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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얘기를 털어놓은 소미레는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덜덜 떨었다.

       

       “…….”

       

       프란체를 죽이려 한 건 정말 괘씸하고 용서할 수 없지만, 나와 라드리엔의 계획에 휘말린 피해자인지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소미레는 어린애다. 성숙하지 못하고 아직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낼 나이.

       

       비록 연결점인 ‘로판소’ 게임을 플레이하던 유저라 이 세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족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무서웠겠나.

       

       ‘그리고 나와 비슷했지.’

       

       소미레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밤 진짜 소미레가 나오는 악몽을 꾸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그녀로선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거다. 쉽게 치료할 수 없는 향수병도 많이 느꼈을 테고.

       

       ‘복잡하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돌려 보내주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이 정말 열 받는 건 맞지만, 그저 휘말렸을 뿐인 운 없던 어린애에 불과 하잖나.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 채 옆에 있던 프란체에게 물었다.

       

       “공작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프란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얕게 뜬 채 손으로 턱을 짚었다. 생각에 잠긴 분위기였다.

       

       “…….”

       

       슬쩍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는 소미레. 떨리는 눈동자에서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프란체는 고뇌하다 어렵게 입술을 뗐다.

       

       “날 죽이려 한 적에게 동정을 품는 건 절대 해선 안 될 일이지. 마음 같아선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하며 말을 이어가는 프란체.

       

       “자세한 건 네가 알고 있는 거 같으니 선택을 맡길게. 진,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화내지 않고 존중할 거야. 너는 나의 전부니까.”

       

       전부라…….

       

       가슴이 옥죄어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곤 카자르를 불렀다.

       

       “카자르. 내게 새겨진 마법진을 확인해.”

       “네? 마법진을요?”

       “그래. 라드리엔의 마법이 남아있을 거야.”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우뚱한 카자르였지만, 일단 말은 들었다.

       

       “그럼 확인할게요.”

       

       카자르는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마력을 흘려보내 영혼을 확인하는 작업. 라드리엔이 말했던 마법진의 잔재로 연결점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진 씨…?”

       

       고개를 돌려 카자르를 바라보자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뭐지?”

       “당신…….”

       

       내 상태를 알아챈 듯하다.

       

       “지금은 말하지 말고. 마법진을 확인해.”

       “네…….”

       

       카자르는 입술을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내 몸을 휘젓는 그녀의 마력.

       

       “…엄청난 마법이네요.”

       

       초월을 넘어선 천체 마법이다. 아득히 먼 경지인데…….

       

       “마법진을 재건하는 게 가능하겠나?”

       “…그냥 맞추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에요.”

       “돌려보낼 수 있는 거겠지?”

       “네.”

       

       그럼 됐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10분이면 가능할 거예요. 이미 만들어진 걸 조립만 하면 돼서.”

       

       그 할멈 그렇게 말했으면서 처음부터 돌려 보내줄 생각이었잖나.

       

       “부탁하지.”

       “네.”

       

       카자르는 눈을 감은 채 내게 손을 얹고 마법진을 분석했다. 그대로 복사해서 마력만 넣으면 되니 문제는 없을 거다.

       

       “그리고 연결점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마법을 발동시킨 다음 나를 매개체로 삼으면 될 거야. 라드리엔이 이미 완성 시켜놓은 상태라 어렵진 않을 거고.”

       

       울적한 목소리로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카자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곧 사라진다는 건 그녀만이 알고 있다.

       

       “…됐어요.”

       

       카자르는 얹었던 손을 떼고 입술을 머금었다.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내가 알기론 마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충분한가?”

       “…네. 처음부터 초월 마법사가 전부 만들어 두고 간 거 같아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좋아, 나를 가지고 마법을 전개해라. 내가 연결점이 되어 소미레를 돌려보내지.”

       

       소미레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눈밑이 다 부르텄다.

       

       “저, 정말로 돌려 보내주는 거야…?”

       “그래.”

       “정말…?”

       “그렇다고.”

       

       세계를 넘는다는 것은 운명을 움직이는 것이기에 영혼에 무리가 간다. 지금의 소미레라면 절대 버틸 수 없겠지. 그녀가 넘어올 수 있던 것도 내 영혼을 가지고 실행했던 마법이니.

       

       ‘지금도 가능할진 모르겠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빈혈이 온 것처럼 현기증이 몰려오고 눈앞이 핑 돌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일이 내 욕심으로 인해 시작된 일이니.

       

       “진 씨. 이 마법을 사용하면 당신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사용할게요.”

       “마법 이름은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야.”

       “네.”

       

       후우웅!!!

       

       방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거센 돌풍이 일었다.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

       

       나를 중심으로 돌던 돌풍이 소미레를 집어삼켰다.

       

       “소미레. 아니, 백아연. 세계를 넘어간 반동으로 여기서 있던 모든 일을 잊게 될 거다. 아팠던 기억은 모두 버린 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라.”

       

       백아연은 훌쩍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픽 웃었다.

       

       “잘 가라.”

       

       소미레의 머리 위로 새하얀 영혼이 빠져나와 마력에 휩싸이며 가루로 변했다.

       

       “커헉…!”

       

       천체 마법, 운명을 바꾸는 수레바퀴가 발동되자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으며 각혈했다.

       

       “진 씨!”

       “진…?”

       

       앞으로 엎어진 나를 카자르가 부축해주었다. 프란체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은 거니…?”

       “…괜찮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프란체의 얼굴. 그토록 바라왔던 재회가 이렇다니, 최악이구나.

       

       “초월 마법사와 싸우면서 상처라도 입은 거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입술이 메말랐다. 혀가 안 움직였다. 단어를 하나씩 연결해 한 줄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웠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우선 공작저로 돌아가요. 공작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카자르가 말하자 알겠어, 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그녀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얼굴에 감정이 저리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두려움. 어떤 감정보다도 인간적인 감정. 미지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 나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돌아가요. 우리의 공작저로.”

       “응…….”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보내지 못한 프란체였지만 이내 승낙했다.

       

       그러던 그때.

       

       “저기…….”

       

       백아연이 떠나고, 돌아온 원래의 소미레가 우릴 불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라데아와 케일도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상태가 좋지 않으신 거라면 제가 치료해드릴 수 있어요.”

       

       

       * * *

       

       

       우리는 공작저로 돌아왔다. 원래의 성녀, 진짜 소미레와 함께.

       

       나는 손님방의 침실에 누워있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로.

       

       “진의 진찰을 부탁해.”

       “네.”

       

       소미레는 군말 없이 프란체의 말을 따라 내 상태를 살폈다.

       

       “…….”

       

       바로 어두워지는 소미레의 얼굴.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겠지. 아무리 성녀라도 강림을 사용해 여신의 힘을 쓰지 않는 이상, 나를 구할 수 없다.

         

       ‘…강림.’

         

       그거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강림이란, 성녀라는 기적을 대가로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거니까.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백아연도 강림을 사용하지 않았어.’

         

       몰랐다기엔 곁에 라드리엔이 있었다. 연결점인 ‘로판소’ 게임도 플레이해봤고.

       

       나는 소미레에게 속삭였다.

       

       “지금은 대충 넘어가지.”

       “…알겠습니다.”

       

       소미레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란체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상태를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괜찮은 건 맞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하는 소미레. 거짓말은 못 한다는 건가.

       

       “공작님, 저는 괜찮습니다.”

       “…거짓말.”

       “…….”

       “그래도 속아줄게. 안정이 우선이니까.”

       

       하지만, 하고 말을 잇는 프란체.

       

       “오늘 밤에는 못다 한 얘기를 다 할 거야.”

       “…예.”

       

       프란체는 그리 말하고 휙 몸을 돌려 자리를 비웠다. 오랫동안 그녀를 봐온 나로선 알 수 있었다.

       

       내게 화가 났으면서도 걱정하고 다시 잃게 될까,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불안감.

       

       나는 그녀의 앞에 서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거다.

       

       “저…….”

       

       자리에 남은 카자르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살아계신 거예요?”

       

       많이 궁금했는지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라드리엔과 맺은 초월자의 계약이었다. 내 존재, 영혼, 생명. 이 세 가지를 바치고 운명을 바꿨을 뿐이지.”

       

       당연히 후회는 없다.

       

       “살아있는 이유는 집념이다. 나는 사실 망령의 상태와 똑같아. 공작님과 영혼이 결속되어 어찌 버티고 있을 뿐, 오늘이 지나면 끝나겠군.”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약? 운명? 이미 영혼이 결속되어 있다고요? 자, 잠시만요. 저 지금 진 씨가 하는 말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혼란이 오겠지. 그럴 만도 하다.

       

       “아무튼, 나는 오늘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거로 알고 있어. 존재가 사라질 테니 너희들의 기억에서도 잊힐 거야.”

       

       나는 후련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서 진 바렌베르크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없던 거다. 그러니 내가 사라지고 해야 할 뒤처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수천 년을 반복한 삶이었다.

       

       이젠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지.

       

       “…그런 게 어딨어요.”

       

       카자르가 아랫입술을 잘근 씹은 채 나를 노려봤다.

       

       “당신 엄청 무책임한 거 알아요?”

       “알아.”

       “아는 사람이 왜…!”

       

       이 이상으로 카자르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거였다. 바랐던 것도 이뤘고.”

       “…….”

       “곧 사라져 잊힐 사람이니 그리 슬퍼하지 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분위기가 계속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소미레에게 사과했다.

       

       “성녀. 예기치 못하게 너에게까지 피해가 갔다. 면목이 없군.”

       

       소미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당신과 공작님의 운명. 그리고 슬픔을 알고 있으니까요.”

       

       순간적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알고 있는 건가?”

       “네. 조금은요.”

       “내가 널 죽였다는 것까지?”

       “네. 천체 마법이 발동되며 제게 당신의 기억이 들어왔어요.”

       

       내 기억을 엿보고도 저러다니,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원망스럽진 않나?”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소미레는 하지만, 하며 말을 이었다.

       

       “증오는 연쇄예요. 누군가는 끊어내야 하죠. 저는 그저 여신에게 선택받은 자로서, 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자로서 증오를 짊어지고 연쇄를 끊어낼 뿐입니다.”

       

       성녀다운 발언이지만…….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아무런 죄가 없던 그녀를 복수심 하나로 수없이 죽였던 나다. 죽어서까지 속죄해도 모자라다.

       

       “그러니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남자들과 엮이는 건 싫었으니까요.”

       

       소미레는 헤실하게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오히려 성녀라는 책임이 없는 지금이 편하네요. 이대로 없는 사람이 되어 황실로 돌아가지 않고 공작저의 주치의로 취직해도 되나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그녀. 그저 쿡쿡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공작님께 여쭤봐라.”

       “좋아요.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여전히 성녀다운 그녀지만, 기억이 섞이고 빙의 당해서 몸을 빼앗겼으니 성격이 좀 바뀐 걸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이제 밤이 되어가네요.”

       

       소미레의 말에 창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

       

       내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고대하던 재회의 시간이다.

       

       그리고, 영원한 이별을 알릴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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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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