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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리셰가 샤를과 함께하게 된 지도 1주일이 지났다.

     

    “용사님의 컨디션은 지칠 줄을 모르시네요. 건강 그 자체군요.”

     

    라스가 정기 검진 결과를 말해주었다. 리셰는 집중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스트레스는 오히려 조금 상승했네요. 훈련이 부담되시나요.”

     

    “앗, 아뇨? 스승님이 계획을 잘 짜주셔요.”

     

    “흠.”

     

    라스는 리셰의 상태를 추측했다. 황실에 온 이래로 점점 긍정적이고 활달해지는 그녀였지만 카운슬링이 보여주는 지표는 겉모습과 약간 차이가 있었다.

     

    “샤를씨를 인식한 적은 없나요? 거울 안의 자신이 말을 걸어온다거나.”

     

    “헉, 그건 유령 아닌가요.”

     

    “맞죠. 위험하니 거울을 깨버리세요. 참고로 월광궁 4층 층계참에는 전신거울이 없습니다. 혹시 보이거든 절대 그 안의 인물과 말을 나누지 마세요.”

     

    “히이익.”

     

    “농담이에요.”

     

    “뭐예요, 놀랐어요.”

     

    라스가 짓궂게 웃었다. 리셰는 그런 그의 장난도 즐거웠다.

     

    샤를에 대해서는 비밀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에 대해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라스는 자신을 위험하다고 여길 게 뻔하니 친한 걸 들켜서 좋을 일이 없다고.

     

    ‘왜 언니가 위험한데요?’

     

    ―너한테 좋을 리가 없거든. 라스는 눈치챈 것 같더라.

     

    ‘하지만 좋은 노하우도 많이 알려줬잖아요.’

     

    ―그치.

     

    ‘이상하네요.’

     

    라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라 불편하긴 했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으니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샤를이 어떤 특성을 지닌지는 아직 모른다.”

     

    “아, 네에.”

     

    “마지막 카운슬링 이후론 저도 못 봤네요. 성검과 공명할 순 있나요?”

     

    “음…”

     

    리셰가 허리춤에 착검한 성검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이라면 샤를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게 어렵지는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해볼까요?”

     

    “아뇨, 당장은 괜찮습니다. 용사님의 컨디션 자체는 좋아지고 있으니 검진 주기를 늘려도 괜찮겠어요. 앞으로는 1주일에 한 번 뵙기로 하죠.”

     

    “1주일이요?”

     

    라스의 말에 리셰는 실망감이 차올랐다. 그를 더 자주 봐도 모자를 판에 1주일이라니, 그동안 검만 휘두르고 있으란 이야기인가.

     

    “알겠어요. 선생님은 워낙 바쁘신 분이니까요. 다음번엔 성검을 더 잘 쓰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리셰는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며 라스와의 검진을 끝냈다.

     

     

     

    매사 긍정적으로, 밝게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날 듯 하다가도 스무스하게 넘어갈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마을에서 리셰가 심보 고약한 주민들을 상대로 터득한 처세술이었다.

     

    불합리는 참는다. 분노보다는 긍정이 우선.

    다툼보다는 화합이 좋다.

    자신이 먼저 웃는 착한 아이로 있으면 언젠가 모두 그렇게 되리라고 리셰는 믿었다.

     

    마을의 노인들도 악을 전염 받았을 뿐이다. 자작에게 재산을 수탈당하고, 젊은이는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 희망이 없었다. 그 화를 폭언으로 리셰에게 풀어댔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전염병으로 몰살이라는,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지만.

     

    언젠가는 좋은 일도 있겠지, 생각했다.

     

    리셰는 자신의 이런 태도가 평소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될 뿐이었으니.

     

     

    ―그게 결국엔 지치더라고.

     

    샤를이 리셰에게 말을 건다.

     

    반짝반짝 새하얗게 빛나던 리셰의 마음에 한 방울, 먹물이 똑 떨어졌다.

     

    ―어차피 언젠가 힘들어서 포기할 바엔, 지금부터 원하는 걸 위해 움직이지 그래?

     

    “전 포기 안 해요. 이젠 용사잖아요.”

     

    ―인생 한 번 정도는 버텨졌지. 그럼 왜 나에 대해 얘기 안 했어? 내가 있으면 성장에 안 좋다고 라스가 그랬잖아.

     

    “그야 언니가 하지 말라고…”

     

    ―내가 라스에 대해 잘 아니까 그랬잖아.

     

    샤를이 리셰의 본심을 짚었다.

    그녀에게 속마음을 숨길 순 없는 법이었다.

     

    ―라스를 자주 만나고 싶어?

     

    “그야 그렇지만, 1주일에 한 번이라고 하셨으니 어쩔 수 없죠.”

     

    ―내일이라도 또 볼 수 있어.

     

    “어떻게요?”

     

    ―간단해. 라스는 다친 사람은 절대 못 지나치거든.

     

    리셰는 샤를의 음습한 의도를 알아챘다.

     

    “…일부러 다치라고요?”

     

    ―나도 몇 번 써먹었어. 더 답이 없겠다 싶을 때. 덕분에 둘이서만 끝날 때도 있었네.

     

    리셰는 샤를이 제안한 방법을 듣고 입을 떡 벌렸다.

     

    “그, 그러면 안 돼요! 선생님 시간도 뺏고, 스승님이나 기사님들에게도 민폐잖아요.”

     

    ―뭐 어때. 어차피 넌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일단 원하는 것부터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어?

     

    “용사잖아요. 제가 훈련을 성실하게 해야 나중에 모두 구할 수 있고…”

     

    ―대충 해도 네 실력의 고점은 비슷해.

     

    샤를은 단호했다. 그녀의 유혹에 리셰는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결정을 내리기 전, 리셰가 마지막으로 샤를에게 한 가지 물었다.

     

    “그럼 언니는 뭘 하고 싶으셔요?”

     

    ―비밀.

     

    “혹시 선생님을 가로채시려는 건 아니죠?”

     

    ―물론 라스는 갖고 싶지.

     

    “가, 갖다뇨. 선생님은 물건이 아니에요.”

     

    ―라스를 손에 넣으려면 3황녀부터 떨어트려. 그 여자랑 있으면 라스는 위험해질 테니까.

     

    “황녀님이요? 으음, 무서운 분이긴 하죠…”

     

    샤를이 능숙하게 주제를 돌렸다.

     

     

     

    ***

     

     

     

    “리셰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마지막 검진.

    [카운슬링]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교감신경 활성도가 높아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상승했던 게 그 증거였다.

     

    “샤를과 접촉했고 영향을 받고 있을 게 분명한데, 왜 숨기고 있지.”

     

    샤를이 리셰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틀림없다. 리셰가 훈련을 거듭할수록 착실하게 줄어들던 [성검 파괴]와 [공명 해제] 엔딩의 확률 감소폭이 사라졌다.

     

    “샤를은 왜 성검을 부수려고 할까.”

     

    미래에서 리셰는 항상 긍정적이고 주변에 활기를 전해주는 이상적인 용사님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리셰에게 에너지를 받은 사람은 있어도, 그녀에게 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뜻이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겠지. 나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깊진 않았다.

     

    진심을 말한 적이 없다.

     

    즉, 리셰도 샤를도 거짓말에는 능숙하다.

     

     

    다시 샤를을 만나 카운슬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방법은 두 가지.’

     

    샤를이 성검을 부수지 않도록 설득하거나, 리셰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제거하거나 격리한다.

     

    후자에는 연금술로 제작한 포션이 필요하다. [연성]의 랭크도 착실히 올려야 한다.

     

    “선생님, 급무입니다.”

     

    내의원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호출이 들어왔다. 월광궁 기사였다.

     

    “용사 건이야?”

     

    “예.”

     

    클로에 팀과 함께 응급진료를 준비했다. 이번 주만 세 번째였다.

     

    구급 마차를 타고 나가니 병영에서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리셰가 다리에 큰 자상을 입었다. 신성기사들이 응급처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아, 선생님!”

     

    리셰는 부상당한 와중에도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바쁘신데…”

     

    “아닙니다. 담당인 저희 업무니까요. 상처를 보겠습니다.”

     

    리셰의 다리를 간이 진료대에 가로로 눕혀 세척과 소독을 실시한다. 소란을 피운 것 치고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클로에에게 맡겨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분대전 훈련 중에 생긴 사고였습니다. 기사끼리 충돌할 위험한 상황이라 용사님께서 감싸시다 대신 부상당하셨습니다.”

     

    타냐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얘기만 들으면 동료를 위해 생긴 부상이니 영예로운 상처였다.

     

    “다행히 심하진 않군요. 나머지는 저희 팀이 책임지고 회복시켜드리겠습니다.”

     

    “저기, 선생님.”

     

    “예.”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리셰가 나를 불렀다.

     

    “괜찮으시면 이 다음에 진료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어제부터 두통이 좀 있어서….”

     

    흠.

     

    “그러시죠. 안에서 봅시다.”

     

    내 대답에 리셰가 슬그머니 웃었다.

     

     

     

    ***

     

     

     

    “…4진, 작성.”

     

    아셀라가 네 개의 마법진을 그린 후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번째 진을 그리려 하다가 손이 멈추고는 제자리에서 파르르 떨린다.

     

    한참을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허공에 선을 그었다. 주문은 파기됐고, 아셀라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마나를 흐트러트렸다.

     

    “안 돼.”

     

    망가졌다.

     

    분명 자신의 마법체계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원인이 마력회로인지, 마나인지, 지식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아셀라는 더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후우.”

     

    그녀의 공방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이런 장면을 누구에게도 보일 수는 없다.

     

    방에서 나오니 간이 테이블 위에 시녀장이 가져다 놓은 서류가 쌓여있었다.

     

    회담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다.

     

    왕국에서 행동을 일으켰다는 보고서.

     

    다름 아닌 용사와 함께 싸울 용사 파티원 후보를 물망에 올리기 위해, 전 대륙권을 대상으로 연무회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을지는 뻔했다. 아셀라 역시 라스에게 이미 전해 들었기 때문에 대응은 하고 있었다.

     

    시기는 6개월 후.

     

    저만큼 크게 액션을 보였으니 제국도 나서야만 했다.

     

    ‘…정작 내가 이래서야.’

     

    제국의 차기 황제에게 걸맞은 위엄 있는 시연은 보여줄 수 없다.

     

     

    다른 한쪽의 보고서도 아셀라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용사가 던전에서 귀환한 후로 성장세가 둔화했다는 이야기였다.

     

    한 명의 피해자도 없이 중급 던전을 격퇴했던 이후로 2주. 용사는 훈련과 토벌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거나 병치레를 하기 일쑤였다.

     

    ‘갑자기 왜 이래?’

     

    당연히 용사가 다칠 때마다 고생하는 건 라스다.

     

    성검의 공명 부작용을 치료하는 동안, 라스는 아셀라에게 용사와 대면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둘이 무슨 치료를 하는지도 서면으로만 보고받으니, 아셀라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나는 어쩌지.’

     

    마법의 문제를 라스에게 털어놓고 치료를 요청할까.

     

    고민이 됐다.

     

    안 그래도 그에겐 커다란 빚이 있다.

    대가를 치르기도 전에 빚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일단은 휴식시간이다.

     

    아셀라는 라스를 만나고자 공방이 있는 월광궁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 대기시켰던 호위기사들을 부르려 했다.

     

    그때, 그녀는 뒷마당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조그맣게 난 환기용 창문으로 보인 틈새의 구석.

     

    용사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머리칼이 보여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집중했다.

     

    “으으, 이 독초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언니 말 듣고 잘못된 적은 없었죠. 응, 시키는 대로 할게요.”

     

    미친 사람처럼 한참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용사가 남들 몰래 풀잎을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구역질을 간신히 참는 듯한 태도. 금방 그녀의 안색이 나빠졌다.

     

    용사가 천천히 월광궁 기사단을 향해 걸어간다. 한복판에서 그녀가 쓰러지고, 잠시 후 의사들과 함께 라스가 안에서 달려 나왔다.

     

     

    “하.”

     

    일련의 장면을 지켜본 아셀라는 보고서에 적힌 사건의 인과를 바로 깨달았다.

     

    그녀는 싸늘하게 눈매를 굳히고는 전쟁을 치를 기세로 또각또각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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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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