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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음식이 참 맛있지요?”

        

       큰 키와 굉장히 남자다운 외모 때문에 첫인상은 다소 위압적이었지만, 우리에게 말을 거는 그 목소리는 무척 부드럽고 신사적이었다. 뭐랄까, 문자 그대로 20세기 초반의 신사를 그려보라면 그릴 수 있을 법한 사람이랄까.

        

       공작의 시선이 자기 손에 들린 비스킷을 향한 것을 눈치채고,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는 린드버러 공작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안 그래도 양쪽으로 말려 올라간 콧수염이 윗입술의 움직임을 따라 더 올라갔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곳의 음식은 전부 본토에서 건너온 일류 요리사들이 만드니까요. 손님들 드시는데 식민지인들이 만든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지요.”

        

       “그, 그런가요?”

        

       미아 크로우필드가 멍하니 대답했다. 공작은 미아 크로우필드를 향해 다시 한번 부드럽게 미소 지은 뒤 나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본국과 여러모로 다른 환경입니다만, 어떻게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괜찮습니다.”

        

       “아, 네, 저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여전히 공작이 우리한테 말을 건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갑자기 친구 부모님이 초대한 파티에 찾아갔더니 사실 그 목적이 자기 아들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없나 궁금해서 불렀던 거라고 하면 나라도 어이가 없을 거다. 이쪽 세계에서는 그렇게 이상한 일은 또 아닐지 모르지만.

        

       실제로도 저 시야 끄트머리에서 제이크한테 말을 거는 아이가 몇 명 있었다. 다들 내로라 하는 집안의 여식들이었다. 제이크가 옆에 데리고 있는 로티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 분 모두, 제이크와 같은 학급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공손히 대답하면서도 공작의 표정을 찬찬히 훑었다. 겉보기에는 정말로 자기 자식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말을 걸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표정이었다.

        

       공작의 시선이 미아 크로우필드를 향했다가, 이내 나에게 와서 고정되었다.

        

       “어떻게, 제 자식과는 친밀한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제이크가 예의를 제대로 차리고 있는지요?”

        

       “적어도 불쾌하게 굴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나의 말에 공작은 기쁜 듯 웃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제이크 쪽을 보았다.

        

       제이크는 자기한테 말을 거는 여자들한테서 은근슬쩍 멀어지고 있었다. 대놓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였다기보다는 천천히 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공작도 제이크의 그런 모습에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과는 이미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지요. 영애가 무척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만,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고개를 저었다. 공작은 별로 아쉽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서로 기억하면 될 일이지요. 혹시라도 제 영지 안에서 어떤 곤란한 일을 겪으신다면 꼭 제게 찾아와주십시오. 어떤 일이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아 크로우필드의 소심한 부분을 조신하다고 받아들인 걸까? 이 사람 눈에는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귀족주의적인 시선으로는 로티와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다 나아 보이겠지. 무엇보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다른 형제나 아버지가 없으니까. 어쩌면 백작령을 제이크가 물려받게 될지도 모른다.

        

       “황녀님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에 넓은 바다를 끼고 있으니 제국의 힘이 다소 미치기 어려울 수 있지요. 저희 공작가는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온 힘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공작의 눈에는 나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황가의 자식이니까. 세간에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린드버러 공작이 클레어에게 황제의 피가 흐른다는 정보를 알았을 때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초대장 없이도 왔다는 것에 기뻐하려나.

        

       음, 아니면 굳이 그런 사실을 몰라도 기뻐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제이크가 ‘초대받은 적도 없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소리니까. 남작이긴 하지만 제도 안에 영지가 있는 귀족가였으니 제도의 정보를 받기도 좋고. 공작 눈에는 로티와 비교했을 때는 훨씬 나은 선택지이리라.

        

       “이런, 이 늙은이가 영애들의 대화를 방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는 공작을 향해, 나와 미아 크로우필드는 각자 스커트 끝자락을 살짝 잡고 인사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멀어져가는 공작의 뒷모습을 보며 미아 크로우필드가 물었다. 대화거리가 생겨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계속 어색하기만 했을 텐데.

        

       공작은 느긋하게 걸어서 앨리스와 샤를로트, 그리고 소피아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제이크도 슬슬 약혼자가 있을 나이니까요.”

        

       “네?”

        

       내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손에 들고 있던 비스킷을 떨어뜨리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하지만, 제이크에게는…… 로티 씨가 있지 않나요?”

        

       음.

        

       로티 씨라.

        

       실로 미아 크로우필드다운 호칭이었다.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네. 둘 다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이봐!”

        

       내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가 실수라도 한 모양이었다. 현지인인 듯 어두운 피부색의 하녀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중이었다.

        

       소리친 남자의 옷에는 보라색 물이 들어있었다. 와인이라도 쏟은 걸까?

        

       바닥에 부서진 잔이 있는 것을 보면 부딪힌 모양인데.

        

       ……원작에서는 남자 쪽이 와서 부딪힌 것이었지.

        

       “이 옷이 얼마짜리인 줄 알아?”

        

       “정말 죄송합니다…….”

        

       실로 판에 박힌 대사를 하는 남자를 향해 하녀는 그렇게 사죄했다. 허리를 숙이는 하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나이는 우리보다 확실하게 먹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늙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가—”

        

       “변상이라도 하겠다고? 응? 네년한테 그런 능력이 있기는 해?”

        

       없겠지, 당연히. 몸값으로 쳐도 저 옷이 더 비쌀 텐데.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은 총독부 소속의 조연이다. 이름이 따로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하녀 쪽은—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가 다시 한번 소리치기 위해 입을 여는데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아, 공자님.”

        

       “이 하녀는 저희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요. 하녀의 실수는 주인의 실수이기도 하겠죠. 옷의 변상이라면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공손해졌다.

        

       “아, 아닙니다. 잘못은 이 여자가 했는데요. 공자님께서 굳이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이 하녀는 저희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도련님…….”

        

       하녀는 당황한 듯 제이크를 만류하려고 했지만, 제이크는 손을 살짝 저었다. 마치 물러나라는 듯.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한 사람이 더 끼어들었다.

        

       무표정하게 접근한 그 소녀는 무릎을 굽혀서 말없이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던 하녀도 급하게 무릎을 굽혀 옆에서 함께 자리를 치웠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줍고 있는 소녀도,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로티 씨……?”

        

       옆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티.”

        

       제이크가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로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그저 그런 로티를 보고 자기네끼리 속닥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제이크를 한 학기 동안 알고 지내던 아이들, 그러니까 앨리스나 샤를로트, 클레어와 레오,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눈이 바닥에 엎드린 하녀와 로티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어?”

        

       뭔가 깨달았는지 그런 소리를 냈다.

        

       미아 크로우필드 말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녀의 얼굴은, 로티의 얼굴과 굉장히 닮았다.

        

       그리고 나이 차이를 본다면……

        

       엄마와 딸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납득이 가지 않을 차이는 아니었다. 로티는 나이에 걸맞게 어려 보였고, 하녀는 성숙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이 차이 많이 나 보이는 자매’라고 해도 묘하게 납득이 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실제로 둘의 나이 차는 스무 살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17년이었다.

        

       실제 관계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였지만.

        

       “설마……?”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더라도 왜 제이크와 로티가 결혼할 수 없는 관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까.

        

       푸른 피와 천한 피.

        

       세간의 이미지로 보자면 둘은 그런 관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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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글 쓰기가 좋아서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저의 글을 좋아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도 좋아하는 글쓰기였지만, 지금은 더 좋아졌습니다. 저의 글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고, 그 완성되어가는 내내 독자 여러분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그건 지금도 똑같습니다. 제가 매일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실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글이 완성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글이 저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즐겁게 읽으실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소설이 완결나는 그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취미로 써서 올리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처음 쓰기 시작했을때만 해도 제가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재미있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독자 여러분께는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저의 글을 사랑해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팬아트 감사드립니다! 너무 예쁘네요ㅠㅠ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힘이 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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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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