 내.

     

    “원래 그런 분이군요.”

     

    ―좋아하지?

     

    뜬금없는 샤를의 공격에 리셰가 사래가 들려 캑캑댔다.

     

    “갑자기 뭐예요!”

     

    ―나도 첫눈에 반했거든.

     

    “언니랑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좀 싫은데요.”

     

    ―옛날 일이야.

     

    “옛날… 그, 그럼 혹시 언니는 선생님과…”

     

    말을 더듬는 리셰에게 샤를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적 없어. 라스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작별의 입맞춤을 보낼 로맨티스트는 아니었거든. 머리가 터지기 전까지 살아날 방도를 고민할 남자야.

     

    “그렇군요….”

     

    리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거지 다른…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무엇보다 저렇게 아름다운 혼약자도 있으시고…”

     

    ―거짓말 하지마.

     

    “거짓말 아니에요….”

     

    ―난 네 머릿속에 있는데? 다 알아. 오빠라고 부르고 싶잖아.

     

    “…절대 얘기하지 마세요.”

     

    리셰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너무 홀로 자신과의 대화의 열중했던 탓일까, 리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림자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 용사님. 여기 계셨군요.”

     

    “헉, 선생님.”

     

    라스가 눈앞에 있었다. 리셰는 잘못을 했다가 들킨 아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정기 검진 시간이에요. 준비는 되셨나요.”

     

    “아, 검진, 네에.”

     

    리셰가 당황을 감추려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리셰가 들고 있던 비스킷을 발견하고는 눈을 번뜩였다.

     

    “이거 저도 좋아하는데.”

     

    그가 비스킷을 하나 리셰의 손에서 빼가 입에 집어넣고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라스를 바라보는 리셰를 향해 넉살 좋게 웃었다.

     

    “에이, 뺏어간 거 아니에요. 여기 대가입니다.”

     

    라스가 그리 말하고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리셰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조그마한 알사탕이었다.

     

    “가실까요.”

     

    “…네.”

     

    리셰가 그의 흩날리는 백의를 바라본다.

     

    “언니.”

     

    ―라스의 관심 받는 법, 알려줘?

     

    “네.”

     

    리셰가 알사탕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고는 라스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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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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