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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164화. 황금 나무 ( 6 )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이 떨어진다.

       

       한낮의 태양은 자리를 피하였고, 파랗고 청명하던 하늘은 어울거리는 밤하늘의 장막에 휩싸인다.

       밤이 찾아온다.

       

       태양이 자취를 숨기고 오로지 별로 가득한 밤이 도래한다.

       

       별.

       

       별이 쏟아진다. 

       은하수가 지상을 향해 행진한다. 위대한 기적의 씨앗을 노래하며 춤추듯 앞장선다.

       

       하늘하늘 빛나는 별들이 길게 꼬리를 끌며 곧장 지상으로 향했다. 무수한 별들이 일제히 꼬리를 만들며 떨어지는 장면은, 한 편의 그림으로도 남길 수 없는 장관이었다.

       

       “저, 저저저저… 저건!”

       “아아, 아아아…”

       《보아라, 원숭이들아. 보아라! 눈을 크게 뜨고 똑똑히 보아라. 이게 위대하고 또 위대하신, 여섯 번째 신의 기적이다!》

       

       무수한 선들이 하늘에 그어진다.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까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의 군집. 그것은 하나의 계시였다.

       

       동시에 기적이었다.

       

       전능의 편린.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별 하나하나가 전능의 조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주 작은 기적의 가능성을 품에 안은 별들이 내려앉는다.

       

       사아아ㅡ

       

       황금 나무가 마르고 비틀어진 가지를 힘겹게 뒤틀어 움직이며 별들을 향해 가지를 낮췄다. 잔뜩 낮아진 가지에는 노랗게 메마른 잎사귀가 눈에 띄었다.

       이윽고, 황금 나무는 목마른 이가 물을 받아먹는 것처럼 그 모든 별빛을 받아들였다.

       

       잎사귀에 내려앉은 별빛은 스며들고, 나뭇가지에 떨어진 별은 녹아든다. 

       기둥에 붙은 별은 흘러내리고, 뿌리로 향한 별빛은 스르륵 파고들었다. 

       

       “화, 황금 나무가! 황금 나무가아!!”

       “별이 따, 땅으로 내려와서…”

       

       그리하여 흡수한다. 

       

       별이 품은 작은 기적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몸에 품고 이루어낸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을 일을 이루어낸다.

       0에 수렴하는 확률을 이루어내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을 있게 만든다.

       

       그리하기에 기적(奇跡).

       

       별이 그리는 꼬리는, 신의 발걸음이 된다.

       기기묘묘한 발자취가 길게 늘어지고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이윽고 황금 나무에 맞닿았기에.

       

       기적이 일어났다.

       

       화아아악ㅡ!

       

       유성우를 몸에 받아들인 황금 나무가 눈부신 빛을 발한다. 죽기 전 최후의 회광반조일까?

       그 어떤 회광반조가 이렇게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지상에 목도한 기적을 보는 모든 이가 깨달았다. 이것이 황금 나무의 최후였고,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축포라는 것을.

       

       《오, 오오… 찬미해 마땅한 여섯 번째 신이시여.》

       

       이베르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고개를 깊이 숙여 땅에 박는다. 용의 자긍심? 오만? 모두 곱게 접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어버이와도 같으신 분. 예찬하고 찬송하며,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두근ㅡ!

       

       강렬한 맥박이 들려온다.

       

       별빛을 머금은 황금 나무가, 최후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자연 그 자체로 뻗어나간 가지에서, 땅을 이루고 있는 뿌리에서, 하늘처럼 펼쳐진 잎사귀에서.

       강렬한 파동이 메아리치며 모여든다.

       

       숨결이다.

       

       황금 나무의 마지막 숨결. 길고 긴 숨결의 마침표. 마침표는 작별을 뜻했고, 새로운 문장의 시작을 알린다.

       

       길게 늘어진 황금 나무의 마침표 옆에 파릇한 생명이 피어난다.

       

       황금 나무의 가장 높은 곳, 가장 커다란 가지.

       그 끝에서 새하얗고 순결한 꽃이 피어나고, 천천히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한다. 파르르 떨리며 기지개를 켜고, 수줍게 고개를 내밀며 조심스레 세상으로 뻗어 나온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모습을 보인 것은, 작디작은 황금 나무. 

       길고 긴 시간의 문장 옆에 비로소 찍힌 마침표. 그리고 새로 쓰이기 시작한 문장. 

       

       “아, 아아! 황금 나무, 황금 나무시여…”

       “부디, 부디 편하게 잠드세요.”

       

       고개 숙인 엘프들 사이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도 이제는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이별이었고, 그 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임을.

       

       쩍- 쩌적!

       

       모든 생명을 쏟아낸 황금 나무가 더욱 빠른 속도로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는 메마르며 앙상한 뼈대처럼 비틀어졌고, 잎사귀는 힘을 잃고 파르르 떨며 떨어져 내린다.

       

       

       죽음이 다가온다. 모든 것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황금 나무는 겸허히 그를 환영했다. 도리어 재촉하였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고.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

       

       이베르는 황금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토록 선명하던 신성력은 저 작은 묘목에 깃들어 있고, 남은 것은 그저 약간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이제 곧, 황금 나무는 영원한 휴식을 취하리라.

       

       《…원숭이, 못한 말이 있으면 지금 해라.》

       “아…”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꾸욱.

       

       이베르의 꼬리가 저 멀리 떨어진 족장 알랜시아를 슬쩍 밀었다. 힘없이 황금 나무 곁으로 다가오는 알랜시아.

       알랜시아는 다른 엘프들과 달리 눈물을 흘리지도, 소리를 지르며 통곡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나, 나는… 족장, 족장이니까… 내, 크흡. 내가 다른 이들보다… 우읍! 참아야, 하는데!”

       

       한 걸음, 두 걸음.

       

       알랜시아가 천천히 황금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손이 떨렸다.

       족장이라는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음일까. 모두가 소리치며 울 때, 그녀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참았을 뿐. 족장이었고, 이끄는 자이기에.

       슬퍼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도 기뻐하지 않았다.

       

       “아, 아아…! 아아아!!”

       

       절규. 차마 말로 담지 못할 슬픔과 절망이 담긴 비명이 울려 퍼진다. 

       한번 터진 눈물은 끝을 모르고 흘러내리며 시야를 뿌옇게 흐린다. 떨리는 손을 애써 앞으로 뻗어 황금 나무를 쓰다듬었다.

       

       거칠고, 부서지고 갈라졌다.

       

       그녀의 마음도 함께 갈라지는 듯했다.

       

       “——————!!”

       

       알랜시아는 황금 나무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떠나지 말라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황금 나무를 향해 울었다.

       황금 나무는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줬다. 그리고 속삭였다.

       

       슬퍼하지 말라고.

       이건 영원한 안녕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행복하라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

       

       

       

       이베르가 조심스레 묘목을 품에 안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황금 나무의 의지.

       황금 나무는 이 묘목이 성지에서 자라길 원하고 있었다. 

       

       《원숭이들. 황금 나무의 묘목은 내가 성지로 가져가서 심을 것이다. 황금 나무도 그걸 원하고 있고.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할 테냐. 》

       

       눈이 퉁퉁 부은 알랜시아가 코를 팽하고 풀었다. 아직 슬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눈이 빨갛다.

       

       “저, 저희는-훌쩍- 여섯 번째 신께서 저희를 받아 주신다면, 그분의 밑에서 평생을 섬기고 싶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드넓은 하늘보다 더욱 넓은 하해와도 같은 마음을 품고 계시니, 너희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루어질 것이다.》

       

       묘목의 잎사귀라도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은 이베르가 몸을 낮췄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 엘프들은 그저 눈을 멀뚱거리며 저들끼리 바라봤다.

       

       《하아… 내 등에 타라 원숭이들. 원래는 아무나 태워주지 않지만… 이번만은 내가 황금 나무를 생각해서 특별히 태워주마.》

       “아, 아아!”

       “이베르님,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래도 짐을 간단하게라도 챙겨야 할 듯 싶어서ㅡ”

       《난 상관없다.》

       

       이베르는 묘목을 품에 안고 땅에 푹 누워버렸다. 알랜시아가 엘프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다들 최대한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빠르게 돌아와라! 꼭 필요한 것만 챙겨!”

       

       그제야 엘프들이 허둥지둥 움직이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를 솜씨 좋게 오가며 구멍 뚫린 나무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알랜시아가 간단하게 챙기라고 그토록 말했건만, 구멍에서 나오는 엘프들은 한입 가득 씨앗을 머금은 햄스터처럼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나왔다.

       물론 알랜시아는 이를 쉬이 넘기지 않았다.

       

       “이거 뭐지?”

       “제가 어릴 적부터 쓰던 옷걸이입니다!”

       “…버려. 이건 또 뭐야.”

       “아, 그건 제가 어제 저기 오방나무에서 주운 엄청나게 튼튼하고 곧은 나뭇가지ㅡ”

       

       휙.

       

       “아, 으아아! 내 성검 ‘더 스카이 플레임 워커 퓨리’!!”

       “하아. 장난 치지 말고 제대로 챙겨와라.”

       

       그런 식으로 알랜시아의 손을 통해 수많은 잡동사니가 버려졌고, 아주 간단한 짐을 챙긴 엘프들이 툴툴거리며 이베르의 등에 올라탔다.

       

       “야, 야. 이거 먹을래? 내가 족장님 몰래 챙겨온 열매인데, 엄청 달아.”

       “진짜? 하나만 줘봐… 엣 퉵퉵!! 떫잖아! 이게 뭐가 달아!”

       “음. 이건 먹으면 안 되는 거구나.”

       

       방금 전의 슬픔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가벼운 분위기.

       의도적인 가벼움으로 슬픔을 잊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인 걸까.

       

       《원숭이들은 노는 것도 딱 원숭이처럼 노는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이유 모를 수치심은 왜 알랜시아의 몫일까.

       

       차례차례 이베르의 등에 엘프들이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남은 이는 족장 알랜시아와 에스텔. 무언가 미련이 남았는지, 혹은 하지 못한 말이 있는지 어물쩍거렸다.

       그녀가 챙긴 짐은 금이 간 팔찌와 산산이 부서진 활의 파편이 유일했다.

       

       “에스텔, 이리 오렴. 네가 마지막이구나.”

       “…네.”

        

       알랜시아의 부름에 천천히 다가가는 에스텔. 이베르의 등에 올라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처럼 거대하고 따스한 빛의 황금 나무.

       이제는 그 위용이 거짓말처럼 희미한 빛과 거칠게 갈라진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가자꾸나.”

       

       알랜시아가 다정하게 에스텔의 등을 어루만졌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내며, 에스텔은 이베르의 등에 올라섰다.

       

       《전부 준비된 건가?》

       

       이베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두껍고 거대한 피막이 펼쳐지며 땅을 뒤엎었고, 천천히 날갯짓하며 바람을 일으킨다.

       

       날갯짓 한 번에 몸이 떠오르고, 두 번의 날갯짓에는 드넓은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세 번의 날갯짓은 그저 방향을 정할 뿐.

       

       “아…”

       “황금 나무시여… 부디 안녕히.”

       

       바보처럼 떠들며 웃던 엘프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이베르의 날갯짓을 따라 빠르게 황금 나무가 멀어진다.

       

       자연 그 자체의 위용을 떨치던 위용은 사라지고.

       모든 생명을 불태운 채 조용히 죽어가는 나무만이 존재했다.

       

       거대한 나무.

       엘프들에게는 그 이상의 존재였던 나무.

       

       “다시 만날 때에는… 웃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머지않아 곧, 다시 만날 테니.

       

       황금 나무가 점점 작아지다가, 이윽고 점이 되고 완전히 사라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 숙인 엘프들 사이에서는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여린 울음소리는 바람을 따라 쉬이 묻혀버렸다.

       

       슬픔은 바람에 묻히고, 이베르는 성지를 항해 천천히 날갯짓했다.

       가는 길, 그들의 슬픔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금 더 천천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달콤한 카카오 초콜릿 같은 후원!!! 감사합니다!!! 황금 나무의 계??략?? 제갈?공?명?? 어, 맞나?? 저도 잘 몰?루

    – ‘독서567’님!!! 허어억!!! 깜짝 놀라서 뒤로 덤블링 세 바퀴 돌게 만드는 왕 후원!!! 치즈 퐁듀에 담궈서 먹는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도 입안에서 녹는 후원!!! 감사합니다!! 구, 군만두요?? 히익…!! 올드 보이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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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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