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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누더기를 벗은 진성의 모습은 초라했다.

         

       불이 이리저리 일렁이며 비치는 진성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차림새가 가벼워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기껏해야 벌거벗은 것보다는 조금 나을 정도의 얇디얇은 가죽옷에, 빈말로라도 ‘단련되었다’라고 말하기 힘든 얇은 신체까지.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전사라고 보기에는 한없이 모자라고, 남에게 부려지는 병사라고 보기에도 간신히 합격점을 줄까 말까 한 모습이었다.

         

       비록 손에는 금으로 만든 창이 있고, 그 끝이 아주 날카롭기는 했지만, 멧돼지에 비하면 이쑤시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부풀리기를 계속해 이제는 집채만 한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몸체만 보더라도 창 하나로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의심이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멧돼지의 엄니는 옛날 중세시절 기사들이 썼던 랜스(Lance)보다도 크고 길었고,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부정을 한껏 머금은 침은 사람에게 조금만 닿아도 몸을 썩게 할 것처럼 흉흉하기까지 했다.

         

       다윗과 골리앗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개미와 인간의 차이였다.

         

       하지만 진성은 멧돼지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너무나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신체에도 용맹스러운 척 창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쳤다.

         

       “나 여기서 시련으로 거듭나 사람의 증명을 할 것이니! 어머니 달이시여! 아버지 태양의 빛을 품은 금속에 빛을 내리시어 나를 가호하소서!”

         

       진성은 특별한 것을 입지 않았다.

         

       과거 용병으로 활동할 때 입었던 온갖 주술과 상징을 떡칠해 만든 옷도 없었고, 육체를 이용해 싸우는 용병들이 입고 다니는 강화 외골격도 없었다. 용병 마법사들이 입고 다니는 철갑 강화복도 없었고, 모든 용병이 필수적으로 입고 다니는 탄소 섬유 방호복도 없었다.

         

       오직 몸을 가릴 수 있는 가죽옷과 가죽으로 만든 군화만 신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공포를 품지 않았다.

       눈앞의 멧돼지를 상대라면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그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태양께서 빛을 내리사 세상에 숲이 자라났고, 어머니 달께서 어둠을 내리사 숲속에 짐승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니!”

         

       그가 두려움을 품는 것은 오직 과거이자 미래에 겪었던 초라한 끝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으며.

         

       “지금 여기 내려주신 은총의 공간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시련을 진행하나니! 태양의 빛이여, 달의 어둠이여! 이곳에서 나에게 가호를 내리소서!”

         

       그의 눈앞에 있는 멧돼지는 초월을 위한 첫 계단이 되어야 할 존재였기 때문이다.

         

       진성은 금으로 된 창을 높이 치켜들곤 멧돼지를 겨냥했다.

         

       그리고 허리를 비틀며 창을 허공을 향해 집어 던졌다.

         

       쉬이익-!

         

       근육이 없는 신체인지라 그 기세가 폭발적이라 보기는 어려웠지만, 전장을 떠돌며 쌓아놓은 경험 덕분인지 창은 그럴듯한 궤적을 그리며 멧돼지를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창은 달빛에 빛나며 황홀한 황금빛을 은은하게 내비치며 금색 아치를 그렸고, 그리고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퍼억!

         

       뀌이이이이이이이이익-!

         

       창은 억세 보이는 멧돼지의 몸에 꽂혔다.

       억세 보이는 털은 하늘거리는 해초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질겨 보이는 가죽은 뭍으로 올라온 해파리를 칼로 찌르는 것처럼 그대로 꿰뚫어버린 것이다.

         

       멧돼지는 몸에 이쑤시개가 박히자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고, 이윽고 기둥 같은 다리를 세우며 일어나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쿵-!

       쿠우우웅!

         

       멧돼지는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흙먼지를 일으키기도 했고, 고통에 분노라도 한 것인지 눈을 까뒤집으며 사방으로 돌진하며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앙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는 우지끈 소리와 함께 땅에서 뽑혀 저 멀리 날아갔으며, 폐허나 다름없었던 집은 이제는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 나쁘게 멧돼지가 돌진하는 길에 서 있던 악령과 악귀들은 차에 치인 고라니처럼 단말마와 함께 터져나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멧돼지는 사방을 때려 부수는 와중에도 진성의 곁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마치 진성이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진성은 멧돼지의 난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무릎을 꿇고 하늘에 경배하듯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어머니 달이시여! 어둠으로 제 몸을 가려주소서!”

         

       그리고는 지게에 얹어두었던 소금을 그대로 바닥에 부어버렸다.

       바닥에 소금이 깔리자 진성은 그것을 짓밟고 흙과 섞기를 반복해 색을 혼탁하게 만들었고, 소금이 흙 알갱이들과 뒤섞여 제 색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그제야 그것을 한주먹 쥐어 허공에 뿌렸다.

         

       “아버지 태양이시여! 용맹을 증명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허공에 뿌려진 흙 알갱이와 소금은 높이 치솟았다가 땅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 개입이라도 한 듯 흙과 소금이 자석이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멀어진 흙과 소금은 자신과 같은 것들과 뭉치기 시작했다.

         

       흙은 흙끼리.

       소금은 소금끼리.

         

       그렇게 허공에 뿌릴 때는 거무튀튀한 흙이었던 것이 내려올 때는 흙덩이와 소금 덩어리가 되었다.

         

       진성은 땅에 떨어진 소금 덩어리를 쥐어 숯 더미에 집어 던졌다.

         

       화르륵!

         

       그러자 은은하게 타오르던 불꽃은 기름이라도 머금은 것처럼 하늘 높이 치솟았고, 진성은 그 불꽃이 어둠을 일그러뜨리고 달에 닿을 듯 높이 치솟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자 벌떡 일어나 지게를 들었다.

         

       그는 지게에 묶여있는 천을 모조리 풀어버리곤 그것을 불을 향해 집어 던졌다.

         

       쿠웅!

         

       지게가 모닥불에 닿자 굉음과 함께 불씨를 머금은 숯가루가 사방에 튀었고, 하늘 높이 치솟았던 불꽃은 잠시 주춤한 듯 몸집을 줄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는 듯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치솟던 불꽃의 기둥은 한 점으로 뭉쳐 공과 비슷한 형상이 되었고, 그것이 점점 줄어들고 줄어들어 불로 만든 가마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화르륵.

         

       불꽃은 밖으로 빠져나오는 열기마저 아깝다는 듯 넘실거리는 뱀 혓바닥 같은 끄트머리를 안으로 보냈다. 밖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 불꽃의 끝은 지게로 향했고, 지게는 가느다란 불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실타래에 얽히고 얽히며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익.

         

       그리곤 뱀과 같은 소리와 함께 달아올랐던 지게가 녹기 시작했다.

       새빨간 빛을 품은 쇳물은 그대로 아래로 흘러내렸고, 불꽃의 인도를 따라 밖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숯을 머금고 흙먼지를 머금은 쇳물은 일직선으로 불꽃 밖으로 흘러갔고, 누군가 개입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식으며 기다란 창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성이 아까 집어던진 금으로 된 창과 비슷한 길이가 되자 뚝 끊기며 날카로운 끝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불꽃으로 이루어진 공장에서 창을 만드는 모습처럼 보였다.

         

       진성은 제 몸에 휘감긴 어둠을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허공을 쥐었고, 보이지 않는 천을 몸에 덮는 것 같은 시늉을 했다. 그리고 손가락뼈에서 냉기를 끄집어내며 헛손질을 몇 번 행했다.

         

       그리고 손이 아주 차갑게 되자 땅바닥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었다.

         

       치이이익!

         

       아직 열기가 채 빠지지 않은 창은 진성의 손에 닿기 무섭게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진성의 손을 그대로 태워버리려 했다.

         

       “위대한 아버지 태양이시여!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기를 내려주셨으니! 무기가 품은 반짝임만큼이나 찬란한 용맹을 보여드리겠나이다!”

         

       진성은 그렇게 소리치며 다시 창을 멧돼지에게 집어던졌다.

         

       쉬이이익!

         

       아까와는 다르게 은색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창은 광분하고 있는 멧돼지의 머리에 꽂혔다.

         

       뀌이이이익-!

         

       멧돼지는 광분하고 있는 와중 자기 머리에 창이 깊숙하게 꽂히자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귀청이 찢어지고 영혼이 울리는 소리를 내었고, 고통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마을을 초토화했다.

         

       그리고 진성은 주물로 만든 멧돼지의 고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처럼.

       사냥감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려 하는 전사처럼.

         

       그리고 그렇게 지켜보다가도 불꽃에서 뽑아내는 창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망설임 없이 쥐고 멧돼지한테 집어던졌다.

         

       “빛을 머금은 돌로!”

         

       불꽃에서 나온 창은 은색 궤적을 그리며 멧돼지에게 꽂혔다.

         

       “아버지 태양의 가호를 넣어!”

         

       진성의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멧돼지의 몸에 창이 꽂혔다.

         

       머리에.

       배에.

       다리에.

       목에.

         

       “불꽃을 머금은 창으로!”

         

       마치 창을 던져서 고슴도치를 만들려는 것처럼 진성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때마다 멧돼지는 고래고래 고통의 절규를 내지르며 몸을 뒹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용맹을 증명하나이다!”

         

       마침내 끝이 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멧돼지는 그대로 몸을 뉜 채 사지를 그대로 쭉 뻗었고, 땅을 오염시키는 침을 머금은 혓바닥을 밖으로 쭉 뺐다.

       부정을 한껏 품은 눈깔은 뒤집혀 초점이 사라졌고, 가시 같았던 털은 그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리고 가죽은 흐물흐물하게 변했으며, 창이 꽂힌 자리에 난 상처를 배출구 삼아 제 몸에 흐르는 부정을 줄기줄기 땅으로 쏟아내었다.

         

       그렇게 멧돼지는.

       진성이 만든 부정한 주물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끝마쳤다.

         

       진성은 멧돼지가 쓰러지자 다급하게 모닥불로 뛰어가 큼지막한 숯덩이 하나를 쥐었다.

         

       치이익!

         

       타오르고 있던 숯을 든 진성은 쓰러진 멧돼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에서 숯을 던졌다.

         

       툭!

         

       불꽃을 품은 채 날아간 숯은 그대로 멧돼지의 머리통을 맞추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화아아아아악!

         

       괴물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멧돼지가 흘리는 부정함을 연료로 삼아 움직이고, 쓰러진 멧돼지의 사체를 야금야금 퍼먹으며 그 몸집을 불렸다.

         

       불꽃은 마치 신께 바치는 제물을 삼키려는 것처럼 탐욕스럽게 멧돼지를 감싸 안았고, 신께 바쳐지는 것을 감히 살펴봐서는 안 된다는 듯 어두운색을 품어 주물의 형상을 완전히 감추었다.

         

       진성은 그것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용맹을 증명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박힌 달이 그에게 빛을 내렸다.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쏘는 것처럼 창백한 빛을 그에게 쏘았고, 그 빛에 닿은 진성의 신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무엇보다도 진성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스으으-

         

       달빛이 만든 포근한 냉기는 진성의 피부를 한 번 쓰다듬고는 그 안으로,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안으로 스며든 냉기는 진성의 몸을 헤엄치며 그가 가지고 있는 불균형을 해소해주었다.

         

       바이칼 호수에서 비롯된 냉기를 품어 단단해졌던 뼈는 달빛이 품은 냉기와 뒤섞여 점차 말랑하게 변해갔고, 건드리면 산산조각으로 흩어질 것 같은 뼈는 그 강도가 금속보다도 강하되 휘어질지언정 부서지지 않는 탄력을 품었다.

       게다가 그 구조가 촘촘하게 변해 충격에 쉽게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충격을 받아 손상을 받더라도 냉기를 에너지로 삼아 순식간에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됨에 따라 몸에 품은 불균형은 몸에 품었던 불꽃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형상이 없는 불꽃과 형상이 없는 냉기가 서로서로 흐르며 서로의 꼬리를 잡고 움직이는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그 성질이 자연과 닮아.

         

       무인이 만드는 단전처럼 한곳에 머무르려 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의지에 반응하는 속도는 기에 버금가는 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장에 거처를 만들고 혈관으로 움직이는 마력처럼 효율적이지는 않되 그 자유분방함에는 분명한 절도가 있었으니.

         

       ‘불균형이 해소되었다.’

         

       진성은 자기 몸에 음양이 깃들고 그것이 태극의 형상을 만들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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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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