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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손님? 왜 그러세용?”

         

       “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청이 서책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다른 색도 아니고 무려 금색의 무공이 갑자기 떡하니 나타나니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비급 상인, 신투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원래 가늘었던 실눈이라서 거기다 더 가늘게 뜬다고 해서 누군가 알아차릴 정도로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대충 제목이나 훑고 툭 던져놓던 년이 갑자기 조심스레 각 맞춰 내려놓는데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음? 왜 그러실깡? 앗, 춘풍무영. 이걸 알아보시다니, 안목이 대단하시넹?”

         

       “알아보고 자시고, 펼쳐보지도 않았는데요.”

         

       “뭔가 눈치채신 거 아닌강? 금 화백의 전설적인 춘화집이잖아용. 알아보시다닝. 자자, 여기를 한 번 보세용. 어때용, 야하죵?”

         

       신투가 제멋대로 책을 펼쳐 들이밀었다.

       뒤엉킨 남녀의 찐한 정사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이 양 책장으로 쭉 펼쳐졌다.

         

       그에 신투가 기대한 장면은 둘 중 하나였다.

       구결을 찾아 진지하게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모르거나.

       하지만 청의 반응은 둘 다 아니었다.

         

       “이건 너무 옛날 동양풍 그림체네요. 이걸로 흥분하려면 상상력이 좀 많이 필요하겠는데.”

         

       그야 여기가 옛날 동양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의매가 보기엔 어때?”

         

       “양쪽 오금을 잡고 어떻게 넣어? 그럼 양물이 한 자가 넘어야 하는데……. 게다가 저럼 무릎 박살 나. 못 써.”

         

       “음, 손님들, 뭔가 느껴지는 게 없으세용?”

         

       “딱히?”

         

       신투가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입 안으로 뭐라 웅얼거리는데, 정체 모를 화경 고수를 경계하고 있던 청이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이상하다. 알아본 줄 알았는데. 아닌가. 시벌, 후계자 찾다가 먼저 늙어서 뒈지겠네, 하고.

       청이 곧장 생각했다.

         

       아. 여기 더 있으면 안 되겠구나.

         

       청이 서책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혹시 다른 무공도 있지 않을까 알뜰하게 확인해 본 것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된 비급은 더 없는 모양.

         

       그동안 청의 광고 효과인지 어쨌는지, 상인이 몇 권을 더 강매하여 금자를 아주 생으로 벌어들이더라.

       그걸 보니 후계자도 나빠 보이진 않고.

         

       사부님이 아니었으면 후계자 했을지도?

       그런데 후계자면 뭐지?

       불량 상인의 후계자인가?

       선업으로 기운 것을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강매의 영향인지 처음 봤을 때보다 숫자가 둘이나 줄어들기는 했지만.

         

       “일각 다 지났죠? 이제 가도 되죠?”

         

       “일각만 더 있을래용? 두 배로 줄게용.”

         

       “그래봐야 동전 네 개잖아요……”

         

       “그럼 열 배?”

         

       “그래봐야 스무 갠데, 음. 일각에 스무 개면 나쁘지는 않지만, 원래 볼일이 있어서 가 봐야겠어요. 볼일 마치고 시간 남으면 또 들르지, 뭐.”

         

       “그래용. 그래두 덕분에 좀 팔았넹, 자. 기분이당. 성과급이에용.”

         

       신투가 동전을 하나 튕겨주었다.

         

       “에이, 거지한테도 동전 하나는 안 주겠어요. 기왕 쓰려면 통 크게 써요. 괜히 귀한 동전만 버리고 욕만 먹지.”

         

       “동전 귀한 줄 아니 곧 부귀하시겠어용. 잘 가요오옹.”

         

       신투가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척을 했다.

       뒤이어 셋이 모습이 인파 속에 사라지고 나서야 가만히 중얼거렸다.

         

       “천하의 절세미인과 복신적을 가진 여인이라. 뒤에 있던 놈은 하인인가?”

         

       신투가 건넨 동전에는 특수한 추종향이 묻어 있어서 한 번 쥐고 나면 멀리서도 추적을 가능하게 하는 표식이다.

       바가지 기본에 물가도 비싼 흑시에서 동전 쓸 일이 없으니 버리지 않는다면야 다른 이에게 흘러갈 일도 없다.

       이야기를 해 보니 동전 버릴 처자도 아니고.

         

       “그런데 복신적이라. 역대 신투가 가져본 적이 없는 보물이지.”

         

       신투가 히죽 웃었다.

       그래 놓고는 정작 제 무공을 도둑맞은 줄도 모르는 신투였다.

         

         

       —-

         

         

       아상 모인 데서 만나자고 했건만, 일행 둘이 구경 삼매경에 빠졌는지 어쨌는지.

       사실, 청이 딴짓한 시간이 겨우 일각 무공서 파는 이상한 상인에게 붙들린 정도였다.

       둘이야 아직 한참 독물/고미술품 보며 고르는 중일 터다.

         

       굳이 기다릴 필요 없이 일이나 먼저 봐야겠다 하고 어슬렁거리다 보니, 마침내 나면이가 한 끼 먹여준 값을 해냈다.

         

       “저 자입니다. 노인네 손주 사간 아상이 바로 저 사람입니다.”

         

       청이 나면이의 뒷통수를 팍 때렸다.

         

       “말은 바로 하자? 사간 게 아니라 너가 팔았겠지. 너가 자리 잡고 팝니다 하고 있었던 거 아니잖아.”

         

       “그, 그렇습니다……”

         

       청이 나면이가 가리킨 아상에게 다가갔다.

       얼굴 반절에 화상 자국이 남은 험악하게 생긴 사내였다.

       강호 출도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청은 사람 얼굴만 보고 쫄기에는 너무 고수였다.

         

       적어도 상대가 화경 정도는 되어야 목도 좀 집어넣고 어깨도 수그리고 눈치도 살살 보고 하지.

         

       하필이면 악업이 다른 인신매매범보다 반 배 정도 높은 제일 사악한 놈이었다.

       이 멍청한 사파 새끼가 애를 팔아도 왜 이딴 놈한테 팔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야, 거기 왕흉터. 인신매매범.”

         

       “날 부르는 건가? 요즘 계집은 겁도 없나? 흠, 왜? 몸이라도 팔러 왔나? 판다고 하면 극상으로 쳐서 금자를 관으로 줄 수는 있겠군.”

         

       “그럼, 오만 관쯤 내야겠네. 됐고. 댁이 사간 청년을 하나 돌려받으려고 왔는데.”

         

       반 노인의 손주라길래 무슨 꼬맹이인 줄 알았더니 올해 십구 세의 건장한 청년이란다.

       아직 성년이 아니니 애라고 할 수는 있겠다.

         

       무림인의 혼인이 많이 늦어서 그렇지, 양민들에게 노인네 손주치고 열아홉밖에 안 되면 어린 편이 맞기는 하다.

       머리가 온통 흴 정도면 증손주를 기다리고 있거나 한참 재롱을 보거나 할 때였으니까.

         

       어쨌거나, 청의 말에 왕흉터가 실실 웃었다.

         

       “뭐, 금전만 넉넉하면 문제야 없지.”

         

       “반자권이라고, 철방 손주놈에 키는 대충 나보다 조금 작을 거고, 눈썹 두껍고 얼굴은 까무잡잡하니 점이 아주 많다고 하던데.”

         

       “언제 팔았는지부터 말해 보지?”

         

       굳이 마지막 단어를 강조하는 것이 무슨 열 살 꼬맹이도 아니고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야, 언제야?”

         

       “이제 열흘 쯤 되었을 겁니다.”

         

       “뭐, 열흘? 어이가 없어서 참, 내. 우리가 무슨 빈민 구제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상품을 열흘이나 데리고 다니며 먹이고 재워야겠나?”

         

       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역시 쉽게 안 가네.

         

       “이미 팔았다고?”

         

       “철방 아들놈이라면 기억은 나는구만. 쇠질 좀 배웠다고 그래도 값이 좀 나갔지.”

         

       “누구한테 팔았는데?”

         

       그러자 왕흉터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고객님 정보는 지켜드려야지. 국법으로 노비를 금지하는데 누가 사갔다고 털어놓아서야 이 바닥에서 장사 하고 살겠나.”

         

       “음. 얼마면 되는데? 금자 열 개?”

         

       나름 흥정의 기술이었다.

       열 개 부르면 대충 스무 개쯤 되받아치지 않을까 하고.

       할아범이 준 금자가 넉넉하니 이럴 때 쓰지 않으면 뭐 어디다 쓸까.

         

       그러나 청의 계획이 바로 와장창이었다.

         

       “말 못 들었나? 고객님 팔았다간 이쪽 바닥도 끝이라니까? 그깟 푼돈 좀 벌자고 목숨 버리는 병신도 있나?”

         

       “푼돈이라니. 금자가 열 개인데?”

         

       “금자가 아니라 금으로 열 관이어도 안 되지. 말했잖나. 목숨이 날아간다고. 우리도 규율이란 게 있단 말이지.”

         

       “사람 팔아먹는 버러지들 주제에 규율은 무슨 규율. 지나가던 개도 웃다가 숨이 넘어가겠네.”

         

       “아니, 이년이 말버릇이 아주 개 같은-”

         

       “됐고. 목숨값이라. 목숨값 쳐주면 돼?”

         

       그러자 왕흉터의 눈빛이 변했다.

         

       “목숨값이라, 헤헤, 이제보니 아주 귀인이셨군요. 소인이 나름 업계에서 뼈가 굵은 놈이라 좀 거하게 쳐주셔야 합니다요.”

         

       “그래? 얼마나?”

       

       왕흉터는 청의 표정을 자세히 보았어야 했다.

       눈동자는 작게 쪼그라들고 중심에는 보랏빛 요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니 사악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귀밑까지 찢어져 활짝 펼쳐진 입매까지 아주 흉악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일단 소인이 몸을 뺄 수도록, 악!!”

         

       비굴하게 말을 이어가던 왕흉터가 돌연 비명을 질렀다.

       가랑이 사이를 걷어차여 한 장쯤 허공에 떠오르고 나면, 누구라도 말하다 말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사천의 군사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심지어 직접 목격한 군사들은 아직도 그 심리적 외상으로 밤잠을 자지 못한다는 바로 그 절대마녀의 대를 끊는 일격이었다.

         

       수직으로 날아오른 왕흉터가 기초적인 과학적 사실에 따라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

       청이 떨어지는 왕흉터의 발목을 잡아채고는, 아드득 손아귀에 힘을 주어 으스러뜨렸다.

         

       “으아악!!!”

         

       “엄살이 심하네. 겨우 불알 터지고 발목 좀 갈렸다고 아주 비명씩이나. 그러고도 사내야? 고추 떼라, 떼. 음? 이젠 사내 아닌가?”

         

       “커억, 끄어억.”

         

       “정신 안 차려? 내가 그래도 한쪽은 남겨주려 했는데. 아예 앉은뱅이보단 깽깽이 발로 가는 게 훨씬 낫잖아.”

         

       청이 제 가랑이를 움켜쥐고 웅크린 왕흉터의 등짝을 뻥뻥 차대며 말했다.

       그러나 발목 으스러진 고통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괴로워하니, 겨우 발길질 수십 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있겠는가.

         

       그때였다.

       타타닥 휘리릭 요란한 발소리와 옷 부대끼는 소리가 동시에 울리더니, 새까만 흑의를 맞춤으로 차려입은 무인들이 청을 둘러쌌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흑시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감히? 너네가 무슨 황상이라도 모시나? 고작 야시장 운영진 주제에 무슨 감히.”

         

       무위도 고만고만하니 개중 일류 댓 명에 절정 두 명 섞여봐야 두렵지도 않다.

         

       “현상금 두둑하게 건다며? 걸어. 내 이름은 진주언가의 언연영이고, 얘는 상관없어.”

         

       “어? 의매, 하지만.”

         

       “괜찮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어쨌거나 얘넨 구경만 했으니까 상관없지? 자, 선영아 잠시 빠져 있어. 피리는 이리 주고. 나면이 너도 볼일 다 봤으니 자유다. 가라.”

         

       견포희가 머뭇거리다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멀어져갔다.

         

       그러자 의외로 흑시의 무사들이 순순히 비켜주는 것이, 현상금을 여럿 걸기 부담스러워서인지 아니면 규칙을 지키는 건지는 모르겠다.

         

       안 보내주면 의매가 여중제일인의 제자 서문청이 될 뻔했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됐지. 이제 일 다 봤으면 꺼져. 난 얘랑 할 말이 있어서. 음. 야. 슬슬 정신 안 차려?”

         

       “끄흑, 미친, 미친 년. 흑점을 상대로 시비를 걸다니……”

         

       “그래, 이 언연영은 미친 사람이다. 그러니 금자 열 개 받고 다 불었으면 고자 될 일도 없었잖아.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네. 금자 열 개 받기 대 고자 되기. 이걸 후자를 고르네.”

         

       “네년은 이제 죽은 목숨, 아악!!”

         

       청이 왕흉터의 손을 짓밟았다.

       천마군림보의 묘리가 실려, 발아래 뼈마디가 조각조각 모래알처럼 바스러지는 촉감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그에 흑시 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머, 멈춰라! 무슨 짓이냐!”

         

       “싫은데. 어차피 현상금 걸 거라며? 그런데 여기서 멈출 이유가 있나? 혹시 이 언연영이 여기서 멈추면 현상금 취소해 주나?”

         

       “네년이 아주 흑점을 우습게 보는구나!”

         

       “네네. 언연영이는 흑점이 아주 우수워요. 별 개잡놈 같은 후레자식들이 거지새끼 아랫도리 같은 말종들만 모아다가 야시장이나 여는 단체를 대 진주언가의 언연영 님이 왜 무서워해야 하지?”

         

       “감히!!!”

         

       “꼬우면 덤벼.”

         

       그러자 흑시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너무 대놓고 싸움을 걸고 있으니 오히려 덤벼들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구경이나 하고.”

         

       청이 손을 내젓고는 은근슬쩍 기어 도망가는 왕흉터의 등짝을 콱 밟았다.

         

       “그래서, 그 청년은 어디다 팔았을까?”

         

       “말하겠다! 말할 테니 목숨은……”

         

       청이 그제야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목숨값 쳐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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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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