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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2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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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이 꽤 늘었군. 축하한다.”
    “아,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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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저 부대 단장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 노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굳어있던 노아의 표정이 살그머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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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무슨 일로…?”
   “그렇게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도 발걸음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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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노아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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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부대원들이 소란을 듣고 찾아온 기사들을 돌려보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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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뚝뚝하다 못해 차갑다 느껴질 정도로 무감정한 단장의 목소리 속에서 노아는 어렵지 않게 숨겨진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노아는 선뜻 미소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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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단장이 이만 돌아가자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노아가 굳은 얼굴로 단장을 붙잡았다. 단장이 무심한 얼굴로 노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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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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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한참동안 말을 고른 끝에 참았던 숨을 뱉어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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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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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단장이 눈썹을 까딱거린 후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척들이 사라졌다. 대기하고 있던 레인저 부대가 야영지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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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침묵이 내려앉은 숲속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꼭꼭 숨겨놓고 있던 속내를 꺼내놓으려니 긴장감 때문에 손바닥에 땀이 찼다. 당장이라도 말을 무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지만, 입술을 깨물어 충동을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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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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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제 욕망을 자각한 이후부터 노아는 매일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욕망에 담긴 질척한 애정과 추악한 욕심이 적나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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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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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보면 숭고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건 제 죽음이 누군가에게 족쇄가 되어, 상처가 되어 영원히 기억되길 원하는 섬뜩한 욕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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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머릿속에 천사와 악마가 번갈아 가면서 속삭이는 듯한 혼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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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가 속삭였다.
    “그 욕망은 그저 타인에게 낙인을 새기고 싶다는 집요한 집착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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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악마가 속삭였다.
    “결국은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일 뿐인데 그 정도는 욕심내도 좋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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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때는 천사의 의견이 악마의 의견이 되고, 악마의 의견이 천사의 의견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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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혼란에 잠겼다. 제 욕망은 ‘죄’인가? ‘숭고한 희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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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이 깊어질수록 줄리아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제국에 도착한 이후 자주 잠에 빠져들었던 줄리아나는 어느 순간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쭉 잠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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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적으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줄리아나의 근본은 ‘마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그 탓에 마기의 양이 적다 못해 제로에 가까운 제국에선 오랜 시간 깨어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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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언제나 의지해오던 줄리아나가 아닌 레인저 단장을 붙잡고 상담을 부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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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은 입이 무겁고 지혜가 깊어 다양한 사정을 가진 레인저 부대원들의 상담자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노아도 용기를 내어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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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건 의지와 신념 그리고 시간… 자신의 욕망을 마주할 용기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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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공작이 건네주었던 피 같은 조언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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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고민을 털어내면 어쩌면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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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인가 싶긴 하지만, 공작이 건넨 조언을 떠올려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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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 단장이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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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걷지.”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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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로 정돈된 길은 없었지만 그나마 평평한 길을 따라 이동했다.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을 때쯤 노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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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님은 어떤 이유로 강해지고 싶으셨나요?”
    “이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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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은 그 이상의 말을 붙이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말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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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래,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검을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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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조 섞인 목소리 속에 숨기지 못한 역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자신을 향한 혐오감과 후회 따위의 역한 감정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말속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는 무게에 노아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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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단장의 상처에 노아는 없던 용기조차 솟아났다. 이 사람이라면 내 추악한 욕망을, 마음을 차가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해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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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님… 사실 저에겐 남들에게 말 못한 기이한 욕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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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설임을 걷어내자 둑이 터진 것처럼 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직접적으로 ‘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담진 않았지만, ‘지금보다 강해져 누군가를 지키다 대신해 죽고 싶다.’라는 욕망만큼은 적나라하게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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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장으로 한껏 굳어있던 어깨가 말을 이어갈수록 천천히 힘이 풀려 아래로 축 늘어졌다. 차마 단장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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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심판대 위에 올라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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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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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과 노아의 살기로 인해 숨죽이고 있었던 벌레들이 언제부턴가 울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침묵이 내려앉은 두 사람 사이에 벌레 울음이 채워나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노아가 재차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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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욕망에 대한 판결이 ‘지옥’으로 정해져 있다 단정 지은 것처럼 죄악감이 담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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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제 욕망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길 끝이 잔혹한 낭떠러지만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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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자신이 품은 욕망이 ‘죄’라는 판결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시선을 들어 단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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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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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노아가 아닌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쓰고 애달파서 노아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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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의 욕망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판단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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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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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가 지키려고 하는 존재를 이 세상의 모든 악의로부터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 선이니 악이니 하는 고민은 그래, 굉장히 -… 오만한 고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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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눈앞에 어떠한 상처들이 어그러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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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으로 소중하다고 여기던 존재가 사라져버리면 자네의 고민은 무용한 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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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을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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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라. 그 어떤 후회도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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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한 표정 속에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 보였다.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노아는 숨을 죽인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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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단장은 먼저 돌아가 보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노아는 단장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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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님께선 이미 소중한 사람을 수없이 잃었던 탓에 그런 조언을 해주신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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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조언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제 욕망이 선한 건지 악한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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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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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단장의 조언이 지금의 자신에겐 별 쓸모없는 조언이라 여겼지만 -…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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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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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힌 리안과 그런 리안이 제 곁을 떠나는 게 무서운 아이리스, 틈이 보일 때마다 리안을 홀랑 잡아먹을 생각뿐인 귀여운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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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사람은 이동하는 내내 붙어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 리안이 제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말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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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이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싫어!”
    “오빠가 불편해하잖아!”
    “쭈인님 안 불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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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애처롭게 쳐다봤었지만, 이젠 절대 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웃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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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난 괜찮아. 안 불편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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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 불편하다. 몸도 얼굴도 빠르게 성숙해지는 수인답게 여기저기가 많이 닿아서 불편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붙어 다니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코피를 쏟았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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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에도 제스를 제 곁에 꼭 붙여두고 있는 건 씩씩거리는 아이리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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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없으면 곧바로 분위기가 무거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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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없을 때의 아이리스는 어디서 ‘절대 떠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적힌 계약서라도 가져와 지장이라도 찍게 할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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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힌 상황이다 보니 계속 추궁당하면 술술 불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아이리스의 집요한 시선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스를 방패막이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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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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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 처럼 묘하게 말랑말랑하고 귀엽게 풀어진 얼굴을 바라보며 붉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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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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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을 어린아이 그대로! 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제스는 순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 순진한 제스의 반응에 진득한 스킨쉽도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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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 이건 별 의미 없이 하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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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져 리안은 방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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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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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는 제스의 노림수였다. 방심한 먹잇감이 틈을 보이는 순간 포식자 제스가 달려들어 꿀꺽해버릴 것이다. 찰나의 순간 제스의 얼굴 위로 요염하면서도 위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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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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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발견한 건 오로지 아이리스 뿐이었다. 제스는 리안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제 머리를 쓰다듬기 편하도록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순하고 조금 멍청한 강아지 같은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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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리안은 제스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니멀 테라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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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리안의 시선이 제 얼굴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눈웃음을 치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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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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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아이리스는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욱하는 반응을 몇번이고 보였지만 패배하는 건 아이리스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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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아이리스가 제 감정을 ‘사랑’이 아닌 ‘가족애’로 착각한 탓이 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운데 두고 싸우는 것과 다른 여자에게 제 오빠를 내어줄 수 없다. 외치는 ‘브라콤’은 미묘한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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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리안과 진하게 스킨쉽을 하려고 해도 ‘가족’이기 때문에 일정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단어가 도리어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아이리스는 한쪽 손을 봉인 한 채 싸움에 참여한 검사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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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속이 터져나가고 제스의 스킨쉽이 조금씩 선을 넘어가려 할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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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이 코 앞이다! 다들 정비할 준비를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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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려 퍼지는 병사의 목소리에 리안은 거쳐왔던 작은 마을들을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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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상태가 좋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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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내내 눈이 내리고 땅이 굳어 농사를 짓기도 힘든 곳이다 보니 풍족한 마을을 찾기 힘들었다. 마왕군과의 싸움을 위해 제국이 전쟁 준비에 들어가면서 척박한 환경은 더욱 끔찍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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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태어난 곳에서 살다 죽는 걸 당연시하는 폐쇄적인 문화까지 있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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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은 기사와 병사들을 풀어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를 나누어주고 소모품을 대가로 받았다. 동시에 마을에서 무기와 물자를 정비하며 근처 몬스터들을 토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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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신성력 덕분에 부상자가 걱정이 없어 모두 적극적으로 명령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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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이라도 붙어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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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만 않으면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줄 수 있었다. 만능은 아니기에 굶주린 몸이 통통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 적어도 밥을 씹어 삼킬 힘과 소화할 힘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었다.
    ​
    ​
    시간이 흘러 점차 가까워진 마을은 리안의 걱정을 부숴버리다 못해 ‘당황’으로 바꾸기 충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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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차!”
    “어이! 거기 삐뚤어졌잖아!”
    “식사하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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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릇푸릇한 녹색 풀들과 괭이 형태의 도구로 갈려진 비옥한 땅, 굶주리긴커녕 살이 보기 좋게 오른 주민들, 겉옷 하나 없이 얇은 셔츠에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일꾼들.
    ​
    ​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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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작 조차 따스한 마을의 모습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1000자나 늘어나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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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꽤 늘었군. 축하한다.”

“아, 단장님.”

레인저 부대 단장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 노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굳어있던 노아의 표정이 살그머니 풀렸다.

“여긴 무슨 일로…?”

“그렇게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도 발걸음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아..”

그 말에 노아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다른 부대원들이 소란을 듣고 찾아온 기사들을 돌려보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무뚝뚝하다 못해 차갑다 느껴질 정도로 무감정한 단장의 목소리 속에서 노아는 어렵지 않게 숨겨진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겉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노아는 선뜻 미소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단장이 이만 돌아가자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노아가 굳은 얼굴로 단장을 붙잡았다. 단장이 무심한 얼굴로 노아를 돌아보았다.

“저… 혹시…”

노아는 한참동안 말을 고른 끝에 참았던 숨을 뱉어내듯 말했다.

“상담..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에 단장이 눈썹을 까딱거린 후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척들이 사라졌다. 대기하고 있던 레인저 부대가 야영지로 돌아간 것이다.

노아는 침묵이 내려앉은 숲속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꼭꼭 숨겨놓고 있던 속내를 꺼내놓으려니 긴장감 때문에 손바닥에 땀이 찼다. 당장이라도 말을 무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지만, 입술을 깨물어 충동을 참아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얼마 전 제 욕망을 자각한 이후부터 노아는 매일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욕망에 담긴 질척한 애정과 추악한 욕심이 적나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죽고 싶다.

어찌 보면 숭고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건 제 죽음이 누군가에게 족쇄가 되어, 상처가 되어 영원히 기억되길 원하는 섬뜩한 욕망뿐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천사와 악마가 번갈아 가면서 속삭이는 듯한 혼란을 느꼈다.

천사가 속삭였다.

“그 욕망은 그저 타인에게 낙인을 새기고 싶다는 집요한 집착일 뿐이야”

그러자 악마가 속삭였다.

“결국은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일 뿐인데 그 정도는 욕심내도 좋지 않겠어?”

어떤 때는 천사의 의견이 악마의 의견이 되고, 악마의 의견이 천사의 의견이 되기도 했다.

노아는 혼란에 잠겼다. 제 욕망은 ‘죄’인가? ‘숭고한 희생’인가?

혼란이 깊어질수록 줄리아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제국에 도착한 이후 자주 잠에 빠져들었던 줄리아나는 어느 순간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쭉 잠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줄리아나의 근본은 ‘마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그 탓에 마기의 양이 적다 못해 제로에 가까운 제국에선 오랜 시간 깨어있지 못했다.

노아가 언제나 의지해오던 줄리아나가 아닌 레인저 단장을 붙잡고 상담을 부탁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단장은 입이 무겁고 지혜가 깊어 다양한 사정을 가진 레인저 부대원들의 상담자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노아도 용기를 내어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다.

‘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건 의지와 신념 그리고 시간… 자신의 욕망을 마주할 용기라고 했었지.’

노아는 공작이 건네주었던 피 같은 조언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 고민을 털어내면 어쩌면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쉽게 넘어설 수 있는 벽인가 싶긴 하지만, 공작이 건넨 조언을 떠올려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 단장이 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걷지.”

“..! 예!”

두 사람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로 정돈된 길은 없었지만 그나마 평평한 길을 따라 이동했다.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을 때쯤 노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단장님은 어떤 이유로 강해지고 싶으셨나요?”

“이유라… ”

단장은 그 이상의 말을 붙이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말이 뒤를 이었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래,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검을 들었지.”

자조 섞인 목소리 속에 숨기지 못한 역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자신을 향한 혐오감과 후회 따위의 역한 감정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말속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는 무게에 노아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묻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단장의 상처에 노아는 없던 용기조차 솟아났다. 이 사람이라면 내 추악한 욕망을, 마음을 차가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해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단장님… 사실 저에겐 남들에게 말 못한 기이한 욕망이 있습니다.”

망설임을 걷어내자 둑이 터진 것처럼 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직접적으로 ‘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담진 않았지만, ‘지금보다 강해져 누군가를 지키다 대신해 죽고 싶다.’라는 욕망만큼은 적나라하게 입에 담았다.

긴장으로 한껏 굳어있던 어깨가 말을 이어갈수록 천천히 힘이 풀려 아래로 축 늘어졌다. 차마 단장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심판대 위에 올라온 것만 같았다.

찌르르.

공작과 노아의 살기로 인해 숨죽이고 있었던 벌레들이 언제부턴가 울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침묵이 내려앉은 두 사람 사이에 벌레 울음이 채워나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노아가 재차 입을 열었다.

노아는 욕망에 대한 판결이 ‘지옥’으로 정해져 있다 단정 지은 것처럼 죄악감이 담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 제 욕망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길 끝이 잔혹한 낭떠러지만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품은 욕망이 ‘죄’라는 판결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시선을 들어 단장을 바라보았다.

“…!”

그는 노아가 아닌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쓰고 애달파서 노아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자네의 욕망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판단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지키려고 하는 존재를 이 세상의 모든 악의로부터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지. 선이니 악이니 하는 고민은 그래, 굉장히 -… 오만한 고민이지.”

그가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눈앞에 어떠한 상처들이 어그러져 간다.

“진정으로 소중하다고 여기던 존재가 사라져버리면 자네의 고민은 무용한 것이 될 테니까.”

단장을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라. 그 어떤 후회도 없도록.”

무심한 표정 속에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 보였다. 소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노아는 숨을 죽인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단장은 먼저 돌아가 보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노아는 단장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단장님께선 이미 소중한 사람을 수없이 잃었던 탓에 그런 조언을 해주신 거겠지.’

그의 조언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제 욕망이 선한 건지 악한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줄리아나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노아는 단장의 조언이 지금의 자신에겐 별 쓸모없는 조언이라 여겼지만 -…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었다.

***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힌 리안과 그런 리안이 제 곁을 떠나는 게 무서운 아이리스, 틈이 보일 때마다 리안을 홀랑 잡아먹을 생각뿐인 귀여운 제스.

세 사람은 이동하는 내내 붙어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 리안이 제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말이 옳았다.

“너 이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싫어!”

“오빠가 불편해하잖아!”

“쭈인님 안 불편하죠?”

제스가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애처롭게 쳐다봤었지만, 이젠 절대 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웃음쳤다.

“아이리스 난 괜찮아. 안 불편해. 하하하..”

솔직히 말해 불편하다. 몸도 얼굴도 빠르게 성숙해지는 수인답게 여기저기가 많이 닿아서 불편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붙어 다니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코피를 쏟았을지 몰랐다.

그럼에도 제스를 제 곁에 꼭 붙여두고 있는 건 씩씩거리는 아이리스 때문이었다.

‘제스가 없으면 곧바로 분위기가 무거워지니까…’

제스가 없을 때의 아이리스는 어디서 ‘절대 떠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적힌 계약서라도 가져와 지장이라도 찍게 할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힌 상황이다 보니 계속 추궁당하면 술술 불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아이리스의 집요한 시선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스를 방패막이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강아지 처럼 묘하게 말랑말랑하고 귀엽게 풀어진 얼굴을 바라보며 붉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히이..”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을 어린아이 그대로! 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제스는 순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 순진한 제스의 반응에 진득한 스킨쉽도 익숙해져 갔다.

‘그야 이건 별 의미 없이 하는 걸 테니까.’

그리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져 리안은 방심(?)하게 되었다.

“히…”

그리고 이는 제스의 노림수였다. 방심한 먹잇감이 틈을 보이는 순간 포식자 제스가 달려들어 꿀꺽해버릴 것이다. 찰나의 순간 제스의 얼굴 위로 요염하면서도 위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너어..”

이를 발견한 건 오로지 아이리스 뿐이었다. 제스는 리안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제 머리를 쓰다듬기 편하도록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순하고 조금 멍청한 강아지 같은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탓에 리안은 제스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니멀 테라피(?)에 빠져들었다.

제스는 리안의 시선이 제 얼굴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눈웃음을 치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왜에?”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아이리스는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욱하는 반응을 몇번이고 보였지만 패배하는 건 아이리스 쪽이었다.

이는 아이리스가 제 감정을 ‘사랑’이 아닌 ‘가족애’로 착각한 탓이 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운데 두고 싸우는 것과 다른 여자에게 제 오빠를 내어줄 수 없다. 외치는 ‘브라콤’은 미묘한 간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리안과 진하게 스킨쉽을 하려고 해도 ‘가족’이기 때문에 일정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단어가 도리어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아이리스는 한쪽 손을 봉인 한 채 싸움에 참여한 검사나 다름없었다.

아이리스의 속이 터져나가고 제스의 스킨쉽이 조금씩 선을 넘어가려 할 때쯤.

“마을이 코 앞이다! 다들 정비할 준비를 하도록!”

울려 퍼지는 병사의 목소리에 리안은 거쳐왔던 작은 마을들을 떠올려보았다.

‘전부 상태가 좋지 못했지.’

사계절 내내 눈이 내리고 땅이 굳어 농사를 짓기도 힘든 곳이다 보니 풍족한 마을을 찾기 힘들었다. 마왕군과의 싸움을 위해 제국이 전쟁 준비에 들어가면서 척박한 환경은 더욱 끔찍하게 변했다.

평생을 태어난 곳에서 살다 죽는 걸 당연시하는 폐쇄적인 문화까지 있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공작은 기사와 병사들을 풀어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를 나누어주고 소모품을 대가로 받았다. 동시에 마을에서 무기와 물자를 정비하며 근처 몬스터들을 토벌했다.

리안의 신성력 덕분에 부상자가 걱정이 없어 모두 적극적으로 명령을 수행했다.

‘숨이라도 붙어있어야 할 텐데.’

죽지만 않으면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줄 수 있었다. 만능은 아니기에 굶주린 몸이 통통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 적어도 밥을 씹어 삼킬 힘과 소화할 힘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차 가까워진 마을은 리안의 걱정을 부숴버리다 못해 ‘당황’으로 바꾸기 충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헛차!”

“어이! 거기 삐뚤어졌잖아!”

“식사하고 하세요!”

푸릇푸릇한 녹색 풀들과 괭이 형태의 도구로 갈려진 비옥한 땅, 굶주리긴커녕 살이 보기 좋게 오른 주민들, 겉옷 하나 없이 얇은 셔츠에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일꾼들.

“이게 무슨…”

공작 조차 따스한 마을의 모습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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