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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정말 돈 나가는 거 아니죠…?”

       “그렇다니까.”

         

       그녀는 백우진의 뒤를 졸졸 따르는 와중에도 계속 돈에 대해 걱정했다.

         

       산속에서 살다가 백우진을 만나기 위해 잠시 떠돌면서 돈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아버린 듯했다.

         

       “와아….”

         

       청룡각의 꼭대기, 백우진의 방에 다다른 설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만 따지고 보면 그녀가 백가에서 머물던 방보다 몇 배는 크고 화려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제법 긴 시간동안 놀란 표정으로 굳어 있던 설수연이 백우진을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 영웅님…. 여기는…?”

       “설 소저가 앞으로 살 곳이지. 물론 혼자는 아니지만.”

       “에? 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언어를 상실해버린 그녀.

         

       몇 번의 심호흡을 통해 정신을 어느 정도 추스른 그녀가 재차 물었다.

         

       “저어…, 혼자가 아니라는 건…, 호, 혹시, 영웅님과 함께….”

       “그런데.”

         

       툭!

         

       소중히 끌어안고 있던 보따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설수연은 뜨겁게 달아오른 제 볼을 두손으로 감싸안았다.

         

       ‘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야…!’

         

       현천문의 전대 문주이자, 그녀의 스승은 살아생전 영웅과 신녀의 일화를 동화처럼 재미있게 풀어내 얘기해주곤 했다.

         

       그중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영웅과 당대 신녀의 사랑 이야기였다.

         

       영웅은 필연적으로 전장을 찾아다녀야 했고, 신녀는 그런 그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서로를 향해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었더라.

         

       나날이 가까워져 가고 있을 때, 영웅은 피투성이가 되어 최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먼 훗날, 긴 요양 끝에 몸을 추스른 영웅은 현천문으로 찾아가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던 신녀를 데리고 나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마을에 지어진 집을 보여주며 그리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삽시다, 라고.

         

       ‘아, 아, 아아!’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때마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이야기였다.

         

       무림을 구해낸 영웅과 그를 따라야만 하는 자신.

         

       모두를 위해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영웅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다.

         

       묘한 감정을 담은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상상하던 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백우진은 산골짜기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가 그려낸 이상적인 영웅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많이 달랐다.

         

       하루라도 술 냄새를 풍기지 않은 적이 없고, 이따금 적을 상대할 때면 말투도 경박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분.’

         

       그가 영웅의 기상을 지녔음은 분명했다.

         

       그녀는 안다.

         

       영웅비록에 그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적어 내려가기에, 알 수밖에 없다.

         

       그가 영웅으로서 행할 때마다 귓가에 들려온다.

         

       무엇을 하였는지, 그때 어떤 심정으로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여준다.

         

       ‘숨기는 데에 능한 사람.’

         

       귓가에 들린 말들과는 달리,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한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별다른 이유 없다고, 그냥 가능하니까 했을 뿐이라고.

         

       아마, 그랬으리라.

         

       ‘선대 신녀님께서도 분명 그런 이유셨겠지.’

         

       칭송받아 마땅한 일을 하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고 자신을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으리라.

         

       그녀는 잘 모른다.

         

       산속에서만 살아왔기에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지금 자신이 그를 영웅으로서 존경하는 건지, 사내로서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그러나.

         

       “아, 알겠어요. 영웅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가 용기를 내주었으니, 자신도 용기를 내야 할 터.

         

       이 헷갈리는 감정은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형태를 명확히 갖출 것이리라.

         

       “저…, 노력할게요!”

       “어, 어?”

         

       무언가 크게 결심한 사람처럼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설수연.

         

       ‘아, 그런 건가.’

         

       같은 방을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사내와 한 지붕 아래에서 머물게 된 것 아닌가.

         

       지금까지 산속에서 혼자 살아온 그녀에게 그것은 제법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처음에는 낯설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백우진의 조언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빛내며 대답하는 설수연.

         

       서로의 방향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은 동일했기에.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 * *

         

         

       혈수마녀가 깊은 산속에서 내려온 것은 백우진으로부터 도망친 지 정확히 칠주야가 지난 뒤였다.

         

       그간 그녀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손을 가져갔다가 느낀 벼락같은 쾌감 때문에.

         

       현경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그녀는 번뇌라는 것을 경험했다.

         

       ‘조금만 더 만져볼까.’

         

       벼락처럼 찾아왔으니 사라지는 것도 그래야 하건만.

         

       한 번 전해진 쾌감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온몸을 뜨겁고, 가렵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는 제 욕망대로 행동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장소였다.

         

       “아….”

         

       그녀는 바짝 마른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며, 처음 했던 행위를 반복했다.

         

       오묘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더욱 큰 쾌감을 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이건 안 된다.’

         

       한계를 모르고 솟구치는 열감이 그녀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이대로 갔다간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움마저 일게 했다.

         

       그로부터 엿새 동안 꼬박 명상을 통해 그때의 쾌감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완전히 잊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충동적인 감각은 확실하게 재웠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산을 벗어났다.

         

       학관에 당도한 그녀는 곧장 백우진의 기운을 찾았다.

         

       고작 엿새 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머무는 곳이 달라졌다.

         

       ‘창틈은…, 열려 있군.’

         

       창틈이 열린 꼭대기 층.

         

       그 어느 때보다 침입이 수월했다.

         

       아직 동이 터오르기 직전이었다.

         

       백우진은 넓은 침상에 드러누운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으음.’

         

       그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몸 전체를 바라보던 시야가 한 곳을 향해 점점 좁아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잠들어 있을,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적잖은 소리가 울리자, 백우진의 눈이 뜨였다.

         

       “크흠, 흠!”

         

       부스스하게 뜨인 그의 시야로 겸연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고 있는 혈수마녀가 보였다.

         

       “어, 오셨습니까.”

       “그, 그래. 내 잠시 급한 일이 있어 다녀왔…, 하아.”

         

       아무렇지 않은 척, 뻔한 변명으로 넘어가려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선 안 된다.

         

       어물쩍 넘어갈 수야 있다.

         

       아마 백우진 또한 별다른 말없이 자연스레 넘어가 줄 터.

         

       하지만 그 뒤로 쭉 혼자 이상한 부채감에 사로잡힌 채로 살 것만 같았다.

         

       “미, 미안하구나.”

         

       그녀는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유, 뭐 그런 걸 가지고 사과까지 하십니까.”

         

       백우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저, 정말 괜찮단 말이냐?”

         

       그녀는 백우진이 화를 내도 묵묵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하룻밤을 보내는데 불청객이 이를 지켜봤다는 걸 알게 된다면 죽여서라도 입을 막았을 것이기에.

         

       “예, 뭐….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실수로 봤다는데 별 수 있나요.”

       “허.”

         

       그녀는 허무함을 느꼈다.

         

       지난 일주일간 충동을 잠재우며 그에게 어떤 말로 사과를 건네야 할까 그리도 고민했는데.

         

       전부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감정 상하는 일 없이 사건을 잘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래도 그때 날리신 권풍은 제법 아팠습니다.”

       “미, 미안하구나.”

       “에이, 괜찮습니다. 선배님도 당황하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음, 그랬느니라. 내가….”

         

       그런 부분으로 경험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려던 찰나였다.

         

       “그때 선배님 당황하신 게 퍽 재밌었습니다. 선배님도 연배가 있으신 만큼 경험이 없으신 게 아닐 텐데, 그런 걸로 당황하셔서는. 하하하!”

       “…….”

         

       그녀의 입이 벌어진 채로 굳어버렸다.

         

       ‘겨, 경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녀의 나이는 간악한 백유성에게 속아 잠들었던 긴 시간을 제하고 따져도 상당했다.

         

       그 나이 동안 사내 한 번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녀석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자신에게 하자가 있어 사내들이 기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엄성이나 근엄함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될 터.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다, 당연히 숱하게 경험했느니라! 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냐.”

         

       날렵한 턱선을 들어 올리며 제 얼굴을 가리키는 혈수마녀.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 올라간 눈매를 비롯하여 그녀의 얼굴에는 색기가 넘쳐흘렀다.

         

       거기에 더해 중원에선 찾아보기 힘든 붉은색 머리칼이 그 맛을 더욱 맵게 만들었다.

         

       남자 경험이 없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요염했기에 그는 수긍했다.

         

       “역시.”

         

       어떻게든 변명에 성공한 그녀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말해두면 그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일은 없을 테니, 자신의 근엄함은 지켜지리라.

         

       “아무튼 이 얘기는 이대로 끝내고, 잠깐 저 좀 따라오십쇼.”

       “너만 괜찮다면야 그러겠다만…, 어딜 가려는 게냐.”

       “일단 따라오십쇼.”

         

       백우진은 막무가내로 그녀를 이끌고 방을 나섰다.

         

       걸음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가 머물고 있는 방에서 고작 몇 걸음 옆에 있는 장지문을 열자, 또 다른 침실이 드러났다.

         

       “앞으로 밤이슬 맞지 마시고, 여기서 주무십쇼.”

       “여기서…, 말이냐?”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자 백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기가 이제부터 선배님 방입니다.”

       “으음.”

         

       갑자기 어두워진 얼굴로 침음성을 삼키는 혈수마녀.

         

       ‘참으로 고얀 녀석이구나.’

         

       두 번째다.

         

       고아였던 자신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 사문을 나선 이후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준 이는.

         

       ‘어찌하여 잊고 있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를 본 백우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수줍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고맙구나.”

         

       더없이 아름답고 고혹적인 미소, 따스한 목소리에.

         

       “와, 심쿵.”

         

       백우진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된 주인공과 설수연, 혈수마녀…

    비처녀인 척하는 혈수마녀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ㄷㄷ…

    다음 편에는 구왕수와 남궁수의 벼랑끝 매치가 이어집니다.

    그게 끝나면 또 다른 에피소드의 시작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부디 많은 기대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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