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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

       “…….”

       

       아, 여기를 좀 더 깎아야겠는데.

       

       나는 완성된 아르 모형을 괜히 이리저리 더 뜯어보았다. 

       

       힐끔.

       

       그러다 실비아 쪽을 곁눈질로 쳐다본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내리깐 실비아를 발견했다. 

       

       “…아니, 실비아 씨가 해 놓고 그렇게 쑥스러워 하시면 어떡해요?”

       “그치만…. 저도 남자한테 뽀뽀…한 건 처음이라….”

       “처, 처음이라고요?”

       

       내가 반사적으로 놀라서 되묻자, 실비아는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왜요, 저는 처음이면 안 돼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변명하려 하자, 실비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숲에서 검술과 마법을 수련하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어요. 덕분에 이성 관계 같은 것에는 눈을 돌릴 생각조차 못 했었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숲을 떠나 대륙으로 나섰을 때부터였어요.”

       “그렇군요….”

       “용병 일을 하면서 인간 남성들이 다가오는 경우는 많았지만 전부 무시했죠. 그때 저한테는 항상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사명, 그것을 완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이외엔 전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어요.”

       

       실비아는 나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중에 제대로 된 남자들도 없었고요. 인간의 미의 기준에 따르면 엘프는 엄청 아름다운 편이라고들 하죠? 그 모습에 다들 헤벌레 해 가지고는….”

       “…저도 좀 뜨끔하긴 한데요 그건.”

       

       처음 봤을 때부터 내 이상형에 99.9% 부합하는 실비아의 얼굴에 넋이 나가 있었으니까. 

       아마 그때 실비아가 ‘귀여운 드래곤이네요’라는 간 떨어질 뻔한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넋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었을 거다. 

       

       내 솔직한 대답에 실비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흣. 하지만 레온 씨는 거기서 저한테 작업을 걸러 다가오는 대신 잔뜩 경계하고 오히려 저를 피해 빨리 히파르를 뜨려고 하셨죠.”

       “그야 우리 아르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그 점에 감동한 거예요. 레온 씨라면 다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걸 지킬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씀하실 것까지야….”

       

       갑자기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화제를 돌렸다. 

       

       “앗, 그러고 보니 지을 건물을 안 만들었네요. 이걸 깜박했네.”

       “건물이요?”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게임에서는 자신이 밟은 땅에 건물을 지을 수 있거든요. 어디 보자…. 일단 아르 모형에 색부터 좀 칠해 놓고.”

       

       나는 다시 염료를 꺼내, 작은 붓으로 아르 모형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모형에는 아르의 비늘 색깔과 비슷한 회색 염료를 사용했다. 

       

       “요렇게 배는 피해서….”

       

       배 부분은 따로 밝은 베이지색으로 칠한 뒤 가로로 얇은 선을 그어 주었다. 

       

       다른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칠하기에는 모형이 작아서 무리가 있었고, 실비아도 비슷하게 작업을 했다. 

       

       “완성!”

       “저도 완성했어요!”

       

       그렇게 우리가 만든 아르 말은 회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칠해져 구분하기 쉽게 되었다. 

       

       ‘건물 만드는 거야 쉽지.’

       

       따로 뭘 칠할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윈드 커터로 나무를 잘게 잘라 세 종류의 조각을 만들었다.

       

       “이게 각각 텐트, 오두막, 그리고 성이에요.”

       “오호….”

       

       원래 X루마블로 치면 별장, 호텔, 빌딩이지만 이것도 현지화시키기로 했다.

       모양은 아주 단순화시켜서 텐트는 삼각뿔 모양, 오두막은 위를 뾰족하게 만든 사각 기둥, 성은 원기둥 모양으로 자른 뒤에 단검으로 가운데를 살짝 파 체스말의 룩 모양처럼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만드시는 걸 보니까 점점 더 게임이 궁금해지는데요.”

       “하하.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그냥 흔한 보드게임 중 하나니까요.”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죠. 아르도 아마 좋아할 거예요. 일단 모형만 봐도 엄청 좋아할걸요?”

       

       이후에도 잡다한 마무리 작업을 마친 나는 현장을 대강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보면 대체 뭔 작업을 하고 간 건지 궁금해하겠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고 그 주위에 곱게 잘려 나간 나무 조각들이 널려 있으니….

       

       ‘여튼.’

       

       나는 완성된 모형들, 그리고 황금열쇠, 도시 카드를 모아 보드 가운데 마련해 둔 공간에 차곡차곡 정리한 뒤, 통째로 집어들었다.

       

       “이제 아르한테 서프라이즈 해줄 차례네요.”

       “후후. 그러게요. 아, 레온 씨. 혹시 이 게임이요. 이름은 뭐예요?”

       

       그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르마블이에요.”

       

       ***

       

       나는 아르마블을 들고 살금살금 텐트로 돌아왔다. 

       

       ‘아르마블이라, 이름 참 잘 지었단 말이지.’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원래 X루마불의 마불은 Marble, 즉 구슬이라는 뜻이지만 내가 만든 아르마블의 마블은 Marvle이다.

       

       대충 경이로운 아르!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스륵.

       

       “쿠울, 쿨…. 뀨우.”

       

       아르는 세상 모르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아르가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고 깰 거고, 너무 가까이에서 작업을 하면 소음 때문에 깰 것이 분명했기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보람이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아르의 뚠뚠한 배를 쓰다듬었다. 

       

       “뀨우.”

       

       아르는 기분이 좋은지 자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아르의 따뜻하면서도 말랑한 젤리가 내 손등을 덮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다른 한 손도 아르의 배에 올렸고, 아르 역시 반대쪽 손을 휘적거리더니 내 손등 위에 올렸다. 

       

       “귀여워요….”

       

       실비아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그 상태에서 아르의 배 위에 자신의 손까지 올렸다. 

       

       “뀨웅….”

       

       이번에도 자신의 배를 만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려던 아르는, 순간 손이 세 개라서 당황한 듯 멈칫거렸다. 

       

       “뀨우…?”

       

       결국 부스스 눈을 뜬 아르는 나와 실비아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일어났어, 아르?”

       “우응…! 근데 레온이랑 온니는 왜 구러고 이써?”

       “응, 아르가 귀여워서 그러지.”

       “헤헤헤. 구래?”

       

       아르는 뭔진 모르겠지만 귀엽다는 칭찬을 듣고 헤 웃었다. 

       

       “아르 손 잡구 일으켜 조.”

       

       아르는 내가 배에서 손을 떼는 게 아쉬웠는지 손을 내밀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르를 잡고 쭉 당겨 일으켜 주었다. 

       

       “쀼우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 아르는 꿀잠을 자고 일어나 상쾌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침 햇살을 쐬러 나가려 했다. 

       

       그리고, 나가는 길목 한쪽에 놓여 있는 아르마블을 보고 멈춰 섰다. 

       

       “레온, 이게 모야? 처음 보는 게 놓여 이써!”

       

       나는 씩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응, 그거. 아르랑 같이 놀려고 내가 아침에 보드게임을 하나 만들어 왔어. 요즘 아르가 심심해 하는 거 같길래.”

       “보, 보드께임?!”

       

       아르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몸을 숙이고 눈을 크게 떴다. 

       

       “체쓰 가튼 고야?”

       “체스랑은 좀 달라. 아르랑 나랑 실비아 씨랑 셋이서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거든.”

       “다 가치 할 수 이써?”

       

       세 명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에 아르의 눈이 커졌다. 

       

       “응. 그리고 막 머리 쓰는 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함께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한 게임이지.”

       “머리 안 써두 대?”

       

       머리를 안 써도 된다는 말에 아르의 표정이 더더욱 밝아졌다. 

       

       아무래도 체스처럼 머리를 쓰는 게임은 내가 아르한테 상대가 안 되다 보니 즐기기가 어려웠는데, 그냥 가위바위보처럼 운빨로 하는 게임이라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좀 비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아르가 천재인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응. 물론 생각을 아예 안 하면서 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주사위를 던져서 말을 움직이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하거든.”

       

       나는 가운데에 정리된 것들 중 말로 사용할 세 개의 아르 모형을 꺼냈다. 

       

       “각자 요걸 하나씩 가지고 출발 지점부터 움직이는 거…아르야, 괜찮니?”

       

       설명을 듣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아르는 입을 떡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아르야?”

       

       내가 다시 한번 부르자 아르가 눈을 한번 깜박였다. 

       

       “이, 이, 이거를 레온이 직접 만든 고야?”

       

       아르의 시선은 내가 들고 있는 세 개의 작은 아르 모형에 가 있었다. 

       

       “응. 나랑 실비아 씨가 만들었지. 이중에 하나는 내가 만들었고 두 개는 실비아 씨가 만들었어. 어떤 게 내가 만든 거게?”

       “요거!”

       

       아르는 망설임 없이 회색으로 칠해진 모형을 가리켰다. 

       

       혹시 실비아 씨 것에 비해 디테일한 퀄리티가 부족한 게 티가 나서 바로 알아본 건 아니겠지.

       

       “요거 마자?”

       “응. 맞아. 그렇게 잘 만든 건 아니지만, 뭐 게임할 때 가볍게 쓰려고 만든 거니까….”

       “이거 아르 주면 안 대?”

       “으응…? 달라고?”

       “레온이 아르 모양으루 직접 만들어 준 거자나. 아르 지짜 감동 바다써!”

       

       아르는 내가 만든 모형을 손으로 조심스레 집어 가더니, 헤벌쭉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아끼는 한정판 피규어라도 보는 듯한 저 눈빛.

       

       이렇게 보니 커다란 아르가 쬐그만 아르를 들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웃음이 났다.

       

       ‘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공들여서 만들어 줄 걸 그랬네.’

       

       나는 피식 웃으며 아르의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당겼다.

       

       “당연히 가져도 되긴 하는데, 잃어버리지 말고 게임 할 때 가져오기만 해.”

       “물논이지! 절때 안 잃어버릴 고야!”

       

       아르는 말을 얼른 아공간에 넣은 뒤, 별안간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았다.

       

       “레온, 지짜 고마어! 히히. 너무 조아.”

       “그래, 그래. 나도 아르 좋아.”

       

       나는 덩치 큰 귀여운 아르를 마주 안아 주었다. 

       

       아르는 나를 놓자마자 다시 아공간에서 아르 모형을 꺼내 바라보았다. 

       

       “이거 바로 써 보구 시퍼! 지금 가치 게임 하쟈!”

       

       아르는 그렇게 말하며 보드의 스타트 지점에 모형을 내려놓았다. 

       

       “레온이랑 온니두 얼릉 앉….”

       

       꼬르륵.

       

       그 순간, 아르의 배에서 시계가 울렸다. 

       

       “…아르 배 안 고파! 게임 하쟈!”

       

       꼬르륵.

       

       “아르야, 토스트라도 먹고 하자.”

       “…우응.”

       

       우리는 간단히 빵을 구워 먹고 다시 앉아서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했다.

       

       “레온, 근데 이 게임은 이름이 모야?”

       

       나는 궁금하다는 눈빛의 아르를 마주 보며 게임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레오오온!!”

       

       나는 다시 아르의 와락 포옹 공격을 받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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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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