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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162 –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괴물>

     

    린을 반지에 가둔다.

    도망치지 못하게 목줄을 채우고 사슬로 묶는다.

    사람을 향한 예의가 느껴지지 않는 발언.

    마치 소유물을 대하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싱이 증오해 마지않던 동방제국의 원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선을 넘었군.”

     

    최대한 참아보려고 노력했다.

    이 아이라면 복수를 도와줄 동료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이 꼴이다.

    동방과 서방.

    서로 활동권역은 달라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

    인간의 민낯은 모두 똑같다.

     

    “검은 왜 뽑아요?”

    “너. 불쾌하군.”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

    그 뚜렷한 감정표현조차 거북하다.

    사람의 마음을 비웃는 단어선택의 뒤에 보일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처음부터 날 가지고 놀려고 접근한 건가?”

    “제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팔다리가 달린 형체로 달고 다녀봤자 퇴마만 당할 텐데 사지가 없어도 영혼만은 함께 할 수 있는 휴대용 반지가 더 좋죠!”

    “이제야 알았다.”

    “휴. 알아주시는 건가요?”

    “너는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괴물이다.”

     

    언뜻 제 나잇대의 아이로 보이면서도 그렇지 못한 단어에서 일어나는 위화감.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기에 생기는 위화감이 바로 이 불쾌한 대화의 원인이었지.”

    “네?? 제가요?? 아닌데. 저 엄청 잘 아는데. 아카데미에서는 모르는 걸 찾기가 더 힘든데…”

    “세상은 지식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성은커녕 뻔뻔하게도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냐고 울상을 짓는 오크노디.

    귀여운 얼굴 뒤에 가공할만한 괴물의 본성을 숨긴 인간이 되다 만 것을 향해 싱이 검날을 세웠다.

     

    번쩍.

     

    태양빛을 받아 번쩍이는 검과 함께 싱의 살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괴물. 네게 한 가지 감정을 알려주지. 바로 분노라는 이름의 감정을.”

     

     

    * *

     

     

     

    <싱의 살인충동의 전조>를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으스스 피부에 소름이 돋으며 대응하지 않으면 손이 잘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카앙!

     

    막았다.

    한 번의 수비에 안도할 새도 없이 대처하지 못하면 손가락이 잘리고 손목이 끊어질 공세가 무서운 속도로 연이어 몰아쳤다.

    싱의 검격은 그 궤도와 세기, 검을 든 그의 서늘하고도 치명적인 눈빛을 포함한 일거수일투족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건 효율적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목을 베겠다는 진심 베기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껏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먼저 호의를 베풀어줬는데.

     

    “어떻게 제 마음을 이렇게 몰라줄 수가 있어요?!”

     

    싱의 칼끝이 흔들렸다.

    잠깐의 망설임이 우습게도 검에 살의가 더해졌다.

     

    “나와 린의 사정을 알고도 그딴 말을 입에 담다니. 끝까지 우리 남매를 조롱할 셈인가!”

     

    1학년의 수준은 진즉에 넘었다.

    스펙단련이 부족했으면 손쓸 새도 없이 손에 든 검을 놓치고 손가락과 손목, 목이 연달아 뎅강뎅강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씨잉! 니가 멀 안 다고 그래! 유령은 원래 가출 잘한단 말야!”

     

    아티펙트에 곱게 보관해도 지 맘대로 뛰쳐나와서 유효구속사거리 밖으로 달아났다가 제멋대로 토벌당해도 할 말이 없는 존재가 유령이다.

    싱의 여동생의 영혼을 직접 사로잡은 것이라면 곁에 잘 붙어있기라도 하겠지, 저건 싱의 기억을 훔쳐보고 린의 외향만을 따라했을 뿐인 짝퉁.

    심지어 유령 하나도 아니고 여럿의 원혼이 뭉쳐서 만들어진 집단의식의 형상화에 가깝다.

     

    ‘수틀리면 도망부터 치니까 반지에 가둬서 사슬로 유효사거리를 설정하고 족쇄로 구속을 파괴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왜 저렇게 싫어하는 거야?’

     

    게임에서 싱과 동료가 되었던 회차에서 유령을 아이템에 가둘 적에는 복수를 돕겠다는 말에 족쇄와 쇠사슬의 재료까지 지가 구해다준 적도 있었는데.

    막상 지 여동생은 아이템에 가두어서 키울 수 없다는 건지 순 내로남불만 오진다.

     

    ‘싱이랑 힘으로 싸우는 건 너무 손해야.’

     

    암흑마나를 일으키고 작정하고 싸우면 천하의 싱도 이길 수 있는 비장의 수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면 싱은 확실하게 죽으며, 싱도 곱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것은 싱도 마찬가지.

    곱게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백해무익한 싸움.

    이겨도 손해만 남는 상처뿐인 승리다.

     

    “꼭 싸워야만 해?”

    “그렇게까지 날 도발하고도 싸움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나?”

     

    자존심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고인물은 다양한 무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법.

    이 무기는 수많은 회차를 겪은 고인물인 나조차도 단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무기다.

    어떤 효과를 일으킬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단번에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지만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필살기보다 살상력은 낮지만.

    서로 다치지 않고 끝낼 방법은 이것 뿐이다.

     

    ‘에잇!’

     

    가시가 발에 꽂혔을 때의 고통을 떠올려라.

    마탑 보물창고를 털고 근처에 있는 보따리에 열심히 보물을 넣었는데 그게 보따리 미믹이어서 아이템을 다 털린 슬픔을 떠올려라.

    졸업을 앞두고 히로인 호감도 관리를 잘못해서 석화용사가 되었을 때의 서러움을 떠올려라.

     

    ‘쫄지 말자. 힘내는 거다, 나!’

     

    얼굴이 뜨거워져라 낑낑 애를 쓰자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너…”

     

    거칠게 공격을 몰아붙이던 싱의 검이 처음으로 살벌한 검속을 잃고 더뎌졌다.

     

    “울고 있는 건가?”

     

    여자의 눈물은 무기.

    고인물인 나조차도 처음 다루는 무기를 첫 사용에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다루기.

    일명 웨폰마스터 작전, 대성공이다!

     

     

    * *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인간 흉내를 낼 뿐.

    저것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또르르.

     

    막상 오크노디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는 순간.

    확고했던 믿음에 균열이 일었다.

     

    “나 울고 있어? 우는 거 맞아?”

    “…묻는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군.”

    “그래, 맞아! 나 지금 우는 거야.”

     

    악어는 입을 크게 벌려서 눈물샘이 자극받아 눈물을 흘리기라도 하지, 이 작은 괴물은 입도 벌리지 않고 어째서 눈물을 흘린 걸까.

    인간의 감정을 연기하면서도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오크노디.

    그녀가 진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책감인가.

    수치심인가.

    혹은 다른 무언가의 이유에서인가.

     

    오크노디는 진짜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도 모르는 이유로 인해서.

     

    “…벨 마음마저 사라지는군.”

    “우리 이제 그만 싸워?”

    “해명의 기회를 주지. 내 여동생에 대해 했던 말의 의도를 밝혀라.”

     

    제 감정에도 서투른 아이가 말이라고 똑바로 할까.

    무슨 생각으로 지껄인 말인지 듣고 싶었다.

     

    “유령은 말이지? 원래 도망을 잘 다니는 종족이라서 물건에 빙의를 시켜둬야 하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악의 하나 없이 그딴 어처구니없는 단어선택이라니.

    이건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다.

    아이가 뭘 보고 자라게 만들어서 이 꼴인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재단의 어둠으로부터 탄생한 인간병기.

    소문으로만 들은 그녀의 ‘파파’라는 존재는 일전에 아카데미에 방문했다던 재단의 집사나 그녀를 가르친 교관 따위를 가르키는 것이겠지.

    진짜 부모도 아닐 것이고, 설령 부모가 맞으면 더 글러먹은 일이다.

     

    ‘제대로 된 부모의 밑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

     

    같은 환경으로부터 자란 이들은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쉽게 공감한다.

    자신과 여동생과 같은 잘못된 부모를 만났거나 재단이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명을 달리하여 잘못되었을 부모를 둔 아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과거를 지닌 아이다.

     

    “다음부터는 사람을 착각하기 쉽게 만드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흥. 난 똑바로 말했거든요? 싱이 이상하게 이해했을 뿐이지.”

     

    평상시라면 말대꾸 한 번에 눈을 가늘게 뜨며 벨지 말지 고민했겠지만 이제는 이 불쌍한 아이에게 검을 뽑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 여동생을 반지에 가두겠다는 거냐.”

    “네. 마침 좋은 반지가 있거든요.”

    “그 반지의 무엇이 그리 특별하기에 내 여동생의 흉내를 내는 영혼을 그곳에 가둬야 하지?”

    “유령은 존재유지에 생명력이 필요해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존속하려면 생명력을 보충할 수 있는 물건에 깃들어야 하고요. 이 반지처럼요.”

     

    비록 그가 검을 쓰는 검객이기는 해도 동방제국에는 유령이나 요괴로부터 비롯된 귀물이라는 존재가 익히 알려져 있다.

    유령을 퇴치하거나 성불시켜 얻은 귀물에 도로 유령을 담는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님은 알고 있다.

     

    요괴를 속이면 가둘 수 있는 호리병.

    갇히면 벗어날 수 없는 두루마리.

     

    저 반지역시 그런 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호리병과 두루마리와 달리, 오크노디의 반지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 반지는 본래부터 무언가를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반지가 아닐 텐데?”

    “하수들이나 물건을 용도대로만 사용하지, 고인물은 전승쯤이야 직접 만들면 그만이에요!”

     

    어이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

    오만으로도 비출 수 있는 태도가 차라리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동생도 아닌 가짜유령.

    그런 형체뿐인 속임수라도 지키려면 오크노디를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만일 네가 정말로 이 아이를 지켜준다면.”

    “지켜주면요?”

    “너를 위해 사람을 하나 죽여주마.”

     

    그러니 대가를 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로.

     

    부스럭!

     

    대화를 엿듣던 쥐새끼 한 마리가 달아나는 소리에 검을 들었지만 오크노디가 고개를 저었다.

     

    “제 친구예요!”

    “…입단속은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거다.”

     

    거래는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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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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