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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쑥대밭이 된 마을은 ‘자기장 이상 현상’에 의한 에너지 공명 현상으로 인해 부서진 것으로 처리되었고, 잠깐이나마 소란스러웠던 안전지대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성인식을 치른 진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집으로 돌아갔으며, 군 인권 센터의 사람들은 어찌 되었건 일을 마무리하고 귀환할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파스스슥.

         

       부정.

       멧돼지 사체의 형상을 빌렸던 주물에서 비롯된, 타오르는 것만으로는 모두 정화되지 않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부정.

         

       부정은 그 누구의 눈에도 들지 않은 채 흔적밖에 남지 않은 마을의 한가운데서 썩어가고 있었다. TOD의 감시 장비를 피하고, 인공위성의 렌즈를 피하고, 저 멀리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는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말이다.

         

       부정이라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

       부정이라는 것은 사람을 꺼리게 하는 것.

         

       곰팡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부터 자라나 세를 넓히고, 충분해졌을 때야말로 색을 드러내며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드러낸다.

         

       축축하고 습한 곳에서 자라나는 이끼처럼.

       나무의 밑동에서 축축한 흙과 그늘을 머금고 자라나는 버섯처럼.

       썩은 나무의 속을 파먹고 자라나는 애벌레처럼.

         

       부정은 그 자체로 사각(死角)에 있는 것이며, 의식하지 않으면 찾아보기 힘들고, 한 번 발견한다면 들불처럼 번져있는 것을 그제야 눈치채는 것이다.

         

       진성이 재료로 사용한 주물에서 나온 부정은 곰팡이처럼, 이끼처럼, 벌레처럼, 무덤 한편에서 퍼져 음울한 어둠을 타고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시체 입자처럼 인식의 사각에 자리 잡고 부정을 땅 자체에 뿌리고 있었다.

         

       파스스슥.

         

       부정이 땅에 자리를 잡았다.

       간신히 멧돼지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새까만 덩어리에서 흘러나온 것은 잿물의 형태로 땅에 스며들어 땅을 새까맣게 물들였고, 땅속 깊숙한 곳에 있는 지하수를 향해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물에 검은 잉크를 탄 것처럼 제 주변을 검게 물들였고, 물들어진 곳에 끔찍한 부정을 내려주었다.

         

       그 부정이라는 것은 땅을 오염시키지는 않되 불행을 가져오는 것이고.

       자라나는 것을 직접적으로 해하지는 않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어나는 꽃에 꽃가루를 없애고.

       자라나는 곤충이 천적에게 잡아먹히게 만들며.

       알을 까면 금이 가게 만들고, 새끼를 밴다면 채 자라지 못하고 병에 걸리게 만든다.

       새싹은 노랗게 말라붙어 죽어갈 것이요, 자라나는 나무는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우두커니 말라붙은 제 시체를 전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정이 주는 해악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멧돼지의 표면에 달라붙은 재는 바람을 타고 조금씩 허공에 흩날렸고, 녹아서 사라지는 것처럼 스며들어 공간 자체에 작용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부정을 내릴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 즉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니.

         

       사냥하는 고기에는 병균이 들끓게 만들고.

       상처를 입으면 반드시 덧나게 될 것이며.

       이 공간에서 새끼를 기르려고 한다면 반드시 대가 끊기게 될 것이다.

         

       부정이란.

       뭉쳐지고 강화되어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게 된 부정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부정은 보이지 않는 것.

       인식한 뒤에야 그 실체를 알아챌 수 있으며, 염두에 두지 않으면 사각에 위치해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힘든 것.

         

       “여기인가?”

         

       그렇기에 위쪽에서 찾아온 불청객들은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흉흉한 공간에 겁 없이 발을 들였다.

         

       “좌표로 봐서는 여기가 현녀님이 말씀하신 곳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잖아. 다시 확인해봐.”

       “설명해주신 것과 풍경은 좀 다르지만, 좌표는 여기가 맞아.”

       “잠깐 기계 좀 줘봐.”

         

       불청객은 두 사람이었다.

       광택이 감도는 암청색 슈트를 입고 있는 동양인 두 사람은 단련한 듯 탄탄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고, 허리춤에 검은색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러네. 여기가 맞네.”

       “흠. 우리가 너무 늦었나?”

       “그럴 리가. 현녀님께 말씀을 듣자마자 잠수함을 타고 잠입했는데.”

         

       두 사람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계를 들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허공에 퍼진 부정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은 혹여 악령이나 악귀가 튀어나올까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그리곤 조심조심 부서져 버린 지붕을 들춰보기도 하고, 조각나버린 벽면을 살펴보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현녀님의 말씀이 틀렸을 리가 없는데….”

       “이거, 죄다 부서진 것도 그렇고 가오리방쯔 새끼들이 포탄이라도 쏜 거 아냐?”

       “아냐. 그렇다기엔 화약 냄새도 안 나고, 기계에 잔여 마력 수치도 정상이라고 나와.”

       “그럼 뭐지….”

         

       그들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긴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어디서도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흔적을 들추고 그늘을 들어가도 악령이나 악귀가 덮치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

       대신에 폐를 오염시키겠다는 듯한 기세로 피어오르는 먼지와 콧구멍 안쪽에 달라붙는 고운 모래만이 그들을 반겨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참 이상해. 현녀님 말씀대로라면 뭔가 특이한 것이 나타났다고 했는데….”

       “그런데 특이한 것은커녕 그냥 다 망한 방쯔 새끼들 집터만 보이는데….”

       “그러고 보니 현녀님이 정확히 뭐라고 하셨지?”

       “옛 북한 땅에 기이한 존재가 나타난 것 같으니 확인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뭐더라. 그 존재를 눈치챈 사이한 것이 발을 옮길 거라고 했었지.”

       “그래, 기이한 존재감과 사악한 방문자를 확인하라고 했어.”

       “그러고 보니 그 기이한 존재보고 뭐라고 했었지? 천문을 뒤틀고 그늘에서 태어났다고 했던가?”

       “천문을 뒤틀고 사이의 어둠에서 태어난 거 아냐?”

       “어, 그래. 맞아. 천문을 뒤틀고 별과 별 사이의 어둠에서 태어난 것 같은 존재라고 했어.”

       “이야. 표현 참 멋있네. 누가 들으면 주술사인 줄 알겠어.”

       “주술사라니,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계약자이신데!”

       “계약자도 그냥 계약자가 아니라 중명조(重明鳥)의 계약자라고!”

       “알았어. 그냥 해본 말인데 거, 민감하기는. 할 일이나 하자고.”

         

       그들은 마을을 전부 뒤적거렸음에도 특이한 것이 발견되지 않자 뽑힌 고목이 위치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고목이 있던 터로 다가가자 깊숙이 패인 땅덩어리와 조각조각 부서진 고목이 보였다.

       한때는 크게 뻗었을 앙상한 가지는 조각이 나서 사방에 흐트러져 있었고, 두꺼웠던 몸통은 뭔 짓을 한 것인지 크게 세 등분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고목에 뭐가 있나?”

       “각자 맡아서 살펴보자고.”

       “그래.”

         

       그들은 각자 한 사람씩 토막난 몸통에 다가갔다.

       그리곤 각기 챙겨온 장비를 이용해 천천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주술흔(呪術痕)을 살펴볼 수 있는 주물.

       마력과 기 등의 에너지의 흔적을 검출할 수 있는 검사기기.

       생물의 흔적을 형광으로 강조해서 보여주는 소형 스캐너 형태의 아티팩트.

         

       “흠. 마력과 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생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위치크래프트나 소환술도 아니고.”

       “마력도, 기도, 생물도 아닌데 특이한 존재가 태어났다면…. 연금술인가?”

       “그렇군. 그렇다면 현녀님께서 ‘존재’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가지. 생물은 아닌데 태어나는 것이면 무생물이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일 테니까.”

         

       그들은 각자 하나씩 살펴보곤 구덩이 앞으로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생물의 흔적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호문쿨루스는 아닌 것 같고.”

       “골렘이나 인형?”

       “그래.”

         

       그들은 아쉽다는 듯 주변을 쳐다보았다.

         

       “사진이나 영상을 들고 갔으면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 방쯔 새끼들 살던 곳은 허구한 날 노이즈가 끼니까.”

       “그래도 빠진 곳 없이 조사했으니까 문제 될 게 있겠어?”

       “그러면 뭐 문제 될 건 없는데…. 우리가 다 찾아봤었나?”

       “마을도 뒤지고 고목도 뒤지고. 뭐 더 찾아볼 게 있다고 그래?”

       “그러네. 다 찾아봤고, 뭐 더 조사해봤자 나올 것도 없어 보이고.”

       “그럼 그럼. 괜히 뭉그적거리지 말고 빠져나가자고. 괜히 들키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들은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일을 다 했다고 판단이 되자 조사할 때 사용했던 장비를 집어넣고 그늘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몸을 숨겼고, 다시 한번 잠입 장비를 점검한 뒤 밖으로 나와 마을에 혹시나 자신이 남겼을 법한 흔적을 지웠다.

         

       미세하게 남은 발자국을 지웠고, 바닥의 쓸린 자국을 지웠고, 혹여 주택의 잔해나 고목을 조사했을 때 손자국이 찍혔을까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렇게 철저한 확인을 거치고 나서야 그들은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가자.”

         

       세 사람은 그늘에서 그늘로 이동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몸을 숨기며 해안가의 으슥한 곳까지 움직였다. 그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잠입용 2인용 소형 잠수함까지 움직였고, 잠수함의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긴장의 끈을 놓았다.

         

       “후우.”

       “이번 임무도 끝났군.”

         

       비좁아서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좁아터진 잠수함의 안에서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얼마 없는 여유 공간을 활용해 입고 있는 장비를 벗어던졌다. 그들은 암청색의 잠입용 슈트를 벗었고, 허리와 어깨에 무리를 주던 수kg짜리 기기들도 전부 벗어던졌고, 좁아터진 공간에서는 서로의 허리와 영 좋지 않은 곳을 툭툭 건드리는 총도 풀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홀가분하다는 듯 기쁨이 섞인 한숨을 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 위화감이 드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잠수함이 원래 이렇게 좁았던가?”

       “거 2인용인데 좁은 게 당연하지.”

       “아닌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귀신에라도 홀렸나.”

       “맞아. 무슨 귀신에 홀린 사람 같은 말을 하고 그래.”

       “그런가…? 내 착각인가?”

       “그래, 착각이라니까?”

       “긴장 풀리니까 헛소리를 다 하네.”

         

       꽉 찬 잠수함의 안.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잠수함을 움직여 중국으로 향했다.

         

       “빨리 보고나 하고 쉬자고.”

         

       잠수함은 화기애애했다.

         

       “부대 근처에 생긴 사천 음식점이 맛있던데.”

         

       각자가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현녀님을 볼 수 있을까?”

         

       서로 존중했고.

         

       “봐서 뭐 하게.”

       “맞아. 그냥 보고만 하고 좀 쉬면 되는걸.”

         

       서로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봤으면 좋겠네.”

         

       세 사람은 웃었다.

         

       땀내를 풍기며.

       술을 탐하는 욕망을 보이며.

       하얗게 드러난 턱뼈를 움직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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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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