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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하아압! 윈드 커터!”

       

       대륙 동부를 향한 여행 중, 이른 아침.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나는, 다시 잠을 청하는 대신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아르의 배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밖으로 나와 숲으로 들어갔다.

       

       “흡!”

       

       촤아악!

       

       근처에서 우릴 위협하는 마물의 기척을 느꼈다든지, 경계 알람 아티팩트가 울려서는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해야지,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땅히 틈이 나지 않아서 미루어 두었던 일을 이참에 해 두려고 일어난 것이었다. 

       

       쩌저적.

       

       내 윈드 커터를 맞은 나무 하나가 밑동에서 쩌저적 소리를 뱉더니, 곧 쓰러졌다. 

       

       “윈드 쿠션.”

       

       텁.

       

       혹시나 자고 있는 아르나 실비아가 깨지 않도록, 넘어지는 나무에 윈드 쿠션 마법을 걸어 사뿐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확실히 마법 쓰기가 훨씬 편해졌구만.’

       

       레벨60을 찍으면서 아르가 꽤 많이 성장을 한 것처럼, 나도 레벨60을 찍으면서 「신뢰의 계약」의 부가 효과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스킬 동기화: 특정 조건 만족 시 「신뢰의 계약」이 체결된 대상과 스킬을 일부 공유할 수 있습니다. 

       (현재 3단계 활성화 중)

       *변경 가능 횟수: 무제한/단, 10회 초과 시 1회마다 쿨다운 10분 적용, 회복된 횟수는 10회까지 저장 가능

       

       설명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아르의 스킬을 10분에 하나씩 무제한으로 바꿔 가면서 공유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바꿀 수 있는 기회는 10번까지 누적해서 저장이 가능하고.

       

       그래서 나는 이제 아르처럼 속성별 마법을 현란하게 연계할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전투할 일이 있을 때 마음 놓고 스킬을 바꿔 가면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전투 상황이 아니지만….

       

       여튼 스킬 쓸 일이 있을 때 횟수가 몇 회 남았지? 하고 계산해 가며 쓸 일이 별로 없어졌다는 뜻이다. 

       

       ‘아마 80레벨을 달성하게 되면 이런 제약도 완화되거나 풀리겠지.’

       

       근데 사실 지금도 편해서 별로 불만은 없다. 

       

       “후우. 그럼 다시 이제 윈드 커터를….”

       

       촤아아악!

       

       정신을 집중한 나는 쓰러져 있는 나무를 향해 다시 윈드 커터를 발사했다. 

       

       “흐읍.”

       

       속도는 느리되 아주 밀도 높고 정밀한 윈드 커터를 수직, 수평으로 발사하고.

       

       울퉁불퉁한 나무 겉면은 잘라내고 깔끔한 안쪽 부분만을 잘라 커다란 나무 판때기를 두 개 만들었다. 

       

       그리고 나무 판때기 하나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나무 판때기 하나를 또 작은 직사각형 수십 개로 나누어 잘랐다. 

       

       작고 얇은 나무 판때기 조각을 시험 삼아 손에 쥐어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딱 좋아. 완벽해.”

       

       지구에서 이런 걸 직접 하려면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겠지만, 이런 목공도 마법만 있으면 아주 깔끔하게 가능하다. 

       

       마법 만세.

       

       “이제 대충 판 자체는 만들어졌고…. 이번엔 윈드 커터를 좀 더 세밀하게 써서….”

       

       머릿속에 완성본의 모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리고, 윈드 커터로 그 이미지를 그대로 프린터처럼 인쇄한다고 생각하며 조각한다. 

       

       쉬쉬쉬쉭. 바바박.

       

       나무가 윈드 커터에 세밀하게 갈려 나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고.

       

       “후우우…. 글씨는 그냥 손으로 쓰는 게 낫겠네.”

       

       역시 아직 마법은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런지 세밀한 글씨까지 한 번에 새기기에는 무리였다. 

       

       ‘아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아르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작업이다. 

       

       결국 본판과 판의 틀까지 얼추 완성해 둔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잉크와 펜으로 내가 구분해 둔 각 칸 안에 글씨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뭐 해요?”

       “으앗! 깜짝이야!”

       “쉿. 아르 깨요.”

       

       돌아 보니 언제 왔는지 실비아가 어깨 너머로 내가 하는 걸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요. 처음엔 화장실 가신 줄 알고 그냥 다시 자려고 했는데, 오랫동안 안 오시길래 수련이라도 하시나 하고 와 봤어요.”

       “수련은 아니고….”

       

       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르가 최근에 좀 심심해 하는 것 같아서 새로운 보드게임을 좀 만들어 주려고요. 체스나 오목 같은 일대일 게임 말고, 저희 셋이서 함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걸로요.”

       “오오, 그런 게 있어요?”

       “네. 제 고향에 있던 게임을 베이스로 해서 페룬 대륙에 맞게 좀 개조를 할 생각이에요.”

       

       그렇다.

       나는 지금 새로운 보드게임 판을 직접 나무를 잘라서 만들고 있었다.

       

       내가 말한 고향에 있던 베이스가 되는 게임은 바로 X루마불.

       

       어렸을 때 친구 중 한 명이 그걸 놀이터에 들고 와서 같이 했었는데, 정말 서너 명이 같이 즐기기에는 최적의 보드게임 중 하나였다. 

       

       ‘시간도 잘 가고 말이지.’

       

       밥 먹고 이동하고, 중간에 마물이나 산적이 나타나면 대강 물리치고 다시 밥 먹고 이동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아르는 뭔가 재미있는 걸 찾는 눈치였다. 

       

       내가 ‘아르야, 심심해?’ 하고 물어보면 우리 착한 아르는 ‘아, 아냐! 아르는 레온만 옆에 이쓰면 그걸루 충부내!’ 라고 말해 주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풀밭에 앉아 멍 때리는 모습을 보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까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펜으로 보드의 바깥쪽 칸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흠, 여기는…. 아, 그래. 캐머해릴로 하면 되겠다. 그리고 이쪽은 페그릴 광산…. 이쯤에 히파르를 넣어 주고, 여긴 로하튼….”

       

       이름하여 현지화 작업.

       X루마불에 쓰여 있는 지구의 도시 이름을 그대로 쓸 수는 없고, 쓴다 해도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몰입이 될 리가 없기 때문에, 나는 기존 도시의 특징들을 반영해 거기에 맞는 페룬 대륙의 도시 이름들을 적어 넣었다. 

       

       ‘페룬 대륙의 모든 도시 정보는 다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이럴 때 또 원작 고인물로서의 멋진 면모가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지리 상의 위치까지 고려해 배치를 완료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각 도시 소유권 카드를 똑같이 작성하고….”

       

       미리 만들어 둔, 손에 딱 들어올 정도 크기의 작은 나무판에 도시 이름을 하나씩 적어 넣는다.

       

       “황금 열쇠 카드 뒤에 나올 문구들만 작성하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랜덤 요소를 끼워 넣어 작성을 마친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중간 결과물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때요. 좀 괜찮아 보여요?”

       “대단해요, 레온 씨. 이런 게 다 머릿속에 있는 게 신기하네요.”

       “후후, 이제 염료 좀 칠하고 코팅 작업만 하면….”

       

       나는 염색용 염료, 그리고 오동나무 기름이 담긴 작은 병들을 품에서 꺼냈다.

       

       글씨를 가리지 않도록, 지역별로 위쪽에 색깔 선을 염료로 그어 카드를 찾기 쉽도록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보드가 잘 보존되도록 겉면에 오동나무 기름을 얇게 발라 주었다. 

       

       ‘이런 데에 쓰게 될 줄이야.’

       

       아공간에 넣어 가지고 가려고 작은 의자나 테이블 같은 가구를 구매할 때 혹시 상해서 벗겨진 부분이 있으면 바르라며 주인장이 준 거였는데,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이제 주사위랑 말만 만들면 끝이네요.”

       “아하! 말을 여기에 놓고 주사위로 몇 칸씩 가는 거군요?”

       “맞아요. 이따가 룰은 아르한테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윈드 커터로 잘라 놓은 나무 조각을 몇 개 가져와서 주사위를 두 개 만들었다. 

       

       “흐음…. 주사위는 쉬운데, 말 만드는 게 좀 어렵네요.”

       “어떤 모양으로 만드시려고요?”

       “아르 모양으로요. 아르가 쪼그맸을 때 모양으로 세 개 만들어서 각각 다른 색깔로 칠하려는데, 어때요?”

       “와,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도와 드릴까요?”

       

       실비아는 허리춤에서 어느새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나무 조각을 하나 집어들어 샥샥, 깎기 시작하더니 곧 작은 해츨링 모양을 만들어 냈다. 

       

       “우와…. 실비아 씨, 손재주 좋으시네요.”

       “후후, 고마워요.”

       “저도 아무래도 손으로 깎아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알려 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죠.”

       

       나는 실비아의 옆에 앉아서 단검으로 조각 하는 요령을 배웠다. 

       

       단검으로 나무를 깎는다는 게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단검에 마나를 불어 넣어서 깎으니 마치 단단한 젤리를 깎는 것 같아서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손으로 작업을 하면서 실비아와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문득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온천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저희가 이렇게 나란히 앉아 단검으로 나무를 깎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푸흣. 그러네요. 그러고 보면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죠.”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실비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우리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추억 삼아 나열하며 즐겁게 웃었다. 

       

       “…단검술 배울 때 진짜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다행히 마지막에 지푸라기 딱 한 가닥을 베어 가지고….”

       “맞아요. 그때 레온 씨 실력 느는 거 보고 되게 놀랐었는데.”

       “그렇…아니, 잠깐만요. 그땐 실비아 씨 9성인 거 몰라서 제가 잘한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거 실비아 씨가 봐 주신 거였네요?”

       “앗, 아앗. 그건…!”

       

       추억을 꺼내 잡담을 하는 동안 아르 모형은 완성되어 갔다. 

       

       사각, 사각.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내 머릿속에는 문득 미래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때….”

       “실비아 씨.”

       “네?”

       

       사각, 사각.

       

       나는 나무를 깎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실비아 씨는, 저희랑 이렇게 계속 같이 다녀도 되는 거 맞죠?”

       

       실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죠. 저는 아르랑 레온 씨를 지키기 위해 언제까지고 붙어 다닐 거예요.”

       “그럼, 만약 아르가 다 크고 아주아주 강해져서 마왕을 다 봉인시키고 위협 같은 건 전혀 없는 때가 오면요?”

       

       나는 잠시 조각을 멈추고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땐, 실비아 씨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러고 보면 항상 조금씩 마음에 걸렸다. 

       

       실비아 씨도 말로는 우리한테 정이 들었다, 레온 씨도 좋아서 지키는 거다, 하지만.

       

       엘프로서, 특히 부족장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도 있는 엘프로서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아르를 찾고 나와 아르를 지키는 이 모든 게 부족의 숙명을 짊어지고 한 행동들이잖아.’

       

       숲에 살고 있는 부족 사람들의 모든 숙명과 염원.

       그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아도 될 때, 실비아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떠나고 싶어하신다면, 놓아 드려야겠지.’

       

       나도, 아르도 많이 서운하고 보고 싶겠지만, 실비아가 있을 곳은 실비아가 선택하는 것이 옳다. 

       

       우리의 감정을 실비아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역시 대답이 없으시구나.’

       

       사각.

       

       나는 잠시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여 아르 모형을 마저 조각했다.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나중 일인데요, 뭐. 제가 괜한 걸 여쭤 봤….”

       

       쪽.

       

       “…?!”

       

       그 순간, 나는 내 볼에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에 굳고 말았다. 

       

       “이게 제 대답이에요, 레온 씨.”

       

       사각.

       곧 아르 모형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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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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