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3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
    ​
    ​
    당황으로 물들었던 공작가 사람들의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하게 굳어졌다.
    ​
    ​
    “공작님 이거 아무래도…”
    “그래, 예상이 맞을 거다.”
    ​
    ​
    세상에는 이유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 또한 이유 없이 만들어졌을 리 없었다. 마침 짐작 가는 이유도 하나 존재하지 않던가?
    ​
    ​
    ‘우리를 노렸던 적, 그놈들이라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테니.’
    ​
    ​
    공작은 제 딸을 빼닮은 도플갱어를 떠올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
    ​
    ‘그놈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적’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겠지.’
    ​
    ​
    어떠한 경우의 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기에 공작은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린 채 말에서 내렸다.
    ​
    ​
    쉽게 볼 수 없는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건장한 말을 타고 우르르 다가가면 폐쇄적인 마을 특성상 겁에 질려 문을 걸어 잠그거나 싸움이 벌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에 소수의 기사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
    ​
    그 어떤 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흘러나오는 배려였다.
    ​
    ​
    마을로 향한 공작은 마을 사람들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있던 기사를 일행에게 보내 마을로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다.
    ​
    ​
    리안은 마차 창문 밖, 생명력이 넘치는 땅과 활기찬 마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
    ‘뭔가 기괴하네.’
    ​
    ​
    길가에 서서 이유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불쾌한 것을 본 것처럼 미간을 구기게 된다. 마을은 딱 그런 분위기였다.
    ​
    ​
    이유를 알 수 없는 평화와 이상할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평화롭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마을 풍경까지.
    ​
    ​
    완벽하기에 존재하는 기괴함이었다.
    ​
    ​
    ***
    ​
    ​
    마을 사람들은 공작 일행을 환영하며 커다란 주택까지 내어줬다. 그런 친절이 일행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
    ​
    ‘보통 이런 식으로 친절한 마을에서 마음 놓고 있다간 수면제가 들어간 약을 먹고 기절하겠지. 깨어났을 땐… 블랙 기업 계약서나 신체 포기각서에 지장에 싸인, 도장까지 찍은 후일 테고.’
    ​
    ​
    개그 세계적인 전개를 떠올려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
    ​
    ‘여긴 다크 판타지 세계니까…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가 마을 강도들에게 털리거나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겠네.’
    ​
    ​
    다행히 공작가 일행은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고인물들이었다. 리안이 예상한 상황은 물론 그보다 더한 상황까지 예상하고 대비하기 시작했다.
    ​
    ​
    말끔한 저택 내부에 온갖 함정과 마법이 깔리는 걸 구경하는 사이, 공작이 리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
    ​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아, 얼마든지요.”
    ​
    ​
    공작이 다가오자 아이리스가 주춤거리며 리안의 뒤에 숨어버렸다. 리안과 공작 사이를 가로막아 대화조차 못 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지만, 머릿속이 폭풍이라고 내려앉은 것처럼 혼란스러워 떨리는 시선을 숨기는 것 밖에 할 수있는 게 없었다. 
    ​
    ​
    꾹.
    ​
    ​
    리안의 손을 꽉 잡은 채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리안은 빈손으로 아이리스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
    ​
    “아이리스, 잠시 다녀올 테니까.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곤란하다면 나중에 얘기해도 좋다.”
    ​
    ​
    아이리스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고개를 저으려다 들려온 공작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공작이 말하는 ‘나중’이 자신이 잠든 시간을 말하는 거라는 걸 기민하게 눈치챘기 때문이다.
    ​
    ​
    아이리스는 슬쩍 고개를 들어 제 엄마 -… 아니, 공작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공작가에 걸린 초상화를 통해 확인한 적이 있었던 얼굴은 색을 제외하면 아이리스와 그다지 닮은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
    ‘아름다워…’
    ​
    ​
    외모만 아름다운 이는 몇 번이고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공작만큼 성숙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품은 이는 처음이었다. 날 서 있는 분위기조차 대적할 수 없는 포식자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
    ​
    ‘밤에 단둘이서 만나는 건 안 돼.’
    ​
    ​
    아름다운 공작과 리안을 자신이 잠든 시간에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
    “나,도 같이 갈게.”
    ​
    ​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잇자 리안이 몸을 휙 돌려 아이리스의 눈을 직시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아이리스가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
    ​
    “금방 아이리스의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착하게 기다려줄 수 있지?”
    “..응.”
    ​
    ​
    리안은 볼을 붉힌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가리킨 소파 쪽으로 걸어가는 아이리스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
    ​
    ‘역시 아이리스는 착하다니까.’
    ​
    ​
    리안은 조금 전에 있던 대화를 간곡하게 부탁하는 오빠와 그런 오빠에게 져주는 착한 동생의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공작에겐 전혀 달리 보였다.
    ​
    ​
    “..여자를 다루는 데 능숙해 보이는군?”
    ​
    ​
    아이리스를 살살 달래던 리안의 모습은 어디로 보나 여자 다루는데 익숙한 바람둥이처럼 보였다. 물론 공작이 이번 일만 보고 그런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근거는 따로 있었다.
    ​
    ​
    매일 같이 곁에 끼고 있는 절세의 미모를 가진 수인을 끼고 다니고, 어째서인지 남장을 하고 다니는 (공작의 눈썰미는 피해 갈 수 없었다) 미인 또한 사연 많아 보이는 시선으로 틈만 나면 리안을 바라봤다.
    ​
    ​
    셋 다 귀족조차 감탄할 만한 외모를 가진 이들인데 그보다 놀라운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힘이 곧 법이나 다를 바 없는 세계에서 외모와 실력까지 갖춘 미인 세 명을 동시에 감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
    ​
    만약 그 셋 중 한 명과 미래를 약속한 상태였다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이해라도 되었겠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
    ​
    결과적으로 리안은 엄청난 미모와 실력을 전부 갖춘 미녀 셋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아무런 갈등 없이 하렘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실력을 가진 바람둥이… 처럼 보였다.
    ​
    ​
    “네? 아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아..이리스 말고도 저 붉은 머리의 수인이나 -..”
    “지금 저와 함께하고 있는 일행은 전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던 가족 같은 존재라서, 여자를 잘 다룬다기보단 아이를 잘 돌본다는 쪽이 맞는 말입니다! 하하핫!”
    ​
    ​
    리안은 허겁지겁 공작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말을 쏟아냈다.
    ​
    ​
    ‘후우… 진짜 죽을 뻔했다.’
    ​
    ​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제 딸과 대화한 남자를 보며 ‘너 여자 잘 다룬다?’라고 말하는 공작이라니, 리안에겐 사형선고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
    ​
    ‘도망치기 전에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
    ​
    설마 공작이 제 목숨을 구해준 존재를 그리 박하게 대할까 싶지만, 상대는 아이리스다. 그녀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가지고 놀았다는 오해라도 사면 감옥행이 그나마 유한 결과일 것이다.
    ​
    ​
    리안이 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적어넣고 있을 때, 공작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거짓말 같진 않으니… 흠. 데릴사위도 나쁘지 않겠군.’
    ​
    ​
    이미 정열적인 사랑을 해본 탓인지 공작은 아이리스가 리안을 향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눈치챈 상태였다. 
    ​
    ​
    ‘선물로 나쁘지 않겠어.’
    ​
    ​
    공작은 제 딸의 마음을 열게 할 선물로 리안이 제격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녀의 눈동자에 탐욕이 내려앉았다. 좋은 검을 발견한 검사의 시선과 비슷해 리안이 흠칫 몸을 떨었다.
    ​
    ​
    ‘뭐,뭐지? 괴상한 취향을 가진 수집가에게 잡혀 박물관에 전시될 거 같은 불안감은?’
    ​
    ​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려는 순간, 공작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
    “오해해서 미안하군. 그럼 잠시 나를 따라오게.”
    “아, 예!”
    ​
    ​
    상황이 얼렁뚱땅 잘 마무리된 것 같아 안도하며 공작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불안감 또한 얼렁뚱땅 사그라들었다.
    ​
    ​
    저택 내부는 함정 설치로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가 없어, 건물을 빠져나와 옆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머물게 된 저택 옆에는 비슷하게 생긴 저택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또한 손님용이라고 했다. 
    ​
    ​
    이런 작은 마을에 손님용 집이 몇 개나 되는 것도 수상한 점 중 하나였다.
    ​
    ​
    공작이 마력을 흘려보내 안이 텅 비어있는지 확인한 후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로 들어섰다.
    ​
    ​
    비어있는 건물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번거롭고 괜히 옆 건물에 몰래 숨어드는 모습을 마을 사람에게 들키면 귀찮아질 터라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에서 입을 열었다.
    ​
    ​
    리안은 공작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
    ​
    “신관이요?”
   “그래.”
    ​
    ​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말에 의하면 이 낙원 같은 곳을 만든 이가 자신을 ‘신관’이라 소개한 노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픈 자를 치유했고, 이후엔 몰아치는 눈보라를 없앴으며, 사나운 몬스터까지 정화해 지워버렸다고 했다.
    ​
    ​
    “신관이 보통 그 정도로 강한가요?”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신관은 본 적이 없다. 한명을 빼고는.”
    “그런 강한 신관이 있긴 있군요.”
   
    ​
    역시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그런 강자라면 분명 원작에서 언급이라도 되었을 텐데?’
    ​
    ​
    의문이 치밀어 공작을 바라보자 시선이 딱 맞물렸다.
    ​
    ​
    “여기 있지 않나? 그 정도로 강한 신관.”
    “예에?!”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고, 눈보라 정도는 가뿐하게 ‘베어’버릴 수 있고, 거기다 몬스터까지 싹 쓸어버릴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런 비옥한 땅은 만들어낼 수 없어요!”
    ​
    ​
    공작이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표정은 ‘네가 그렇게 말하니 일단 넘어가 주겠다.’라는 표정이었다. 리안은 오해가 커지기 전에 풀고자 손에 신성력을 모아 바닥에 냅다 뿌렸다.
    ​
    ​
    “보세요! 아무것도…”
    ​
    ​
    파아앗!
    ​
    ​
    땅속에 숨죽이고 있던 씨앗들이 발아하여 잡초, 꽃, 덩굴 식물 등 온갖 식물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당황으로 물들었던 공작가 사람들의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하게 굳어졌다.

“공작님 이거 아무래도…”

“그래, 예상이 맞을 거다.”

세상에는 이유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 또한 이유 없이 만들어졌을 리 없었다. 마침 짐작 가는 이유도 하나 존재하지 않던가?

‘우리를 노렸던 적, 그놈들이라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테니.’

공작은 제 딸을 빼닮은 도플갱어를 떠올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놈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적’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겠지.’

어떠한 경우의 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기에 공작은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린 채 말에서 내렸다.

쉽게 볼 수 없는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건장한 말을 타고 우르르 다가가면 폐쇄적인 마을 특성상 겁에 질려 문을 걸어 잠그거나 싸움이 벌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에 소수의 기사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그 어떤 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흘러나오는 배려였다.

마을로 향한 공작은 마을 사람들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있던 기사를 일행에게 보내 마을로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다.

리안은 마차 창문 밖, 생명력이 넘치는 땅과 활기찬 마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뭔가 기괴하네.’

길가에 서서 이유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불쾌한 것을 본 것처럼 미간을 구기게 된다. 마을은 딱 그런 분위기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평화와 이상할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평화롭다.’라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마을 풍경까지.

완벽하기에 존재하는 기괴함이었다.

***

마을 사람들은 공작 일행을 환영하며 커다란 주택까지 내어줬다. 그런 친절이 일행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보통 이런 식으로 친절한 마을에서 마음 놓고 있다간 수면제가 들어간 약을 먹고 기절하겠지. 깨어났을 땐… 블랙 기업 계약서나 신체 포기각서에 지장에 싸인, 도장까지 찍은 후일 테고.’

개그 세계적인 전개를 떠올려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여긴 다크 판타지 세계니까…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가 마을 강도들에게 털리거나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겠네.’

다행히 공작가 일행은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고인물들이었다. 리안이 예상한 상황은 물론 그보다 더한 상황까지 예상하고 대비하기 시작했다.

말끔한 저택 내부에 온갖 함정과 마법이 깔리는 걸 구경하는 사이, 공작이 리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아, 얼마든지요.”

공작이 다가오자 아이리스가 주춤거리며 리안의 뒤에 숨어버렸다. 리안과 공작 사이를 가로막아 대화조차 못 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지만, 머릿속이 폭풍이라고 내려앉은 것처럼 혼란스러워 떨리는 시선을 숨기는 것 밖에 할 수있는 게 없었다.

꾹.

리안의 손을 꽉 잡은 채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리안은 빈손으로 아이리스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이리스, 잠시 다녀올 테니까.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곤란하다면 나중에 얘기해도 좋다.”

아이리스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고개를 저으려다 들려온 공작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공작이 말하는 ‘나중’이 자신이 잠든 시간을 말하는 거라는 걸 기민하게 눈치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슬쩍 고개를 들어 제 엄마 -… 아니, 공작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공작가에 걸린 초상화를 통해 확인한 적이 있었던 얼굴은 색을 제외하면 아이리스와 그다지 닮은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워…’

외모만 아름다운 이는 몇 번이고 마주한 적이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공작만큼 성숙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품은 이는 처음이었다. 날 서 있는 분위기조차 대적할 수 없는 포식자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밤에 단둘이서 만나는 건 안 돼.’

아름다운 공작과 리안을 자신이 잠든 시간에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같이 갈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잇자 리안이 몸을 휙 돌려 아이리스의 눈을 직시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아이리스가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금방 아이리스의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착하게 기다려줄 수 있지?”

“..응.”

리안은 볼을 붉힌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이 가리킨 소파 쪽으로 걸어가는 아이리스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이리스는 착하다니까.’

리안은 조금 전에 있던 대화를 간곡하게 부탁하는 오빠와 그런 오빠에게 져주는 착한 동생의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공작에겐 전혀 달리 보였다.

“..여자를 다루는 데 능숙해 보이는군?”

아이리스를 살살 달래던 리안의 모습은 어디로 보나 여자 다루는데 익숙한 바람둥이처럼 보였다. 물론 공작이 이번 일만 보고 그런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근거는 따로 있었다.

매일 같이 곁에 끼고 있는 절세의 미모를 가진 수인을 끼고 다니고, 어째서인지 남장을 하고 다니는 (공작의 눈썰미는 피해 갈 수 없었다) 미인 또한 사연 많아 보이는 시선으로 틈만 나면 리안을 바라봤다.

셋 다 귀족조차 감탄할 만한 외모를 가진 이들인데 그보다 놀라운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힘이 곧 법이나 다를 바 없는 세계에서 외모와 실력까지 갖춘 미인 세 명을 동시에 감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약 그 셋 중 한 명과 미래를 약속한 상태였다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이해라도 되었겠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리안은 엄청난 미모와 실력을 전부 갖춘 미녀 셋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아무런 갈등 없이 하렘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실력을 가진 바람둥이… 처럼 보였다.

“네? 아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아..이리스 말고도 저 붉은 머리의 수인이나 -..”

“지금 저와 함께하고 있는 일행은 전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던 가족 같은 존재라서, 여자를 잘 다룬다기보단 아이를 잘 돌본다는 쪽이 맞는 말입니다! 하하핫!”

리안은 허겁지겁 공작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말을 쏟아냈다.

‘후우… 진짜 죽을 뻔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제 딸과 대화한 남자를 보며 ‘너 여자 잘 다룬다?’라고 말하는 공작이라니, 리안에겐 사형선고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도망치기 전에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설마 공작이 제 목숨을 구해준 존재를 그리 박하게 대할까 싶지만, 상대는 아이리스다. 그녀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가지고 놀았다는 오해라도 사면 감옥행이 그나마 유한 결과일 것이다.

리안이 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적어넣고 있을 때, 공작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 같진 않으니… 흠. 데릴사위도 나쁘지 않겠군.’

이미 정열적인 사랑을 해본 탓인지 공작은 아이리스가 리안을 향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눈치챈 상태였다.

‘선물로 나쁘지 않겠어.’

공작은 제 딸의 마음을 열게 할 선물로 리안이 제격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녀의 눈동자에 탐욕이 내려앉았다. 좋은 검을 발견한 검사의 시선과 비슷해 리안이 흠칫 몸을 떨었다.

‘뭐,뭐지? 괴상한 취향을 가진 수집가에게 잡혀 박물관에 전시될 거 같은 불안감은?’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려는 순간, 공작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해서 미안하군. 그럼 잠시 나를 따라오게.”

“아, 예!”

상황이 얼렁뚱땅 잘 마무리된 것 같아 안도하며 공작의 뒤를 따라갔다. 조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불안감 또한 얼렁뚱땅 사그라들었다.

저택 내부는 함정 설치로 대화를 나눌만한 장소가 없어, 건물을 빠져나와 옆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머물게 된 저택 옆에는 비슷하게 생긴 저택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또한 손님용이라고 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손님용 집이 몇 개나 되는 것도 수상한 점 중 하나였다.

공작이 마력을 흘려보내 안이 텅 비어있는지 확인한 후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로 들어섰다.

비어있는 건물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번거롭고 괜히 옆 건물에 몰래 숨어드는 모습을 마을 사람에게 들키면 귀찮아질 터라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에서 입을 열었다.

리안은 공작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신관이요?”

“그래.”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말에 의하면 이 낙원 같은 곳을 만든 이가 자신을 ‘신관’이라 소개한 노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픈 자를 치유했고, 이후엔 몰아치는 눈보라를 없앴으며, 사나운 몬스터까지 정화해 지워버렸다고 했다.

“신관이 보통 그 정도로 강한가요?”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신관은 본 적이 없다. 한명을 빼고는.”

“그런 강한 신관이 있긴 있군요.”

역시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강자라면 분명 원작에서 언급이라도 되었을 텐데?’

의문이 치밀어 공작을 바라보자 시선이 딱 맞물렸다.

“여기 있지 않나? 그 정도로 강한 신관.”

“예에?!”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고, 눈보라 정도는 가뿐하게 ‘베어’버릴 수 있고, 거기다 몬스터까지 싹 쓸어버릴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런 비옥한 땅은 만들어낼 수 없어요!”

공작이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표정은 ‘네가 그렇게 말하니 일단 넘어가 주겠다.’라는 표정이었다. 리안은 오해가 커지기 전에 풀고자 손에 신성력을 모아 바닥에 냅다 뿌렸다.

“보세요! 아무것도…”

파아앗!

땅속에 숨죽이고 있던 씨앗들이 발아하여 잡초, 꽃, 덩굴 식물 등 온갖 식물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

“…”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