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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휴우! 다행이당…!”

       

       바로 더블이 나온 아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주사위를 집어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인제 떠블 나왔으니깐 한 번 더 던져서 갈 수 있는 고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다음 턴에 해야 한다고 말하려다가, 아르의 간절한 눈망울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한 번 더 던지렴.”

       

       사실 이런 문제는 설명서에 명확하게 적혀 있질 않아서 플레이하는 사람들끼리 합의해서 정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 뭐 동네 애들 모여서 하는 보드게임에 체계적이고 공평한, 제대로 된 룰이 잘 적용이 될 리가 있나. 다 주먹구구식으로들 편하게 편하게 하는 거지.’

       

       그러므로 지금은 보드게임을 만든 내가 곧 창조주이자 룰을 주관하는 자다. 

       

       그러니 우리 아르 좀 살려 주는 방향으로 웬만하면 가야지.

       

       ‘일단 내가 만든 게임을 가지고 이렇게 과몰입해 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워.’

       

       아르는 이제 마치 기도를 하듯 두 젤리를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주사위를 던졌다. 

       

       아르가 무인도에 앞서 가 있는 동안 나와 실비아 씨가 사 놓은 땅에 걸리지 않길 바라고 있는 모양이었다.

       

       힐끔.

       

       눈을 뜬 아르의 안색이 밝아졌다. 

       

       “앗싸!”

       

       무려 열한 칸을 한 번에 이동한 아르는 또 곧바로 땅을 사고 성을 지었다. 

       

       “…아르야. 지금은 괜찮은데, 그렇게 건물 너무 막 지으면 나중에 파산한다?”

       “파샨?”

       “응. 이 게임은 끝까지 파산 안 하고 돈 많이 모으는 사람이 이기는 건데, 너무 돈을 막 쓰다가 나중에 돈 없는데 통행료 비싼 데 걸리면 파산하고 게임에서 아웃되는 거야.”

       “허억! 아웃 대는 건 시러…! 아르 요거 오두막으로 바꿀래!”

       “…지금부터 바꿀 필요는 없는데?”

       “그래두 바꿔 조!”

       “알았어, 바꿔 줄게 그럼.”

       “휴우!”

       

       아르는 파산이 진심으로 무서웠는지 얼른 성을 반납하고 오두막을 세웠다. 

       

       “아직 돈 마니 남았으니 갠차나….”

       

       지금껏 재벌 포스로 마구 플렉스를 하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르는 갑자기 자린고비가 되어 자신에게 남은 돈이 얼마인지 하나씩 세어 소중하게 모아 두었다.

       

       “그럼 내 차례구만.”

       

       데구르르.

       

       “오! 황금 열쇠 나왔다!”

       “열쇠는 모야?”

       

       나의 파란색 미니 아르가 도착한 곳은 열쇠 모양이 그려진 곳이었다. 

       

       “이건 음, 뭐랄까. 복불복이라고 해야겠지? 여기 가운데에 있는 열쇠 모양 카드를 뒤집어서 나온 걸 그대로 따라야 되는 거야.”

       “조은 게 나올 수도 있구 나쁜 게 나올 수도 이써?”

       “바로 그거지. 그럼 한번 뒤집어 볼까?”

       

       나는 가운데에 겹겹이 쌓여 있는 황금 열쇠 카드에 손을 뻗었다. 

       

       “쿵짝짝, 쿵짝짝. 따라리라란.”

       

       휙.

       

       과연 사쿠라일 것인가. 아니면….

       

       “나이스 장땡!”

       

       내가 뽑은 황금 열쇠에는 ‘우대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후후, 이게 있으면 남의 땅을 밟았을 때 한 번에 한해서 통행료를 안 내도 되거든.”

       “모야, 엄청 조은 거자나! 아르두 황금 열쇠 뽑고 시퍼!”

       

       아르는 우대권이 너무나도 부러운 듯 주먹을 꼬옥 쥐었다. 

       

       이후에도 주사위 던지기는 계속되었다.

       

       데구르르.

       촤르르.

       

       “엇, 아르가 아스란에 먼저 가다니!”

       “쀼우! 요기는 땅만 사며는 통행료 2골드나 받을 수 이써!”

       

       아르는 엄청난 운으로 원작의 ‘서울’에 해당하는 카란트라 제국의 수도 아스란을 구매했고.

       

       “나이스! 원거리 워프석이다! 크흐, 아르가 아스란만 먼저 안 갔어도….”

       “쀼후후! 늦어써, 레온!”

       

       원작의 ‘우주 여행’에 해당하는 꽤나 사기 효과를 아쉽게도 아스란을 사는 데에 쓸 수 없게 되었다.

       

       거기서 스노우볼이 굴러 간 걸까.

       

       “꺄악! 아스란에 걸렸어요!”

       

       머리가 두 개 달린 5미터짜리 괴물이 나타나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침착하게 검으로 썰어 버리던 실비아는 아르의 땅 아스란에 걸리자 처음으로 짧은 비명을 질렀다. 

       

       “쀼우웃! 이때만을 기다리고 이써써! 온니, 미안한 일이지만 께임은 께임이니깐 봐줄 수 업써.”

       

       아르는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으윽. 여기서 2골드가….”

       

       심지어 건물을 많이 짓느라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지 않던 실비아는 땅 일부를 처분해서 통행료를 내야 했다. 

       

       “엣헴!”

       

       부자가 된 아르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히히, 아스란 너무 조타.”

       

       확실히 아스란이 사기긴 하다. 

       심지어 옛날부터 저 자리는 한 번 걸리기 시작하면 의외로 되게 잘 걸린단 말이지.

       

       진짜 뭐 희한한 법칙 같은 거라도 있는 건지….

       

       “쀼우웃! 얍!”

       

       촤르르르.

       

       하지만, 아르의 행복은 안타깝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쀼! 드뎌 황금 열쇠당!”

       

       기대하던 황금 열쇠를 얻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어디 보쟈…. 반액…대매츌…?”

       

       이름부터 어딘가 싸해지는 느낌에 아르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아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쓰여 있는 효과를 읽었다.

       

       “가쟝 비싼 땅을…. 반값으로 은행에 판다…?”

       

       툭.

       

       아르가 잡고 있던 황금 열쇠가 떨어졌다. 

       

       “구, 구럼 아르 이제 아스란 팔아야 대는 고야…?”

       

       나를 바라보는 아르의 눈빛은 한순간에 절망으로 메워져 있었다. 

       

       ‘이, 이런….’

       

       왜 하필이면 이 카드가…!

       

       이거 말고 건물 유지비 혹은 수리비 지불이라든지, 방범용 용병 고용, 세금 지불 같은 소소한 패널티들도 많은데.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아르가 땅에 굉장히 미련이 많던데….’

       

       아무래도 처음 주사위를 던지자마자 남의 땅에 들어가 통행료를 내야 했기도 하고, 빨리 땅을 사 둬야 하는 타이밍에 무인도에서 한 턴을 썩어 버려서 그런지 아르는 자신의 땅 카드를 매우 소중히 모아 다루고 있었다. 

       

       하나 하나씩 땅이 늘어날 때마다 실제 땅부자가 되는 기분을 느끼고, 아스란을 샀을 땐 하늘을 가진 기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하루아침에 아스란을 팔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다.’

       

       벌써 아르의 눈망울은 촉촉해지고 있었다. 

       

       덩치는 커다래가지고 저렇게 순수한 눈망울로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는 게 또 귀엽긴 했지만, 일단 지금은 울음보가 터지지 않게 하는 게 급선무였다. 

       

       ‘아르 즐겁게 해 주자고 하는 게임인데 말이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창조주의 권리를 남용하기로 했다. 

       

       “아르야, 왜 그래? 찬스 쓰면 되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해 보이며 말했다.

       

       “차, 찬쓰…?”

       “응. 아까 내가 말 안 했나? 황금 열쇠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게 나왔을 때, 각자 한 번씩은 기존 열쇠를 버리고 새로 다시 하나 뽑을 수 있는 찬스가 있거든.”

       

       그 말에 실시간으로 초췌해지던 아르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져, 졍말?”

       “응. 어때, 바로 쓸래?”

       “우응! 쓸래! 쓸래!”

       

       아르는 얼른 반액대매출 카드를 나에게 넘겼다. 

       

       나는 받은 카드를 맨 아래에다 넣고, 아르에게 맨 위의 카드를 다시 뽑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키고 황금 열쇠를 하나 더 뽑은 아르는, 그 상태로 굳었다. 

       

       “뭐야, 뭐야?”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장기자랑: 당신은 댄서! 모두의 앞에서 멋진 춤을 선보이세요!

       

       ***

       

       “쀼, 쀼우…! 춤 꼭 춰야 대?”

       “그럼. 꼭 춰야지. 꼭. 무조건.”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사람이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더니, 아르의 황금 열쇠를 바꿔 주니까 이렇게 춤까지 볼 수 있게 됐구나. 

       

       좋다, 좋아.

       

       ‘아르가 걸리길 바라고 넣은 거긴 했는데, 이렇게 쉽게 걸릴 줄이야!’

       

       뭐, 물론 실비아 씨가 걸렸어도 나쁘지 않긴 했을 거다. 

       

       ‘나만 아니면 되지, 나만 아니면. 후후.’

       

       곧 아르는 두 볼을 붉힌 채 쭈뼛쭈뼛 일어났다. 

       

       역시 아스란을 반값에 파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르는 지금까지 본 춤 중에 기억 나는 거 좀 있어?”

       “우응. 기억은 마니 나. 어떤 거 할지 고민 중이야.”

       

       그간 호텔의 작은 공연장에서 본 재즈 댄스, 용병 길드나 야시장이 열리는 밤 거리 한쪽에서 볼 수 있는 춤까지, 딱히 전문적인 춤 공연을 보러 다닌 게 아닌데도 되돌아보면 꽤 많은 춤을 봐 왔다. 

       

       “자, 결정했으면 음악 주시고.”

       “쀼우! 사운드 리인액트(Sound Reenact)!”

       

       아르가 마법을 펼치자 경쾌한 음악이 공중에서 흘러 나왔다. 

       

       그리고 아르는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쀼, 쀼! 쀼! 쀼웃!”

       

       둠칫, 둠칫.

       

       “이야, 아르 잘 추는데?”

       

       의외로 커다랗고 뚠뚠한 덩치에 비해 아르는 춤을 잘 추는 편이었다!

       

       스텝을 밟으며 팔을 적절한 각도로 쭉 뻗었고, 자신이 할 수 없는 동작에서는 빵실한 엉덩이를 좌우로 둠, 칫, 하며 흔드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햐아, 레온 씨…. 춤 추는 거, 정말 잘 넣으셨어요.”

       

       실비아는 엄지를 올려 보였다. 

       

       “요거 뒤에는…. 요 모습으룬 안 대니깐.”

       

       추다 보니 흥이 났는지, 아르는 딸내미 모드로 폴리모프를 했다. 

       

       그리고 매우 가벼워지고 여리여리해진 몸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은빛 머리카락이 아르가 몸을 돌릴 때마다 공중에 나풀거렸다.

       

       “우와, 아르 춤 진짜 잘 춘다.”

       “아르 잘 하구 이써?”

       “너무 좋아!”

       “귀여워….”

       

       실비아는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감싼 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두두둠, 탁!

       마침내 짧은 음악이 끝나고.

       

       아르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

       

       실비아는 결국 통행료를 무리하게 납부한 여파로 파산에 이르렀고, 나와 아르는 치열한 게임을 벌였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연속으로 아스란을 두 번이나 밟으면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진짜 말이 씨가 됐네.’

       

       아쉽지만 어쩌랴.

       

       “쀼우! 이겨따! 아르 부자당!”

       

       아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말이다.

       

       아르마블.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길 잘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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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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