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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세계수의 문은 결코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그 거대한 문이 열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크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계수의 정문은 실제로 오랜 역사속에서 단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문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사실 세계수보다 먼저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탑을 오르는 정문, 그것은 결코 막혀서는 안되는 것이니.

     

    언젠가, 문을 열게 될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

     

    ——-

     

    “호오…….”

     

    루크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며 엄청난 높이의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역시 대단하군.’

     

    거대한 석문을 장식한 정교한 장식, 이해할 수 없는 문양이 나무줄기의 형상처럼 마구 얽혀서 기묘한 형태를 감싸고 있었으며, 중간중간에는 인간의 형상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을 빠짐없이 새겨 넣고자 한 것 같은 모양새이다.

     

    5000년 전에 확인해본 바로는 실제로 그러했다.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생물종이 새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루크가 직접 가장 높은 산에서부터 가장 깊은 심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소를 확인해본 결과다.

    심지어 그 정보는 실시간으로 갱신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멸종하여 없는 생물종이라면 문의 문양에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과거에는 그것으로 어떤 생물이 아직 실존하고 있는 것인지, 세상에는 어떤 생물이 있는지 금세 알아낼 수 있었으나, 그 정보가 5000년 이후인 지금은 어떨지, 혹시 문양이 변화한 것은 있는지, 어쩌면 드래곤의 문양이 어딘가에는 남아있지 않을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루크가 문의 문양을 주의 깊게 살피던 중이었다.

     

    “루, 얼른 들어가자. 곧 있으면 해가 지니까 세계수를 보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해.”

     

    “아, 알겠다. 지금 가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르나의 손을 붙잡은 채 발길을 돌렸다.

    웬만한 빌딩 이상의 크기를 지닌 거대한 문의 정교한 장식을 하나하나 살피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열리지 않는 세계수의 정문과는 달리, 세계수의 다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다른 문은 정문의 옆으로 걸어가면 나오는데, 그 문도 사실은 일반적인 시점으로 보면 거대하다는 인상이 드는 것이었지만, 고층빌딩보다 더 커다란 정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형상이다.

     

    그 문은 탑으로 바로 통하는 문은 아니지만, 적당히 관람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는데다 한켠에는 엘프들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제단도 존재했다.

    루크는 제단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엘프 몇몇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로 이뤄진 제단 위에 돈이나 물건 등을 올려둔 채 고개를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잘 들어보면 대부분은 행운이나 행복을 기원하는 듯한 기도문이었다.

     

    루크는 엘프가 아니니 딱히 세계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제하는 신의 증거로서 존중은 한다.

    현재 자취를 감춘 신을 제외하면 유일한 신성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세계수는 과거에 신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더할나위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

    뭐, 신이라는 것이 생활에 와닿지 않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예르나가 루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루, 여기 잠깐만 있어봐. 어디 가지 말고.”

     

    “알겠네, 기도라도 하려는 겐가?”

     

    “맞아.”

     

    예르나가 루크의 손을 놓고 제단으로 걸어가 세전함에 동전을 하나 튕겨넣고는, 눈을 감고 짧게 기도를 마친 뒤 돌아왔다.

     

    “꽤 빠르군. 자, 가지.”

     

    “뭐라고 했는지 안 물어보니? 궁금하지 않아?”

     

    평소의 호기심이 많은 루크라면 분명히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루크는 도리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이 예르나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원래 그런 기도나 주문 같은 것들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때 비로소 효과가 있는 법이라네. 구태여 궁금해할 것도 없을 것 같고.”

     

    본래 소원이나 마법의 주문 같은 신비와 관련된 것들은 그렇다.

    그것들은 침묵으로 비로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기에, 예로부터 마법사와 고위신관은 입이 굉장히 무거웠다.

    게다가, 딱히 예측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원에는 ‘행복’이나, ‘행운’을 비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예르나는 루크의 대답에 한방 먹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내었다.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어쩜 이리 어른스러운 아이인지, 예르나는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라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고, 이후 루크는 영문도 모른 채 예르나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감내해야했다.

     

    ‘으음……. 뭐, 이전처럼 마구 흐트러트리는 식으로 쓰다듬는 것은 아니니 괜찮지만…….’

     

    오히려 이토록 부드러운 손길은 또 다른 방식으로 미묘한 감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예르나의 저 즐거운 듯 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차마 그만하라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루크는 이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마음마저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지, 아무래도 조금 더 경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구나.”

     

    루크가 세계수에 들어오고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바로 ‘세계수의 진액’이었다.

     

    마법적으로 꽤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물건이라 구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념품 상점에서 대놓고 팔고 있다니.

     

    ‘세계수향 – 세계수의 진액 1%함유’

     

    비록 원액이 아니라 향수였지마는, 이 용량에 포함된 1%의 진액이면 나름대로 쓸 만한 수준의 양이다.

    이것은 주로 나이 많은 엘프들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세계수의 근처에서 벗어날 일이 생길 때 종종 구매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비싸군.”

     

    하지만 역시 세계수의 일부를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인지, 루크의 지갑에 들어있는 금액보다 몇 만길이나 더 비쌌다.

    검색을 해보았을 때는 분명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비싼 향수만이 남은 모양이다.

     

    ‘하지만 확실히 품질은 좋아보이는군, 욕심이 난다.’

     

    정 안되면 예르나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구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루크가 진열대에서 일일히 하나씩 마력시를 이용해가며 향수가 담긴 병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이었다.

     

    “정말 안되나요?”

     

    “그게, 정말로 중요한 실험중이라서요. 마탑에는 앞으로 일주일간 모든 출입이 통제됩니다.”

     

    루크가 세계수의 마탑을 얼마나 기대 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이라니. 어쩜, 운도 참 좋지.

     

    “그래도, 기껏 에이레스에서 여기까지 온건데…….”

     

    “정말 죄송하지만……. 진짜 엄청나게 중요한 실험이거든요. 조금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

     

    대체 얼마나 중요한 실험이길래 사람을 입구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르나는 차마 루크에게 그냥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을 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기에 오는 것을 어찌나 기대했던지, 루크는 평소와는 달리 이 마탑에 얽힌 이야기들을 계속 조잘조잘거리면서 아는 체를 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놀이공원에 가는 아이의 모습과 크게 닮아 있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히 크게 실망하고 말겠지.

     

    뭐, 루크가 그토록 수다스러운 행동을 한 이유는 단지 기대감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설명을 내뱉고 있는도중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느라 머리를 쓰다듬지 않는다는 이유에 있었지만, 그 속을 알리가 없는 예르나는 그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예르나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서도 계속해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실험인데 그러는 거죠?”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극비사항이거든요.”

     

    남자는 단호했다.

    샤에흐의 기적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밝혀서는 안되는 극비에 속했다.

    그 이유인 즉슨, 일단 그 마법식을 증명한 마법사가 자신을 아직 드러내고 싶지 않다며 실험 또한 극비에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대체 왜 이 대단한 실험을 극비에 진행해야 한다는 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샤에흐의 기적식이 증명됐다고 하면 분명히 당장 세계가 환호하며 난리가 날 텐데, 대체 어째서 이토록 숨기려는 것일까?

    그냥 유명해지기 싫다니, 그건 대체 또 무슨 말이고?

    마법사로서 최고의 명예를 거머쥘 순간인데?

    이 정도면 그 마법사가 너무 유명해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누군가의 음모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로들이 그리 말하니 어쩔 길이 있나, 정상급 마법사들이 내린 결정에 평범한 일개 마법사인 그로서는 따르는 수밖에 없다.

     

    설득을 해야하는 그 자신부터 납득하지 못하는데, 당연히 타인을 설득 될 리가 없다.

    납득을 못 한 예르나는 그에게 다시한번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안내가 도저히 안되는…….”

     

    “그렇지만 저도 그렇게 밖에는…….”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하던 때였다.

    루크가 말씨름을 하고있던 둘 사이에 고개를 빼꼼 내밀며 끼어들어온 것이었다.

    그것은 뒤에서 계속 불러도 반응이 없는 예르나의 시선을 더욱 끌어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저, 예르나? 마탑은 이제 됐으니, 그냥 이걸 좀 사고 싶다만.”

     

    “응? 그게 뭐야? 향수? 기념품이니?”

     

    “그런 셈이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내 돈으로 사기엔 조금 비싸구나.”

     

    “대체 얼마길래?”

    “가장 큰 걸 구매하려니 상당히.”

     

    예르나는 루크가 건넨 병을 들어올리며 살폈다.

    가격을 환산하면 무려 53만길. 확실히 엄청 비싸다.

    게다가 용량도 많아서 더 그런 느낌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비싼 향수를…….’

     

    혹시 화장품에 관심이 생긴 것일까?

     

    그녀는 미묘한 표정으로 루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이렇게 큰 걸로 사는 거니? 좀 더 작은 병에 담긴 것도 있는데.”

     

    “큰 게 필요해서 그런 거라네.”

     

    “이게 엄청 맘에 들었나 보구나.”

     

    그런 거라면, 딱히 사주지 못 할 것도 없긴한데.

     

    ———

     

    이후 해가 진 시간, 식사를 위해 마탑에서 내려오는 마법사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대체 어떤 발상으로 저 기적식을 해석한건지.”

    “저걸 해석한 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은데.”

     

    루크가 마법식을 증명했다는 사실은 비밀이므로, 아는 이들이 몇 없었다.

    그것은 심지어 기적식의 증명실험에 참여한 수많은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실험이 지닌 가치만을 보고 쫓아온 마법사들이었으니.

     

    “어찌나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대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2년만 기다리자고. 수상을 하려면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할 테니까.”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오늘도 사람들을 안내하느라 마탑의 입구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봐, 오늘도 별 일 없었지?”

     

    “아, 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든 표정인가? 무슨 일 있었나?”

     

    “그것이, 마탑을 꼭 구경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씨름을 좀 했더니…….”

     

    “흐음, 별일이군.”

     

    솔직히 마탑은 그다지 좋은 관광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싸움을 할 만한 건수가 못 되었다.

     

    “아이가 되게 기대를 했다는 모양이더라고요. 세계수의 마탑을 보려고 해외에서 왔다고…….”

     

    “하하, 별 일이 다있군. 욕 봤네. 이제 자네는 가서 쉬게.”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까?

     

    단순히 진상인 줄 알았던 일행에, 현재 그 마법식을 증명한 아이가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신의 업적때문에 마탑에 입장불가를 당해버린 루크.
    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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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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