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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메인 홀에 걸린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의 빛이 눈부시다.

         조금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해도 괜찮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민낯을 들춰낼 기세로 조명을 강하게 해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껏해야 밝은 곳에서 활동 중이라는 떳떳함 정도? 이런 행사 자리에 나올 명사들이 그 정도로 드러나는 싸구려 화장이나 티 나는 성형을 하지는 않았겠다마는.

         

         중앙에는 소형 분수대와 그 곁을 따라 배치된 손쉽게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 푸드가 잔뜩.

         한쪽 벽에는 온갖 형태의 잔과 형형색색의 술병이 가득 차 있는 미니 바가.

         

         …사실 개인 별장에 있는 바이기에 미니 바라고 칭한 거지, 그 규모나 방문객들이 이용하는 빈도를 보면 그냥 웬만한 술집이나 다름이 없어서.

         

         하여간 밑에 깔린 보드라운 양탄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활동하고 있음에도, 분위기가 망가지지 않도록 발소리 하나 새지 않게 품어주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비강을 찌르는 냄새는… 솔직히 좀 어지러웠다.

         

         회장 자체에 깔린 종류 모를 그윽한 꽃향기는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디퓨저 같은 걸 이용한 거라면 나도 하나 구해서 쓰고 싶다고 여길 정도로, 단지 그게 수많은 손님들이 쓴 향수나 향유와 섞여버리니 악취가 되어서 그랬지.

         

         

         “이사님! 감히 인사를 나눌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 여기 제 명함만이라도…!!”

         “부디 신약 시험이나 공정 분업화 예정이 있다면 저희 바이오메스 제약에게!”

         “…혹시라도, 파트너 분과는 하기 힘든 ‘특수한 플레이’를 바라신다면. 파티가 끝나기 전에 언제든지.”

         

         

         ‘맙소사….’

         

         아직 회장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요지경 이 지랄이다.

         

         다짜고짜 코팅된 종이 명함부터 들이미는 인간, 어떻게든 인상만이라도 남기겠다는 것처럼 연신 자사 명칭을 소리치는 놈, 무슨 성접대 비즈니스라도 운영하는지 은근한 눈웃음을 치면서 추파를 던지는 여성.

         

         심지어 스팸메일도 아니고, 만들어 둔 전자 명함을 주변 사이버웨어로 무차별 송신하는 진상까지.

         

         감각이 예민해진 탓일까?

         웃는 얼굴 밑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출세욕이나 욕망이 너무 노골적이라 두 눈 뜨고 직시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아귀 무리라고 해야 하나… 만약 밖을 나돌 때마다 보이는 게 이런 풍경뿐이라면 권력자들이 꽤 시니컬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다. 덧붙여서 아득바득 덤벼드는 주인공과 헬레나에게 별별 거물들이 관심을 보인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가고.

         

         “제 사업 아이템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딱 십 분만 시간을…….”

         “최근 파라다이스의 살벌한 내홍에 대해 한 말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익명의 고위 임원으로부터의 코멘터리(Commentary; 나레이션)로 처리해서….”

         

         이젠 슬슬 얼얼해지는 코와 귀를 무시하고 몰려든 인파를 힐끔힐끔 살폈다.

         

         비록 개량형이긴 해도 이런 서구적 파티에 유별난 일본 전통복을 입고 참석한 건 너무 개성적이지 않나… 내심 걱정했는데, 이들을 보니 상대방이 걸친 아이템들의 가치로는 급을 나눠도 패션 센스로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걸 세상 실감했다.

         

         개인에게 잘 어울리는 색감을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라 하던가?

         그게 외부로 드러내야 강한 인상을 남기고 쓸모가 있다는 건 알겠지만, 조금 화끈하게 적용한 건 아닐까 싶었다.

         

         붉은 이브닝 드레스와 새빨간 머리를 늘어트린 여자, 퇴폐적으로 가슴팍을 드러내고 얼굴에는 물방울 모양 문신까지 한 시퍼런 남자 등. 숫제 도화지 위에 엉성하게 흩뿌려진 물감 마냥 제 존재감을 나타내는 꼴이 우스웠다.

         

         아, 그러고보니 호레이쇼 녀석도 저런 식으로 일종의 깔맞춤을 했었지? 나름 최신예 스타일로 무장한 애를 인간 양배추라고 씹어댔으니 나름 억울했겠네.

         또 볼 일이 생기면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눈에 띄는 모습을 하면 좋은 점이 뭐가 있냐고.

         

         어쨌거나 대부분은 돌아다니는 웨이터로부터 건네받은 와인이나 샴페인 글라스를 한 손에, 일부는 주량이 어마어마하거나 알코올 해독과 관련된 임플란트가 있는지 아예 위스키나 브랜디 병을 꼬나 쥐고 다른 손으로 명함을 들이밀거나 여러 제스쳐를 표하느라 바빴다.

         

         잘난 이사님의 눈꼽만한 반응이라도 이끌어내면 성공이라는 것처럼.

         

         “……?”

         

         그제서야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내가 아는 에다마츠 아마기가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도 순순히 참아줄 위인이었나…?

         

         그야 주변 눈이 많으니 생분해실(Biodegradation Chamber)에 처넣고 슥삭…! 같은 정신나간 짓을 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진작에 눈앞에서 꺼지라고 윽박지르거나 쓸만해 보이는 인재가 있었으면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돌려 쇼우를 바라보았고.

         

         이 주변에서 자신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듯, 열띤 표정으로 묵묵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 그, 사람이 갑자기 몰려들어서 무심코 어깨가 닿을 정도로 달라붙긴 했는데. 그게 신경 쓰였으면 말을 하시지 왜 무섭게 내려보고 계십니까….

         

         “……치울까요? 아나스타샤?”

         

         “아니….”

         

         왜요. 뭘요. 그게 제 마음대로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야 이 화상아.

         

         순간 다양한 말을 목젖 근처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치운다는 표현이 칼춤을 춘다는 의미는 아니기를 바라면서.

         

         “아마기 이사님! 제발 한 말씀만…… 왁!?”

         

         팡! 하는 공기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우리의 등뒤로부터 뻗어 나온 검은 팔이 거센 풍압을 일으켜서 인파를 한걸음 밀어냈다. 덤으로 마구잡이로 내밀어지던 명함 따위는 일순간에 모조리 잡아채서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웠고.

         

         하지만 일반인이 했다면 신기神技, 곡예사가 했다면 기립박수를 받았을 눈으로 쫓기조차 어려운 손기술은. 이 녀석에게는 그저 허가가 떨어지면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에 불과했다.

         

         “…정중히 명함을 건네시는 것까지는 관여하지 않겠으나, 그 이상의 불손한 행동은 소인도 묵과할 수 없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라겠소이다.”

         

         “”…….””

         

         심장을 틀어쥐고.

         폐부를 옥죄어 드는 낮은 음색에 그제야 섣불리 달려든 바보들이 정신을 차렸다.

         

         에나마의 검이자 방패, 실존하는 처형 요원 추적자. 그리고 꽤 소란이 일었음에도 상대해줄 마음은커녕 가치조차 없다는 듯 파트너의 기색만 살피느라 바쁜 상임 이사.

         

         세상에는 밀어붙이는 게 그대로 먹히는 인간이 있고, 반대로 세게 밀수록 반발하는 별종도 있다.

         …그럼 메가 코프 권력자의 반발은 얼마나 무지막지할까?

         

         “크흠…!”

         

         상황 파악을 완료한 이들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길을 텄다. 아니, 튼 정도가 아니라 다시 사교회라는 컨셉에 맞게 각자 교류를 나눌 적당한 상대를 찾아 떠나버렸다. 마치 한 무리의 벌떼처럼.

         

         “허….”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일단 내 안에 있던 메가 코프의 입지를 두 단계는 격상시킬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기업 위의 기업이라는 설정을 알았지만, 게임 시절의 감각이 남아있어서인지 현실에는 네오 헤이븐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무수한 중소 사업체들과 거기 속한 경영자들도 충분히 상류층의 일원이라는 자각이 좀 부족했다. 좀 주의하도록 하자.

         

         그래도 한편으로는 정말 이래도 되나…. 괜히 나 때문에 변태 도련님의 이미지가 더 추락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완전 기우였다.

         

         똑똑하게도, 음흉하게도. 정작 진짜 한가락할 것 같은 명사들은 저급한 틈바구니 속에서 부대끼기 싫었는지, 우리 일행이 알아서 벽을 허물고 빠져나오길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하, 아주 잘나셨어들.

         

         

         

         

         “아이고…! 이거 이사님처럼 뵙기 힘든 분을 이렇게 밑준비도 없이 대뜸 만나버려도 괜찮은가 모르겠네요!? 내일 벼락이라도 맞는 건 아닌가 몰라. 메모리얼 타임즈의 보도국장 피트 모건입니다!”

         

         “……에나마 코퍼레이션, 감찰위 상임 이사 에다마츠 아마기입니다. 붙임성이 뛰어난 분이라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입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 곱슬기가 감도는 수염이 북슬거린다.

         흔히들 드워프 수염이라 하던가? 푸짐한 살집과 그에 못지않게 수북한 눈썹이나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가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네오 헤이븐 제일 방송사의 주요 부서 국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쇼우가 마지못해 정중한 인사를 돌려주었다.

         

         겨우 항정신성 약물 생산라인 일부와 재활 구역 여기저기에 흩어진 부동산을 소유한 카사네 수준에서는 당연히 벅차고, 쇼우조차 함부로 대하기 불편한 정도의 유력자.

         

         입수한 초청 명단에는 분명 없었는데… 누군가의 동행인 자격으로 가벼운 현장 답사라도 나온 모양이었다.

         

         기실 원작에서는 만나볼 기회조차 없이 신문 기사에 박힌 이름과 사진, 퀘스트 의뢰자로서 대화문이나 몇 줄 나오고 말았던 인물이거늘.

         유난 떤다고 할 만큼 이름 앞에 접두사가 덕지덕지 붙은 것도, 넉살 좋은 태도로 굽신대는 것도 전혀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자격이 확실한 이의 말에는 힘이 실린다. 지위를 미리 밝히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틀어졌을 때 벌어질 참사가 예견된다면 남는 장사겠지.

         

         “그나저나… 옆에 계신 분은 혹시 미래의 사모님 되십니까? 아니면 아직은 사실혼 관계? 동양의 선남선녀라는 어휘가 저절로 떠오르는데…?”

         

         보도국장이라는 꽤 막강한 직함에도 쇼우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걸 곧바로 캐치한 그가 타겟을 내 쪽으로 바꿨다.

         

         꿍꿍이가 많아 보이는 나머지에 비하면 내가 비교적 어리숙해 보였나? 뭐, 상관없다.

         

         오늘의 나는 관상용 꽃 같은 존재, 주제를 모르는 바보였다면 호랑이-파트너-의 권세를 자기 것이라 착각하고 제가 뭐라도 된 것 마냥 주절주절 떠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저 웃는 얼굴로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족하다.

         

         감히, 귀하와 말을 섞기도 어려워하는 불쌍한 시민 나부랭이라는 태도를 강조하면 땡.

         그러면 구색 맞추려고 데려온 여자라고 적당히 납득하겠지.

         그리고 고작 그런 뻔한 립 서비스에 넘어갈 사람은 여기 없었으니, 흥미가 떨어지면 모건 국장도 알아서 떠나가….

         

         “정말 그래 보입니까?”

         

         빡!!

         

         활짝 웃으면서 담소를 초장기화하려는 쇼우의 발치를 냅다 걷어찼다.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최대한 안 들키게 발만 움직이기는 했는데 솔직히 국장이 알아챘는지는 알 바 아니고, 얘가 자꾸 작전을 까먹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서 일단 저질렀다.

         

         이게 날 방패막이로 삼으려 하다니…! 나도 이따가 몰래 빠져나가야 하는 몸이라고! 참석자 중 한 명으로 눈도장 찍는 수준에서 그치는 거 아니었어?! 아니면 이쯤은 해야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초대형 방송국 보도국장한테 가십거리용 재료를 예쁘게 던져주는 게 맞냐!

         

         “……그저 업무 실적에 대한 포상 차원에서 동행을 허락받은 일개 연구원에 불과합니다. 과분한 관심으로 누를 끼치게 되면 제가 너무 죄송스럽네요.”

         

         “허어…?”

         

         어쩔 수 없이 끼어든 내 대답을 들은 그가 갸우뚱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좋아, 그래도 이 정도면 물 흐르듯이 넘겼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통성명도 생략하는 모양새가 됐고, 쓸데없는 얘기를 더 이어 나가기도 애매해졌으니 이번엔 진짜로 물러나리라.

         

         “히야…… 에나마 임원 분과 휘하 직속 연구원 분의 산뜻한 연애 스토리라고요…?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정크 픽션(Junk Fiction; 시간 때우기용 소설이나 소재)도 이렇게 자극적이고 새콤달콤한 맛은 안 나는데…! 아, 실례! 크게 떠들 내용은 아니었군요!”

         

         “외부로 공표하는 건 절대 자제해주시길. 오늘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나온 것뿐이니까요.”

         “잠깐, 대체 그게 무슨 소리…… 국장님? 국장님! 대체 뭘 알았다는 것처럼 웃으면서 가시는… 아!!”

         

         차마 ‘야!’ 라고 부를 수는 없어서 대신 탄식을 내뱉었는데, 그는 그걸 제지로 받아들이지 않은 듯 그대로 회장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국장의 미친 헛소리를 똑바로 부정하지 않는 쇼우를 타박하려다가, 오히려 그 틈을 타서 떠나가는 당사자를 붙잡는데 실패하다니.

         

         사실무근한 러브라인이 어떤 식으로 재가공 되던지간에, 상임 이사의 엠바고가 풀리지 않는 이상 저런 개소리가 네트워크에 퍼지지는 않을 거라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만.

         

         하지만 사람이 기껏 작전을 위해 조신한 일본녀 연기도 참으면서 해주고 있었더니, 막판에 미친 기레기한테 걸려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써? 진짜 재수가 없을라니까…!

         

         …하, 현실 도피는 그만하자.

         차근차근 마감이 임박한 과제나 주문이 밀린 손님을 정리하듯, 한 그룹씩 응대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귀빈들을 상대하던 것도 이제 슬슬 마지막이니까.

         

         괜찮다. 기업 성향과 전문 분야가 거의 상극이나 다름없는 엑사테크 쪽 둘은 의례적으로 참석한 듯 이쪽에 다가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물론 관심이 없는 건 아니고, 구설수가 나올 행위 자체를 방지하려는 듯 적정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저들의 신체 개조율만 봐도 이 거리면 심장 박동조차 다 들릴 테니 말 그대로 면피용 자세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결국 남은 건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 불법성형과 인체개조가 만연한 시대에 자연미인 컨셉 광고 하나 찍고 싶다며 어디 광고 기획사에서 쥐어 주고 간 명함, 그리고 최후의 최후까지 추이를 관망하고 있던 헤이롱 관계자 둘이었다.

         

         “흐음….”

         “…….”

         

         옛 중공군 복장에 흑룡 이미지를 더하고자.

         눅눅한 원색 대신 배경은 흑일색, 곳곳에 새빨간 문양까지 더해진 장교복을 입은 동양계 남녀가 더는 만남을 미루지 않고 서서히 다가왔다.

         

         에나마가 미래지향적인 흑백 색감이라면, 저들은 강박적인 적흑이랄까.

         일부 유저층은 ‘와! SS! 슈츠슈타펠!!’ 이라며 기묘하게 열광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쎄 이 세계관에서는 중국의 후신 같은 애들이라 나는 그냥 상징색을 맞춰줬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독일계 기업은 파라다이스가 있는 걸? 본사가 멀리 있어서인지 여기엔 아무도 안 나왔지만.

         

         “…청방青幫 소속 2군 중장 량 티엔이오. 에나마 감찰위면… 우리 쪽 안전부(Ministry of Security)와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이까?”

         

         ‘없다면 여기, 한창 승진 가도를 달리는 민 소위를 소개해드리고….’ 라며 뒷말을 흐리는 중년 남자를 우리도 마주보았다.

         

         카사네 아마기가 정치적으로 수술 당할 죄목은 카이쥰이 준비한 ‘기밀 유출을 통한 공모 내란죄’이나, 불법적으로 의약품 생산량을 끌어올려서 헤이롱에 유출하고 있다는 혐의가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내가 찾아내야 할 증거이고.

         

         그러니 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헤이롱 인사라면 작당모의와 99%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지, 발을 빼야 할지 결정하고자 직설적으로 찔러보는 과감한 대응은 나쁘지 않았다. 대답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수상하거나 어색한 낌새만 보여도 빨리 몸을 빼낼 수 있을 테니까.

         

         웃기는 얘기긴 한데, 넷 해커가 극성인 세상이라 그런지 보통 현장 적발이나 증거 물품이 남는 것만 잘 피하면 어찌저찌 재기할 기회를 또 얻게 된다나 뭐라나.

         

         어쨌든 저쪽은 은근슬쩍 속내를 드러냈다.

        내 귀에 들린 걸 껄렁하게 해석하자면.

       

         

         ‘야, 너네 윗선에서 우리끼리 장난치던 게 진짜 문제가 됐으면, 우리는 이만 재미보고 빠질 테니 일 봐라.’ 정도?

         

         ……생각보다 거래 규모가 작았나? 아니면 역시 쇼우가 직접 행차한 게 부담됐나?

         그래도 저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빠져버리는 건 그림이 영 아니지 않나… 고민하던 와중, 아니나다를까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게 용한 녀석이 움직였으니.

         

         “Dǎrǎo yīxià! 흑룡팔강黑龍八强으로 이름 높은 티엔 중장님을 뵙게 되어서 이거 영광입니다…! 옆에 계신 헤이롱 공채 226기수의 기린아 민 소위님까지 같이 계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자세한 얘기는 상임 이사님께 ‘전권을 위임받은’ 직속 비서인 제가 잘 설명드리겠습니다.”

         

         “뭐? 음?? 어허, 그래. 얘기가 길어진다면 잠시 자리를 잡는 것도 괜찮겠지.”

         

         손을 맞잡는 포권과 더불어 언제 배운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중국어까지 일삼으며, 바람처럼 튀어나온 카이쥰이 샐쭉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안내를 시작했다.

         

         절대 이런 탁 트인 곳에서 떠들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듯 회장 안쪽에 마련된 독립된 휴식 공간으로 두 사람을 유도하는 솜씨가 존나게 매끄러웠다.

         

         사실이라는 것처럼 수긍해 보이는 쇼우와 저 능구렁이가 곁들인 디테일한 개인 정보가 설득력을 불어넣었는지, 원래라면 절대 독대할 급이 안 되는 카이쥰 놈이 주도권을 쥔 채로 회장을 떠나버렸다.

         

         “…와우.”

         “흠, 가끔은 실망시켜도. 제 쓸모를 증명하는 놈답군.”

         

         그러고보니… 우리의 악동 미스터 K는 에나마 비서실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각계 각층에 뿌려진, 그러니까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연줄이 어마어마하게. 수상할 정도로 많았다.

         

         아마 저런 식으로 접근해서 거래하거나, 틈이 보이면 약점을 틀어쥐는 걸로 뒤편에서 암암리에 영향력을 키웠으리라.

         

         이번에야 방해물이 있으면 녀석이 먼저 나서서 치우는 걸로 협의하기는 했는데… 설마 저래 놓고, 카사네는 이제 침몰하는 배니까 에나마 내부 커넥션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자기한테 갈아타라고 뒤에 가서 유혹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씨,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괜히 저 놈 배때지만 불려주는 것 같은데….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지만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서 털어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을뿐더러 하여튼 우리는 도착했기에.

         

         손님이 아닌 주최자, 드디어 만나보는 목표물 겸 희생양.

         비록 주도적으로 홀을 돌아다니며 말을 거는 행태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불청객이 여유작작하게 자기 행사장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았을까?

         

         “……칫!”

         

         보란듯이 혀를 차는 자태에도 기품이 흘렀다.

         모든 참석자들을 지나치자 아까 밖에서 봤던 테라스 앞에 한 여성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서있었다.

         

         카사네 아마기, 불쌍하게도 오늘 죽을 죄가 정해질 여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런, 성실한 아나스타샤는 일방적으로 급발진을 얻어 맞고 말았습니다….

    느아아악! 이틀만에 와서 죄송합니다.
    사실 어제 이 시간에 3천자는 채웠는데… 거기서 끊으면 이도저도 아닌 내용인지라 합쳐왔습니다.

    …네? 그래도 분량이 아쉽다고요? 그건 제가 못나서 그런 게 맞습니다! 부디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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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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