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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베가스는 컬럼비아 대륙에 존재하는 여느 국가들보다 느슨한 지리적, 사회적 경계를 지니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베가스의 공식적인 행정 구역은 수도 베가스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영역은 베가스 변경백에게 충성하는 사막 부족들이 사는 땅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묶어 사막 부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칭하기에는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었다.

         

       부족 중에는 사막에서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인구가 수십 만에 달하는 유목민들도 있었고, 소금 채취 광부들이 몇 년 전에 모여서 만든 인구 수십 명의 마을도 있었다.

         

       그렇게 사막 부족들은 그 규모도, 그 역사도, 그 특징도 제각각이었다.

       그들 모두를 통솔하는 법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베가스를 하나의 국가로 묶는 특징이 있었으니, 그들은 베가스 변경백의 사설 군대인 ‘검은 군단’의 치안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검은 군단은 베가스 변경백에게 고용된 용병 집단이었다.

       그들은 사막 곳곳에 설치된 주둔지에 머무르면서 치안 서비스에 가입된 지역을 순찰하고 주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도록 명령받았다.

         

       세금을 걷고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일차적인 목적에 부합했다.

       그렇기에 베가스 일대는 검은 군단의 주인이 가진 별명에 기반해 베가스 변경백령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알라모는 그러한 베가스 변경백령의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이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사막을 지나는 대상들을 상대로 숙박과 교역을 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했다.

         

       알라모는 사막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역 마을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곡예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노인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이 마을을 찾은 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농촌과 달리 사막 부족은 손님을 환영했다.

       물론 그렇다고 붕대로 얼굴을 가린 수상쩍은 방문자에게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처음에는 노인을 경계했다.

       정체를 숨기고 마을로 숨어드는 자는 도적단의 끄나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그러한 수상쩍음을 상쇄할 만한 박식함과 손재주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 산적한 여러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경계심을 빨리 누그러뜨린 데는 그가 아기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여자애였다.

       노인은 사정이 있어서 떠맡은 아기라고 말했지만, 그는 친자식보다 더 극진하게 그 아기를 보살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세상에서 자기 자식도 아닌 아기를 저렇게 돌보다니.

       저런 사람이 절대 도적 따위일 리 없었다.

         

       덕분에 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존경심과 경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렇게 마을의 현자로 대접받던 노인은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무렵, 서커스 학교를 열었다.

       그제야 주민들은 그가 곡예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범상치 않은 손재주와 몸놀림의 기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학교라 불리었지만, 사실상 고아들을 받아주는 보육원에 가까웠다.

       그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모아 곡예를 가르쳤다.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벌어진 테러 이후로 세상은 예인들의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재주를 가르치는 시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일단 재주를 익히면 돈을 상당히 많이 만질 수 있다는 소문에, 외딴 시골에 지어진 가난한 학교였지만, 소매치기나 막일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학교의 교장이자 이곳의 유일한 교사인 노인은 9년 전에 그가 안고 온 갓난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가슴에 키가 닿을 정도로 크게 자란 것을 보며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끝까지 ‘길들이기’를 배우고 싶단 말이지?”

         

       노인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니라 사부님이라고 해야지.”

         

       노인의 말에 소녀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원래 노인을 할아버지라 불렀다.

       하지만 4년 전, 할아버지가 학교를 열면서 자신의 호칭을 바꾸었다.

         

       학교를 열게 되면 다른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으니 할아버지라 부르면 안 된다나?

         

       아이들이 모두 사부님이라 부른다고 자신까지 그렇게 불러야 한다니.

         

       소녀는 4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 이름을 불렀다.

         

       “응, 사부님.”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사부님.”

       “네, 할아버지.”

         

       이런 청개구리 같은 녀석.

       노인은 호통을 치려다가 그녀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고 그만두었다.

         

       역시 키운 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다른 아이는 몰라도 그녀에게만큼은 큰소리치기 힘든 노인이었다.

         

       “엘라.”

         

       노인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엘라는 주머니에서 얼굴을 불쑥 내미는 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를 바라봤다.

         

       “응응. 왜 그래?”

         

       어느새 또 존댓말 생략한 그녀를 보며 노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학교는 가난하단다. 동물들 밥을 줄 여유는 없는 건 알고 있니?”

       “걱정하지마. 내가 알아서 줄 거야! 지금도 그러고 있는걸?”

         

       그녀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네 뜻이 확고하다면 길들이기를 가르쳐 주마.”

       “와!”

         

       엘라는 함성을 내지르며 그 앞에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앉았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어서 강의를 시작하라는 듯 재촉을 했다.

         

       노인은 그녀가 더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릴 때까지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동물을 길들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니?”

       “음, 사랑?”

         

       엘라는 아이답게 솔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그녀는 사부가 자신의 순진함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답을 바꿨다.

         

       “움, 아니다! 훈련!”

         

       엘라는 사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것이 어른다운 냉혹함을 담은 답변이라 여겼다.

       그러나 노인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냉혹한 답을 내놓았다.

         

       “기만이란다.”

       “기……뭐요?”

         

       조금 어려운 어휘에 엘라는 멈칫했다.

       극본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단어였다.

       분명 안 좋은 의미를 뜻하는 거였는데…….

         

       그녀가 막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때, 노인이 먼저 답했다.

         

       “기만. 속이는 거란다.”

         

       그의 말에 엘라는 눈을 크게 뜨더니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찍순이는 내 친구인데? 친구를 왜 속여.”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이전과 달리 조금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친구지. 그런데 네가 찍순이를 처음 데려올 때 어떻게 데려왔지?”

         

       그의 말에 엘라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주머니 안에서 꿈틀거리는 쥐를 쓰다듬으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 넣어서…….”

       “그래. 강제로 데려왔지. 찍순이가 너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니?”

       “아, 아니…….”

         

       엘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그녀는 찍순이를 데려온 것은 우정도 뭣도 아닌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주눅이 든 엘라를 보며 노인은 마음이 아팠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그 아이를 제멋대로 가뒀지. 그리고 굴복시켰어. 걔가 충분히 비굴해지도록 말이야. 먹이를 하나하나 주면서 너의 말을 따르도록……그렇지?”

         

       엘라의 두 눈에 눈물이 작게 글썽였다.

       자신이 그렇게 나쁜 짓을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망갈까 봐…….”

         

       그녀의 변명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바로 기만이란다.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넘는 동물 중 누구 하나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자연에서 나와 서커스를 하고 싶어서 들어온 동물이 있니? 곡예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똑똑한 동물들조차 처음에는 목줄이 채워진 채 교육을 받았지. 조련사와 동물이 나누는 우정은 감금과 굴복, 굴종과 학습을 통한 것이란다. 기억해라. 그게 조련사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모순이란다.”

         

       9살짜리 아이에게는 조금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였다.

       엘라는 글썽이는 눈물을 소매로 닦고는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노인은 그녀의 그런 모습도 귀여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길들이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란다. 나는 그저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동물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예를 들어 사람을 공격한다든가, 다른 사람의 재산을 피해를 준다든가 했을 때, 너는 그 아이들에게 ‘쟤네들이 한 짓이다. 나랑 무슨 상관이냐.’라고 변명해서는 안 돼. 네가 속여서 세상으로 끌고 나온 네 동물이다. 그러니 항상 네 책임이라는 것을 생각하거라.”

       “……응! 알겠어!”

         

       엘라는 영민한 아이였다.

       아직 9살밖에 안 됐는데 극본을 척척 읽어내고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읽는 것까지야 글만 떼면 가능한 거라지만, 연기를 해내는 것은 대사 뒤에 감춰진 감정이나 호흡까지 읽어낼 사회적 지능이 필요했다.

         

       그녀의 재능은 연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재주라면 재주, 노래라면 노래,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거기다 공연을 보는 안목도 예리했다.

         

       그녀는 학교에 있는 어떤 아이들보다 뛰어났다.

         

       아니다. 딱, 한 명.

       엘라와 비견되는 아이가 있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때, 쥐 한 마리가 찍찍거리며 방안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엘라는 자신의 품에 뛰어든 쥐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응? 찍순아, 뭐라고?”

         

       엘라는 산책을 위해 잠시 풀어주었던 쥐가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는 걸 듣고 귀를 쫑긋거렸다.

         

       “흠, 그렇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엘라, 너 쥐의 말을 알아듣는 거냐?”

         

       그녀는 그가 언성을 높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응응! 친구잖아. 당연하지.”

         

       잡은 지 고작 며칠 됐다고?

       먹이 주기와 핸들링을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의사소통까지?

         

       노인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벌리고 있다가 재차 질문했다.

         

       “그래. 찍순이가 뭐라고 하든?”

       “그게 있지…….”

         

       엘라는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방문 앞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그것을 확 열어젖혔다.

         

       “여기 숨어서 엿듣는 사람이 있대!”

         

       문 뒤에 서 있는 것은 밤색 곱슬머리의 소년이었다.

       엘라보다 3살 많은 그는 몇 개월 전에 학교에 들어온 아이였다.

         

       그녀는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찰리? 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나? 어, 그, 그게…….”

         

       찰리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머니 안을 만지작거렸다.

       그곳에는 그가 며칠 전부터 준비한 물건이 있었다.

         

       “그게…….”

       “알겠다!”

       “어, 뭐, 뭐라고?”

       “너 염탐하러 온 거지? 내가 길들이기를 배우면 너보다 앞서 나갈까 봐!”

         

       그녀의 확신에 찬 말에 찰리는 눈을 껌뻑였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사실 너에게 개인적으로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고.

       얼마 뒤면 네 생일이니까.

         

       하지만 입을 떼려는 순간, 그는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사부님과 눈이 마주쳤다.

         

       연습에는 엄격하지만, 그 외의 일에는 인자한 사부님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엘라에게 수작을 거는 꼴만은 가만히 지켜보지 못했다.

         

       “마, 맞아. 용케도 알았네.”

       “흐흥, 척하면 척이지.”

         

       찰리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달아나듯 방을 빠져나왔다.

         

       엘라가 수업을 마치고 방을 나올 때, 둘이서만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선물을 주려 했는데…….

       사부님이 눈치챘으니 물 건너갔다.

         

       그는 다음 기회를 노렸으나 아쉽게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에 아이들이 주는 선물 무더기 사이에 그의 선물을 끼워 넣어야 했다.

         

         

       ***

         

         

       9월이었다.

       찰리는 매년 이맘때쯤 자신이 엘라의 생일 선물로 뭘 줘야 하나 고민하곤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작년에는 학교 앞 기념품점에서 슬라그보로트 제과 선물 세트를 사서 보냈는데…….

       친구들끼리 과자를 잘 나눠 먹었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는 왜 그렇게 섭섭했던지.

         

       그는 엘라의 손글씨로 쓰인 편지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때가 잔뜩 묻어 너덜너덜해진 그것을 품에 조심히 넣었다.

       그는 현재 베가스에 있는 어느 경매장 지붕 그늘 밑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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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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