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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얼마나 무능한 인간인가, 라는 부분에 대하여 다시금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스트럼의 현 문제에 대하여 일단 무능왕을 찍고 보면 70%는 관련이 있다.

     나머지 30%도 찾아보면 무능왕이 간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회귀 전이든 후든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비록 무능왕은 노스트럼의 멸망, 나리아가 ’20살’이 되면서 바로 죽어버렸지만, 그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는 내 머릿속에 정확히 박혀있다.

     ‘어쩌면 좀 다를 수도?’

     이전의 무능왕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만족했을 것이다.

     세상 살이에 딱히 불만이 없었을 것이며, 갖고 싶었던 것을 가졌기에 온 세상이 자기 것인양 행동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7년 전, 지브롤터를 찾아온 날 아버지에게 면상을 얻어터지고 떠났던 걸 생각하면 무능왕은 회귀 이전보다 더 무능하다고 할 수 있다.

     

     가지고 싶은 걸 가지지 못한 자. 

     그 결핍은 속된 말로 질투와 분노-좀 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꼬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한 번.

     가만히 넘어가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되겠지.

     그러므로 나는 아침이 되어 재단 이사장실을 수습한 뒤, 즉시 어느 한 장소를 찾아나섰다.

     “할아버님. 아침 인사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경룡장 개시를 마음 먹은 것이냐?”

     아카데미, 총장실.

     “인사를 드리려고 온 건데, 인사드리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경계입니까?”

     “네가 그런 식으로 살갑게 나올만한 일이 그것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

     나의 정치적 할아버지, 윈체스터 대공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내년 1학기부터 ‘비룡 기승’과목을 개설하면서 동시에 경룡장을 만들어 기어이 도박판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그에 관해서 또 뭔가 사전승인을 받을 게 있더냐.”

     “있기는 한데-”

     “오냐. 그래. 한 번 해봐라.”

     “…예?”

     원래는 다른 목적으로 왔는데, 갑자기 예상 외의 소득을 얻게 되었다.

     “마도자동선을 봤다. 그리고 바이크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비룡과 속력 경쟁이 가능한 물건이라고 그랬지.”

     “예. 이번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올 예정입니다만….”

     “땅을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면, 부유마법을 걸든 뭘하든 일시적으로 비룡처럼 하늘을 날아갈 수도 있겠지.”

     “…어디서 뭐 들은 거 있습니까?”

     의심된다.

     아무래도 비약이 조금 심한 것 같고, 윈체스터 대공이 마음을 바꿀 계기로는 부족해보인다.

     “너만 알고 있거라.”

     윈체스터 대공이 집무용 책상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어떠한 방법인지는 파악 중이나, 제국은 반란군을 제압하면서 ‘공중강습’을 시도했다고 하더군.”

     “…….”

     윈체스터 대공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카르멘 모르가니아 이전에 본인이 직접 모르가니아의 첩보부대를 운영했던 장본인이다.

     반란이 일어났다.

     그걸 제압한 방법이 공중강습이었다.

     

     어떠한 채널로 정보를 얻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 뒷 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기는 하지만, 도박이라는 부분만 빼면 확실히 비룡 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경쟁 체제라는 건 분명하겠지.”

     “하, 하하….” 

     “그래도 그걸로 제국 탈러를 쓸어모으겠다는 그런 알량한 생각은 버리도록.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걸리지 말고, 용돈 정도로 쓰거라.”

     용돈이라.

     윈체스터 대공 입장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어찌됐든 감사합니다만, 오늘은 그 문제로 온 게 아닙니다. 물론 경룡장 부분은 진행을 하겠지만.”

     “그러면 왜 왔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인사 드리는 것도 안 됩니까?”

     “……용돈 필요할 정도로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텐데? 혹시 공식적인 용돈 지원이 필요하냐?”

     “공식적인 건 필요하지만 용돈이 아닙니다. 마침…잘 됐군요.”

     나는 슬쩍 뒤를 가리켰다.

     “바토리 부총장도 들으면 좋을 내용이니.”

     “어머, 노크 하기도 전에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네요?”

     끼이익.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오늘은 무슨 일?”

     “두 분께 상의를 드리고자 하는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상의? 뭐, 연금술 학과 건물을 따로 하나 더 증설하는 문제요?”

     “그것도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역시,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

     “제가 오늘 오후 중에 자리를 잠시 비웠다가 자정에 이사장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암살자 여럿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던 윈체스터 총장도, 들어오자마자 바로 자기 몫의 차를 우려내려던 바토리 부총장도 전부 표정이 굳었다.

     “무슨 농담이람.”

     “농담이 아닙니다.”

     나는 품에서 제법 넓은 종이봉투를 꺼냈다.

     “증거라고 몇 개 모아오기는 했지만, 그다지 증거로서는 의미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냄새가 빠지지 않게 잘 밀봉된 종이봉투.

     “시신으로부터 벗겨낸 옷입니다.”

     “……옷이라.”

     윈체스터 총장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시체는?”

     “제가 처리했습니다.”

     “어떻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법의 힘을 좀 빌렸죠.”

     때때로, 기승전마법은 도움이 된다.

     “옷을 싹다 벗겨봤는데 뭔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고문이라도 해서 정보를 캐묻거나 했을텐데, 워낙 급해서 전부 죽여버릴 수밖에 없었죠.”

     “…….”

     “괜히 이사장실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하면 학생들이 동요할 것 같아, 제가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그건…잘 했다.”

     

     블러디 엘프의 종족 특성과 감염된 흡혈귀가 태양빛을 쬐었을 때의 현상을 마법의 영향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건 아쉽군.”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왕국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여명기사단’의 검법을 사용하던 것을 제외하면.”

     “…….”

     그 기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건, 그냥 고발 아니더냐?”

     “추측으로 고발했다가 아니게 되면 무고가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상대는 왕실기사단이고.”

     “끄응….”

     “저는 시체에서 그 어떤 특징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아니다.

     “그저, 상급 기사의 실력과 바르셀 후작가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는 걸 제외하면.”

     미안할 것도 없다.

     ‘간 사람은 편하게 갔더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그 기사는 나를 습격했고, 나는 최소한의 자비로서 그를 기사로서 보내줬다.

     

     죽은 뒤에 당사자가 언데드로 부활해서 ‘내 정체를 잊어버리겠다며!’라고 따진다고 하더라도, ‘죽이려고 한 놈이 적반하장이구나’라고 받아치면 그만이다.

     누가 무능왕 따까리 아니랄까봐, 가정으로도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부하가 아닐 수 없다.

     “차마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기 곤란하지만, 검법에 바르셀 후작가의 검법이 묻어있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배려로, 직접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바로 온 겁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난 뒤에 곧장.”

     “…상대 중에서 가장 강했던 이의 수준은?”

     “뭐….”

     나는 슬쩍 바토리 부총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토리 총장.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으, 응. 그, 저는 밖에 나가있을까요?”

     “아뇨. 제국 유학생들의 책임자인 분인 만큼, 경계를 위해 들어주셔야겠습니다.”

     그래야 바토리 부총장이 이 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합스베르크 황태자에게 전할 테니까.

     “강자의 수준은 대략 상급 기사. 간신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간신히?”

     “종이 한 장 차이였습니다.”

     수십 번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다녔지만, 그것도 분명 종이 한 장 차이다.

     “머리색과 눈색은…위장마법을 사용했다면 의미는 없겠군. 오히려 바르셀 후작가의 검법이 느껴진다는 게 단서인 건가.”

     “말 그대로, 느껴졌다는 것 뿐입니다.”

     “…후보가 넷 정도 되는데.”

     윈체스터 총장이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잠시 눈을 좌우로 굴렸다.

     “카인 경, 레물라스 경, 라이오넬 경, 페르딘 경. 한 명 더 추가를 하자면 지오반니 경까지 다섯인가….”

     다섯 중 하나.

     역시 윈체스터 대공이다.

     “죽인 게 확실하지? 자비를 베풀어 살려두거나 그런 건 아닌게지?”

     “예. 확실하게 죽였습니다.”

     “조만간 사람을 시켜 초상화를 몰래 준비시키마. 대조를 통해 파악하면 누군지 알 수 있겠지.”

     “초상화…?”

     가만히 듣고 있던 바토리가 의아하다는듯 손을 들었다.

     “사진 없나요, 총장님?”

     “제국은 어떨지 몰라도, 왕국의 기사들은 얼굴형태를 기록으로 남기는 의무는 없소.”

     제국은 철저하게 국민들을 통제하는 편에 가깝고, 사진기의 발명은 전국민의 얼굴을 관공서 등에서 자료로 확보하게 되는 행정적 편의를 가져왔다.

     그것이 편의인지 아니면 통제인지는 애매하지만, 적어도 범죄자의 얼굴을 목격한 이가 범죄자를 특정하기에는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

     기억과 사진의 대조.

     왕국은 하나하나 모두의 사진은 없기에, 초상화로 대체할 뿐이다.

     “총장님? 아까 이름이 나온 기사들, 전부 황금여명 기사단 소속인가요?”

     “셋은 그렇고, 나머지는 아니오. 황금여명 안에서도 파벌이 또 여러 개로 쪼개져있으니.”

     “흐흥….”

     바토리 부총장이 어딘가 머뭇거리다가 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 이사장님을 죽이려고 한 괘씸한 녀석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죠.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부총장이?”

     “예전부터 취미로 사진을 좀 찍어두고는 그랬거든요. 지나가다가 혹시나 그 사람들이 찍힌 사진이 있거나 그러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제국 그림자들이 도촬한 사진들이겠지만, 나도 그렇게 윈체스터 대공도 딱히 그 부분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후우…. 이해할 수 없군.”

     윈체스터 대공이 어딘가 연초라도 태우고 싶은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짜증을 냈다.

     “그레이. 배후에 대해서는 혹시 짐작하고 있느냐?”

     “예. 그래서 할아버지를 찾아온 겁니다.”

     윈체스터 대공.

     무능왕의 스승이자 마스터.

     이제는 내가 더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 가까운.

     “제국의 여인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습니까?”

     “…….”

     “그것이 왕가에 의해 제거당하거나 축출당할 만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아. 면목이 없구나.”

     “…세상에.”

     바토리 부총장도 암살의 배후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 시신이 혹시 남아있어요? 이사장님? 그게 없으면 암살 시도에 대한 증거영상이라거나?”

     “아쉽게도 제 방에는 영상을 기록하는 마법이 따로 없습니다.”

     “…습격을 당했다는 것만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증거가 없으면 그저 의혹일 뿐이니까.”

     “예. 윈체스터 총장께서 말한 사람 중 누구 한 명은 갑자기 행방이 묘연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장기 임무를 나간다거나 하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게 되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암살당할뻔 했다는 증거가 없죠.”

     공식적으로는.

     “죄송합니다. 한 명 정도는 제압하여 살려둘 걸 그랬습니다.”

     “그레이 네가 죄송할 건 없지. 하아아….”

     윈체스터 대공이 두 손을 덮으며 길게 탄식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이렇게도 길게 느껴질 줄이야.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유독 길게 느껴지는구나.”

     국왕이 바뀌기 전까지, 앞으로 2년 반.

     “제국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고 죽이려고 들다니. 미친 건가, 진짜.”

     “…….”

     내가 그런 쪽으로 유도를 하기는 했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윈체스터 대공은 무능왕의 본심을 완벽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뭐? 자기가 처음으로 선물받은 게 아니라는 거에 화가 나서 너를 죽이려고 했다고? 그레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군왕이라는 자가 그렇게까지 알량하거나 치졸한 인간은 아니란다.

     라고 답이 나올 게 뻔한데.

     “이거…잘못하면 공식적인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겠는데요. 왕국 내부의 권력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원인이 친제국파에 대한 숙청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까.”

     보라.

     바토리 부총장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한 인간의 옹졸함과 인색함이라는 평면적인 추측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레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호위를 좀 늘렸으면 합니다. 저도 그렇긴 하지만, 주로 제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치적인 문제, 국내는 윈체스터 대공이 움직일 것이다.

     국가간 문제에 대해서는 바토리 부총장의 연락을 받은 합스베르크가 움직일 것이다.

     “저는 제 사람을 위험에서 지킬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귀찮은 일은 정치적 어른들에게 맡기고, 나는 강해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다음 날.

     “오랜만이군, 그레이.”

     “…합스베르크 전하?”

     경룡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찾은 총장실에는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소파에 앉아 나를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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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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