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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드래프트가 종료된 지 이틀이 지난 오전, 나와 엘라는 테트로미노 광장을 찾았다.

       어제 레카체프 입학식에서 있었던 학교 측의 발표 때문이었다.

         

       6대 극장은 기본적으로 대회 참가자에게 자기네 공연에 대해 몇 장의 무료입장권을 배부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도 그랬다.

       그들은 서커스단의 대결이 벌어지는 2, 3번 홀의 입장권뿐만 아니라 1번 홀의 입장권도 제공했다.

         

       그러나 1번 홀의 경우, 우리는 이용할 기회가 없었다.

         

       카바레는 성인들을 위한 선정적인 춤과 노래가 제공되는 곳이었다.

       엘라와 마야는 이용하지 못했고, 순진한 시골 아낙네인 유라크네는 그런 곳에 가기 부끄러워했다.

       아나이스는 개막식 이후로 일정이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다.

         

       구경 갈 만한 사람은 나와 스벤밖에 없었는데, 시험이 끝난 뒤에 슬쩍 가보는 게 어떨까 이야기를 꺼냈다가 유라크네, 엘라, 마야, 세 사람의 연이은 단원 퀘스트를 받고 포기해야 했다.

         

       레카체프 쪽도 다른 극장들처럼 공연 관람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다른 곳과 달랐다.

         

       이곳은 극장이라 불리긴 했지만, 본질은 학교였다.

       이곳에서 보여주는 공연은 학생들이 동아리별로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소규모로 여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학교는 무료입장권과 더불어 수업 참관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교감인 엘파라는 어제 입학식에서 서커스 그랑프리 참가팀에 소속된 10대라면 누구나 레카체프에서 청강을 들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학교 측에서 이렇게 대회 중간에 해당 내용을 발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회의 개막식이 열린 것은 5월 31일이었다.

       이후, 6, 7, 8월, 3개월 동안은 레카체프 여름 방학 기간과 겹치면서 청강에 대해 발표할 만한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개막식 이전에 이 내용을 발표했다간 혹시나 특혜를 악용해 돈 받고 미성년자를 대거 받아 들여주는 서커스단이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측은 지금까지 이것을 비밀로 해왔다고 밝혔다.

         

       그녀는 더불어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도 발표했다.

         

       일단 소속 서커스단이 예테린푸르크에 체류 중이어야 했다.

       그러니까 서커스단은 애들만 학교생활 즐기라고 툭 던져두고 다른 도시로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안에서는 교복을 착용해야 했다.

         

       교수들은 사복을 입은 애들 수백 명이 학교 안을 활보함으로써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부상자가 쏟아져 나오기로 유명한 곳인데 분위기까지 어수선해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 교복 규정 때문에 나와 엘라는 오늘 광장에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레카체프의 수업을 들어보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복을 사야 했다.

         

       물론 ‘의상실’ 기능으로 바로 그녀에게 교복을 입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아까운 데볼루트를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도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연습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교복을 구하러 나온 것이다.

         

       그녀가 황금 카니발 쪽에 가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음성 채팅을 계속 연결해둘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었다.

       내 마법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학교 옆 골목은 학생들을 위한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마술과 곡예를 위한 소도구 상점.

       최신형 기능성 운동화를 광고 중인 신발가게.

       길들이기 수업을 위한 애완동물 판매점.

         

       그리고 도시 안 곳곳에서 보이던 슬라그보르트 과자 기념품점이 여기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가 겨우 교복 가게를 발견했다.

         

       가게 안은 이미 10대들로 북적였다.

       다른 서커스단에서 나온 아이들과 신입생, 재학생들이 구분 없이 섞여 있었다.

         

       “남학생은 건너편 가게로 가주세요!”

       “여학생은 이쪽으로!”

         

       점원들이 빳빳한 체육복들을 한 아름 안고 다니며 소리쳤다.

         

       우리는 흐느적거리는 줄자를 들고 오가는 늙은 직원 한 명을 붙잡았다.

       그녀는 두꺼운 안경을 올리며 엘라의 아래위를 훑어봤다.

         

       “신입생인가?”

       “아뇨, 청강생이요!”

       “호오, 목소리 우렁차군. 무슨 전공 지망이지?”

       “길들이기요!”

       “그렇구나.”

         

       그녀는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줄자로 엘라의 몸 여기저기 치수를 쟀다.

         

       “엉덩이, 허리, 가슴, 치수는…….”

       “입밖에 안 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엘라가 내 쪽을 흘끔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좋아. 몇 주 정도 다닐 거지?”

       “시험 준비 기간을 빼면 음, 한 달 정도요?”

       “그래? 그럼 체육복 5벌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그녀의 말에 엘라는 눈을 크게 떴다.

         

       “5벌이나요?”

       “그것도 적게 잡은 거야. 여기 학생들은 다치는 것만큼이나 옷도 얼마나 빨리 헤지는지 몰라. 일주일에 몇 번이나 수선을 맡기러 오는 학생도 있어. 레카체프에서 체육복은 소비재라고.”

         

       나는 옷걸이에 걸린 체육복 하나를 들어 보였다.

         

       “옷을 너무 얇게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내 말에 늙은 직원이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다.

         

       “당신은 서커스단 관계자가 아닌가? 두껍고 질기게 만들면 당연히 옷이야 멀쩡하겠지. 하지만 곡예 연습에는 방해가 되잖아.”

       “아, 그렇군요.”.

         

       엘라는 지금까지 연습하는 동안 한 번도 옷이 상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 입고 있는 붉은색 연미복과 치마에 구두를 신고도 어려운 곡예를 척척 해내곤 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에게나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보통 학생들은 이렇게 가벼운 체육복을 입고도 곡예 연습을 하다가 무릎이 쓸리거나 엉덩방아를 찧거나 어딘가에 걸려 옷이 찢어지는 일이 일상인 것 같았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교복 가게는 체육복 재고를 상당히 넉넉히 쌓아두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과정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필요한 옷들 구매할 수 있었다.

         

       “저 옷은요?”

         

       엘라는 구매한 체육복들을 내 품에 던져놓고는 가게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정갈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겸비한 흰색 제복들이 있었다.

         

       “저건 의전에 참가할 때나 입는 거야. 청강생은 입을 일이 거의 없을 텐데……. 혹시 신입생 환영회에도 나갈 건가?”

       “그런 게 있었어요? 좋아요! 저것도 한 벌 주세요!”

       “후훗, 기다리게. 저건 체육복과 달리 치수를 정확히 해야 태가 살 거든.”

         

       늙은 직원은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살피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학생 몸에 딱 맞는 건 없군. 체육복과 달리 이건 재고품을 그대로 쓰기 힘들어. 몸에 맞춰야 하지. 수선을 좀 해야겠어.”

       “오래 걸리나요?”

       “지금 손님들이 많아서 바로는 못 해. 3시간 정도 있다가 와.”

         

       이곳에서 별장까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반이었다.

       돌아가면 바로 나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광장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점심도 밖에서 먹어야겠지?”

       “그래야죠. 돌아가면 저녁일 텐데.”

       “아, 그럼 우리 한 달 전에 갔던 거기 갈까?”

       “그 카페 말이죠. 좋습니다.”

         

       우리는 몇 주 전에 학교에 시험 참가 신청서를 내러 왔었다.

       그때, 저녁을 먹었던 곳의 음식이 괜찮았었다.

       주인인 노파도 친절했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광장을 걸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게 팔짱을 껴왔다.

       그녀가 기억을 잃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나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팔짱을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가는 길 중간에는 저번 주말에 들렸던 과자 공장도 있었다.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던 그녀는 공장 앞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앗, 저것 좀 봐! 슬라그보르트에서는 기념일용 주문 제작 케이크를 따로 판대.”

       “그렇군요.”

         

       내 담담한 반응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음…….”

       “왜 그러시죠?”

       “아, 아니, 그, 주문 제작 케이크는 더 맛있으려나?”

       “아마 그렇겠죠. 모양을 낸다고 한 재료를 너무 많이 쓰면 균형이 좀 해칠 수도 있겠지만요.”

         

       내 대답에도 그녀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렇게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함께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신나있던 그녀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가 불만인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내가 막 이유를 캐물으려는 그때, 그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안 있으면 고향을 떠난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내가 이 세계에 건너온 지 5개월이 지났다.

       그때가 원더스타인과 그녀가 만난 지 반년쯤 됐다고 했으니, 1년이 맞는 거 같았다.

         

       “기억나?”

         

       그녀는 나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마을을 떠나는 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아, 그랬던가요?”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뭔가를 깨닫고 입을 벌렸다.

         

       1년 전이 생일이었다면?

         

       이제야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쳐들며 시원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흥. 웃긴 왜 웃어? 왜 웃냐고?”

         

       그녀도 내가 왜 웃는지 알았는지 피식 미소를 지었지만, 흘겨보는 것을 거두지는 않았다.

         

         

       [‘단원 퀘스트-생일 케이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시스템도 단원 퀘스트를 알려왔다.

       그녀가 명백히 바라는 게 있는데도 그것이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짐작이 갔다.

         

       그녀의 마음속에 두 가지 상반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알아서 눈치채줬으면 하는 마음’과 ‘생일 때 케이크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

       두 가지 바람이 서로 충돌을 일으켰기에 단원 퀘스트는 억제되어 있다가, 방금 전자를 충족시키면서 후자가 발동한 것이다.

         

       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엘라 양의 생일을 까먹다니.”

         

       내 말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꼭 생일 때문만은 아니야.”

       “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짙은 실망감이 그녀의 얼굴에 실렸다.

         

       “따져보면 결국 그날은 우리 서커스단의 창립 기념일이잖아. 나와 당신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날이니까.”

        “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실망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우리 둘 사이에 있어서 단순히 ‘생일’ 이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날이었다.

         

       그녀는 토라진 듯 앞서 가버렸다.

         

       그녀의 뒤를 쫓아가려는 내 앞을 또 다른 단원 퀘스트 창이 떠서 가로막았다.

         

         

       [‘단원 퀘스트-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역시 그녀가 준 것이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카페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의 화를 풀어줘야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달랬고, 덕분에 카페에 도착하기 20초 전에 퀘스트 완료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대가로 ‘오늘 점심을 내 손으로 떠먹여 주기’를 요구했다.

       말을 꺼낸 본인의 얼굴이 벌겋게 변할 정도로 민망한 요구였지만, 카페까지 20m를 앞둔 입장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 도착한 우리는 의외의 반가운 얼굴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스웨터에 멜빵 치마를 입은 새하얀 얼굴의 소녀가 베레모를 쓰고 테이블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마야!”

         

       엘라가 반갑게 그녀를 불렀다.

         

       “단장님, 부단장.”

         

       그녀가 굉장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우리를 맞았다.

         

       “매일 온다는 곳이 여기였어? 이 카페? 맛있지?”

       “딱히 맛있어서 오는 건 아니야.”

         

       저 뒤에서 메뉴판을 내오던 주인 할머니의 표정이 굉장히 시무룩해졌다.

         

       “광장에 볼일이 있다 보니 이곳에 오래 앉아 있게 됐어.”

         

       나는 그녀가 허공에 띄운 무늬와 노트에 적혀 있는 도식을 보고 그녀가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트로미노 광장 바닥의 수수께끼였다.

         

       “아, 그건.”

         

       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아는 척을 하려 했으나 그녀가 끼어들어서 말을 딱 잘라버렸다.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끼어들지 마세요.”

         

       나는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왜 이렇게 싸늘하지?

       나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 수치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음식은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왔다.

       주인 할머니가 나와 엘라 앞에 각각 식사를 내려놓아 주었다.

         

       “자, 맛있게 먹읍시다.”

         

       막 수저를 들려는 찰나, 나는 엘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수저에 손을 대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야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라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차.

       그녀에게 했던 약속.

         

       그 순간.

       오늘만 3번째인 단원 퀘스트가 떴다.

         

       [‘단원 퀘스트-아~’가 활성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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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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