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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가, 룸미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최나경과 눈이 마주쳤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는 최나경의 눈 밑이 거뭇했다. 마치 며칠이나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한 번 생긴 우정은 영원하다면서…….”

        

       최나경이 짓씹듯이 말했다.

        

       ……우정이라니?

        

       최나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나경은 액셀을 밟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사실, 나는 정말로 숨이 막히고 있었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벌려진 입안 가득 들어있는 천 조각 때문에 숨을 편하게 쉴 수가 없었으니까.

        

       “아, 그렇구나. 대답할 수 가 없었구나. 그랬구나.”

        

       최나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혼자 마른 웃음을 지었다.

        

       마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다 잊어버린 사람 같아서, 최나경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기괴하게 느껴졌다.

        

       정상이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도 이미 오래전에 망가졌다.

        

       어쩌면, 사라보다도 훨씬 더 많이.

        

       “…….”

        

       웃음을 멈춘 최나경은 한동안 미소 지은 채 룸미러를 통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시야 위쪽에 달린 룸미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은 마치 무언가를 올려다보는 것 같아,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게 했다.

        

       만들어진 미소를 지은 채로, 최나경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빠앙, 하고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차 한 대가 빠르게 멈춰 서 있는 이 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제발.

        

       제발, 한 대라도 멈춰서기를.

        

       화가 잔뜩 나서 차를 멈추고, 서 있는 최나경의 차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기를.

        

       하지만 내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멈춰서는 차는 없었다.

        

       찰칵.

        

       뭔가 기계를 만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터 켜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잭나이프를 접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사실 최나경이 안전띠를 푸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는 내가 방금 망상한 그 행위들보다도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으읍! 으으으!”

        

       힘껏 소리를 쳐봐도,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런 억눌린 소리뿐이었다. 몸을 움직여서 최대한 뒤로 나가도, 결국 등이 차 시트에 닿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안전띠를 푼 최나경이 뒤를 돌아본다.

        

       무서울 정도로 굳은 표정이었다.

        

       “있지, 나는 계속 기다렸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무섭다.

        

       너무나 무서웠다.

        

       옆에 누군가가 있기를 바랄 정도로.

        

       하지만, 여전히 사라는 눈을 뜨지 않았다.

        

       “네가 나를 바라봐주기를,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기를.”

        

       사랑했다.

        

       사라는, 최나경을 사랑했었다.

        

       그걸 증오라는 감정으로 바꾸어버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나경이었다.

        

       그 욕심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욕심 때문에, 최나경은 사라를 망가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 기다렸는데. 누가 그렇게 욕해도. 내 생각을 부정해도. 무능하다고 욕을 먹으면서도. 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기다렸는데. 봐.”

        

       최나경은 떨리는 손으로 옆으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빗어 넘겼다.

        

       그 행동과 표정의 기괴함 때문에 두려웠을 뿐이지, 최나경은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눈 밑의 짙은 그늘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얼굴이 망가질 정도로 크게 뜬 눈을 하고 있는데도, 최나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오늘도 꾸미고 왔어. 너를 만날 때면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꾸몄어. 네가 나를 모르던 때에도. 네가 침대에 누워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아플 때도. 심지어 간호사 옷을 입어야 했을 때도. 나는 너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내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보이려고 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라가 어린 시절 그렇게 아프기라도 했던 걸까?

        

       최나경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직업이 간호사였던 걸까?

        

       “그런데, 그런데 너는, 그 남자와…….”

        

       “…….”

        

       대체, 무슨…….

        

       “하아.”

        

       이야기하던 최나경은, 한숨을 푹 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참,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람. 너는 아직 너가 아닌데.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래, 괜찮아. 도중에 조금 방해받아도 상관없어. 나는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으읍!”

        

       아니, 그럴 일은 없어.

        

       돌아가려고 해도, 내가 못 가게 막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사라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아, 그래.”

        

       최나경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 이걸 풀어주지 않았구나. 나도 참, 대답을 들으려면 당연히 먼저 풀어줬어야 했는데.”

        

       최나경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뒷머리 쪽으로 손을 가지고 갔다. 한동안 부스럭거리다가, 내 입에 꽉 묶여 있던 재갈이 풀렸다.

        

       최나경이 손가락 끝으로 내 입 안에 있던 천을 꺼냈다.

        

       “흐하…….”

        

       드디어 숨통이 트인 나는 그대로 공기를 흡입했다. 입이 여전히 침으로 번들번들했고, 최나경의 손에 내 타액이 조금 묻어 길게 늘어져 있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딸, 할 말이라도 있니?”

        

       최나경이 그렇게 물었다.

        

       턱이 얼얼했다. 하지만, 나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말했다.

        

       “……당신이 죽였잖아.”

        

       목소리는 갈라졌고, 턱이 제대로 다물어지지도 않아서 제대로 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뭐……?”

        

       “당신이 죽였다고!”

        

       나는 소리쳤다.

        

       무섭다.

        

       지금도 무서웠다.

        

       사라의 몸은 최나경보다 작았고, 힘도 약했다. 심지어 지금은 몸이 묶여있었다.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서웠다.

        

       이런 몸으로 최나경에게 잡혀있다는 것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내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런 상황에서 내 주변에 친구 하나 없다는 것이.

        

       의식 속에 계속 있어야 할 사라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없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소리쳤다.

        

       그 두려움을 모두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당신이 죽였어! 사라를 죽였다고! 사라가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그렇게 외로워했는데! 너를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그게, 그게…… 무슨, 소리니……?”

        

       최나경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사라가 죽었다니……? 너는……”

        

       “그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한껏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목이 따끔거렸다. 나는 최나경을 온 힘을 다해 노려보면서 말했다.

        

       “자주 오지도 않았으니까. 사라가 괴로운 것도 몰랐을 거야. 당신이 올 때마다 사라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당신을 원망하기도 전에 당신은 그냥 떠나버렸으니까. 아무도 없는 널따란 방에서 혼자 방치되어, 사라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냐, 너는…… 네가 사라잖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라는 죽었어.”

        

       나는 최나경을 노려보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이게 사라의 옛 기억과 최나경이 겹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겁에 질려서 한심하게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최나경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러 올 때까지 시간을 끌고 싶었다.

        

       “죽었다고. 당신한테 유서도 남겼고. 나중에 시간 나면 방에 놀러라도 오지 그래? 책상 서랍 제일 마지막 칸에 있으니까.”

        

       “……아냐, 사라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네가 사라인걸.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응? ‘사랑했었다’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이고…….”

        

       “아니야.”

        

       나는 눈을 깜빡였다. 눈에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몇 번 깜빡이고 나니, 최나경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충격받은 듯 떨리는 눈, 주름 잡힌 미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사라는 죽었어. 나는 사라가 아니고. 당신이 생각했던 그 계획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야.”

        

       잠깐 숨을 고르고, 덧붙이듯 말한다.

        

       “ ‘회장님.’ ”

        

       “뭐…….”

        

       “사라가 당신을 부르던 거랑 내가 당신을 부르던 거랑 다르잖아? 당신도 알고 있잖아?”

        

       “뭐…… 아냐, 아냐.”

        

       최나경이 내 얼굴을— 사라의 얼굴을 더듬었다.

        

       마치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냐, 사라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사라잖아. 우리 딸, 무슨,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네가 죽다니……?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진짜 끝까지 못 알아먹네.”

        

       그 손길을 목을 비틀어 어떻게든 피하며 말한 나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목은 조금 풀렸다.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이런 말을, 있는 힘껏 외칠 수 있을 정도로는.

        

       내가 지른 소리에 귀가 웅웅 울렸다. 내가 이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를 수 있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물론 이 차는 고급 외제 차다. 소리가 바깥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

        

       발이 있는 쪽에는 창문을 내리는 버튼이 있다. 거기 우연히라도 맞을 수 있도록.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납치—”

        

       하지만 내 말은 곧 멎을 수밖에 없었다.

        

       “으읍—”

        

       “아냐, 딸. 지금 딸은 엄마 앞에 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최나경은 그런 소리를 하면서, 나의 입을 막고 있었다.

        

       양손으로, 꽉.

        

       아니, 입뿐만이 아니었다. 그게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코까지 꽉 막혔다.

        

       “으읍!”

        

       온몸을 뒤틀었다. 숨쉬기가 힘들다. 머리를 돌려보려고 했지만, 최나경은 무게를 실어서 내 입을 꽉 막고 있었다.

        

       “쉬, 딸, 괜찮아.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전부 끝나있을 테니까.”

        

       최나경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온다.

        

       나를 덮듯이 그대로 나를 타고 엎드린 최나경은,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대로 끝나있을 거야. 그때는 우리 둘뿐일 테니까, 응? 그때 다시, 천천히 이야기부터 나누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여기까지 쓰다보니 최나경에게 빙의하는 것도 써보고 싶네요. 물론 그렇게 되면 긴 이야기라기보다는 옴니버스식으로 한 화씩 떨어진 단편집 비스므리하게 되겠지만요.

    혹시 주인공이 최나경에게 빙의당해 크싸레역ㅈ…이 아니라 딸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최나경과 어머니를 (여러가지의미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딸의 감동 스토리같은거 보고 싶으신 분들 계실까요?

    혹시 계신다면 후에 쓸 외전 목록에 추가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기왕 이렇게 된거 여러분이 보고 싶으신 외전이 있으시면 이 편 댓글로 달아주세요. 쭉 읽어보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그 댓글에 추천 눌러주세요! 추천 수가 높은 댓글을 중심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

    너무현란한몸놀림님, 후원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 만큼 글을 쓰며 보람을 느끼는 일은 없죠. 글을 쓰면서 요즘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기에, 저는 오늘도 신나게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글을 기대해주시는 분들, 기다려주시는 분들, 제 글을 읽고 응원해주시고 추천해주시는 분들, 모두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저 하루하루 좀비처럼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할 뿐인 저였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에 보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서 읽어주실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하루에도 수백명이 읽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조금 얼떨떨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여러분께서 저의 소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소설을 읽는데 쓰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따라랏쥐님, 후원 감사합니다!

    제 글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소재나 스토리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순수하게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쓰는 걸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평가해 줄 사람도 없고, 읽어주는 사람도 없고, 친구에게 보여줘도 끝까지 읽어주지 않으니 그저 제 글실력이 밑바닥이라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충동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던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의 글을 보고 재미있다고 해주시고, 추천을 해주시고, 리뷰를 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분들께 감사해서, 누군가가 저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계속 글을 썼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계속 늘어났고, 한 작품이 끝난 뒤인 지금은 여러분 덕분에 글로 돈까지 벌고 있네요.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싶었던 작가라는 꿈을, 여기서 이렇게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조금 얼떨떨합니다. 소설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아직도 매일매일이 너무 신기하고,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경이롭습니다. 저의 꿈을 이루어주신 여러분께서, 저의 글을 읽으시며 짧게나마 즐거움을 얻어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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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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