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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바토리 부총장에게 암살자 습격 사건을 알리면 과연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솔직히 궁금했다.

     지브롤터 가문의 후계자를 회유하는 데 얼마나 진심일지.

     이전에는 왕국과 제국 사이가 지금처럼 가깝지 못해서, 왕국에 온 건 졸업식 날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세이레네 백작령을 비롯하여 수년 전부터 자주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제국의 황태자가 제집 드나들듯이 오는 건 많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금 많이 진심인 모양이다.

     “이게 뭔지 아는가? 그대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마도자동선이라네.”

     현재, 나는 합스베르크 황태자와 함께 마도자동선 위에 올라있다.

     “그대를 위해 새롭게 만들었지.”

     “하, 하하….”

     “왜? 부담스러운가?”

     “외장만 보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저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군요.”

     마도자동선은 겉으로 보면 상당히 낡았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앤틱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오래된 성에서 볼 법한 가구 특유의 고동색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실상은 어떠한가.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마도엔진의 박동이 보통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속력이 어느정도까지 올라가는 겁니까?”

     “철도 위를 달린다고 하면 최대 200km/h는 거뜬하게 나오지.”

     “시간당 200km. 겉으로 보면 그냥 낡은 범선인데, 속은 아주 괴물을 만들어두셨군요?”

     “그래야 무능왕이 또 보고 탐을 내면서 빼앗아 가려고 하지 않을 거 아닌가.”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히죽거리며 난간을 가볍게 손으로 쓸었다.

     “나중에 무능왕이 사라지면 그때 포장재를 벗기거나 그러시게. 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새로 한 대 만드는 게 더 빠르려나?”

     “그럴지도 모르죠.”

     “…생각보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아스타시아 전하의 꿈을 꾸려고 했는데, 암살자들이 덮치는 바람에 아스타시아 전하를 꿈에서 뵙지를 못해서.”

     “으하하!”

     내 말에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난간을 손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그게 제일 화가 나던가?”

     “예.”

     “옹졸한 질투심 때문에 죽이려고 든 게 화가 나는 게 아니고?”

     “그 인간은 그런 인간입니다. 음식이 맛없다고 요리사를 기름에 튀겨 죽이는 인간이죠.”

     “…그런 적이 있었나?”

     “그럴, 인간이라는 겁니다. 비유입니다. 어디까지나 비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인데,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사람 피말리게 한 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설마 진짜로 사람을 기름에 튀겨 죽이는 미친 짓을 벌이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가 없어진 것 같기도 한데.”

     “은폐 공작을 펼쳤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겠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기름에 튀겨 죽였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 망상일 뿐입니다.”

     “망상?”

     “실제로는 얌전히 손을 잘라버렸거든요. 죽이지는 않고.”

     “…아아. 그때 그 일 말인가. 은폐 공작으로 덮어버린 일을 말하는 거군.”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어딘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난 또. 실제로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줄.”

     “그런 일이 있었어도 그건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폭군 무능왕 이야기.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좋은 일화 아닌가? 무능왕. 음식 투정을 하며 음식을 만든 요리사를 기름에 튀겨 죽이다.”

     “노스트럼이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무능왕을 상대로 음해하려고 하는 프레임이로군요.”

     “음해는 나나 자네가 먼저 하고 있지 않나?”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장난스럽게 나와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대놓고 일국의 군왕을 ‘무능왕’이라고 칭하는데.”

     “고발하실 겁니까?”

     “안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농담을 하는 거지.”

     “농담을 좋아하는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농담도 사람 봐가면서 하는 거지. 자네는 내가 하는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구별해내지 않는가?”

     그건 맞다.

     농담과 진심 사이, 교묘하게 내 속내를 떠보는 듯한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별하고 있다.

     한 번 틀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흐흐. 아무래도 우리 그레이 지브롤터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그래. 어리석은 군왕을 위에 두고 있으려고 하니 힘들지?”

     “너무 유능한 사람의 아래에서 365일 내내 굴려지는 것보다, 무능한 자가 1년에 한두 번 와서 꼬장을 부리고 가는 걸 대응하는 게 훨씬 더 속 편합니다.”

     “뭐?”

     “전자는 개인의 삶이 없지만, 후자는 적어도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틀리면 죽는다고 해도, 마냥 수비일면도로 나가는 건 결국에는 몰려 죽는 지름길이다.

     “저는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자산은 줄어드는 것이며, 일하지 않으면 결국 고갈되는 게 돈이야.”

     “그러니 은퇴하기 전에 불로소득이 들어올 구석을 만들어둬야죠.”

     지금까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국 황태자가 무능왕을 성토하며 나를 달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면.

     “혹시 ‘경룡’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금부터는 모처럼 기회인 만큼, 사업설명회다.

     “경룡이라…. 경마는 들어봤는데.”

     “저도 경마를 신문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말이 아닌 용, 그러니까 비룡으로 하겠다고?”

     “다양한 경쟁 중 속력 경쟁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겠지?”

     “예. 경룡으로 도박을 좀 한다거나.”

     내가 손가락을 작게 꼼지락거리자,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어딘가 실망스럽다는 듯 대놓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고작 푼돈 좀 만지자고 도박장을 만들겠다고?”

     “어른분들이 다 푼돈 이야기를 하시는데, 푼돈이면 어떻습니까? 경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법.”

     “왜?”

     “흠, 글쎄요.”

     사업설명회에서 말하는 방식으로는 빵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혹시 압니까? 너무 많이 혹사당한 경룡이 갑자기 축 땅에 떨어져버리고, 그 위에 타고 있던 기수가 긴급탈출을 하지 못해서 죽어버리게 될지.”

     

     합스베르크 한 명을 상대로 하는 사업설명회인 만큼, 그가 가장 혹할 내용만 은근슬쩍 제시하면 그만이다.

     “속도와 경쟁을 즐기는 분들이 술을 마시고 비룡에 오르거나 약에 취해있거나 하다가 안장에서 미끄러져 추락사할 수도 있는 거고요.”

     “무능왕을 암살하려고 하는 건가?”

     “그건 암살이 아니라 자살인 겁니다.”

     “…….”

     경룡을 통해 벌어들일 도박 자금은 눈에 보이는 이득이요.

     그 자리에 모여들 매국노 크비슬링스를 포섭하여 미래의 대륙에 방해가 될 쓰레기를 모아뒀다가 나중에 요로결은에 걸리게 하는 게 간접적 이득이며.

     기도가 통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경룡하겠답시고 안전장치도 없이 냅다 비룡의 위에 올라탔다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서 죽는 일이 생기면 국가의 경사가 아닐까.

     “그거 아십니까? 노스트럼의 선조와 영령들이 만일 노스트럼의 국가적 위기를 위해 어떤 영웅을 보내준다고 칩시다.”

     “으음….”

     “그런데 막말로 약 빨고 술 꼴아서 비룡 타고 과속하다가 죽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자를 위해 영웅을 보내주고 싶겠습니까?”

     “그건…그렇겠지. 하지만 핏줄이라고, 후손이라고 아껴주거나 그러지 않겠나?”

     “투자할 거라면 차라리 그다음 대의 왕에게 투자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겠죠. 뭐, 그 왕이 넘어설 수 있는 적당한 시련이 재앙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으음….”

     

     생각이 복잡해지겠지.

     “뭐, 곰팡이 무서워서 치즈 묵히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로서는-”

     “치즈는 그냥 치즈 그대로 먹는 게 맛있지.”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이게 무서운 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삭히거나 그런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 신선할 때 잘 익혀서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

     실제로는 썩힌 치즈도 잘 먹으면서, 상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레포를 형성하는 자.

     “자네는 어떤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은 신선할 때 먹는 게 최고죠.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담는 자.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먹어버린다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좀 더 자라게 하여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으음….”

     “뭐, 이건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누구처럼 냅다 알을 깨다가 그 흰자로 프라이를 해먹는 일은 없겠죠.”

     “그건 그렇지.”

     생각의 차이는 어느정도 있겠지만, 대화의 끝맺음은 공통된 목적을 상기시키는 걸로 정리하면 큰 문제는 없다.

     “공식적으로는 내가 그대를 위해 직접적으로 움직이지는 못 해.”

     아무래도 슬슬 시간이 다 되었다고 판단하는 걸까.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본론을 꺼내놓는다.

     “제국 여인과 사랑하는 것에 대한 굴곡은 예상했겠지만, 이 정도로 격렬한 암살 시도가 진짜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설령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이걸 진짜로 하네’라는 정도였을 거고.”

     “정확하십니다. 합스베르크 전하.”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국 유학생 기숙사에 마도공학 장치들을 보내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어. 방범장치 수준이거나, 아니면 그런 걸 달기 위해 예산을 더 편성하는 것 말고는 없지.”

     “비공식적인 방법으로는?”

     “자네가 원한다면.”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가볍게 혀로 훔쳤다.

     “두 가지 방법이 있네. 하나는 유학생을 전원 교체하여, 황녀를 지키는 방법.”

     “…….”

     “왜? 싫은가?”

     “예. 싫습니다.”

     “그 사이에 정이라도 든 건가?”

     “정이라기보다는, 아스타시아와 둘이 있어야 할 시간에 10분 단위로 계속 체크하려고 드는 그런 경호원은 필요 없습니다.”

     황태자는-

     아니지.

     

     ‘무서운 인간이야.’

     합스베르크는 은근슬쩍 내게 정보를 전했다.

     너라면 눈치챘을 거라며, 그런 기대감을 품고 내게 한 가지 넌지시 정보를 ‘흘렸다’.

     어떻게 한다.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저는 두 번째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뭐라고 생각하는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암살자를 보내거나 할 수 없게 행동을 제약하는 방법.”

     “…100점. 100점이야.”

     합스베르크가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그 방법으로 무엇이 좋을까. 자네는 알고 있나?”

     “이미 방법은 정해졌고, 제게는 그 방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사전에 통보하려고 이렇게 직접 오신 거 아닙니까?”

     “200점. 맞아. 나는 자네에게 알려주려고 온 거야.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서.”

     “좋은 기회라….”

     기회는 기회다.

     “하긴. 그레이 지브롤터를 직접 합스베르크 전하께서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무능왕에게는 정치적 압박이 되겠군요.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니.”

     “…….”

     딱히 점수가 없다.

     아마도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눈치인 것 같다.

     “저는 방학 중, 아스타시아를 비롯하여 협곡 탐방 동아리 학생들과 지브롤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음.”

     “공식적으로 학기 중이 아닌 시기인 만큼, 아스타시아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시기죠.”

     “…음?”

     “갑자기 제국에서 무슨 일이 생겨서 아스타시아가 즐길 방학에 차질이 생긴다면, 제가 세워둔 여름방학 계획도 전ㅡ부 흐트러질 거라는 겁니다.”

     “자네, 설마.”

     합스베르크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러니 웬만하면 공식적으로 아스타시아를 황궁에 부를 일이 있다면, 학기중으로 미뤄주시겠습니까? 학기 중에 제국에 호출된다면, 그건 공가 처리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왕국의 아카데미 교수들이라면 옳다구나 하고 결석 처리를 할 것 같은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함부로 결석 처리를 할 수는 없겠죠. 음, 뭐, 논란을 일으켜서 제국 문화 탐방을 하겠다고 설치는 자가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고.”

     할짝.

     합스베르크가 입맛을 다신다.

     고백을 받기 직전의 여인처럼, 아닌 척하면서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말을 기다린다.

     “하아.”

     잠시, 진심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경하드립니다. 합스베르크 폐하.”

     “……!”

     어쩔 수 있나.

     아스타시아를 먼저 ‘황녀’라고 부른 건 합스베르크인데.

     “…그런가.”

     합스베르크는 옅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2학기 시작할 때, 황궁에서 보지.”

     “초대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스타시아가 황궁에 와야 하는데, 자네가 안 올 리가 있나.”

     

     아무래도.

     역사가 바뀔 모양이다.

     황제 등극은 졸업식 이후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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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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