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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섭리를 거슬러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붉은 하늘 아래.

         

       라드리엔의 양손에서 마력이 피어오르며 마법이 전개되었다.

         

       “…….”

         

       진과 프란체의 영혼이 라드리엔에 이끌려 빠져나온다. 보기만 해도 불길해지는 새까만 혼과 붉은 혼.

         

       “크윽.”

         

       영혼이 빠져나감에 따라 극심한 현기증을 느낀 진이 미간을 주물렀다.

         

       “허! 영혼이 빠져나갔음에도 정신을 유지하다니, 정말 말이 안 되는 괴물이구나.”

         

       상식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광경을 본 라드리엔이 감탄하며 웃었다.

         

       “헛소리할 시간에 집중해라.”

       “킬킬, 최대한 집중하고 있구먼.”

         

       ‘간절한 영원의 노래’가 새겨진 진과 프란체의 혼이 엮이자 나선을 그리더니 승천했다.

         

       “이것으로 결속은 끝이구먼.”

         

       마법을 끝마치자 붉은 하늘이 사라지고 혼은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뭘 하면 되지?”

       “할 게 많구먼. 자리를 이동하지.”

       “시간은 계속 멈춰있는 건가?”

       “아니, 곧 움직일 거여.”

       “…….”

         

       진은 눈썹을 좁히며 잠시 프란체를 응시하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 죽게 하는 건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진. 그의 얼굴에선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복잡함이 드러났다.

         

       “킬킬,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수적이지. 바뀔 미래를 도모하며 지금은 넘어가라. 그래야 네가 운명을 바꿀 수 있을 테니.”

         

       맞는 말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여신이 정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눈을 감을 줄도 알아야 한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이동하지.”

       “킬킬, 가자고.”

         

       딱! 초월 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이 찢어지며 다른 공간이 나왔다. 인과율을 어긋 낸 초월 마법, ‘포털’이다.

         

       “…….”

         

       진과 라드리엔은 포털을 타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에는 연금술이나 마도구들이 즐비했다. 누가 봐도 마법사의 공방이다.

         

       “저기 앉어. 마법진을 새겨야 하니까.”

       “마법진?”

       “그려.”

         

       라드리엔은 마법진을 새길 때 필요한 마력수와 마도구들을 챙겨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가 새길 마법진은 총 세 개여. 시공간의 마법진, 왜곡의 마법진, 동화의 마법진.”

         

       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에 대해선 기본적인 지식밖에 없기에 저런 마법진들은 들어도 모른다.

         

       “아무튼, 네가 세계를 이동한 뒤 돌아와서도 정신과 목숨을 건사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여. 그리 알고 있으면 되는구먼.”

         

       저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라드리엔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인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 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라.”

       “좀 아플 것이여.”

         

       라드리엔의 손가락 끝에 녹색의 불길이 타오르더니, 이내 진의 영혼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어떤 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하고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지라 그녀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후웁…….”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휘몰아친다. 단순히 몸을 불사지르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태워버리는 느낌. 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하루를 꼬박 지새우고 나서야 세 개의 마법진이 전부 새겨졌다. 라드리엔은 식은땀을 닦으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후… 끝났구먼.”

       “…이것으로 된 건가?”

       “그려. 모든 준비는 끝났으.”

         

       킬킬, 웃은 라드리엔은 양팔을 벌리며 마법을 전개했다.

         

       “지금부터 천체 마법을 사용할 것이여.”

         

       우웅!!!

         

       가지각색의 마력이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가공할 만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이것으로 너와 그 마녀의 운명은 바뀔 것이여.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돌아오게 되어있지.”

         

       진을 중심으로 세차게 도는 마력의 소용돌이. 양도 양이지만, 순도가 너무나도 높아 진도 넋을 잃었다. 이런 마법은 처음 본다.

         

       “천제 마법,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

         

       우웅!!!

         

       진은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마력에 의해 몸이 가루로 변하며 사라지고 있다.

         

       “대가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라드리엔이 눈을 얕게 뜨며 묻자, 진은 엄중히 고개를 주억였다.

         

       “킬킬, 그럼 다녀와라. 계약을 이행할 때까지 기다리지.”

         

       사아아악-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지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진. 쿨럭! 라드리엔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후우…….”

         

       모든 마력을 소모했다. 기력은 전부 빠져나가고 생명력도 남아 있지 않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라드리엔은 인과율을 어긴 저주로 인해 죽지 않는다.

         

       정확히는, 존재가 죽지 않는다.

         

       그녀는 신체가 죽는다 해도 환생을 반복하고, 필멸자를 초월해 수백을 넘어 수천 년을 살아갈 수 있다.

         

       이는 라드리엔에게 새겨진 극악의 저주였다.

         

       점점 쌓여만 가는 지식과 기억은 어떠한 존재라도 마모시킨다. 라드리엔은 모든 걸 잊고 싶었다.

         

       “…언제 봐도 지옥 같은 저주구먼.”

         

       저주가 새겨진 계기는 진부했다.

         

       라드리엔은 고대 그라시아 왕국의 제1 왕녀이자 초월 마법사. 이 대륙에 존재하는 마법은 전부 그녀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초월 마법사인 그녀도 왕국에 도래한 천재지변과 역병을 막을 순 없었다.

         

       멸망한 그라시아 왕국을 재건하고 싶었던 그녀는 인과율을 어기고, 저주를 받으면서까지 시간과 공간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수백 번의 회귀에도 미래는 바꿀 수 없었다.

         

       결국엔 인과율을 어긴 저주만이 남게 된 그녀는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되었다.

         

       라드리엔은 운명을 바꾸는 마법을 연구했다. 본래라면 수천 년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진 바렌베르크 덕에 2천 년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초월을 넘어선 천체 마법,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

         

       진 바렌베르크가 이 마법을 완성하고 돌아오면 라드리엔은 마법진을 회수해 자신이 사용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계약에 따라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되겠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여.’

         

       자신이 원한 것이다.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니, 수백 년을 살아온 라드리엔도 그렇게 어리석은 놈은 못 봤다.

         

       아무튼, 진 바렌베르크는 라드리엔의 저주를 풀어줄 것이다.

         

       “인제 준비해야겠구먼.”

         

       진 바렌베르크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그에게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할 매개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거에 대한 초석은 있고.’

         

       2천 번이나 반복된 진의 삶. 라드리엔은 그걸 이용할 생각이다.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그 세계에 있는 진에게 이걸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시작허지.”

         

       라드리엔은 마력을 쥐어짜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진 바렌베르크가 2천 번 동안 회귀하며 얻은 내용으로 만든 작은 세계다.

         

       ‘이걸 그 세계로 전해야 혀.’

         

       시공간을 찢고 왜곡하여 세계의 연결점을 만든다. 이것을 통해 진 바렌베르크도 돌아올 예정이다.

         

       “후우…….”

         

       연결점을 만들고 구축한 세계를 전하는 것은 초월을 넘어 천체 마법사에 도달한 라드리엔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여신이 하는 일에 필적한 작업이니 말이다.

         

       라드리엔은 저주를 풀겠다는 집념 하나로 이 모든 걸 실행했다.

         

       남은 건 진 바렌베르크가 이 연결점을 발견하는 것뿐…….

         

         

       * * *

         

         

       진이 세계를 넘어가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어 라드리엔은 여전히 연결점을 유지하고 있다.

         

       라드리엔은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연결점을 통해 그 세계를 엿보았다. 이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

         

       “후우…….”

         

       어떻게든 연결점을 진 바렌베르크에게 전하기 위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서적이나 오락 같은 매체로 바꾸어 세상에 퍼트렸다.

         

       그 결과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이 이 연결점을 보게 되었고 불순물까지 조금 들어오게 되었지만, 진 바렌베르크를 찾기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또 수십 년이 흐르고. 라드리엔의 의식도 흐릿해질 때쯤.

         

       「CLEAR!」

         

       누군가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 라드리엔은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설마…!”

         

       누군가 라드리엔이 만들어낸 작은 세계의 진을 죽였다. 그게 가능한 건 진 바렌베르크 자신뿐. 목 빠져 기다려온 순간에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라드리엔은 연결점을 통해 그의 혼을 확인했다.

         

       “하…!”

         

       갈가리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새까만 영혼.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진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남은 건 그를 데려오는 것뿐. 마지막 조건만 달성한다면 마법진이 발동될 것이다.

         

       [최종 진 엔딩을 처음으로 클리어한 플레이어입니다.]

         

       [숨겨진 루트 개방.]

         

       [도전하시겠습니까?]

         

       “수락해라. 네가 그토록 바라왔던 운명을 바꿀 시간이다.”

         

       라드리엔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가동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앞서 새겨놓은 시공간의 마법진과 왜곡의 마법진이 발동되어 운명이 시작됐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돌아오면 2천 번의 회귀와 세계를 넘어간 반동으로 손상됐던 영혼과 기억. 그리고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동화의 마법진도 발동되겠지.

         

       “운명을 바꾸는 것도 성공한 것 같구먼.”

         

       천체 마법,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 또한 성공적으로 발동됐다. 라드리엔은 자신의 저주가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킬킬, 킬킬! 킬킬킬!”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탑 정상에서 울려 퍼졌다.

         

       그런데…….

         

       「안 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왔다. 그가 거절한 것이다.

         

       “…엥?”

         

       그럴 리 없다. 영혼의 결속을 통해 무조건 수락하게 되어 있는데…?

         

       “설마…!”

         

       2천 번의 회귀로 손상되고, 세계를 이동하며 갈가리 찢긴 영혼이라 결속이 약해진 걸 수도 있다. 라드리엔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일단은 급하게 강제로 연결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뭐야? 게임을 너무 오래 켜놔서 과부하 걸렸나?」

         

       “아니여. 네가 무조건 여기로 들어와야 해서 그런 거란 말이여!”

         

       「마지막으로 편집자한테 영상만 보내고 자야겠다.」

         

       백발로 변한 라드리엔의 앞머리에서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이대로라면 수백, 수천 년을 넘어 세운 계획이 망가진다.

         

       “빌어먹을…!”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라드리엔이라 해도 지금 상황을 대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힘을 발휘하는 건 여신은 되어야 가능하니 말이다.

         

       “내가 이런 하찮은 실수를 하다니…!”

         

       고지가 코앞인데 명백한 자신의 실수로 인해 실패로 향하고 있다니, 라드리엔은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졌다.

       

       그때였다.

         

       「학교 가기 전에 조금만 하다가 가야겠다.」

         

       허용하지 않은 불순물이 연결점에 들어왔다. 지금은 통로를 닫아놔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텐데…?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었지만, 라드리엔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기회여!’

         

       불순물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저 혼을 들여보낸다면 통로가 열릴 테고, 연결점에 있는 진 바렌베르크는 휘말려서 강제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킬킬, 내 실수인데 만회할 기회를 주다니. 이용해서 미안하게 됐구먼.”

         

       연결점으로 만든 작은 세계의 통로를 열어서.

         

       「응? 뭐야, 숨겨진 루트?」

         

       전혀 관계없는 이까지 끌어들였고.

         

       [응답이 없어 자동으로 숨겨진 루트에 진입합니다.]

         

       그 덕분에 진 바렌베르크의 영혼도 성공적으로 회수했다.

         

       “이제 마법진만 회수하면 모든 게 끝나는구먼.”

         

       째깍-

         

       진 바렌베르크에게 새겨진 세 개의 마법진이 발동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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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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