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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양기는 불꽃이 되었다.

       불꽃은 양기가 되었다.

       냉기는 음기가 되었다.

       음기는 냉기가 되었다.

         

       진성의 몸 안에 품었던 것들이 섞이고 섞이며 그 성질이 모호해졌고, 이윽고 따뜻함과 차가움, 밝고 어두움, 더해지고 덜해지는 의미를 품으며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양은 음의 꼬리를 붙잡고 움직였고, 음은 양의 꼬리를 붙잡은 채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바람이 흐르는 하늘과 같고, 여러 흐름을 품은 바다와 같으며, 천천히 흐르는 대지의 형상과 닮기도 하였고, 우주 속에서 움직이는 느릿한 천체의 움직임과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꼬리를 잡고 움직이는 양과 음은 입에 서로를 문 것처럼 서로의 상징을 조금씩 품었으니.

         

       밝은 것에 그늘이 있듯이.

       더해지는 것이 있으면 덜어지는 것이 있듯이.

         

       양은 음을 품었다.

       음은 양을 품었다.

         

       그렇게 진성의 몸 안에 형체도, 형상도 없는 태극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곧 진성이 태극의 상징을 품었다는 말과 같았다.

         

       ‘좋구나 좋아.’

         

       게다가 중국의 주술사들과는 다르게 진성이 몸에 새긴 것은 문양 형태의 태극이 아닌 형상이 없는 태극이니, 주술의 대가로 인해 태극의 상징을 잃어버릴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형상이 없는 것은 형체 또한 없으니.

       오직 그 모양은 그릇에 따라 바뀔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바.

         

       진성의 육체가 어떻게 변하던.

       설령 인간의 형상을 모두 잃어버리고 괴물의 형상으로 변해버린다고 한들 그의 몸 안에 내재한 태극의 상징은 영원할 것이다.

         

       게다가 음과 양은 서로가 균형을 맞추는 것.

         

       이는 진성이 음양의 균형이 완전히 으깨질 정도로 무리하지 않는 한 양기와 음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일단 불균형이 해소되었구나.’

         

       진성은 자기 몸에 흐르는 따뜻함과 시원함을 즐기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만족하기에는 아직 일렀으니.

         

       성인식의 대가가 단순히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스으으으-

         

       달빛은 불균형을 해소해주었으니 다음 대가를 주겠다는 듯 더 강한 빛을 진성에게 뿌렸다. 그러자 진성의 피부가 공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렸고,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은은한 빛은 그의 피부를 코팅이라도 하듯 그의 몸을 한번 훑고 지나가더니 이윽고 피부 아래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휘이이이-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달이 입김이라도 부는 것처럼 산들바람이 진성을 한 번 휘감았다.

         

       황량하고 메마른 공기가 아닌, 숲의 향기를 한껏 머금은 바람이었다.

         

       바람은 진성의 몸에 자신의 냄새를 묻히려고 하는 것처럼 한참이나 그의 몸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났다는 듯 진성을 비추는 빛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성인식의 대가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뿌드득!

         

       멧돼지의 몸에 가장 먼저 꽂혔던 금으로 만들어진 창은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멧돼지의 몸체에서 벗어나 밖으로 빠져나왔고, 털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곤 제 몸에 묻은 부정을 지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발하더니 그 빛을 진성에게로 쏘아 보냈다.

         

       열기를 품은 빛은 진성의 피부를 지나쳐 그의 근육으로 스며들었다.

         

       꿈틀꿈틀.

         

       진성의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듯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비례해 그의 근육이 변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좀 더 질기게 변했고, 탄력을 머금었으며, 그 구조 자체도 탄탄하게 변해 질긴 고무공과 같은 질감으로 변했다.

         

       얄팍했던 그의 몸이 크게 부푼 것은 아니었으나 그 속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축복받은 신체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근육을 바꾼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황금은 그의 몸 곳곳을 누볐다.

       하지만 진성이 일찍이 일본에서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거친 탓인지 다른 것에는 손을 댈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빛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진성의 몸 안에 흡수되었다.

         

       ‘정화’같은 것에 소모하지 않고, 거의 온전한 힘을 담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흡수된 빛은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변해 진성의 신체를 강화해주었고, 진성은 좀 더 활력 넘치는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아주 좋구나, 좋아.’

         

       회귀 전 진성은 성년의 날에 성인식을 치렀다.

         

       하지만 그때의 의식은 만족스럽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씨 가문에 머무르면서 긁어모았던 주술들을 뒤져서 괜찮아 보이는 주술로 성인식을 행하기는 했으나 그 효과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몸이 조금 건강해지고 머리카락이 풍성해지고 잘 빠지지 않는 정도.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효과이기는 했으나….

         

       크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말은 아니었다.

         

       ‘옛적에는 방향성도 잡지 못했고, 상징도 몸에 품지 못했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제대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그리고 세상에 끼치는 영향에는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인생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향성.

         

       신을 모시고.

       물건을 만들고.

       마력을 탐구하고.

       진리를 찾아다니고.

       공부를 거듭해 지식을 축적하고.

         

       삶의 목적을 이루고, 목적을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걷는 것.

         

       주술사가 행하는 성인식은 이러한 방향성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정령의 가호를 받는 성인식을 행하는 부두술사의 경우 식물이 뿜는 독에 쉽게 해를 입지 않는 신체를 가지게 되고, 동물과 친해지는 성인식을 행한 주술사의 경우 동물이 호감을 느끼게 하는 페로몬을 뿜어낸다. 기계와 관련된 성인식을 행하는 기계술사는 몸에서 정전기가 잘 나지 않게 되며 녹과 광물이 뿜어내는 독에도 견딜 수 있는 신체를 갖는다.

         

       하지만 진성은 이러한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대한민국이 주술의 불모지가 됨에 따라 그가 얻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주술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

       막연하게 주술에 대한 집착만이 있었기에 그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것.

       주위에 자신에게 주술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 등.

         

       그러한 수많은 요소가 겹쳐 그에게 제대로 된 성인식 대신, 방향성 없이 보잘것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성인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성에게 있어 한 줄기의 아쉬움으로 남아있었으나, 지금 그 아쉬움이 완벽히 해소되었다.

         

       올바른 방향성을 품은.

       과거 기생술사라 불렸던 과거와 어울리는 성인식을 행했으니까.

         

       ‘원시와 야만, 야생의 성인식.’

         

       그가 지금 행한 성인식은 옛적의 성인식이었다.

         

       과거 인류가 나라가 아닌 부족 단위로 흩어져 있었을 무렵의 성인식.

       전설이 만들어지고,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하나로 모아 만든 세련된 성인식이 아닌, 아주 투박하기 짝이 없는 성인식.

         

       자연에 넙죽 고개를 숙이고, 하늘에 떠 있는 천체를 위대한 존재로 모시며 살아왔던 아주 옛날, 인류는 사냥으로 제 능력을 증명해 성인임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능력 증명’의 성인식은 아주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행사였다.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혹한 환경이 만들어낸 성인식이었기 때문이다.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성인이 되지 못한 채 쫓겨난다.

       능력을 증명한다고 해도 잡아 온 ‘성과’에 따라 대우가 차이가 난다.

         

       잡아 온 사냥감의 크기에 따라, 그 사냥감의 흉포함에 따라 부족 내의 지위가,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전 세계에서 보인 초기 인류의 ‘보편적인’ 성인식은 시간이 지나고 역사를 머금으며 주술적 의미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투박하고, 야만스럽고, 더럽고, 위험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성인식은 사라지게 되었다.

         

       ‘옛날 문명을 이루기 전에는 이런 문화도 있었단다’같은 시간 보내기 용도의 이야깃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문명화되지 않은 인간의 야만스러운 문화’로 여기기만 했다.

       심지어는 이러한 ‘야만스러운’ 것을 행하는 것을 죄악처럼 여기는 이들마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외면받는 것이 모두에게 외면받는 것은 아닌 법.

         

       진성에게 있어서 원시와 야만을 품은 이 오래된 성인식은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진성은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부정을 겹치고 겹쳐 끔찍한 주물을 만들고, 그 주물을 재료로 삼아 멧돼지 괴물을 만들고, 괴물에게 무당 악령을 먹여 그 몸을 키우고, 그렇게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사냥감을 붙잡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며 성인식을 마쳤다.

         

       그렇게 상징성을 극대화하고, 효과를 한껏 키운 성인식의 결과는….

         

       ‘앞으로 큰 도움이 되겠구나.’

         

       아주 흡족한 것이었다.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끼이이익-

         

       축지와 함께 진성은 본래 머물던 안전지대를 향해 움직였고, 그가 사라진 곳에는 타들어 간 멧돼지와 잔해와 쑥대밭이 되어버린 마을만이 남았다.

         

       이제는 악령도 악귀도 남지 않은 마을은 어둠 속에 모든 소리를 파묻었고, 오직 적막함만이 감도는 공간이 되었다.

         

         

         

        * * *

         

         

         

       [ 아아, 모든 인원에게 알린다! A형 투입! A형 투입! ]

       [ 실제 상황이라 알리고, 전 인원 A형 투입-! ]

         

       “아아아아아악! 씨이이바아알!”

       “A형 투입!”

       “A형 투이이이입!”

       “일어나! 일어나서 당장 장구류 착용하고 성수 챙겨-!”

         

       조용해지는 곳이 있다면 시끄러워지는 곳도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지켜지는 법.

         

       안전지대가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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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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