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1

   EP.161

     

   11층에 도착하고 한나절.

     

   “미치겠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선행을 베풀기는커녕 사람들의 뜨끈뜨끈한 온정의 손길에 하루 종일 봉사를 당했다.

     

   길을 알려주겠다며 받은 호의가 13회.

   출출하지 않냐며 길에서 받은 마른 과일 꼬치가 11개.

     

   아침에 의문의 무인에게 받았던 동전을 포함해 한사코 거절을 했음에도 기증 받은 돈은 번화가의 고급 객잔에서 이틀을 묵어도 남는 돈이 되어 버렸다.

     

   “내가 도움을 바라는 얼굴을 하고 있나?”

     

   한철검을 꺼내 칼날에 비친 얼굴을 봤지만 딱히 깨달음이 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주 없었다는 건 아니었는데 만약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퍼주는 수백의 자경단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여유롭게 생각하자”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었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내걸었던 조건에 제한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 차근차근 생각해도 될 일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일단 이곳이 나의 상식 밖의 공간임은 오늘 하루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탑에 오기 전에 치안이 전 세계 1등인 국가에서 살아왔던 나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아무리 이상적인 장소에도 어둠은 반드시 존재한다.

   밤하늘에 떠오른 달의 반쪽이 아무리 찬란해도 그 반대는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그 이면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 임무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정보를 얻기 좋은 곳이면서 동시에 문제가 자주 발생할 만한 곳……’

     

   그렇게 노을이 생기며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시점. 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변에 보이는 큰 규모의 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여기 두강주 한 병 주시게!

   -내가 최근에 뒷산으로 사냥을 나갔었는데 글쎄……

   -네네 갑니다!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의 활기가 코앞까지 다가온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객잔에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툭.

     

   “어엇, 미안하오.”

   “아, 괜찮습니다. 사람이 붐비면 그럴 수 있죠.”

     

   낮에 길에서 봤던 노점상인이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가 나와 약간의 충돌을 일으켰다.

   하루 종일 만났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과 인사는 패시브로 나왔고 나는 무조건 반사마냥 그의 인사를 받아줬다.

     

   -하하핫!

   -으하하핫!

     

   사냥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반주를 걸치는 사냥꾼과 오늘 대장간에서 새로 장만한 검을 자랑하는 젊은 무인이 호쾌하게 웃으며 건배를 한다.

     

   굉장히 수선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확실히 생기 하나만큼은 최상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장소였다.

     

   “어서 오세요! 화향루 입니다!”

     

   가만히 객잔 내부를 돌아보고 있으니 점소이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큰 목소리로 쪼르르 달려 나왔다.

     

   깔끔한 비단옷을 입고 있는 아이.

   일개 종업원으로 일하는 아이가 입기에는 근무복이 과하게 비싼 느낌이 있었지만 이 객잔이 그만큼 고급 객잔이라 생각하며 점소이의 안내를 받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녁 시간에 맞춰 자리가 없을 줄 알았지만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던 모양.

   점소이의 목소리가 큰 탓에 식사를 하던 몇몇 객들의 시선이 스쳐 지나갔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다.

     

   나는 자연스럽게 2층의 구석진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족한 공간에 갑작스럽게 받게 된 자리였지만 조용한 게 꽤 마음에 드는 위치 선정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메뉴판을 가져오겠습니다!”

     

   점소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나는 곧장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관리를 얼마나 깔끔하게 하는지 물이 묻은 흔적이나 음식물이 굳은 흔적이 하나 없는 식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림의 음식들에 설탕을 활용한 달달한 소스나 디저트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청결을 중요시하는 객점인 것 같았다.

     

   “식사 하실 거죠?”

   “예. 혹시 추천해주실 요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향육사에 소면 한 그릇은 어떠세요? 혹시나 술을 하신다면 반주로 두강주나 죽염청을 추가하는 것도 괜찮아요.”

     

   아이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 미소를 짓는다. 마치 객잔에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굉장히 깔끔하고 완벽한 직원.

     

   그리고 이쯤 되니 나는 친근함을 느끼는 동시에 묘한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저를 본 적이 있어요?”

   “아뇨. 오늘 처음 뵙는 걸요. 그런데 그건 왜요?”

   “그냥 어디에서 만났었나 싶어서요.”

     

   아이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느꼈던 괴리감. 나는 아이가 기본적인 상을 차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착착착.

     

   널찍한 식탁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의 수저가 나오고 물과 앞접시가 놓여진다.

     

   “음식은 그렇게 해드릴까요?”

   “……네 그렇게 주세요. 술은 빼고요.”

   “네엡.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들을 가지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이의 인사에 나는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심지어 나보다 먼저 와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보다도 음식이 빨리 나온 상황.

     

   ‘뭔가 인위적이다.’

     

   주문은 더 늦었는데 음식은 더 빨리 나왔다. 게다가 지금 생각하니 처음 객잔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제가 혼자인 걸 어떻게 알았어요?”

   “네?”

   “보통 손님이 들어오면 일행이 있는지 정도는 물어보니까요.”

     

   그 흔한 ‘몇 명에서 오셨냐.’는 말도 듣지 못했고 들어올 때 부딪칠 뻔했던 사람도 식사를 하지 않은 것처럼 옷에 음식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았다.

     

   ‘꼭……’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나를 위해 마련된 예약석인 것처럼.

     

   “아, 하하. 제가 여쭤보는 걸 잊었네요. 아, 음식은 식기 전에 드세요! 소면은 불면 맛없어요. 아, 아니 맛있지만 조금 뭐랄까… 싱겁? 아니, 아니지.”

     

   덥썩.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벗어나려는 점소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가 당황한 게 눈에 띄게 느껴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에 올 걸 어떻게 알았지?”

   “……”

     

   나의 물음에 아이의 눈이 동그란 토끼 눈이 됐다.

     

   누가 봐도 당황한 것이 티가 나는 모습. 자칫하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여기에서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여기에 정말 우연히 들어왔어. 그런데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는 걸 보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지.”

     

   장막 뒤의 감시자가 특정한 속셈을 가지고 나를 보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성좌라는 족속들이 호감을 가져 봐야 얼마나 가지겠는가.

     

   하지만 내가 올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성좌’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기……”

   “말해.”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에 오실 줄 몰랐는데요……”

   “그럴 리가. 객잔에 빈자리가 있었는데 장사꾼이 손님을 마다해?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저, 정말이에요! 손님 외지인이죠? 그러면 모를 수 있어요. 제가 차근차근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렇게 듣게 된 이야기.

     

   썩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장막 뒤의 감시자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

     

   과거에 무림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전쟁들이 있었다.

     

   이념의 충돌로 생겨난 전쟁, 세력을 넓히기 위한 힘겨루기나 문파 간의 분쟁. 하지만 각자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발생한 싸움은 항상 그렇듯 완전한 승자 따위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해요.”

     

   각 무림의 큰 세력들의 비급이 사라지는 사건.

     

   작은 문파도 아니고 경계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닌데 모든 문파의 절기들이 도난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무인들은 서로를 의심했어요. 전쟁이 심해질수록 피해는 커져만 가는데 적대적인 문파가 비급을 훔쳐갔다면 가까스로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그들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더 험악해져갔다.

     

   안 그래도 전쟁통에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유출됐다는 생각이 들자 무인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음. 감히 말하기가 조심스럽네요.”

     

   그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무인이 하나 있었다.

     

   “그 무인은 모든 문파의 절기를 사용했어요. 남궁세가의 제황검형,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 심지어 개방의 강룡십팔장이나 소림의 반야심공 같은 권법, 장법도 사용했다고 해요.”

     

   무인들은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문파의 절기를 훔친 도둑. 그가 수년이 지난 현재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무림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강호의 모든 도시를 파괴했다. 수백 개의 문파가 사라지고 수천 명의 무인들이 중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단신으로 무림을 멸망시키려 했던 자. 하지만 그의 행보는 거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위기를 느낀 무인들은 서로 힘을 합치기로 했어요. 모든 정파와 사파, 심지어 마교의 교인들까지 모여 무림에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죠.”

     

   도산검림 刀山劍林.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당시의 무인들은 강호에 나타난 그 괴물을 무림의 공적으로 지목했고 모든 고수가 힘을 합쳐 그를 제압하는데 성공했죠.”

     

   무림의 천하백대고수와 단 한 명이 펼친 사흘간의 전쟁.

     

   그 싸움의 승리자는 도산검림의 무인들이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내가 하루 종일 겪은 이 꽃밭 같은 세상이었다.

     

   “도산검림은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거라고 선포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이상의 싸움은 부질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만약 먼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무림의 공적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무림의 공적이 세상을 파괴하던 그 시기가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기에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저희는 모두에게 친절해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환영하죠.”

   “그럼 내가 앉은 이 빈자리는……?”

   “외지인을 위한 자리에요. 화양루만 아니라 도시에 있는 모든 건물에 외지인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요.”

     

   다시 말해 내가 오늘 받았던 모든 호의들이 과거부터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였다는 것.

     

   의심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받아 내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갑자기 손목 잡아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이런 역사를 공부할 수 없는 곳에서 사셨을 수도 있죠.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제가 아직 많이 어려서요.”

     

   나는 고개를 들어 객잔 안을 슬며시 훑었다.

     

   마력으로 기척을 가린 덕분에 2층의 상황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무림 공적이 될 뻔한 상황이 아닌가.

     

   “그나저나……”

     

   문득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외지인에게 친절하다면 그냥 임무에 대해서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쉬지 않고 말을 이어왔던 점소이가 손뼉을 짧게 치며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하다가 말았던 무림 공적 말이에요. 그 이름을 발설하는 건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아요. 이름을 말하면 불행해진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물론 저는 어린애가 아니라 믿지는 않지만요.”

     

   어느 마법사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최종 보스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점소이를 바라보자 녀석이 조심스레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량.”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지금 이 순간에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 이름이 나의 귓가에 때려 박혔다.

     

   “그게 무림 공적의 이름이에요.”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