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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하아…….”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던 리브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물들과의 전선에는 조금의 진전이 없었다. 이쪽은 엄연히 운용할 수 있는 병력에 한계가 있는 반면, 마물들에게는 물량의 한계가 없다시피 한 탓이었다.

         

       ‘아이테르시여…….’

         

       마물들과 전투를 시작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매 전투마다 수십이 넘는 성기사들이 스러졌고, 신성력을 과다 사용한 대가로 쓰러진 사제들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살아남은 성기사와 사제들이 생과 사를 넘는 경험을 바탕으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했기에 망정이지, 그조차도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약간의 휴식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리브가만 해도, 방금 전까지 전장 한복판에서 고위 신성 술식을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전쟁의 불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리브가는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고 스러질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성녀님. 제국에 있는 제 1교구를……철수시키라고 하셨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국에 불신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성녀님께서 그런 것도 모르셨겠소?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말을 하셨을 것 아니오!’

         

       아무리 리브가가 성녀라고 한들, 대륙의 최강국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수교를 끊을 권한은 없었다. 당연히 반발이 따랐다.

         

       그녀가 전생의 기억을 복기하며 얻어낸 여덟 장의 성익(聖翼)를 꺼내 신의 뜻이라고 일축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성녀 직을 박탈당했을 정도였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리브가가 한 일은 그저 날개를 꺼냈을 뿐. 교단의 추기경들이 멋대로 뜻을 곡해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지만…….’

         

       사륵.

         

       천막이 걷히는 소리.

         

       천천히 시선을 돌린 리브가의 눈에 들어오는 황금빛 로브를 입은 여인.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며 많이 순해졌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 개중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유독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미색을 지녔지만, 갓 성인이 된 여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함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리브가를 보며 느릿한 손길로 로브를 걷더니, 얕은 웃음을 지었다.

         

       “또 한숨을 쉬고 있었구나.”

       “……!”

         

       리브가의 눈동자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멜리나 님! 돌아오셨군요!”

         

       리브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멜리나를 마주했다.

         

       “말도 없이 어디를 다녀오신거에요? 설마…….”

       “담판을 짓고 왔단다.”

       

       멜리나가 국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리브가는 곧바로 멜리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무슨 말을 하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아 황녀는 말이 통할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단다. 다만……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했을 뿐이란다. 그래도 옛 정이란 것이 있었으니.”

         

       전생에서, ‘올리비아’가 폭주했을 때 아리아를 자유도시 마키나로 대피시킨 사람이 바로 멜리나였으니까.

         

       멜리나의 말에 리브가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 할 게 많아지겠네요. 제국을 상대하기 위한 정보 조직을 더 운용해야겠어요.”

         

       올리비아를 죽이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어느 한쪽이 의견을 굽히지 않는 이상, 싸움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다닥 지도로 달려가는 리브가를 보며, 멜리나는 기특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세월이 참 빠르군.’

         

       처음부터 리브가와 멜리나가 이렇게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둘에게는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리브가가 멜리나의 성격에 맞춰줄 수 있을 만큼 선한 마음씨를 가진 덕이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리브가. 그 멜리나조차 움찔할 정도로 심장에 위험한 자세였다.

         

       “……?”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리브가는 토끼눈을 한 채로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멜리나는 문득 아쉬움을 느꼈다.

         

       만약 올리비아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자로 삼았더라면, 저런 폭력적인 귀여움을 매 순간 마주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멜리나는 안타까움을 잠재우며 눈을 다시 감았다.

         

       저 영민한 소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었다.

         

       ‘올리비아와 겹쳐 보는 것을 아는데도 묵인해 주고 있는 거겠지.’

         

       언제까지고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늙으니 주책이군. 주책이야…….’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걱정도 많아졌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대악마에게 납치당한 올리비아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뿐.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걱정부터 하게 된다. 그나마 성녀 곁에 있으면 그런 끔찍한 상상들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멜리나가 유독 리브가의 천막에 자주 머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신성력에 몸을 맡기면…….

         

       “……음?”

         

       눈을 떴다.

         

       멜리나는 멍하니 천막의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건?”

         

       손에 깃털처럼 내려앉은 무언가.

         

       그녀의 손에, 푸른 실이 한 가닥이 들려 있었다. 멜리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실을 붙잡았다.

         

       그 순간, 마음 속 깊은 곳에 굳어 있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

         

       멜리나가 헛숨을 들이킨다. 감정의 격류를 견뎌내지 못한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평범한 실이 아니다.

         

       마력 조작 능력이 정점에 달한 고위 술사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실.

         

       마력사.

         

       확실하다.

         

       푸른 마력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분명, 올리비아의 것이었다.

         

       왜 이걸 자신에게만 보냈을까. 멜리나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잠시 나갔다 오마.”

        “예, 예? 멜리나 님? 방금 돌아오셨으면서 또 어디를…….”

       

       멜리나는 리브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찼다.

         

         

       *****

         

         

       땅거미가 지는 어두운 숲 속.

         

       새와 벌레의 울음소리만 감도는 곳. 올리비아는 개중 유난히 높이 솟은 나무에 걸터 앉아 주변 풍광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다.’

         

       키엘은 연쇄살인마를 데리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아무리 키엘이 중책을 맡고 있다고 해도, 신원 미상의 외부인인 연쇄살인마를 무슨 생각으로 데려가나 싶었는데…….

         

       ‘설마 종자라는 핑계를 댈 줄이야.’

         

       기사가 되기 전, 그들의 밑에서 배우는 수련생. 모든 기사가 그의 종자가 되기를 꿈꿨지만, 정작 키엘은 누구도 제 종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그랬던 키엘이, 폐관을 마치고 종자로 데려온 소년.

         

       자연스레 연쇄살인마에게 시선이 끌리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오오, 자네가 검성께서 새로 데려온 종자인가?’

         

       ‘흐음, 근육이 그렇게 커보이지는 않는데. 오러량이 남달랐나보군.’

         

       ‘한 번 겨뤄보고 싶은데. 어떤가?’

         

       ‘오, 올리비아. 이 사람들 이상해. 나 좀 도와…….’

         

       순식간에 성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연쇄살인마가 눈빛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올리비아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키엘이 있는 이상, 연쇄살인마가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장 연쇄살인마 본인도 실력차를 눈치챈 듯 보였으니까.

         

       키엘의 대검에 썰려나가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몸을 사리겠지.

         

       올리비아는 멜리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은밀하게 마력사를 퍼뜨렸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시려나.’

         

       올리비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올리비아는 아직도 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나뿐인 제자를, 5년 만에 만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저번처럼 화를 내시려나?

         

       무의식중에 멜리나를 존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올리비아는 동요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멜리나는 올리비아가 대하기 어려워하는 몇 안되는 회귀자였다. 불편하다는 뜻에서 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유대감을 느낄 정도로 결속력이 단단한 탓이었다.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고, 올리비아 또한 그 이상으로 멜리나에게 의지했다. 애초에 제자들을 맡기고 갔다는 것 자체가, 멜리나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발로였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어렵다. 너무 가까워져버려서.

         

       솔직히,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만 해도 올리비아는 그 누구와도 정을 붙일 생각이 없었다. 만약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이 ‘몰살’이라면, 도무니 맨 정신으로 그들을 죽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꺼운 마음의 벽을 처음으로 뚫고 들어온 사람이, 바로 멜리나였다.

         

       마지막 순간에 어깨를 피고, 활짝 웃던 그 모습을 본 순간, 올리비아는 이 세계의 결말이 ‘몰살’이 아니기를 그 누구보다 절실히 바라게 되었다.

         

       “……하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루 빨리 단서를 전부 모아 메인 퀘스트가 뭔지를 알아내야, 이 답답함도 해소할 수 있을텐데.

         

       ‘14번째가 누군지 나오지를 않으니.’

         

       항상 등장했던 알림창은, 아우렐리아를 끝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14번째 회귀자는, ‘?’ 입니다.]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름은 커녕 그 이명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라면 이런 것 따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귀자 15명의 신상은 전부 기억해두고 있었고, 어차피 이 알림창은 이미 정해둔 계획에 확신을 가지게 해주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올리비아의 미간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억이 안나.’

         

       14번째 회귀자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뚜알기가 조아님 34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꾸준한 후원…! 항상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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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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