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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3

   조이가 경고를 해둔 것이 효과를 발휘한 걸까?

   

   그 날 이후로 나를 향한 악의어린 시선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여전히 날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거야 일상적인 일이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지.

   

   더 이상 혼자서 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

   

   매일 같이 페이비랑 조이가 찾아와서 나랑 밥을 먹어 줬거든!

   

   메스가키 스킬의 독설에 익숙해진 건지 아님 그걸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호감도가 높은 건지는 몰라도 두 사람은 매일 점심이면 자연스레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보통은 페이비가 먼저 오고 그 뒤에 조이가 찾아오는 식이었지.

   

   덕분에 최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이 옆에 프레이도 함께 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걔는 칼이랑 같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기말고사 때 뭔가를 보여준다 그러는데 방해하는 것도 예의 없는 행동이잖아? 그래서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물론 행복한 만큼 구르기도 많이 굴렀다.

   

   현실에서야 평소에 하는 것처럼 저녁때까지 최선을 다해 단련을 했고. 잠을 잘 때에도 연습모드로 불려가서 할배와 함께 수련을 했으니까.

   

   거기에 더해서 아카데미 수업 시간에도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

   

   수업을 듣는 걸 게을리 하는 순간 할배가 눈에 불을 켰거든.

   

   다음 날 아침 정신은 피곤한데 몸은 멀쩡하다는 끔찍한 기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난 반드시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알른 영애. 제가 무슨 잘못했습니까?’

   

   평소 수업 시간에 책상과 한 몸이 되어 있던 내가 고개를 들고 있으니 교수가 벌벌 떨면서 이렇게 물어보더라.

   

   내가 멀쩡히 수업을 듣는 게 누군가에게 상처일 수 있다니. 이건 좀 마음의 상처였어.

   

   여러 모로 힘이 들기는 했지만 아카데미의 생활은 전체적으로 평화롭게 흘러갔다.

   

   원래라면 중간에 나크라드가 한 번 더 분탕을 쳐야 할 테지만 할배한테 박살나며 얻은 피해가 너무 컸는지 자그마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더라고.

   

   교회 측에서 나와서 아카데미에 퍼진 어둠을 지우는 과정을 가만 내버려 둘 정도로.

   

   거기에 더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허접 주신조차도 침묵했으니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 몇 개월 만에 겨우 학교생활 다운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고 하던가?

   

   청춘다운 하루하루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기말고사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지만 나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허접 주신이 나한테 기말고사 1등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말고사 성적 최우수자가 받는 보상이 그리 매력적인 것도 아니라서.

   

   망하면 망하고 아니면 아닌 거지라는 느낌이었다.

   

   할배도 여태까지 네가 공부한 지식을 시험한다 생각하라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이번 기말고사 때에 할배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할배 치트가 말도 안 되는 사기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직접 문제를 푸니까 절반은 풀 수 있는데 다른 절반은 아예 모르겠더라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한 지금도 이 꼴인데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잠만 잤을 적에는 어땠을는지 뭐. 말해 뭐하겠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번 기말고사 때는 순위가 저 아래로 처박히겠네.

   

   던전학이나 마물사냥학, 대련학 같은 데서 점수를 보충한다 치더라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말이야.

   

   나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면 조이가 분명 뻗대겠지?

   

   평소에 쌓아놓은 업보가 한 둘이 아니라 분명 그럴 거야.

   

   그것도 그것대로 귀엽긴 하겠지만 조이는 살짝 기가 죽은 편이 더 귀여운데. 으으. 이건 좀 아쉽다.

   

   필기시험을 다 끝마친 다음 날은 실기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개였다.

   

   던전 공략 시험과 대련학 시험.

   

   이외에도 체력 검정이라거나 무기술이라거나 여러 자잘한 게 있긴 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쪽은 내 전문 분야니까.

   

   그리고 수많은 실기 시험의 처음은 대련학 수업의 시험이었다.

   

   “안녕. 루시. 오랜만.”

   

   그리고 그 상대는 지난 번 시험과 똑같았다.

   

   프레이 켄트.

   

   훗날 차기 검성의 자리를 거머쥘 세기의 천재이자 소울 아카데미 속 근접 캐릭터 중 최강의 성능을 지닌 괴물.

   

   게임 속에서는 성능만큼 트롤링이 심해서 버려졌으나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녀석.

   

   그리고 내가 소울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동료.

   

   ‘네. 오랜만이네요.’

   “누구였더라? 아. 허접 검사구나? 너무 존재감이 없는 개허접 약골이라 잊고 있었네.”

   

   키득거리면서 놀리듯 이야기를 했지만 프레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얘가 감정이 옅은 편이긴 하지만 메스가키 스킬로 놀리면 자그마한 반응이 돌아왔는데.

   

   날 대비해서 연습을 했다 그랬으니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도 해둔 걸까?

   

   하긴 프레이를 가르친 칼이 도발에 당하는 순간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었으리라.

   

   의미는 없겠지만.

   

   대비를 한다고 대비가 되면 메스가키 스킬이 개사기 스킬일 리가 없잖아?

   

   원래 밸붕 기술은 대비하는 걸 의미 없게 만든다고.

   

   “오늘부터는 허접이나 약골 같은 소리는 못 하게 될 거야.”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푸하하핫. 꿈도 크네. 그런 건 불가능해. 넌 평생 개허접 약골 좆밥 검사일 테니까.”

   

   제발 프레이가 어떤 방식으로는 내 입에서 허접 소리를 없애줬으면 좋겠다.

   

   만일 거기에 성공한다면 나는 프레이가 원하는 뭐라도 해줄 수 있는데 말야.

   

   불가능한 생각을 헛웃음과 함께 지워버린 나는 한 손에 대련용 메이스를 들고 반대쪽 손에 신성으로 방패를 만들어 냈다.

   

   지금의 내가 전력을 다하면 아카데미의 1학년들은 견디지 못하기에 준비해 둔 최소한의 안전장치.

   

   프레이는 그를 보고서 살짝 눈썹을 낮췄다.

   

   “양 측. 준비 됐습니까?”

   

   대련학 수업을 주관하는 안톤이 우리 둘 사이에 서서 우리 두 사람의 눈을 살폈다.

   

   ‘준비됐습니다.’

   “보면 알잖아?”

   

   “준비 됐어.”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셋.”

   

   안톤이 숫자를 셈과 동시에 프레이가 자세를 취한다.

   

   이전에 검을 휘두를 때와는 많이 다르네. 그 때는 좀 더 자연체에 가까웠다.

   

   따로 자세랄 것이 없는. 좋게 말하면 본능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짐승 같은 검이었지.

   

   허나 지금은 아니다. 그녀의 동작은 간결하고 정돈되어 있다.

   

   버릇처럼 보이던 움찔거림조차 보이지 않는다.

   

   “둘.”

   

   칼이 제대로 교정을 해뒀네. 스스로의 천재적인 재능만을 믿고서 검을 휘두르던 짐승에게 규율을 때려 박다니.

   

   걔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자기 아가씨의 라이벌을 성장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얻어맞는 걸 보고 싶기라도 한 거니?

   

   칼 너도 점점 허접 주신을 닮아가는 거구나?

   

   나중에 한 번 밟아주든가 해야지.

   

   “하나.”

   

   그래도.

   

   응.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칼.

   

   네가 프레이를 수련시키는 동안에 나는 가만 놀고 있었던 줄 알아?

   

   나도 할배한테 죽어라고 수련을 받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 내가 여기서 박살날 리가 없잖아.

   

   날 깨부수고 싶다면 쪼잔 악신의 억까라도 들고 와.

   

   “시작!”

   

   안톤이 시작을 소리침과 동시에 프레이가 달려들었다.

   

   확실히 빠르네!

   

   아카데미의 다른 1학년이라면 프레이 네 속도를 대처하지 못하고 검에 목을 내어줄 거야!

   

   내가 보증할게!

   

   그렇지만 내게는 아냐!

   

   철벽이 고한다. 방패를 움직이라고.

   

   내가 판단한다. 방패를 움직여야 한다고.

   

   두 개의 생각이 겹친 순간 나의 방패와 프레이의 검이 맞닿았고 프레이의 검에 깃들어 있던 힘이 반감되며 튕겨난다.

   

   그에 따라 생겨난 거대한 틈.

   

   프레이는 그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뒤로 물러나서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많이 늘었네.

   

   예전 같았으면 이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리면서 날 몰아붙이려고 했을 텐데. 냉정을 추구할 줄 알게 된 건가.

   

   “뭐야♡ 개허접 약골♡ 이 정도로 날 이길 생각이었어?♡ 개 웃겨♡ 하다하다 뇌마저 약골이 돼서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거야?♡”

   “…응. 역시 이걸 써야 겠어.”

   

   등을 타고서 오르는 고양감에 도발이 먹혀들어갔음을 확신한 그 순간 프레이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건…

   

   <귀마개구나.>

   ‘귀마개네요.’

   

   도발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프레이의 도발에 헛웃음이 샜다.

   

   좋은 전략이야.

   

   좋은 전략이긴 한데.

   

   아마 의미 없을 걸?

   

   무생물한테도 먹히는 메스가키 스킬이 그 정도로 무마 될 리 없잖냐.

   

   *

   

   “전력을 다해서 휘두른 거 맞아?♡ 종이도 못 자를 것 같은 허접 검인데?♡”

   

   귀마개 진짜 쓸모 없어.

   

   프레이는 자신의 귀를 뚫고서 들어오는 루시의 목소리에 이빨을 갈았다.

   

   도발에 넘어가서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 그대로 패배하게 될 거라는 칼의 조언을 듣고 귀마개를 준비했다.

   

   상점에서 이야기하기로 드래곤이 포효를 내지르더라도 막아줄 수 있는 물건이라 했지만 귀마개는 무의미했다.

   

   루시의 목소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를 뚫고서 들어왔으니까.

   

   괜히 귀를 가로 막는 게 거슬린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닿은 프레이는 훌쩍 뒤로 물러나서는 귀마개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뭐야?♡ 내 목소리가 없으니까 힘이 안 났던 거야?♡ 너도 변태였구나?♡ 역겨워라♡”

   “시끄러.”

   

   나지막히 대답을 한 프레이는 심호흡을 하면서 검을 다잡았다.

   

   역시 루시는 강했다.

   

   검의 궤적을 정확히 가로 막는 방패술.

   

   그녀의 검을 가볍게 튕겨낼 정도로 압도적인 근력.

   

   자그마한 틈조차 놓치지 않는 반응 속도.

   

   몇 번이나 합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체력.

   

   진짜 괴물이야.

   

   그래도.

   

   할만 해.

   

   프레이는 자세를 다잡으며 여태까지 자신을 가르쳐 주었던 칼을 떠올렸다.

   

   칼은 최선을 다해 루시를 쓰러트리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선은 프레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다.

   

   검을 잡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발을 움직이는 것.

   

   싸울 때 보고 생각해야 할 것들.

   

   검을 휘두르는 법.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

   

   칼은 여태까지 프레이가 본능적으로 행하고 있었던 일들을 수면 아래에서 끌어내선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궤도에 진입했다 판단한 칼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오래 싸우면 집니다. 지구전으로 갔을 때 알른 영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라 기사를 찾아봐야 할 정도죠.

   그러니까 난전을 강요해야 합니다. 방패가 거슬려도. 메이스가 무서워도. 계속 달라 붙어서 정석적인 구도를 무너트리려고 해야 하죠.

   물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악어를 끌어 올리려면 악어가 이빨을 들이밀고 싶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칼이 프레이에게 알려준 전략은 그야말로 루시 한 사람을 완벽히 무너트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를 알고 있었기에 프레이는 압도적인 차이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이 정도 차이라면 상정 내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그 대신 칼을 치켜듬과 동시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루시를 노려 봤다.

   

   “안 올 거야?♡ 겁 먹어서 다리를…”

   “허접.”

   “…뭐?”

   “방패 뒤에 숨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겁쟁이.”

   

   그리고는 시비를 걸었다.

   

   루시라는 악어의 감정을 뒤흔들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게 허접이다.

——-

초도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100만 조회수 기념 후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메스가키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소설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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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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