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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자, 어떻게 할까.

        

       내가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는 제이크와 로티 커플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나름대로 비중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따지자면 앨리스와 레오 사이의 이야기도 중요한 에피소드였지만, 그 관계는 원작과는 여러모로 달라졌으니까.

        

       원작에서 앨리스는 로티를 도우러 가는 레오를 말린다. 그것 때문에 둘의 관계가 잠깐 조금 멀어지는 이유가 되었었는데…… 음.

        

       나는 시선을 돌려서 레오 쪽을 보았다. 레오는 물론이고, 클레어까지 금방이라도 달라붙어 도울 생각인 것 같았다.

        

       앨리스는 두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원작의 앨리스보다 훨씬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이런 일로 자기 입지가 줄어들 거라고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레오와 클레어가 로티를 돕게 둘 수는 없다.

        

       두 사람은 남작가. 심지어 정식으로 초대장을 받은 사람도 아니다. 원작에서 앨리스가 레오를 말리던 이유도 그랬다. 평민인 로티, 그것도 식민지에서 지배당하는 원주민의 피가 반이나 흐르는 로티를 도왔다가는 초대장도 없이 들어온 레오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질 테니까.

        

       여기서는 제이크의 제안을 받고 다 같이 왔지만, 원작에서는 제이크보다는 앨리스가 같이 가달라고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자리에 자주 나와보지 않은 앨리스가 그나마 아는 얼굴이라도— 정확히는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남자와 같이 가고 싶어서 부탁했던 사람이 레오였다.

        

       앨리스 입장에서는 자기 말 때문에 온 남자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을 신경 써서 한 일이었겠지만, 레오에게는 그저 같은 학교 친구를 차별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뭐, 아무튼 그런 스토리였다.

        

       그렇다면.

        

       다행히 레오와 클레어가 있는 곳보다 내가 있는 이곳이 로티와 더 가까웠다.

        

       그냥 평범하게 걸어도 두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 로티 근처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말없이 가서 곧장 로티 옆에 앉았다.

        

       누가 어떻게 말릴 틈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려있었기에, 정작 내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자 뭐라고 말을 걸 틈도 없었던 것이다.

        

       “…….”

        

       평소에는 언제나 무표정하던 로티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 로티뿐만이 아니라 로티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귀족들의 시선도 모두 나를 향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멎었다. 곧이어 따라온 것은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바닥을 적신 포도주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큰 유리 조각은 금방 주울 수 있었다. 애초에 깨진 건 와인잔 하나였고, 옷에 술이 묻은 사람이 굳이 호통을 치지 않았다면 금방 치울 수 있을 양이었으니까.

        

       로티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천 위에 조심스럽게 유리 조각을 올려두고, 천 끝을 잡아 덮어주었다. 그걸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여기 있는 하녀, 하인들은 모두 오늘 방문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조심해야 할 사람 중 하나에 내가 들어있었겠지.

        

       “가, 감사합니다, 황녀 전하…….”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그 귀족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 귀족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제이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보는 제이크의 표정도 복잡했다. 혼란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까 옷에 대한 보상은 린드버러 측에서 하겠다고 하셨지요.”

        

       “아, 응.”

        

       “그럼 그렇게 처리하고 끝내면 될 일입니다. 좋은 날에 굳이 성을 내면서 연회 분위기를 망쳐야 할 이유가 더 있습니까?”

        

       내가 다시 귀족 쪽을 바라보자, 이번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원작에서 레오는 조금 더 예의를 갖춰서, 조금 더 적절한 이유를 들어가며 말했다. 정확히는 여기서 선택지를 잘 선택하면 보너스 포인트를 얻어갈 수 있었고, 공식적인 스토리 진행은 그 보너스를 얻는 선택지였다.

        

       그런데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정 아니꼬우면 제도의 황궁을 찾아오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군요.”

        

       그리고, 이러는 쪽이 더 효과적이었다.

        

       내가 상냥해서 두 사람을 도왔다기보다는, 망가진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서서 상황을 처리했다는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귀족은 얼른 표정을 갈무리하고 자리를 피했다. 멀리 떨어지는 꼴을 보니 나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실비아.”

        

       귀족의 뒤통수가 멀어지고, 침묵 사이로 조금씩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 쯤 내 옆으로 다가온 앨리스가 말을 걸었다.

        

       앨리스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훌륭했어.”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로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로티와 그 어머니가 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로티는 무릎에 여전히 포도주가 조금 묻어있었고, 로티 어머니가 입고 있는 메이드복에는 포도주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래도 유리에 손을 베인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천도 충분히 두꺼웠던 모양이고.

        

       “그냥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굳이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그래도 두 사람은 내 쪽으로 허리를 살짝 숙여 보이고, 뒤쪽으로 조금씩 물러났다.

        

       “대단하네.”

        

       그리고 그제야 제이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반응하는 건…… 귀족이나 황족이 보일만한 행동은 아니거든. 아, 욕하는 건 아니야. 그냥,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입을 다물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공작가의 아들이니 뭔가 들은 이야기가 많겠지. 뭐, 린드버러 공작이 나를 직접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은 없었으니 무슨 암살자 취급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로티에게도 말했지만, 굳이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 분위기가 싫었을 뿐이니.”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직도 미아 크로우필드가 멍하니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음.

        

       좀 쿨해보였을까?

        

       *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사건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파투 나버리지는 않았다.

        

       린드버러 공작은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다시 연회장을 돌면서 초대받아 온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다 말을 걸고 있었다.

        

       초대장을 받지 않고 들어온 레오와 클레어에게조차 공작은 꽤 큰 관심을 보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대답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공작이 딱히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클레어가 입양아라는 것은 알고 있으려나?

        

       뭐, 공작에게 그런 것이 중요하지는 않겠지. 어차피 입양아라고 해도 신분은 확실하게 귀족이니까. 입양아로 유명한 나조차도 아들과 결혼할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의외로 공작은 꽤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기도 했다.

        

       그 열린 사고방식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딱히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술을 싫어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나는 술 취향이 몹시 싸구려였으니까. 향 좋고 비싼 술보다는 편의점에서 싸게싸게 살 수 있는 맥주나 희석식 소주가 더 좋았다.

        

       ……사실 술뿐만이 아니라 안주 문제도 있었고. 얼큰한 국물 요리라도 있었다면 보드카라도 마시지 않았을까.

        

       “……황녀 전하.”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연회장에 술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계속 그런 곳에 있었더니 속이 조금 좋지 않아 근처 테라스로 나와 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그런 내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는 로티의 것이었다.

        

       “로티.”

        

       내가 뒤쪽을 살짝 돌아보면서 말하자, 로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는 같은 학교의 학생일 뿐이니까요.”

        

       “…….”

        

       로티는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기대서있는 테라스 난간을 톡톡 두드렸다. 로티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내가 의도했던 것처럼 내 옆에 기대서지는 않았다. 내 뒤쪽으로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의 대각선 방향에 서 있길래, 결국 나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창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밝은 빛 때문에 로티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표정은 대체로 무표정이었지만 그늘 때문에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알기는 힘들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나의 물음에 로티는 다시 잠깐 고민하는 듯 침묵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그…… 하녀와, 제가 어떤 관계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뭐, 숨길 필요는 없겠지.

        

       나는 난간에서 몸을 떼어 앞으로 걸어갔다. 로티가 황급히 몸을 틀어 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무시하고 나가기라도 하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테라스 창문의 커튼을 쳤을 뿐이다.

        

       누가 마음먹고 훔쳐 들으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개인적인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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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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