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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혹자는 묻는다.

    ‘불사의 존재가 어째서 식사같은 것을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지만 그것은 식사라는 행위를 그저 삶을 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 불과했다.

     

    식사 란, 모든 육신을 지닌 자가 행해야 하는 의식과 같다.

     

    본래 이 물질계의 존재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유한한 존재의 탈을 쓴 자라면, 그러니까 물질로 이뤄진 육신을 지닌 존재라면 응당 식사를 하는 것이 이 세계의 시점으로 보면 옳았다.

     

     

    루크 역시 레니에의 그 주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를테면 선배의 조언과 같은 것이다.

     

    이미 먼저 불사를 부여받고는 충분한 고찰을 했겠지.

    스스로의 몸에 대한 것이니 그 누구보다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식사가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혹자에게 ‘불사의 육신을 얻어서 한다는 것이 고작 ‘밥 굶기’라니요, 할 일이 그렇게 없나요?’라며 쏘아붙이던 레니에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확실히, 타당한 말이기도 하다.

    레니에가 단지 불사를 지녔다고 해서 ,그것이 굶주림을 무조건 감내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루크는 불사자의 식사 필요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이유를 이미 도출한 상태였다.

     

    일단, 자신에게 식사란, 마나를 섭취하는 것과 같다.

     

    마나는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이 아니다.

     

    마나는 즉 생명에너지, 육신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이자, 나아가 물질계를 이루는 모든 것.

     

    따라서 마나는 불사자가 물질계에 존재하는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기도 하며, 혹시나 물질계에 존재할 육신을 잃었을 경우는 계속해서 물질계에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마나를 직접 운용해 육신의 재구축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식사는 마나 그 자체를 육신으로 재구축하는 것 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며, 안정적이다.

     

    또한, 식사는 그 자체로 즐겁기까지 하다.

     

    만족할만큼 식사를 하는 것과, 서클에 겨우 붙잡아놓은 마나들을 소모해서 육신을 구성하는 것.

     

    둘을 천칭에 올려두고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식사를 하는 것이 루크에게도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굳이 주린 배를 부여잡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뭐, 그토록 먹는 것을 좋아하던 우리의 성녀님께서도 과거, 식량을 미처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때에는 불사자로서 어쩔 수 없이 솔선하여 굶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렇다보니, 후에는 자기만 빼놓고 식사를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혹여 케일이 레니에의 간식을 훔쳐먹어버리는 날에는 한동안 입이 비죽 튀어나온 그녀의 불만을 받아내야만 했었지.

     

    하하, 그때는 어찌나 곤욕스러웠던가.

     

    그것도 이제는 다 추억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루크는 햄버거를 바라보았다.

     

    햄버거, 병원에서 나오니 당장 눈에 보이기도 했거니와, 도저히 허기를 참기 어려웠던 루크에게는 비교적 빠르게 제공되는 음식인 햄버거가 썩 괜찮은 음식으로 다가왔기에 루크는 일행의 식사로 곧장 햄버거를 제안했다.

     

    루크의 제안은 그 어떤 고민의 시간도 없이 받아들여 졌고, 그래서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 자신이 시킨 햄버거와 샌드위치가 놓여진 상태.

     

    루크는 자신이 시킨 햄버거의 포장을 벗기며, 자신의 곁에 앉은 파이리스의 햄버거를 슬쩍 흘겨보았다.

    녀석은 살짝 욕심을 부려서 가장 커다란 사이즈의 햄버거를 골랐다.

    이렇게 보니 거의 얼굴과 같은 크기다.

     

    루크는 ‘정말 괜찮겠느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미 파이리스는 이미 햄버거를 두 손으로 쥐고는 크게 한입을 베어물어버린다.

    또한 그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에 잔소리는 관두기로 한다.

     

    이내 자신의 햄버거로 눈길을 돌린 루크는 파이리스와는 달리 비교적 작게 한입을 베어물었다.

    햄버거란 결국 식사를 하며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루크는 그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고상하고 똑바른 자세로 입가에 소스가 묻는 것을 경계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음.”

     

    본래는 식사도중에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이 시대에서 눈을 뜬 이후엔 식사를 하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 섞인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 어떻게 해도 도저히 쉽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시대의 맛을 폭력의 수준에 빗대어 5000년 전의 음식이 단순한 일반인의 주먹질이라고 하면, 현대의 음식은 그야말로 과거 영웅이던 케일 프롭슨이 온 몸을 이용해 힘을 주먹에 실어 얼굴에 꽂아 넣는 강력한 스트레이트 쯤이었으니까.

     

    공격을 받고 신음을 흘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생리적 반응이었다고 할까?

     

    상큼한 채소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부한 소스의 맛과 육즙이 가득한 고기 패티의 맛은, 언제 먹어도 그만큼 자극적인 맛이었다.

     

    다이튼이 만들어준 햄버거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가게에서 사먹는 것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이 소스는 다이튼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모양이니까.

     

    게다가, 이 ‘루첸 버거 & 샌드’라는 가게는 전 대륙 어디를 가든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매장의 수가 많다는 듯하다.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던가?

    브랜드라는 존재를 잘 이해하지 못하던 루크는 과거엔 ‘루첸 버거 & 샌드’라는 가게가 형제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않고서야, 몇 블록 떨어지지도 않은 가게의 이름을 완전히 동일하게 지을 리 없으니까.

     

    그래서 그 앞을 지나가던 중 예르나에게 ‘루첸이라는 자에게는 형제자매가 정말 많은 모양이구나.’라고 물었을 때에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었지.

     

    결국 사정을 모두 들은 예르나는 ‘응, 그렇게 생각했구나?’하고 웃으며 루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얼마나 쓰다듬었던지, 애써 빗어 내려놓은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곤욕을 치렀고, 한동안 손으로 머리를 빗어내려서야 간신히 기존의 머리카락으로 정돈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과거의 자신과는 달리 머리카락에 곱슬기가 있어 정돈하지 않으면 상당히 요란하게 엉켜버려서 풀어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머리카락이 엉키는 것은 당연히 머리카락의 품질에 좋을 리 없고, 머리카락이 상한다는 것은 애써 정성을 쏟고 있는 마법소재의 손상, 손실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예르나라고 해도, 루크는 ‘앞으로는 이 정도로 강하게 쓰다듬는 것은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예르나는 루크의 그런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환하게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과거의 곤욕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식사를 계속 하다보니, 루크의 눈에 파이리스가 입가에 소스를 잔뜩 묻힌 채 눈을 과도하게 반짝거리며 정신없이 햄버거를 씹어 대는 모습이 들어왔다.

     

    “파이리스, 입가에 너무 많이 묻히는 것이 아니냐?”

     

    “응?”

     

    루크가 묻자 거의 햄버거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했던 파이리스가 얼굴을 떼었다.

    그러자 파이리스의 얼굴은 햄버거의 소스로 잔뜩 더러워져 마치 햄버거의 소스가 얼굴에 바르는 화장포션인 ‘로션’처럼 보였다.

     

    뭐, 식사에 진심인 것은 애당초 파이가 새로운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육체를 얻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묻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파이리스의 입가를 손으로 닦아주자, 파이리스는 기습적으로 입을 벌리며 루크의 손에 묻은 소스마저 핥아먹었다.

     

    “흐앗!”

     

    루크가 난데없이 손을 핥아진 감각에 놀라 기겁하며 손을 빼자, 파이리스는 그저 한번 배시시 웃고는 다시 햄버거에 얼굴을 처박았다.

     

    “…….”

     

    ‘이거, 아무래도 소스는 식사가 다 끝난 뒤에 닦아주어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앞을 바라보자, 문득 예르나가 식사는 하지 않고 자신과 파이리스를 빤히 바라보며 웃음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었던 예르나의 표정을 본 루크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는가? 혹시 내 얼굴에도 뭔가 묻었나?”

     

    그러자 예르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녀는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루크와 파이리스의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게 사진이라고 하던가? 아무래도 루크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루크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니까.

     

    -찰칵.

     

    그러자 루크와 파이리스는 제각기 의문스런 표정을 지어내며 예르나를 바라보았다.

     

    “흠?”

    “응움?”

     

    이렇게 보면 사실 행동거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무작정 큰 햄버거를 두 손으로 붙들곤 온통 묻히며 먹는 파이리스와, 비교적 작은 햄버거로 두개를 골라서 한 손에 쥔 채 입에 묻히지 않고 얌전히 먹는 루.

     

    그렇지만, 그 모습과 표정은 너무나도 똑같았다.

     

    “역시 정말 많이 닮았다니까.”

     

    ——–

     

    식사를 마친 후, 파이리스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한껏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고, 디아나 역시 간만에 브랜드 햄버거 특유의 자극적인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오빠가 평소에 해주는 햄버거가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새콤달콤함이 잔뜩 들어간 소스의 햄버거도 먹고 싶은 것이니까.

     

    배가 불러서일까, 아이들의 고개는 졸린 듯 간헐적으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루크는 꽤 오랫동안 기절한듯 자다가 이제 막 일어난 탓인지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지만, 디아나와 파이리스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루크는 예르나의 손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파이리스를 잡았다.

    그 와중에 디아나는 아예 다이튼의 등에 업혀 눈을 감은 채였다.

     

    베리튼에서의 평온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3일이나 뛰어넘어버리는 바람에 그 일상도 오늘로 마지막이 되고 만다.

     

    루크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에 있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담아 예르나에게 말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아쉽구나. 세계수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래?”

     

    그러자 예르나는 다이튼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이튼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디아나를 업은 채로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버렸다.

    그 행동에 루크는 조금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예르나의 제안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 루, 우리 밤 되기 전에 지금 얼른 들를까? 어때?”

     

    “정말인가? 좋다마다!”

     

    고맙긴 뭘, 이 정도 쯤이야.

    예르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루크의 모습에 덩달아 미소를 짓고 있다가 문득, 아까전에 루크의 식사를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미처 건네 주지 못한 물건을 떠올렸다.

    예르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어 루크에게 보여주었다.

     

    “저기, 이거 혹시 루, 네 거니? 병실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는데.”

    “응? 이건…….”

     

    디네키스 브로치, 자신이 인챈트해 시루드에게 건네주었던 바로 그 브로치였다.

    이제는 다 시들어버리고 말았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주말은 진짜 온통 잠만 자서 글을 못 썼네요.. 요즘들어 제 기상상황이 큰일입니다. ㅠㅠ
    사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공지로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공지 쓸 시간에 글자 몇 개라도 더 적는게 독자님들에게 더 괜찮은 것 아닌가? 하고 무작정 글 쓰다가 기절했습니다.

    앞으로는 일주일중 일요일 하루는 쉬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도 되도록 글 쓰려고 노력은 할 테지만요…!

    아무튼, 루크도 그렇고 애들은 뭐 먹을때 최고로 귀여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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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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