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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용사님!”

     

    갑작스런 사태에 기사들이 당황하며 쓰러진 리셰를 부축했다.

     

    지금 그녀는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사가 휘청이는 모습을 보고 기사들은 마치 미래가 불안한 환상을 보고 만다.

     

    “무슨 일이야.”

     

    소식을 듣고 나온 라스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월광궁 기사가 그에게 대답했다.

     

    “훈련을 마치고 휴식 중에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또야? 어디, 진단.”

     

    라스가 리셰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중독이라니, 감염될 상황이 있었어?”

     

    “마물을 상대하는 실전 훈련이었습니다. 독성을 가진 바질리스크가 있었습니다.”

     

    “일단 치유주문 넣어 봐. 상태 좀 보고.”

     

    라스가 쓰러진 리셰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호흡이 가쁜 그녀의 동공 반응을 살피며 증상을 판단한다.

     

    최근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어 해독제를 한 번 쓴 적이 있었다. 부작용이 있는 약제기에 연속으로 쓰고 싶지 않았던 라스였다.

     

    “아, 선생님. 괜찮… 아요.”

     

    리셰는 통증을 참는 듯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워.’

     

    라스는 최근 있었던 사고를 리셰가 의도적으로 일으켰다고는 확신했다.

     

    그 과정에서 샤를이 개입한 것도 확실했다. 별다른 이슈도 없는데 리셰의 성장이 급격히 감소할 리가 없었다.

     

    둘을 분리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겨졌다.

     

    ―――――――――――

    대상 : 용사 리셰 (공명 중)

    스트레스 안정 ■■■■■□□□ 긴장

    ―――――――――――

     

    ‘하지만 샤를의 스트레스는 꽤 감소했어.’

     

    샤를과의 카운슬링은 두 번 더 진행했다. 그녀는 착실히 안정되고 있다. 이대로만 가면 본 작업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리셰가 버텨주면 얼마든지 정상화는 가능했다. 라스는 용사 리셰의 강인함을 믿었다.

     

    “용사님, 좀 어떠신지요.”

     

    “통증이 아직… 죄송해요, 안에서 조금만 쉬어도 될까요?”

     

    “증상을 보아하니 그게 좋겠군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라스의 백의를 리셰가 슬며시 잡아 끌어당겼다.

     

    “저, 진통제를 좀 처방받고 싶은데요.”

     

    당연하게 나올 수 있는 가벼운 요구.

    처방을 위해서는 라스가 한 번 더 그녀를 진료해야 한다.

     

    라스는 최근 리셰에게 들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안으로…”

     

    “진통제라면 여기 많이 있단다.”

     

    두 사람 사이에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가 끼어들며 툭, 리셰의 눈앞에 자그마한 약병 하나가 떨어졌다.

     

    어느새 기사들이 정렬해 만든 길 사이로 나타난 아셀라는 쓰레기를 바라보듯 매서운 눈매로 리셰를 쏘아붙였다.

     

    “화, 황녀님…”

     

    “전하라고 호칭해야 하지 않겠니? 예의도 모르고 경우도 없는 것 같으니.”

     

    “황녀님, 갑자기 어쩐 일이신지요.”

     

    라스가 중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데없이 나타나 분노를 표출하는 아셀라의 태도는 누가 봐도 갑작스러웠다.

     

    “대단한 용무는 아니야. 나는 그저 황궁의 소중한 재원을 의미 없이 낭비하는 이 뻔뻔한 여자를 규탄하러 왔을 뿐이거든.”

     

    아셀라의 매도에 리셰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반면 라스는 아셀라가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느라 미간을 찌푸렸다.

     

    “황녀님, 부탁드렸지만 치료 기간에는 용사님과 접촉하지 않으셨으면…”

     

    “어차피 난동부리지 않겠다는 기아스도 걸었는데 제깟 게 뭘 하겠어. 아, 그래서 이런 음습한 행동으로 나왔나?”

     

    “대체 무슨 말씀…”

     

    “사고가 아니야. 저 정신 나간 여자는 여태 일부러 다쳤다고!”

     

    아셀라가 리셰를 삿대질하며 빽 소리 질렀다. 그 외침을 들은 라스는 아셀라가 이 건을 눈치챈 건 적신호라 여겼다.

     

    안 그래도 이전 사건부터 리셰를 달가워하지 않던 아셀라였다. 전쟁이 날 게 뻔했다.

     

    라스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일단 아셀라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오해가 있지 않겠습니까. 용사님이 그래서 얻을 이익이 없지요.”

     

    “이득이야 확실하지. 그렇게 하면 네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셀라의 말을 듣고 라스는 그제야 리셰의 동기가 이해가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 배려심 많은 용사가 고작 관심 때문에?

     

    라스는 조금 믿기 힘들었기에 리셰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명백히 허를 찔려 당황한 눈치였다.

     

    라스의 상태창이 변화했다.

     

    [No. 014 : 공명 해제 61% → 65%]

     

    ‘여기서 리셰를 추궁했다간 큰일 나겠어.’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한다. 아셀라와 떨어트리는 게 우선이다.

    그리 판단한 라스는 아셀라에게 부탁했다.

     

    “황녀님, 용사님과는 제가 상담해 보겠습니다. 맡겨주시죠.”

     

    “시간은 충분히 줬어. 더는 못 참아.”

     

    아셀라는 리셰에게 완전히 속은 기분이었다. 대륙을 짊어질 희망에게, 미래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약간의 패배감을 느꼈던 아셀라였다.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신비가 아니라 악귀였다.

     

    남은 건 배반감과 모멸감. 이제야말로 그녀는 확신했다. 이 여자는 성검을 몇 번이고 스스로 파괴했던 미래를 반복할, 정신병자에 불과하다.

     

    “내가 말했지, 라스. 그릇이 아니라고. 더는 이 여자에게 성검을 맡길 수 없어.”

     

    “황녀님. 제 환자입니다. 용사님의 용태는 제가 판단해요. 영향이 갈 발언은…”

     

    “애도 아니고 영향은 무슨 영향!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아셀라가 기사들을 둘러보며 다그쳤다.

     

    “여기는 황실이야. 실력 있는 자만 살아남는 곳이야. 언제부터 갓난아기가 성장하기만 기다리며 오냐오냐 응석을 받아줬지? 그러니 선을 넘고 이따위 기만을 펼친 게 아니니!”

     

    “황녀님, 용사님의 검술 실력 성취도는 상당합니다. 조금만 더 지켜보시면…”

     

    “그만.”

     

    아셀라가 칼같이 타냐의 말을 끊어냈다.

     

    “용사의 관리는 현 시간부로 목휘궁에 이관하겠어. 라스, 너도 손을 떼도록 해.”

     

    “황녀님.”

     

    “바로 목휘궁과 업무 분담 협상을 할 테니 준비해, 시녀장.”

     

    아셀라가 번개 같은 속도로 일을 준비하던 때였다.

     

    “싫어요!”

     

    리셰가 반발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셀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리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신의 명령에 대놓고 거부하는 이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너, 지금 뭐라고.”

     

    “싫다고 했어요. 다른 데는 안 갈래요. 저는 월광궁에 있고 싶어요.”

     

    아셀라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누구 마음대로? 월광궁은 내 궁이야.”

     

    “황녀님의 신하일지 몰라도, 제 동료이기도 해요. 기사님들도, 타냐 스승님도, 고트베르크 선생님도요. 저는 이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구요.”

     

    리셰가 잔뜩 겁에 질려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라스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미래에서라면 모를까, 지금의 리셰는 아직 아셀라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인격의 통합이 벌써 이뤄지고 있어.’

     

    케이스도 적고 환자마다 증상도 모두 다르다. 이중인격의 치료는 예상 못 한 변수가 많았다.

     

    라스는 자신이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리셰와 샤를을 완전히 다른 사람 취급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이중인격처럼 둘은 한 인격에서 분리된 게 아니라, 샤를은 결국 리셰가 성장해서 될 존재다. 즉 동일인물이다.

     

    리셰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영향받기 쉽다고 가정했어야 했다.

     

    “너, 뭘 어떻게 하고 싶다고 했니?”

     

    아셀라가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리셰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갔다.

     

    “월광궁에서 나가기 싫어요.”

     

    “내 궁이야.”

     

    “부탁드릴게요.”

     

    “싫은데.”

     

    “그럼 저도 억지 쓸래요.”

     

    ‘아, 우선 이 자리부터 파해야겠어.’

     

    이 둘의 상성은 극악이다. 생각은 나중이다.

    그리 판단한 라스가 둘 사이에 끼어들려 할 때였다.

     

    “하하하! 이 몸을 기다렸는가! 걱정하지 말게나, 금의환향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니!”

     

    뜬금없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호쾌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덕분에 세 사람은 더 움직이지 못하고 대치하게 됐다.

     

    “아아, 고트베르크! 정확히 3년 만이로군! 그대에게 풀어줄 이야기보따리가 한 가득이라네. 밥은 잘 먹고 다니는가? 어째 전보다 더 초췌해지지 않았나!”

     

    화려한 장신구를 두르고 단정한 양복을 입은 게오르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가 라스의 앞에 서서는 이빨이 보일 정도로 환히 웃었다.

     

    “내 퇴궁당해 방황하는 동안 그대의 스승을 만났네. 의사 파우스트경! 훌륭한 인격자였지. 부디 서신을 보낼 주소지를 알려주면 좋겠군. 아, 아셀라!”

     

    반가움에 도취된 게오르크는 홀로 사교회를 즐기듯 유려하게 몸을 놀리며 차례로 인사를 이었다.

     

    정작 그를 제외한 자리의 모든 이는 시간정지 마법에 걸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거늘.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오라버니가 그리웠는가? 하하하! 물론 아니었겠지. 앞으로는 보고 싶어질 게다. 월광궁과는 좋은 사업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거든. 오, 이분이 용사시군! 반갑소이다, 제국의 2황자인 게오르크 폰…”

     

    “나가.”

     

    아셀라의 목소리가 바늘처럼 고막을 꿰뚫자 그제야 공기를 읽은 게오르크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에게도 참 뻘쭘한 상황이었다.

    서프라이즈 파티라고 생각해 싱글벙글 한 아름 선물을 안고 들어왔더니 한창 시뻘겋게 불타는 화재 현장이 아닌가.

     

    그가 손가락을 튕기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선물은 놓고 가겠네. 토진궁이 없어져서 돌아갈 곳도 없지만 말일세. 또 만나지!”

     

    게오르크가 월광궁의 정문을 향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간 틈이 생겼다. 라스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황녀님,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그가 아셀라의 손목을 잡고 테라스 안으로 향했다.

     

    모두의 눈이 닿지 않는 그늘진 둘만의 자리로 향한다.

     

    그러자 아셀라가 표정을 조금 풀고는 투정 부리듯 라스의 팔을 쳐냈다.

     

    “아, 왜.”

     

    “용사를 목휘궁에 넘겨주겠다니, 진심이세요? 승계전에서 불리해질걸요.”

     

    “그럼 어떻게 해. 너한테 저딴 식으로 꼬리치는 꼴을 내가 보고만 있으라고?”

     

    “에이, 꼬리라뇨. 그런 게.”

     

    자동반사적으로 부정하려던 라스는 이번엔 아셀라의 말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흠.”

     

    “봐.”

     

    “용사님은 성검의 인격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계신 것뿐입니다. 통제에 성공하면 정상으로 돌아오실 거예요.”

     

    “차도가 있어?”

     

    “그게.”

     

    라스가 이상한 냄새를 맡은 듯 표정을 찡그렸다.

     

    “까다로워요. 하지만 황녀님까지 용사를 자극하시면 치료는 더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아셀라도 라스의 곁에 있으니 조금 진정이 됐다.

     

    너무 흥분해서 화를 내기는 했다. 라스가 걸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특별히 화가 나신 이유라도 있으세요?”

     

    라스가 아셀라와 양손을 맞잡고는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가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로 물어오니 아셀라는 용사 따위는 잊어버리고, 라스에게 고백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마법에 대해.

     

    리셰보다 자신을 아껴주고 치료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자라났다.

     

    ‘…그래.’

     

    사실 리셰에게 더 화가 났던 건 부러워서.

     

    자신을 고쳐줄 주치의를 빼앗아가서 그랬다.

     

    “라스.”

     

    “예.”

     

    “용사는 잊어버리고.”

     

    “말씀하시죠.”

     

    아셀라는 각오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날 고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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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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