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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1

     급발진이라는 말이 있다.

     제국의 마도바이크나 마도차량 등 마석엔진을 통해 구동되는 장치들 중, 인간이 의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차량이 앞으로 뛰쳐나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급발진이라는 용어가 제국 사회 곳곳에서 사용된 건 차체의 현상도 현상이지만, 이것처럼 사람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펼치는 경우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는 한다.

     평소에는 그럴 것 같지 않은 인간이 갑작스럽게 행동하는 경우.

     혹은 평소에 그런 행동을 하는 인간이기는 한데, 상식적으로는 그러면 안 될 것같은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

     

     지금이 그렇다.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왕실 제1기사단 황금여명에 소속되어있는 기사가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데리고 내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려고 했다? 왜? 그것도 상급의 기사가?”

     기사의 수준은 상급.

     그 아래는 중급과 하급이 적절히 섞여있었으나, 암살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은 전부 다 익히고 있던 자들.

     “내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당했겠지. 다리병신인 줄 알고 덮쳤겠지만,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다리 때문에 기동성을 버린 대신, 찰나의 검격에 온 정신을 쏟는 발도형 도법.

     제국도법 중에서도 ‘발도술’에 특화되어있는 무술 중 하나인데, 특히 어느 누군가가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 지팡이에 무기를 숨겨두지 않았다면, 당할 뻔 했어.”

     지팡이에 숨겨둔 칼은 아이페리아류 검법을 사용하는데 특화되어 있는 형태로서, 사람 여럿을 썰었는데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휴.”

     

     당연하다.

     칼을 휘두를 때 겉에 오러를 둘렀고, 오러를 해제하면 바로 아래로 피가 쏟아지니까.

     

     파ㅡ앗.

     오러를 해제하자마자 즉시 아래로 피가 쏟아진다.

     

     그냥 해제하는 건 아니고, 아래로 칼을 크게 휘둘러 카펫에 흩뿌리듯 피를 닦아낸다.

     “황금여명의 기사가 나를 덮친 이유라. 제로스 기사단장이 나를 죽이려고 한 건가? 글쎄. 그건 모르지.”

     새벽녘의 유리창을 보며, 나는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자문자답하며, 평소와 달리 소리까지 냈다.

     -혼잣말을 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인간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거랑, 입밖으로 언어로 드러내는 거랑 천지차이거든.

     합스베르크가 간혹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초인지라는 거지. 뭔가 노스트럼식 언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의 단어를 빌리자면 메타인지라고 하는 거고. 내가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인지한다는 것. 내가 낸 목소리를 내가 직접 듣는 걸 통해, 내가 그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표현은 집중에 도움이 된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이 방 어딘가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가 나가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투명마법으로 몰래 숨어들었는데, 그 사이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한다.’

     도청장치를 인지하고 대처한다는 인식을 심어줄까.

     아니면 도청장치라는 개념까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약점을 만들어줄까.

     ‘굳이.’

     무능왕의 마도자동선부터 이미 황태자는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순순히 마도자동선을 세인트 지오에게 넘긴 건 그 안에 있는 장치들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바이크의 주변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건 전부 황태자의 귀에 들어가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그런 말을 한 걸거라고.

     ‘아니면 말고.’

     만일 그게 아니라 도청장치도 없는데 혼자서 시체 널브러진 공간에 홀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때로는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이봐. 너희들은 왜 나를 습격했지?”

     

     답이 없다.

     시체인듯 하다.

     내가 죽였지만, 일격에 다 죽여버렸지만, 혹시나 심장이 찔렸는데도 간혹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마스터급 존재가 흡혈귀가 되어, 심장에 오러가 박힌 순간 심장에 압박을 주어 혈관에서 마구 피가 터져나오지 않게 막는 경우.

     혹은 흡혈귀가 아니더라도 인체 전체에 대한 정밀조작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것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로 그걸 했던 사람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미래 망국의 공주였으니까.

     아쉽게도 이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왕국의 기사가 나를 죽이러 오는 이유가 뭘까. 나는 지브롤터 백작의 장남인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전문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어보이지만 때로는 그게 진실일 수 있다.

     

     “둘 중 하나로군. 그레이 지브롤터의 매국행위, ‘크비슬링’에 죽음으로 사죄하라는 극단적 애국주의자들의 소행.”

     노스트럼은 영웅만능주의가 팽배해있다.

     그 영웅만능주의는 극단적일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고 노스트럼을 위해 충성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애국주의자’들이 가진 기본적인 이념이다.

     영웅은 사익을 추구하지 말고, 노스트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희생해야 한다.

     개인의 감정은 내려놓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감정 없는 철혈의 기사로 만들어야 한다.

     마치 회귀 전의 아버지가 협곡문을 열기 직전처럼.

     모든 이들에게 왕국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가족애마저도 저버리고 오직 ‘애국(愛國)’만을 삶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영웅이 되기를 그들은 바란다.

     즉.

     “내가, 아스타시아 황손녀를 사랑하게 된 걸로 고까워하는 놈들의 소행이라는 건가?”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에게 푹 빠지게 된 걸 보고 급발진한 애국주의자의 소행이다.

     “제국 여자에게 홀린 그레이 지브롤터는 죽어도 상관없다? 아카데미 차석에 왕국애호단 동아리에도 가입되어 있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과도 데면데면하기는 하지만 수석 차석을 번갈아가며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누아르 지브롤터가 있으니까?”

     그레이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레이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래로 제법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

     “아버지가 가만히 계실까.”

     그레이 지브롤터를 습격한 부분에 대하여, 아버지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가만히 계시겠군.”

     ‘길길이 날뛰시겠어.’

     정치적으로는 부정.

     집 안에서는 긍정.

     “오히려 아쉬워하시겠군. 다리병신이 암살에서 살아남았으니. 노스트럼 왕국의 수호가문 지브롤터에서 제국 여자에게 홀린 놈팽이가 나왔으니, 남의 손으로 처리되기를 바랐을 지도 몰라.”

     

     라고 대외적으로 모두가 알겠지만.

     ‘당장 지브롤터로 연락을 주든 뭘 하든, 아버지 미쳐 날뛰지 않도록 진정시켜야 하나?’

     ‘지금’의 아버지는 다르다.

     

     어쩌면 매국노 이미지나 ‘내놓은 자식’이미지를 쌓아온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당장 배후를 향해 찾아가 ‘네가 우리 아들에게 암살자를 보냈느냐’라고 하면서-

     -죽어라.

     “…씁.”

     안 된다.

     급발진은 내게 암살자를 보낸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도 한 급발진 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그러니까 매국 선언의 날에 메이드도 있는 자리에서 그 소리를 한 거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 어떻게 안 새도록 잘 포장을 한다고 해도 결국 물은 새어나오다가 터지기 마련.

     행동방침은 정해졌다.

     나머지는 이제 ‘아무도 모르게’ 상황을 수습하는 것 뿐.

     “시체는…태우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적당히 마지막으로, 혹시나 누군가가 들을지도 모르는 말을 슬쩍 흘린 뒤.

     

     파ㅡ앙!

     몸에서 마력을 방출하며, 눈에 마력을 흘려 시야를 강화한다.

     ‘천장, 없음. 벽, 없음. 화분, 없음. 책 사이, 없음.’

     혹시나 모를 마법, 마석, 연금술 등의 기기가 있는지 확인.

     

     ‘없고, 없고, 없고. …있네.’

     혹시나했는데, 역시나 있다.

     ‘설치하려고 했다가 내가 오는 바람에 투명물약을 마시기라도 한 건가?’

     내가 죽인 기사들의 옷 안에.

     빠각!

     지팡이 끝으로 기사들의 옷 안을 크게 찌른다.

     끝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동그란 마석이 깨지며 마법이 소멸되는 듯 짧은 빛이 흘러나왔다.

     “휴.”

     

     이제는.

     “감청마법까지 사용한 마석까지 사용하다니.”

     회귀를 했다는 것조차 말할 수 있을만큼 안전해졌다.

     “귀찮은 인간 같으니라고.”

     나는 지팡이의 칼손잡이 끝, 뭉툭한 부분을 옆으로 밀어 끝을 열었다.

     “열 좀 받게, 나도 마술 하나 선보여야겠군.”

     딸칵.

     “시체 한두 번 치워본 사람이 아니라고.”

     덮개가 열리듯 지팡이 끝이 살짝 열렸다.

     “누아르랑 레타르가 만들어낸 시체만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열 구 가까이는 되었다, 이 말이야.”

     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빽빽한 내부, 마개처럼 딱 맞게 들어가있는 마석 하나가 밖으로 밀려나왔다.

     “그때처럼 치울 수는 없지.”

     까드드득.

     그걸 손으로 잡고 악력으로 부수자, 마석가루와 함께 안에서 잿빛의 가루가 흘러나왔다.

     “시체 치우기 딱 좋은 방법이 하나 있지.”

     시체를 치운다기보다는, 정리하기 쉽게 만드는 방법이 하나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우는 이미 아까 갖췄으니.”

     툭, 툭.

     “시신훼손 좀 한다고 뭐라하기 없기다? 응?”

     나는 발로 기사들의 시체를 반듯하세 눕힌 다음, 그들의 심장에 회색의 가루를 떨어뜨렸다.

     꿈틀.

     회색가루가 시신의 심장에 스며든 순간.

     번쩍!

     눈동자가 검게 물든 시체가 눈을 번쩍 떴다.

     서걱.

     그리고 나는 그대로 눈을 뜬 시체의 목을 베었다.

     흘러나왔어야 할 끈적한 피는 왁스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다 그대로 굳기 시작했고, 오히려 카펫에 뿌려진 피가 시체를 향해 의식을 가진 것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르르르.

     목 없는 흡혈귀가 주변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다.

     

     걸레가 구정물을 흡수하듯, 그렇게.

     “흠, 흠, 흐음~”

     목 잘린 흡혈귀, 구울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를 다시 회수하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바닥에 튄 피를 닦느라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아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아.”

     

     하지만, 곧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능왕이 급발진만 안 했어도, 기분 좋게 한 대 빨고 잘 수 있었는데.”

     제1 기사단이 습격하고, 아버지가 길길이 날 뛸 예정인 이유.

     “하.”

     애국주의자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자가 내게 암살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급발진해서.

     “암살자는 누가 보냈을까.”

     1번. 못난 아들을 몰래 제거하려는 지브롤터 변경백.

     2번. 형만 없으면 완벽하게 변경백 자리를 넘겨받을 수 있는 누아르.

     3번. 친 제국적인 면모를 보이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애국주의자.

     전부 그럴싸하지만, 전부 오답이다.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마도자동선을 선물한 게 자기가 ‘가장 먼저’가 아니라는 걸로 빡쳐서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정답.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우리 무능왕께서 이 일의 후폭풍에 대해 생각이나 하실까.”

     

     아쉽게도 그분에게는 그런 뒷 일을 생각할 지능이 없다.

     “이야, 타고 보니 좋네. 이동식 왕궁이라니. 그런데 전하.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왜 이걸 전하가 아니라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하려고 한 걸까요? 어, 그러네? 화 나네?”

     굳이 정보를 찾아볼 필요도 없는, 어느 연회장에서 무능왕에게 아부하려고 한 이가 질문을 했겠지.

     “생각해보니 빡치는데, 건방진 크림슨 지브롤터의 아들이나 죽여야겠다.”

     샤를로트의 아들?

     아래로 하나 있고, 딸들은 넘쳐난다.

     “술 처먹고 자기 딸도 죽이려고 하는 인간인데, 남의 집 아들이라고 안 건드릴까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위대하신 국왕 전하께서는 ‘그레이 지브롤터를 암살하려고 한 일이 들켰을 때’에 대한 정치공학적 판단을 내릴 지능이 없다.

     

     혹은.

     ‘배째라고 하는 걸수도.’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아직 17살인데, 지금 자신이 물러나거나 죽으면 대륙 전체에 재앙이 생길 거라고 강짜를 부리는 것과 같다.

     “어쩔 수 없군.”

     배째라고 나온다면, 직접 째지는 못하더라도 대신 째줄 사람을 부르는 수밖에.

     “흡혈귀들 잿가루를 수습하고 나면….”

     사아아.

     새벽을 밝히는 햇빛이 드리우고, 암살자들의 시신이 잿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합스베르크 전하에게 일러바치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재한다고 했는데
    약 먹고 자고 일어나니 한 편 쓸 기력이 나서
    쓰고 다시 자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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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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