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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로즈마리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떠났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로즈마리보다 로테가 더 무서웠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과거 행적을 이정표로 삼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로즈마리는 안심할 수 있는 존재였다.

       

        로즈마리는 여태 일관된 반응을 보여왔다. 유독 나에게만 유약한 모습을 보여왔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로테는 아니었다. 

       

        오늘 로테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늘한 눈빛과, 절멸급 마수를 상대로도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모습.

       

        고마웠다. 나를 아끼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늘 무르고 부드러웠던 내 친구였다. 그런 로테가 어두침침한 표정을 보여주었을 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래서 로즈마리보다는 로테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말았다.

       

        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뜻밖에 힘든 하루를 보냈다. 한숨을 내쉬던 내 곁으로 로테가 팔짱을 낀 건 그때였다.

       

        “많이 춥다, 그치?”

       

        늦은 밤. 나와 로테는 식사를 마친 뒤, 어둠이 내려앉은 대로변을 걷고 있었다.

       

        “어, 응.”

       

        그녀의 말대로였다. 오늘따라 밤공기가 유독 쌀쌀맞았다.

       

        아직 10월 초순이었다. 그런데도 로브나 코트를 두껍게 껴입지 않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이런 날씨는 제국의 지리적 특징에 기인한다. 여름에 선선하고, 가을부터 추워진다. 그 때문에 여름에도 얇은 로브를 입고 다닐 때가 많았다.

       

        “볼 거 다 봤으니까 오늘은 일찍 돌아가자.”

       

        로테는 그리 말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팔짱을 낀 상태였기에, 내 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싫더라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오늘 내일은 로테에게 뭐든 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 점을 생각하니 로테를 선택한 게 정답이었다. 만약 동생과의 의리를 지키겠답시고 로즈마리와 같이 살겠다고 답했더라면 로테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이 안 간다.

       

        나는 그런 불확실성이 싫었다. 무서웠다. 나중에 알아차리지 못해서 현상 유지를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였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나는 평면적인 인물을 선호했다. 그 인물이 호감이건, 비호감이건 상관은 없었다. 일차원적인 관계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어? 저것 좀 봐.”

       

        상념에 빠져있던 찰나, 로테가 날 불렀다. 그녀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웬 두꺼운 실타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그 진열장으로 향했다. 나도 의식하지 않고 그 옆을 따랐다.

       

        그러더니 진열장이 있는 가게에서 상점 주인이 나타났다. 그가 ‘어서 옵쇼’라고 말했다. 

       

        “아이코, 혹시 아카데미 재학생이신가요?”

        “네.”

        “어이고야! 으쩐지…. 두 분 모두 귀하고 고우신 티가 팍팍 난다 했습니다!”

       

        주인장은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호객 행위 겸 설명을 늘어놓았다.

       

        “요 실타래들은 ‘마의요봉(魔衣耀縫)’이라 불리는 마도구입니다. 보시다시피 마력을 흘리면 흘린 사람 맘대로 옷을 짜내는 기능을 갖췄습니다. 그 덕택에 애인, 친구, 가족 선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죠.”

       

        내 입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마력을 흘리면 제멋대로 모습을 바꾸는 실타래라니.

       

        호기심이 당겼다. 나는 주인장 허락을 받고 실타래를 하나 들었다. 손끝에서 기묘한 감각이 둥실둥실 느껴졌다.

       

        “신기하다. 이거 원산지가 어디예요?”

        “허허, 원산지요? 품질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유명한 살리에르 영지에서 가져왔으니까요.”

        “살리에르?”

        “네, 그렇습니다. 거기 영지가 직물이나 양모… 그런 걸로 꽤 유명하잖습니까?”

       

        어라, 그랬나?

       

        내 고개가 로테를 향했다. 로테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엔 싱그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아저씨, 하나 주세요.”

       

        내가 어어, 하는 사이에 로테가 금액을 지불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고 하얀 실타래를 풀어냈다.

       

        눈으로만 봐도 알겠다. 저건 고급 원단이다. 로테가 돈을 지불할 때 금화를 내밀었다는 점이 그런 내 추측을 뒷받침하기도 했고.

       

        로테는 능란하게 실타래를 어루만졌다. 은은한 붉은빛 마력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실타래가 이리저리 정렬하며 옷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 너 주려고 만들었어.”

       

        로테가 만든 것은 목도리였다. 데이지처럼 하얀 목도리.

       

        로테는 갓 짜낸 목도리를 두 팔 벌려 넓혔다. 그리고 그대로 내 목을 감싸듯이 안았다. 

       

        내 눈이 로테와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잔하고, 또 고요했다.

       

        단 한 가지. 아주 약간의 독기가 스며있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눈동자의 미묘한 움직임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나를 바라보는 로테의 감정은….

       

        “짜잔, 엘프국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주는 선물이야.” 

       

        그래, 말해서 무엇하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반년. 내 목에 다시금 목줄이 채워졌다.

       

        “겨울방학 끝날 때까지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 섭섭해.”

       

        하얗고 따스한… 그렇지만 억지로 벗으려고 하면, 데일 것만 같은 목줄이었다.

       

         

        **

       

       

        로즈마리는 씩씩거리며 황궁 정문을 박찼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시녀들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공녀님을 걱정하는 메이드 한 명이 친히 숙소로 찾아왔으나, 거북이 베개를 던져가며 내쫓았다.

       

        “이런 썅…! 쌰앙!!”

       

        팡! 팡! 팡!

       

        잘 정돈된 침대 메트릭스가 무자비하게 난타당한다. 애꿏은 화풀이였다.

       

        “또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침실에는 블랜튼 공작이 함께 있었다. 얌전히 차나 마시며 쉬고 있던 그가 물었다.

       

        귀족 회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실행하기로 한 계획이 모조리 무너졌다. 그 때문에 로즈마리는 의기소침한 상태였고, 블랜튼 공작도 의욕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에게 준 카드로부터 돈이 대규모로 빠져나갔다는 알림을 받았다. 로즈마리는 언니가 카드를 잃어버린 건가 싶어, 곧바로 위치를 추적하여 그녀를 만났다.

       

        그 결과가 이게 무어란 말인가. 된통 안 좋은 일만 당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제 언니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어찌 모질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욕지거리만 하지 마시고 저한테도 좀 얘기해 보십쇼. 이래 봬도 당신 부관 아닙니까.”

       

        블랜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즈마리는 쌍욕만 연달아 내뱉었다. 공녀답지 않은 행동거지였다.

       

        그렇게 한참. 가쁜 숨을 고루 쉬던 그녀의 입에서 툭, 하고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그 빨갱이 새끼….”

        “그건 엘프국에 있는 ‘유령 마을’ 금안족들을 지칭하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그, 그 빨간 머리 년이 문제인 거야. 그 년이 그냥 빨갱이보다 더 악독해!”

       

        로즈마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까득, 그녀의 입가에 엄지손가락이 맞물렸다.

       

        “불여시 같은 년…. 나이라고는 계란 한 판도 안 처먹은 애새끼가 감히 우리 언니를 빼앗아 가려고 해?”

       

        블랜튼은 짐짓 한숨을 내쉬었다. 제 상관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다.

       

        “누구덥니까?”

        “살리에르 영애 말이야! 분수도 모르고 쳐 나대는 거 있지? 짜증나게, 진짜!”

       

        촤락! 로즈마리는 부채를 펼쳐 제 뺨을 식혔다. 그래도 펄펄 끓는 머리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디 프레온 가스 없나?”

        “철병팔진에 재고가 있을 겁니다.”

       

        “다음 주까지 가져와.”

       

        로즈마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입에서 연거푸 탄식이 새어 나왔다.

       

        거점에 돌아와서도 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언니를 당황하게 한, 싸늘하게 굳은 인간 여자의 얼굴이.

       

        “대체 왜 위압이 안 통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위압은 자신보다 정신적 서열이 낮은 상대에게 발동한다. 만약 상대방이 로즈마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거나, 분노 따위의 격한 감정을 품었다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인간족 중에 그런 베테랑들이 있다. 전선에서 구른 전략급 마도사들. 이들은 처음부터 죽을 각오로 전장에 서기 때문에, 단순 위압만으로는 내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소녀도 같은 부류라는 뜻인데.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로즈마리의 머릿속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당장 그녀를 담가버릴 방법이 수십 가지 떠올랐다.

       

        그러나 대부분은 언니가 싫어할 만한 계획이었다. 어떻게 해도 들킬 게 뻔하디뻔한, 그런 계획들.

       

        조금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살리에르 영애가 걸림돌이라고 하셨죠?”

        “그래.”

        “그러고 보면 회의 첫날에 있었던 일도 이상했습니다. 살리에르 백작을 처리하려 했을 때, 2석께서 직접 나서서 막으셨죠.”

        “…그렇지?”

       

        과연. 그제야 로즈마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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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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